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소리를 들으라 (사55:6-13 )

할렐루야! 이 시간은 “말씀의 소리를 들으라” 는 제목으로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주
시는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음성이요.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인 말씀이
이 시간을 통하여 내 영혼에 들려지고 그러므로 해서 영혼이 깨어나고 일어나는 역사가 이
루어지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자연도 알아듣습니다. 사후 세계에도 들려집니다. 이를
테면 죽은 자들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난 이들이 있고 그 중에도 나사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사로는 죽어 무덤에 장사되었고 예수님이 무덤에 찾아 가셨을 때에는
이미 죽은지 나흘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를 향하여 예수님은 외쳤습니다. 나사로야 나오
라! 그러자 죽은 자가 베로 몸을 동인채로 무덤에서 나와 예수님 앞에 섰습니다. 자연이 하
나님의 음성을 듣고 반응한 예는 수 없이 많습니다. 그 중에도 예수님의 사역 중에서 바다
의 풍랑을 잔잔케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나귀의 입을 열어 말을 하게 하여 무지한 발람
을 깨닫게도 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도망치는 요나는 뱃속에 집어넣고 니느웨 가까운 곳
에 데려다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요나를 토한 거대한 물고기도 있습니다. 하물며 인간인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인 말씀의 소리를 못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면 본론을 통하여 우
리가 무엇을 들어야 할지를 살펴봅니다.
1>하나님을 찾고 부를 때가 언제인가
본문말씀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고
하십니다. 그러면 이때가 어느 때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구체적으로 다루어 봅니다.
1:가까이 계실 때에 찾아야 합니다.
가까이 계실 때가 언제이겠습니까? 예를 들어봅니다. 막10:45-52절에 보면 소경바디매가 나
타납니다. 이 사람 바디매오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그때처럼 소리를 질러본적이 없을 것입니
다. 그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고
하였습니다. 바디매오의 이러한 외침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참고 있을 수 없을 만큼의 소
리를 크게 질렀던 것입니다. 그에 외치는 소리는 내용이 있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부르짖음은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데 성공한 것이었고 드디어 그는 밝은 세상
을 보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내가 힘들어하고 있을 그때에 들려주시는 말씀의 소리가 스칩
니다. 이는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문과 같습니다. 내가 실망하고 있을 그 때에 용기와 소
망을 주시는 말씀의 소리가 스칩니까? 이는 나를 일으키시는 말씀입니다. 어째할 줄을 몰라
방황하듯 하는 나에게 길과 방법을 가르치는 말씀이 내 마음과 귀를 스치고 지나갑니까? 이
는 내 곁을 지나는 주님의 소문과 같습니다. 이때에 믿음의 사력을 주님을 불러야 합니다.
2:만날만한 때에 찾아야 합니다.
만날만한 때<ax;m; matsa마짜>란 언제를 가리키는 말씀이겠습니까? 발견하다. 상징적으로
발생하다. 여기 있다. 우연히 발견하다. 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어근을
찾아보면 <ax;/m mowtsa모짜> 밖으로 나가기(그 행동), 새벽, 해의 뜸(동방),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는 능동적 노력을 요구하는 의미가 실려 있습니다. 능동적 노력을 동원
해서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은 외면치 않으시고 찾으시는 그 소리에 마치 무엇을 우연히
발견하듯이 만나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굳굳하게 기다려야 만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새벽이 가까움은 동이 튼다는
뜻이고 동이 튼다는 것은 해가 떠오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법칙은 인간인 마음대로 조
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정하신 법칙이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
로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다리면 새벽은 오는 것입니다. 새벽이 분명히
온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요. 확신입니다.
3:사람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가까이 계십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에 아담과 하와가 동
산 숲 속으로 숨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아! 아담아! 아담을 부르셨습니다. 왜 부르셨습
니까? 하나님이 아담을 부른 것은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
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보여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담을 부르
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멀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
이 하나님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
는 방법이 나의 죄를 회개할 때입니다.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때가 잔뜩 끼어 보이지 않아
도 물에 깨끗하게 씻으면 모습을 선명하게 보게 하는 것처럼 내 죄가 내 마음과 영혼을 덮
고 있어서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임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입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
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고 하셨습니다.
1:인간의 생각은 악합니다.
창8:21절에 노아의 제물을 흠향하시고 하시는 말씀이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
주하지 아니 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
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비록 젖먹이 어린애라 할지라
도 그 아이는 욕심부터 부립니다. 자기 욕구를 위하여 떼를 쓰고 고집을 피웁니다. 자라면서
싸움부터 배우고 거짓말부터 배우고, 시기하고, 다투는 일부터 합니다. 하물며 성숙한 어른
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 중에는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
의 생각이 가장 흉하고, 가장 추하고, 가장 더럽습니다. 이것을 모르고 인간은 자기가 가장
좋고, 완벽하고, 허물이 없고, 세련되고, 교양적이고, 멋지다고 생각을 합니다. 깨달아야 합니
다. 바울은 자신이 은혜를 받고 성령으로 변화되고 난 후에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 죄인 중
에 괴수라 하였고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나라고 한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은 악합니다.
