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생명의 말씀 (시편 119:9-16)

우리가 믿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를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기독교의 계시성'에
있습니다. 세상에 많은 종교의 특징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것은 '기적과 정성'입
니다. 사람들이 종교를 왜 가집니까? 기적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사고(事故)
나도 나는 안 다치고, 모든 사람이 병들어도 나는 병들지 않는 기적을 바랍니다. 그래서 새
차를 사놓고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빕니다. 왜 빕니까? 다른 사람은 다 사고(事故)나서 다쳐
도 나는 사고(事故)가 나지 않거나, 사고를 만나더라도 다치지 않게 해 달라고 비는 것입니
다. 그런데 그 기적을 이루어 내는 방법은 '정성'입니다. 누구에게, 무엇에게 비는가는 중요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고목이든, 돼지머리든, 바위든, 성황당이든, 돌로 만든 형상이든 상관
이 없습니다. 문제는 정성만 들이면 신(神)이 내 소원을 들어주셔서 기적을 베풀 거라는 겁
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다"는 말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내가 정성을 다하면 하
늘이 감복(感服)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 선조들은 찬물 한 그릇을 떠놓고 빌었습니
다. 그들에겐 대상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신(神)의 뜻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소나타 뽑아서 돼지머리 올려놓고 이
렇게 기도하는 사람 봤습니까? "오! 신(神)이시여. 내가 새 차를 뽑았는데 이 새 차를 어디
에 써야 할지 당신의 뜻을 계시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없어요. 왜 돼지머
리 앞에서 절을 하는 겁니까? 사고(事故)나지 않게 해 달라고 비는 것입니다. 신(神)의 뜻은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정성을 들이면 신(神)이 감복(感服)해서 기적을 일으키고,
내가 소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모든 종교의 특징입니
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예수를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왜 신앙생활 합니까? 기적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유익을 위해 기적
을 구하는 겁니다. 다른 아이는 다 떨어져도, 내 아이는 공부를 좀 못한다 하더라도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은 다 암에 걸려 죽어도, 나는 예수 믿으니까 그 암이
낫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 소원을 이루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소원
을 이루는 방법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과 약간 다른 것 같습니다. 그것은 새벽기도, 철야
기도, 주일 성수, 십일조와 기타 헌금입니다. 방법만 다를 뿐이지, 다른 종교 믿는 사람과 무
슨 차이가 있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 믿는 동안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시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기적이 우리 신앙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기독교가 아닌 다른 모
든 종교들은 기적을 목표로 합니다. 내 유익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상관없어요. 그러
나 우리가 믿는 믿음은, 내가 고난 받고 암으로 죽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면,
그 길을 택하겠다고 하는 것이 기독교의 참 신앙입니다.저는 목회하면서 두려운 생각이 들
어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예배는 드리지만,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인가, 아
니면 또 다른 미신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적과 정성이 아니라, '계시와 진리'인 줄 믿습니다.
나의 유익과 우리의 정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중요한 겁
니다. 스데반처럼 내가 돌에 맞아 죽을지언정, 하나님의 영광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진리
대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삶을 통해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내 작은 삶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가 내 가정과 사회에 이루어진다면 그것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기독교
의 신앙입니다.

계시(啓示)가 무엇입니까? 열어 보이는 겁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 편지를 받았습니
다. "아, 편지가 왔구나!" 하고 뜯어보지 않고 묻어두면 그 내용을 알 길이 없잖아요? 계시
란 바로 그 편지를 뜯어서 읽어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안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있는 겁니다.

한 스님이 12년을 기도만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12년 동안 등을 땅에 대
지 않고 기도만 하다가 이 땅을 떠났어요. 12년 동안 등을 땅에 대지 않고 기도만 했어요.
잘 때도 앉아서 잤어요.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어요. 사흘만 등을 땅바닥에 대지 않고
앉아 있어 보세요. 아마 허리가 부러지는 것 같을 겁니다. 그러나 12년을 앉아서 기도해도
한 글자도 깨달을 수 없는 천국의 진리를, 하나님께서 은혜로운 계시로 우리에게 열어 보여
주신 줄 믿습니다. 그 계시의 말씀이 성경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선물입니까?

