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24:25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여 구원을 얻은 성도가 신앙 생활을 하는 중에 범죄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교만입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복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배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영적으로 실족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자신이 잘나서 모든 것을 이룬 것으로 착각함에서 비롯됩니다. 본문에서 다윗도 그러한 교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징벌을 받을 가증한 죄악을 범하게 되었습니다. 다윗과 같은 훌륭한 신앙의 인물도 교만에 빠지는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올무에 걸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요압을 불러 이스라엘의 인구 조사를 명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이 이룩한 왕국의 힘이 얼마나 되는 지 헤아려보고 그것으로 만족하려는 인간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요압은 그러한 다윗의 행위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함을 충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교만으로 가득 찬 다윗의 귀에 요압의 충고가 들릴 까닭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재차 인구 조사를 명하였고 요압은 할 수 없이 인구 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다윗과 요압의 대화 속에서 이번만큼은 다윗보다 요압이 믿음의 시각을 가지고 이 사건을 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압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백성을 백 배나 더하기를 원하나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인구 조사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간언하였습니다. 이는 다윗이 인구 조사를 명한 이유가 하나님 앞에 불손한 것이었음을 요압이 파악하였다는 증거입니다. 다윗의 모든 승리와 이스라엘의 번성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말미암았으나 다윗은 그러한 사실을 잊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강대한 군사력을 자랑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하게 된 배후에는 다윗의 교만을 징벌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다윗을 치시려고 다윗의 마음을 감동하시어 인구 조사를 실시케 하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를 잘못 이해하면 다윗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범죄케 하시고 징벌을 내리시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진노하신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즉 다윗의 신앙의 상태가 침체되어 교만으로 그 마음이 가득 참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징계를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실족하여 범죄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연약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윗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을 유지하지 못할 때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보호하시지 않으면 잠시라도 범죄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연약한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신의 연약함을 기억하는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리어 자신이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여주실 것을 간구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6:13)라고 기도할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자신이 잠시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지 않으면 범죄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겸손함이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함으로 범죄를 행치 않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셔서 죄악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을 내리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궁극적인 심판을 위한 것으로 긍휼 없는 심판이며 또 한 가지는 회개를 이루기 위한 경고성 심판으로 긍휼 있는 심판입니다. 긍휼 없는 심판은 불신자들이 하나님께 당하는 것이고 긍휼 있는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이 실족하여 범죄하였을 때에 하나님께 당하는 징계입니다. 다윗이 인구 조사를 행함으로 하나님께 징벌 심판을 받게 되었음을 증거하고 있는데, 이는 회개를 이루기 위한 긍휼 있는 심판이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죄악에 대한 징벌은 우리 성도가 체험하게 되는 사랑의 채찍입니다.
  교만함으로 인구 조사를 실시한 다윗은 그 일로 인하여 마음에 찔림을 받아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신이 미련하게 행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으므로 죄를 사해 달라는 간구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갓을 보내어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을 징벌을 선택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이미 하나님께서 다윗의 회개를 받으셨으나 그 죄에 대한 징벌을 행하시되 긍휼 있는 심판을 행하실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비록 다윗이 회개는 하였지만 공의의 하나님께서 그 죄가를 물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범죄하여 당연히 죽을 수밖에 없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징벌에 대한 선택권을 주심은 심판 중에도 은혜를 베푸실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또한 징벌을 통하여 다윗에게 죄가 가져오는 심각한 결과를 체험케 함으로 더욱 경성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였기에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긍휼 있는 심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와 불신자의 차이는 범죄의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은 죄에 대한 회개의 유무에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행하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성도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하여 회개할 바가 없는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성령으로 인하여 마음에 찔림을 받아 죄를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자에게도 그 죄악된 행위에 대한 보응을 주시지만 긍휼을 베푸시어 다시 회복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사망의 심판을 성도를 대신하여 받으셨기에 영벌의 심판을 받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러한 은혜를 감사하며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할 뿐 아니라 더욱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갓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징벌의 종류를 선택하게 하셨을 때에 다윗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직접 받는 징벌인 온역 심판을 택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의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역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치시어 칠만 명을 죽이신 후에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징벌을 그치게 하셨습니다. 백성들이 자신의 죄 때문에 죽어가는 모습을 본 다윗은 차라리 자신의 집을 치실 것을 간구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의 심각한 결과를 뼈져리게 느끼며 온전한 회개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로써 다윗은 죄의 대가를 받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에 대한 징벌을 그치심으로 그의 회개를 받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성취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에 대하여 긍휼 있는 심판을 행하셨을 때에 다윗에게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을 돈을 주고 사서 여호와께 단을 쌓고 화목제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였습니다. 아라우나는 땅의 값을 받지 않겠다고 했으나 다윗이 값 없이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겠다고 하면서 땅을 샀습니다. 이는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의 바른 헌신의 자세를 보여준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이 드리는 화목제를 받으시고 그 땅에 내린 재앙을 그치심으로 다윗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이제 다윗이 범한 죄는 다 사함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다윗에게 징벌을 내리심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있는 심판의 결국은 징벌을 받은 자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것으로 끝이 났던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화목제는 장차 죄인과 하나님과의 중보자로서 자기 몸을 화목제물로 바치심으로 죄인과 하나님 사이를 화목케 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제사를 예표한 것이었습니다. 성도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이름으로 구하는 성도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써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또한 다윗이 값없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헌신이 있어야 함을 교훈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구속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히 여기시는 뜻을 좇아 순종함으로 산 제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롬12:1-2).


출처/강성찬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