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전1:12-20

                      
사도 바울은 그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것을 항해에 비유했습니다. 인생은 항해와 같습니다. 한 조각의 조그만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헤쳐 나가야만 합니다.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를 여행해야 합니다. 인생의 바다를 건너는데 항상 따뜻한 날씨에 순풍이 부는 것만은 아닙니다. 뜻하지 않은 폭풍이 일어나 사납고 무서운 파도가 내가 탄 작은 배를 전복시킬 수도 있습니다. 갑자기 암초에 부딪쳐 난파할 수도 있고 어두운 밤에 빙산과 충돌하여 재가 대파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든 것이 인생의 바다입니다. 내가 탄 배가 침몰하지 않아야 하고, 난파하지 않아야 하고, 표류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표류하거나 파선되는 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시험에 실패하는 사람, 사업에 실패하는 사람, 가정에 실패하는 사람, 건강에 실패하는 사람, 인간관계에 실패하는 사람. 세상에는 성공하는 사람보다 실패하는 사람이 더 많고, 승리하는 사람보다 패배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⑴,우리는 슬기롭게 건너야 합니다.
중대한 일에는 관심이 없고 사소한 일에 지지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알파와 오메가가 있습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은 더욱 중요합니다. 출발점도 중요하지만 도달점은 더욱 중요합니다.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습니다. 시작이 잘못되면 끝도 잘못되기 쉽습니다. 좋은 출발은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시인 괴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면 마지막 단추는 낄 구멍이 없어지고 만다." 인생의 바다를 건너는데 어떻게 해야 순조로운 항해를 할 수 있습니까. 먼저 명확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계획한다는 것은 목표와 방향을 정하는 것이요, 그 목표와 방향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구상하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계획 없는 생활은 실패를 가져옵니다.

시종 여일 이란 말이 있습니다. 처음과 끝, 시작과 마지막이 한결 같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결 같다는 것은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꾸준하고 끈기 있고 일관성 있어서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은 의미가 없습니다. 봄에 꽃이 피면 반드시 가을에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시작을 했으면 반드시 훌륭한 결과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종일관해야 합니다. 처음과 끝, 시작과 마지막이 다 훌륭해야 합니다. 시작한 만큼 끝도 중요합니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정말 웃는 사람입니다. 밝은 희망에서 시작한 일이 어두운 절망으로 끝나고, 서로 웃으면서 시작한 일이 서로 싸움으로 끝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만인의 축복 속에 시작한 결혼이 비극적인 이혼으로 끝나는 일이 세상에 허다합니다.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서로 뜻이 맞아 시작한 동업이 싸움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기대가 실망으로 끝나지 않아야 합니다.  웃음이 울음으로 끝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이 미움으로 끝나지 않아야 합니다. 신뢰가 배신으로 끝나지 않아야 합니다.

⑵,뚜렷한 목표를 정해야 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 길의 방향이 저마다 다릅니다. 세상에는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불행의 길 타락의 길 사망의 길 넓은 길을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디를 향해서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옳은 길, 생명의 길을 가야 합니다. 좁은 길을 가야 합니다. 로마의 위대한 철학자 세네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죽는 것이 아니라 자살하고 있다."
  
기원전 6세기에 아테네에 살았던 헬라의 위대한 철학자요 수학자였던 피타고라스는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관한 지혜를 가르쳐 주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한번밖에 못사는 삶, 인생은 일회전으로 끝나는 엄숙한 시합입니다. 인생은 이 회전이 없습니다. 우리는 한번 세상에 태어나 한번 살고 한번 죽습니다. 이 세상에 목숨을 둘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귀한 인생을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향해 해서 영원한 피안에 도달 할 수 있습니까. 이 인생의 바다에는 그 밑에 문자 그대로 인간 파편의 파멸이 깔려 있습니다. 거친 물결 위에서 우리는 파편의 흉악한 모습을 종종 볼 수밖에 없는 이런 세계에, 이런 바다를 건너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한번밖에 갈 수 없는 인생의 바다를 안전하게  건너갈 수가 있습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⑶,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만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의 바다를 건너는데 무엇이 가장 필요한 것인가 생각해 보셨습니까. 여기에 경험이 많은 사도 바울은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배가 거친 파도를 헤치며 전진하려면 무엇보다도 힘이 필요합니다. 물론 작은 강은 사람의 힘으로 노를 저어 건너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넓은 바다는 우리 힘만으로는 도저히 건널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바다를 건너는데도 우리 사람의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사람의 의지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의 경험가지 고도 안됩니다. 보다 더 굳세고 강한 힘이 필요합니다. 이 힘, 이 능력은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와 같이 험난한 인생의 바다를 건너는데 자기의 힘으로 걸어간 것이 아닙니다.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했습니다. 자기에게 힘을 주시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이기고 나간 것입니다. 물질적 능력을 이 우주에 준비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생으로 하여금 바른 길을 가게 하기 위해서 신령한 능력을 분비해 두셨습니다. 이 능력은 오직 믿는 이에게만 오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이 있는 이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사43장을 보면, "물을 건널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바다를 성공적으로 건너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바다를 건너가는데 큰 힘이 필요합니다. 그 큰 힘이 어디에 있습니까? 믿음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적극적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 것은 다른 사람 보다 믿음이 있어서 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안 된다고 못한다고 했지만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했습니다. '착한 양심'이란 부끄러운 양심이 아닙니다. 더러워진 양심이 아닙니다. 화인 맞은 양심, 왜곡된 양심, 마비된 양심이 아닙니다. 착한 양심이란 하나님이 본래 주신 그대로의 순결한 착한 양심입니다.