시편 119편은 22개의 단락으로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 알파벳 8절씩 22단락, 176절 중에 오
늘은 '베스'라는 두 번째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여덟 절을 공부할 겁니다. 우리말로 하면 '나
'에 해당합니다. 오늘 본문의 여덟 절을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9절부터 11절은 하
나님의 말씀의 효력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말씀이 하는 일을 말합니다. 성경의 능력에 대해
말씀합니다. 12절부터 16절은 성경에 대해 우리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 가에 대해 기록되
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한다면, 성경이
하는 일과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1. 성경의 능력

먼저 말씀에는 어떤 효력이 있습니까? 성경이 무엇을 합니까?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성경
은 우리의 삶을 순결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1) 우리의 삶을 순결하게 한다

9절과 11절을 보세요.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9절을 원문으로 보면, "젊은이가 어떻게 자신의 길을 순결케 하리요?" 하고 질문합니다. 왜
하필이면 젊은 사람일까요? 나이가 많으면 자동적으로 행실이 깨끗해집니까? 여기에서 젊
은이를 얘기한 것은, 가장 유혹에 빠지기 쉬운 때를 의미합니다. 모든 혈기가 왕성해서 죄에
빠지기 쉬운 때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젊은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가장 죄에 빠지기 쉬운 때에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순결하게 지켜줄 수가 있다는 말
씀입니다. 여러분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요즘 젊은이들을 관찰해 보세요. 최근에 '친구'라는 영화가 굉장히 뜨고 있습니다. 관객동
원 1위입니다. 범일동을 배경으로 찍은 영화라고 해서 부산 시장이 자랑을 다 합니다. 저도
아내와 함께 보았어요. 많은 사람이 공감을 하고 뜨고 있는 이유가, 당시의 젊은 시절을 그
대로 그렸다는 겁니다. 이 영화를 통해 일종의 향수를 느끼는 거죠. 특히 40대가 학창시절
향수를 느낀다고 합니다. 저도 옛날에 많이 본 모습이 나옵디다. 선생님들이 귀를 붙잡고 뺨
을 때리는 장면입니다. "니 아부지 직업이 뭐꼬?" "장의삽니다" "그래 이놈아, 니 애비가 남
의 몸 씻어 가지고 학비 대어 주는데 성적이 이게 뭐꼬!" 하면서 딱 때립니다. 그걸 보고,
옛날 생각이 많이 났어요. 옛날 선생님들은 뺨따귀를 많이 후려쳤어요. 그걸 보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겁니다. 그들이 느끼는 향수가 욕설과 술, 담배, 성적인 타락입니다. 이 영화가 뜨
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그 영화를 비판하는 글들이 끊이지 않고 올라옵니다.

그 당시 학교에는 규율이 없었나요? 선생님들이 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아이들을 때리고 제
재하고,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한마디만 해도 호령을 해서 오늘날보다 훨씬 더 감독을 잘 했
어요. 그때 그렇게 매를 맞고 자라난 오늘의 40대들이 순결해졌습니까? 이 사회가 깨끗해졌
습니까? 아닙니다. 무엇이 우리를 깨끗하게 합니까? 규율, 법, 부모님과 선생님의 감독과 제
재, 이 모두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라고요.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깨끗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나를 죄악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가운데 삶이 정결치 못해 고민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겉으로는 교회 직분을 맡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합니다. 지위도 가지고 있고 점잖다고 얘기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아시
는 죄의 습성을 가지고 오늘도 고민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 보세요. 이 세상에서 우리의 행실을 정결케 하고, 우리
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12년 동안 등을 땅에 대지
않고 기도해도 얻지 못했던 하늘의 진리, 오직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
다. 이 말씀이 하는 일이 우리를 순결케 하고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으십시오.
말씀을 가까이 할 때, 내 삶에 변화가 생깁니다. 생각이 바뀌고 습관이 고쳐지고 행동이 바
뀌는 간증들을 수없이 듣고 있습니다.

