* 본문 : 시131, 마4:1-11, 빌3:4-9

이성적이고 풍요한 세상속에서 최고의 문화 생활을 영위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는 뭔가 상실한 것 같은 허전함과 상실감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신앙적인 것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온전한 생활에 대한 갈급함을 호소한다. 이유는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없지만 막연한 영적인 갈급함을 느낀다. 이 갈급함으로 인해 불안해하고 삶의 허무를 느끼고 인생의 목적이나 의미에 대해서 초조해한다.

이런 초조하고 불안한 영적인 갈급함을 우리는 영적인 배고픔 목마름으로 이해한다. 세상의 즐거움 성공으로 채울 수 없는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 텅빈 공간이 있다는 말이다. 이 영적 목마름은 개인, 가정, 교회, 사회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결손가정이 나날이 늘어간다. 마약으로 영혼들이 피폐해진다. 갈수록 강력범죄가 늘어만 간다. 항상 짜증이 나고 작은 일에도 화를 벌컥 벌컥 낸다. 진정한 감사가 없다.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 남아야되기에 이것저것 살필 여가도 없다. 정신 없이 경쟁적으로 산다. 세상논리에 끌려 다닌다.
그렇다면 왜 이 첨단 과학의 풍요의 시대에 우리를 메마르게 하는 영적 목마름과 배고픔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에 앞서서 세 가지 시험을 받으신다. 그 예수님이 받으신 세가지 시험이 우리의 영적 목마름의 원인들이다. 현실 지향적인 삶, 명예를 위한 삶, 영향력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가 겪는 목마름의 구체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다윗의 고백을 통해서도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다윗은 세상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천하를 거머쥔 왕이었다. 다윗은 가장 실제적인 사람이었다. 명예를 다가졌다. 최고의 권좌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왕의 자리, 최고의 자리가 자신에게 참된 삶의 의미를 갖다 주지 않는 것을 분명히 고백한다(시131:1).
우리의 신앙생활은 무엇을 하고, 또 무엇을 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큰 영향력을 가졌느냐 얼마나 교회와 사회에 기여했느냐 얼마나 잘했느냐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엇을 하고 할 수 있는냐를 가지고, 영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우리의 신앙을 평가하고 저울질한다. 헌금을 많이 했느냐 적게 했느냐 보다 어떤 마음으로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좋은 결과를 얻었느냐 못얻었느냐 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그 일에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얼마나 많은 기도 시간을 가졌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짧은 기도 시간을 가져도 하나님과 진정한 사귐속에서 대화를 진실하게 했다면 그보다 좋은 기도는 없다.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한 구절을 일년 내내 읽어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스런 음성을 새롭게 듣고 감격하고 감동하느냐가 중요하다. 교회 봉사 많이 하고 적게하고가 중요하지 않다. 구원해주신 은혜로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전도를 얼마나 많이 했느냐보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전했느냐가 중요하다.
우리의 현실은 하나님의 생각과 너무 멀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안하고를 중요하게 생각하시지 않는다. 탕자의 비유와 포도원의 비유에서 우리는 그 깊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만약 할 수 있고 못하고가 기준에 된다면 얼마나 불공평 한가. 할 줄 아는 사람보다 못하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뭔가를 잘하고 못하고를 평가 기준을 삼는다면 서러운 일이 많이 생길 것이다. 원망도 끝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가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시면서 우리를 평가하시지 않는다. 그렇게 하신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서 이렇게 감사하게 예배를 드릴 수 없다. 다 처벌을 받아서 고통을 겪을 것이다. 단지 죄 많은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일 뿐이다.
영적 목마름을 해결하는 열쇠는 무엇인가?
다윗의 고백에서 우리는 그 열쇠를 찾을 수 있다. 하나님 품안에서의 쉼을 항상 연습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것,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사랑과 평화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그냥 그리스도 안에 있음이 감사하고 기쁘고 즐거운 삶을 항상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그 엄마 품에서 젖을 막 뗀 갓난아기의 평화로운 모습이 담겨져 있지 않다면 우리의 황폐한 삶은 회복되지 않는다. 주님 존전에 감사한 존재로 우리가 서 있을 때 우리의 삶은 기름지고 활기차고 찬송이 있고 감사의 기도가 있다. 환경과 형편은 문제가 될 수 없다.

삶 속에서 엄마 품에서 평화롭고 자고 있는 아기의 모습으로 산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에 심오한 열매들을 맺는다.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서부터 하나님에게로 간다. 관념이 아닌 실제로 하나님을 경험한다. 우리의 거짓 자아가 죽기 시작한다. 이기적인 태도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깨닫는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고 있음을 하루하루 더 깊이 새긴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