⑷,양심의 소리에 순종해야 합니다.
여러분, 인생의 바다를 건너는데 가장 필요한 작은 기계 하나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침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 속에 나침반을 하나 주셨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이 곧 양심입니다. 부끄럽지 아니한 착한 양심입니다. 양심은 영혼의 지성소입니다. 양심은 우리 마음속에 밝혀 주는 촛불입니다. 성경은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이 양심이 인생의 바다를 건너는데 그 방향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여 줍니다. 시비를 판단하여 줍니다. 갈 길과 가서는 안될 길을 어떤 것임을 알려줍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양심은 소중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양심은 우리를 격려하고 혹은 책망하기도 합니다. 양심의 소리는 크지 않습니다. 조심해서 들으려 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무시해 버리면 안됩니다. 양심의 소리를 거역하지 맙시다. 아무리 어려워도 양심의 음성에 순종해야 인생의 바다를 성공적으로 건널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손해가 나도 양심의 명령에 순종합시다. 아무리 부끄러워도 양심의 명령에 복종합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이 양심을 버릴 때 그 사람의 인격 전 생활은 파선하고 마는 것입니다. 양심을 버리지 말고 그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⑸,하나님의 말씀으로 건너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의 바다를 건너는데 필요한 것은 항해도입니다. 바다에 대한 지도입니다. 어느 곳에 섬이 있고 어느 곳이 깊고 어느 곳에 암초가 있는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세히 알고 보면 바다에도 배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저 물위라고 해서 함부로 다니다가는 암초에 부딪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의 바다를 바로 건너려면 이 항해도를 보고 옳은 길을 찾아가야만 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바다에 자세하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인생 항해도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신구약 성경입니다. 이 성경은 옛날부터 예수님 오실 때까지의 여러 사람의 생활을 기록해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며 어느 곳에 암초가 있고 어느 곳이 얼마나 깊은가 하는 인생 항로의 모든 경험을 우리에게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느 길이 생명의 길이요 어느 길이 멸망의 길인 것을 가르쳐 줍니다. 어느 길이 축복의 길이요 어느 길이 저주의 길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 인생의 바다를 성공적으로 건너가시기를 원하십니까? 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서 이 성경이 가라고 하는 길로 가기만 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파선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해야 하는 중책을 모세로부터 인계 받은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너에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까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 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했습니다.

⑹,주님을 마음속에 영접해야 합니다.
인생의 바다를 건너가는데 꼭 필요한 것은 선장입니다. 예수 님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있었고 밤은 캄캄한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물결이 세차 배 안으로까지 들어옵니다. 제자 중에는 어부 출신이 있어 웬만한 풍랑은 이길 수가 있었지만 그들도 기술과 경험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다 위로 누가 걸어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유령인 줄 알고 더 무서워했습니다. 주님께서 안심을 시키시고 그 배 위에 올라오시니까 거친 파도가 잔잔해지고 아무 염려 없이 무사히 목적지까지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바다를 무사히 건너 목적지인 저 하늘의 항구까지 가기를 원합니까? 내 힘만으로 기술만으로 경험만으로 의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숙련된 선장이신 예수 님을 우리 마음 가운데 영접하여 그리스도께서 내 작은 배의 선장이 되게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배는 지금 어떤 형편에 있습니까. 혹 파선 직전의 위기에 직면한 분은 안 계십니까. 지금 여러분의 배가 바른 길을 가고 있습니까. 튼튼한 믿음을 가져야 힘있게 나아 갈 수 있습니다. 착한 양심에 순종해야 이 뱃길을 바로 갑니다. 항상 말씀 따라 살아야 암초에 부딪치지 않습니다. 주님을 영접해서 주님이 내 작은 배를 인도할 때 우리는 인생의 바다를 성공적으로 건너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 하나가 인생의 바다를 성공적으로 건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저/이석권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