중국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허드슨 테일러를 알 겁니다. 그는 18세의 청년 때 선교의
비전을 가집니다. "내가 중국에 가서 선교를 하리라!" 그리고는 18살 때부터 하루에 두끼를
먹으며, 매일 8킬로미터를 달리는 훈련을 했어요. 그는 풍족한 나라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하루에 다섯 끼를 먹어도 되는 나라에서 살았지만, 그는 중국이 가난한 나라임을 알고, 미리
부터 자신을 훈련한 겁니다. 드디어 그는 22세 때 중국에 건너가서, 그의 남은 일생 동안 헌
신하여 중국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오늘날 중국이 공산 국가로 변한 것 같지만, 지하 교인이
약 7000만 명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신앙이 얼마나 뜨거운지, 만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놀랍니다. 이들이 모두 누구의 씨앗입니까? 허드슨 테일러가 뿌려놓은 씨앗입니다.

나이가 18세면 고등학교 2,3학년입니다. 영화 '친구'에서와 같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장난
과 농담을 하고, 술과 담배를 하고, 이 사회의 악을 흉내내기 쉬운 그 나이에, 그는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을 향해 바쳤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허드슨 테일러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
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다고 말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살았어요. 주일학교에서
배운 말씀을 집에 와서 다시 한번 정리해 보며,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다고 얘기합니다. "
아버지 하나님! 제가 이렇게 살게 해 주세요. 제가 이 말씀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저를 변화
시켜 주세요!" 그래서 그는 불과 18세의 나이에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바치는 순결한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덕이 이 세상을 구할 수 없습니다. 감시가 여러분의 자녀를 깨끗
케 할 수 없습니다. 저도 자녀를 키우고 있는데, 요즘 아이들은 옛날 아이들과는 달리 각자
자기들의 방을 가지고 있어요. 옛날 아이들은 한방에서 이불 하나로 전쟁을 했잖아요. 그래
서 그때는 누가 무엇을 하는지 다 알았잖아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자기 방에 들어가면
무엇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있어야지요. 10분마다 문을 열어볼 수도 없고... 그래서 저는 한
때는 몰래카메라를 달아볼까 생각도 했어요. 그러나 저의 감시가 자녀를 변화시킬 수 없다
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다음부턴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에게 가르치기로 했습니다. 잠들 때
잠시라도 주의 말씀을 얘기해주고, 성경 말씀을 암송하게 했어요. 한 구절에 1000원 준다고
했더니 눈에 불을 켜고 외우더군요. 하나님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과 자녀들을 깨끗케 할 줄
믿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기도합니다.10절을 보세요.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주의 계명이 내가 살 길이기 때문에, 주의 계명만이 나를 깨끗케 하기 때문에 "주여, 전심
으로 당신을 찾았사오니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서 가져가지 마옵소서!" 하고 기도합니
다. 이것이 영안 성도들의 기도가 되길 축원 드립니다.

2. 우리의 할 일

어떤 태도로 성경을 대해야 할까요? 시편기자는 세 가지를 얘기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대
해 이러이러한 태도를 보일 때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역사한다고 말합니다.

1) 조명(照明)을 위한 기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조명(照明)을 위해 기도를 해야 합니다.12절을 보세요.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조명(照明)이란 계시의 말씀이 내 안을 환히 비추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말씀을 읽고 설
교를 들어도 그 말씀이 내 안을 비추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 죽었
던 우리의 영이 살아납니다. 그 결과 성령 하나님, 즉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드디어 우리의
영과 교통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영이 살아나서 성령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면 우리 안
에 많은 유익이 생기는데, 가장 큰 유익은 조명(照明)하시는 역사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을 환하게 비춥니다. 무엇으로 비추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춥니다. 컴퓨터에서
글을 치면 액정화면에 환하게 비추어 나타나듯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가 읽은 말씀을 문
자로 남겨두지 않고, 우리 영혼에 환히 비춰 주시는 것, 그것을 조명(照明)이라고 합니다.