악한 생각은 결국 인간을 죄에 빠지게 하고 멸망과 심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2: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벌여야 할 생각이 바로 육의 생각입니다.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7절에서는 육신
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
님과 원수 되는 생각을 버려야 하고 사망이 되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왜 육신의
생각이 사망이 되고 하나님과는 원수가 되는 일이겠습니까? 육신이란 savrx sarx 육체를
가진 모든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사람뿐 아니라 각종 동물들도 모두 포함됩니다. 육신은
흙으로 창조하셨는데 육신을 가리키는 savrx 은 sarovw saroo 비로 쓸다. 에서 왔습니다.
비로 쓸면 날아가는 먼지를 가리킵니다. 이런데서 나오는 생각은 매우 어리석을 뿐입니다.
믿음 없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는 멀어지는 것이고 원수 되는 일만 생각하게 됩니다. 그
런데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영은 (롬2: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라고 한 영과는 다른 것입니다. “각 사람의 영” 이라고
한 이 “영”은 yuchv psuche 라고 하는 호흡을 가리키는 영이고 롬8:6절에의 영은 성령을
가리키는 pneu'ma pneuma 로 쓰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성령의 영이 임하지 아니하면 호
흡하는 영으로만 살다 죽으면 그 영혼은 한번도 평안과 기쁨을 누려보지 못하고 지옥의 심
판을 받게 되는 참으로 가련한 영이 됩니다. 성령의 없는 육신의 생각은 육신만 생각하게
되고 땅엣 것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성도는 이러한 육의생각을 버려야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3: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 차이를 봅니다.
본문 말씀입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각은 우주적이라면 내 생각은 보잘 것 없습니다. 하늘과 땅의 차이는
계산할 수 없을 만큼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좁은 생각으로 어찌 우주적인 하
나님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내 생각의 판단 기준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단
정하는 어리석고 교만한 판단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제는 자기중심적인 판단을 무시하고
바꾸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축복이 있습니다.
본문 말씀입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
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1:땅에 내리는 비와 같은 것이 말씀인 것을 믿습니다.
비는 땅에 내리되 땅을 적시지 아니하고 그대로 하늘로 다시 다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토
지를 적시어 만물이 소생케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말씀이 아니라 그 말씀에 의하여 교회가 이루어지고 말씀에 의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 24:35;막 13:31;눅 21:33을 각각 보면 천지는 없어지겠으
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없어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것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있으라
하시니 있었습니다. 그대로 되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것이 모두 말씀에 의하여 이
루어진 것입니다. 말씀이 이루어지는 교회, 말씀대로 믿는 성도, 말씀이 있는 제단이 복이
있습니다.
2:복의 열쇠를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파종하
는 자에게는 종자가 있어야 토지에 심을 수가 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에게는 총과
실탄을 주어야 적을 무찌를 있습니다. 먹는 자에게 양식이 없다면 굶주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종자의 축복을 주신다는 말씀이요. 양식을 주신다는 약속인데 이는 처음
부터 마지막까지 책임을 지신다는 말씀입니다. 종자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마
17:20절에 보면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
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성도가 철저하게 하나님의 복을 받는 다면 이는 믿
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성도가 천국을 가는 것도 믿음에 의하여 가는 것이지 어떤 수단이나
방법이나 노력에 의하여 가는 것은 아닙니다. 파종 자에게 종자를 주신다는 것은 장차 번성
의 복을 크게 더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종자의 복을 받아야 나중에 크게 번성하고
풍성하게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대적을 없애고 평안을 약속하셨습니다.
본문입니다.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
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
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고하셨습니다. 과거에는 기쁨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라 근
심으로 가는 길이요. 슬픔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평안이 있는 길이 아니라 싸움과 분쟁과
불화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축복은 기쁨이 있을 것이요. 평안만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잣나무가 가시나무를 대신하게 하고
화석류로 질려를 대신 한다는 말씀입니다. 가시나무와 질려는 고통과 불로서의 심판을 말씀
합니다. 그러나 잣나무와 화석류는 희락과, 평강과, 사랑과 축복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결론: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받는 주연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게 말씀
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찾을 만한 때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 육에 속한 생
각에 얽매이지 버려야합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우주가 이루어졌듯이 그 말씀이 내 안에 이
루어지기를 사모합시다.


        출처/이영택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