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2:8-11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 2 : 8-11

인간은 누구나 부요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부요한 나라, 부요한 가정을 이루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적인 부요와 성서적인 부요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물질적인 양의 다소에 따라 빈부를 구별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가난한 가운데서도 부요한 마음을 가지고 기쁨과 감사 속에 사는 사람이 있고, 물질적으로는 풍요한 부가 주어졌으나 불안과 염려로 기쁨을 잃고 사는 삶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의 많고 적음이 인간을 부요케 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1. 부요한 자가 되자

성경에서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하는 것은 일시적이고 유한적인 것을 영원하고 무한한 것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삶의 목적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요일 2 : 15-27). 세상의 것들은 모두 유한하고 일시적인 것들이기에 그것을 의지하고서는 늘 불안하기 마련입니다. 참으로 영원한 기업을 발견한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영적으로 부요하게 삽니다(히 10 :34).

부요하다는 것은 마음에 여유가 있고 쓸 것이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의로운 재물이 부요해야지 불의한 재물로 축적한 부라면 오히려 그 불의한 재물이 증거가 되고 불같이 자기의 살을 먹게 됩니다(약 1 : 1-6). 또한 아무리 의로운 방법으로 재물을 모았다고 해도 그것이 자기를 위한 축제라면 그것은 결코 부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어리석은 부자의 모습인 것입니다(눅 12 : 16-21).

물질적으로 부요한 것도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적으로도 부요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 부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랬을 때에 참으로 그 부는 가치있는 것이 됩니다.

2. 영육이 부요한 자가 되자

물질의 부요가 행복의 열쇠는 아닙니다. 물질적인 부요 때문에 오히려 얼마든지 불행해질 수 있습니다. 물질이 많을수록 인생이 풍요롭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들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 준다고 해서 그들의 인생이 행복하게 되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비록 물질적인 유산은 못물려 줄지라도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자녀를 훨씬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물질적인 부요와 지식적인 발전 이전에 영적으로 신앙적인 믿음의 부요가 있어야 합니다. 지식을 알게 하기 이전에 하나님을 알게 하고, 재산을 물려주기 이전에 신앙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환난과 궁핍 속에서도 영육 간에 부요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케 하십니다(약 2 : 5). 그래서 이것을 체험한 사도 바울은 자신을 일컬어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했던 것입니다(고후 6 : 10). 또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리라"는 말씀만 믿고 고향을 떠났던 야곱은 거부가 되어서 돌아올수 있었습니다(창 28 : 30, 43). 아브라함도 풍부한 갈대아 우르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떠났을 때에 숱한 고생과 기근의 고통 속에서도 결국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영육 간에 부요한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부요하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 40년 동안 모든 것을 다 채워 주셨고,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고도 남게 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영적인 부요 뿐만 아니라 육적인 부요까지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먼저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영적인 삶이 이루어지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풍성하신 하나님이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마 6 : 33 ; 빌 4 :19).

3. 승리하는 삶을 살자

인간은 죽음 너머에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계 20 : 14). 그리고 인간에게 가장 큰 승리는 죽음을 이기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계 20 : 6). 죽음 너머의 죽음은 바로 둘째 사망으로서 이기는 자만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습니다(계 2 : 11). 그러므로 우리는 승리해야 합니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부요치 못해도 우리 무덤 너머에 있는 천국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9절에서 서머나 교회에게 환난과 궁핍이 있었으나,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한 것처럼 우리 역시 환난과 궁핍 속에서도 둘째 사망의 해가 해결되었음을 믿고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승리의 상징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얻은 사람은 가장 부요한 사람입니다.

궁핍과 환난 속에서도 우리는 실상 그리스도의 생명과 그 기업을 받은 부요한 자인 것을 믿고 항상 감사와 기쁨 가운데서 생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