즉,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안에 비추어 삶에 적용하도록 하는 겁니다. 지난 주
에 들었던 설교 말씀이, 또 내가 읽었던 말씀이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낙심했을 때,
말로 실수를 해서 형제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그 말씀들이 내 안에 살아나는 겁니다. 그
리고 회개가 시작됩니다. 이런 회개를 해 보셨습니까? 이것이 바로 조명(照明)입니다. 내 마
음이 낙심될 때 옛날에 읽은 말씀이 기쁨을 허락해 주십니다. 성령의 조명(照明)하심 때문입
니다. 구원받지 않은 자들은 그 마음이 우둔하여지고 허망하여졌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말은 머리가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조명(照明)하심이 없다는 겁니다. 세
상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땄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과 연결시키지 못한다는 겁니
다. 성경을 읽지만 문자로만 읽고 그 말씀이 내 안에 조명(照明)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에게는 조명(照明)하심이 있는 줄 믿습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는데, 영문학 교수가 얼마나 성경을
유식하게 잘 아는지요. 그 교수님이 "문학을 하려거든 성경을 읽어라. 성경을 읽지 않고는
문학을 논하지 말라" 고 하시면서, 성경의 아름다움을 얘기하고, 전도서, 잠언, 시편 등을 얘
기하며 강의를 하는데, 신학교를 졸업한 제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성경을 많이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의 삶에 그 성경 말씀이 조금의 영향도 미치지 못했어요. 왜 그럴까요? 성령의 조
명(照明)하심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조명하심이 없으면 성경은, 단순한 글자에 지
나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우리에게는 조명
(照明)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조명(照明)하심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이 구절엔 현재형이 쓰였어요. 부흥회 때 한번 조명(照明)한
것이 아니고, 날마다 때마다 계속해서 나를 가르쳐 주시고, 이 말씀을 내게 비추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시면 성령님께서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요한복
음 14장 26절을 통해 가르쳐 주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
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말씀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객관적인 성경책만 가지
고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그것은 단지 글자일 뿐입니다. 성령님의 가르치심이 필요
합니다. 성령님의 조명(照明)하심이 필요합니다.

열왕기하 6장에, 이스라엘과 아람 군대사이에 전쟁이 벌어집니다. 아람 왕이 어디어디에 가
서 진을 치라고 얘기하면, 기가 막히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미리 가서 자신의
아람 군사들을 전멸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하루는 아람 왕이 부하들을 모아 놓고 얘기합니
다. "분명히 우리 가운데 첩자가 있다" 그러자 그 부하 가운데 한사람이 "왕이시여! 아닙니
다.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그가 얼마나 신통한지 왕이 침실에서 얘기한
것도 다 아나이다"라고 했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위성 안테나가 있었는지 다 알았어요. 그래
서 왕이 그를 잡아 오라고 했어요. 밤에 군사들이 엘리사와 그의 종 게하시가 있는 성을 빙
둘러쌌어요. 아침에 게하시가 그것을 보고 "아아! 주인이여, 어찌 하오리까!" 중요한 것은 "
아아!"입니다. 낙심하고 있는데 엘리사가 그 모습을 보더니 얘기합니다.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도다!" "아니, 주인님 우리 둘밖에 없는데 헛것
이 보입니까?" 그때 엘리사가 종 게하시를 위해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 게하시의
눈을 뜨게 하셔서 당신의 능력을 보게 하옵소서!" 게하시가 눈이 열려서 보니, 그 산 둘레에
불말과 불병거가 가득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조명(照明)입니다. 성령의 조명(照明)하심을 받지 못한 자들은 성경책을 날마
다 끼고 살면서도, 성경을 줄줄 외우면서도, 몇 십 년 설교를 듣고서도 환경만 바라봅니다.
낙망할 때가 오면, 낙망하고 실망하며 짜증내며 평생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살아가는 겁
니다. 말씀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조명(照明)하심이 우리에게 있으면,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을 줄 믿습니다. 환경을 뛰어 넘어 하나님의 손길
을 볼 겁니다. 눈앞의 고난만 보는 것이 아니고,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쏟아 부
어 주시는 축복의 손길과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고난 속에서도 찬양할 수 있는 겁니다.
페니. J. 크로스비가 찬양한 것처럼요. 그는 장님이었어요. 그 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도
구속한 주만 보인다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바로 성령의 조명(照明)하심 때문입니다.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이 기도가 여러분의 소원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위
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말씀을 비춰 주세요. 내 머리로 아는 말씀이 아니라, 그 말씀을
깨닫게 가르쳐 주세요!" 능력의 말씀을 붙들고 살도록 남은 평생 기도하시기를 축원 드립니
다.

2) 말씀을 증거하라

13절을 보세요.

주의 입의 모든 규례를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나의 입술로'가 중요합니다. 혹시, "목사는 매일 설교만 하고 듣지를 않으니 영적으로 어
떻게 살까" 이런 생각 해보셨나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어릴 때 질문이 참 많았던 것 같
아요. 제가 고등학생 때 새벽기도도 나갔는데요. 목사는 새벽기도, 주일예배, 주일 저녁예배,
수요예배, 금요 철야예배 등 혼자 설교를 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저 목사님 마음이 참 강퍅하겠다" 왜냐하면 설교를 하기만 하고 남의 설교를 안 들으니 언
제 변하나 하고요. 여러분 가운데 이런 생각을 할까 봐 비밀을 알려 드립니다. 사실은 말씀
을 듣는 사람보다 전하는 사람이 더 은혜를 받습니다. 제가 목사 되고 나서야 그것을 깨달
았어요. 설교를 듣는 것도 좋지만 이 성경말씀을 소화해서 내 말로 말씀을 전할 때,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지 모릅니다. 그 증거로 저는 가끔 설교하다가 울지만, 여러분은
말똥말똥 하잖아요? 그래서 전하는 사람이 더 많이 은혜 받습니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중 누가 더 많은 것을 배울까요? 바로 가르치는 자입니다. 이것
은 가르쳐 본 자만이 압니다. 하나님 말씀을 깊이 깨닫기를 원하는 자가 있습니까? 그렇다
면 말씀을 한번 가르쳐 보십시오. 10년 혹은 20년 동안 늘 설교 듣고, 주일학교에서 배우고,
목장에 가서 배우기만 한 사람들은 결코 말씀을 깊이 있게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일학교
교사 또는 중 고등부 교사, 개인 양육 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보세요. 이 말씀이 여
러분에게 깊이 깨달아질 겁니다. 복음을 깊이 깨닫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 믿지 않
는 사람에게 성경을 들고 십자가의 복음을 한번 전파해 보십시오. 그 순간, 여러분 마음속에
복음이 깊이 있게 깨달아질 겁니다.

제가 새가족 성경공부를 인도하는데, 4주째에 '다리예화'로 십자가의 복음을 다 전합니다.
그러면 꼭 우리 성도 가운데 한 분이 들어오십니다. 그 분은 이'다리예화'를 몇 번이나 들으
셨는지 모릅니다. 저와 함께 이전에 성경공부 했는데도 또 들어와서 들어요. 그런데 이 분
이 우리 교회에서 '다리예화'를 써서 복음을 가장 많이 전하는 분일 겁니다. 그런데 '다리예
화' 들으러 왜 들어올까요?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니까요.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복음에
대한 열정이 일어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 복음을 얘기하면 "아, 목사님 또 다 아는
기초 얘기하시네" 이렇게 얘기하는데, 어떤 사람은 굉장히 은혜를 많이 받아요. 복음을 전해
본 사람이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신명기 4장 1절을 보세요.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의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신명기 5장 1절을 보세요.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 귀에 말하는 규
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신명기 4장 1절의 '가르치는'이라는 단어와 5장1절의 '배우는' 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에
서는 같은 어원을 썼어요. 왜 그랬을까요? 가르치는 것은 곧 배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배우는 것은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둘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
모하는 자입니까? 가르치는 자입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 배우기를 원하는 자입니까? 설교만
듣고 가르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선포합니다. "주의 입의 모든 규례를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다른 사람이나 목사와 전도사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 입술로 선포하였다고 말씀합
니다. 정말 가르침 받기를 원하며, 정말 하나님 말씀을 배우기를 원한다면, 누구든 한사람을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대각성 전도대회에 120명이 왔어요. 새가족을 6주 동안 어떻게 공부시
킬 것인가를 제가 강의했습니다. 지금 70명이 1:1로 만나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르치면서
누가 더 많이 영적으로 은혜를 받는가? 교사가 더 큰 은혜 받을 줄 믿습니다. 이 일에 우리
의 삶을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3) 말씀을 즐거워하라

14절을 보세요.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어느 정도로 성경 말씀을 즐거워해야 하는가? 모든 재물보다 즐거워해야 합니다. 재물이
무엇일까요? 현금, 돈 다발, 땅, 아파트 등입니다. 돈보다 하나님 말씀을 더 즐거워하라고 요
구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이 돈을 사랑하는 것만큼만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라는 겁니
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볼까요? 1억 5천만 원짜리 아파트 문서와 성경 한번 읽는 것 중, 선택
하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실제적으로 얘기해 봅시다. 이 비유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1시간이나 고민했어요. 왜냐하면 "너 어느 것 집을래?" 하고
저 자신에게 물어보았어요. 선뜻 성경을 집겠다는 마음이 우러나지 않는 거예요.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이 왜 자라지 않을까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
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성경에 대한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 돈보다 더는 아니어도, 적
어도 돈만큼은 사랑하고 즐거워해야 한다고요. 통장에 1억 원이 생긴 것만큼 성경 말씀을
즐거워해야 내 삶이 깨끗해진다고 말씀합니다.

돈 그 자체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돈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얘
기하는데 그것은 성경을 잘못 가르치는 겁니다. 돈도 하나님이 주셨어요. 예수 믿는 사람은
돈도 많이 벌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늘 사업하면서 왜 돈을 못 버느냐고 얘기하잖아
요? 부정한 방법으로 버는 것이 아니라면, 돈을 많이 버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무엇
이 악인가? 돈을 사랑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돈을 너무 좋아해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니까,
돈만 아는 것이 죄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어느 정도로 즐거워해야 하는가? 현금과 아파트와 몇 만 평의 땅만
큼, 그것보다 더 많이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면 어떤 증거가 나타나는가? 말씀을 즐거워하면 나타나는
증거 몇 가지를 살펴봅시다. 15절과 16절을 보세요.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
지 아니하리이다

세 가지 증거가 나타납니다. 하나님 말씀을 아파트만큼이라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한 구절을 읽고 그 말씀을 묵상합니다. 그 말씀을 경홀히 듣지 않고 주의해서
듣습니다. 설교 시간에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말씀을 더 주의해서 들을까 생각하며, 토요일에
일찍 잠자리에 들고 준비한 마음으로 예배시간에 나와 주의 말씀을 주의해서 들어요. 그 말
씀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은 성경입니다.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성경을 한번이라도 다 읽어 보셨나요? 성경을 입시 공부하듯 공부해 보셨나요? 이런 교인
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 제가 제주도 신라호텔에 2박 3일간 잡아드리고 강사료 5
백만 원 드릴 테니, 저에게 성경 좀 가르쳐 주세요" 6년 목회하는 동안 이런 분을 한 분도
못 만났어요. 공짜로 가르쳐 주겠다고 해도 도망갑니다. 이런 사람들이 정말 말씀을 즐거워
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요? 깨끗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성경공
부를 진지하게, 한 과정이라도 다 마쳐 보았습니까? 1주일에 며칠 동안 말씀을 보십니까?
성경을 몇 구절이나 암송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십시다.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 땅에 천국을 만들고 우리의 영혼을 천국에 인도할 놀라운 이
말씀을, 여러분 평생에 사랑하고 묵상하는 영안 성도들 되도록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
다.


출처/박정근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