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 : 1-4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 : 1-4



사랑의 홍수 시대입니다. 거리마다 쌍쌍이 다니는 남녀의 속삭임이 사랑한다는 속삭임입니다. 극장에서나 연극 무대 위에서나 책갈피 속에나 방송에나 숱하게 널려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연말 연시 성탄절 카드 속에도 사랑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범람하는 사랑의 홍수 속에서도 참된 사랑을 찾는 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1. 불행한 세상입니다

입을 옷이 없어서나, 쌀독에 쌀이 떨어져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빼앗겨서 오는 불행입니다.

부모가 다 살아 있는데도 고아원에 있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자식이 몇 명이나 되는데도 외롭다고 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대화가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살아가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오는 사랑과 관심의 상실입니다.

사랑을 빼앗긴 불행은 소외감을 낳습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 속에 산다고 할지라도 인간은 혼자서 살 수는 없습니다. 사랑의 결핍은 가정의 파괴를 초래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에 불신 풍조를 가져옵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가정과 사회에 문제가 대두됩니다. 여러분은 부모와 자식 간에, 혹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얼마만큼 사랑을 빼앗긴 상태에 있는가 진단해 봐야 할 것입니다.

2. 처음 사랑이 있습니다

어머니 품에서 자라던 처음 느낌, 결혼 전에 만났던 남편과의 데이트, 이러한 것들이 처음 사랑이 아닙니다.

인간 속에는 처음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의 시작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 4 : 7). 아담이 하나님의 사랑속에 있었으나 스스로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배신한 인간을 찾아오셨습니다(창 3 : 9).

요한복음 4 : 10에 "사랑이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처음 사랑이요, 처음 사랑은 곧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1) 처음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잘했든 잘못했든, 사과할 점이 있든 없든 자신을 희생하며 용납하는 사랑입니다. 즐거움과 괴로움도 같이 나눕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이 처음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롬 5 : 8).

(2) 처음 사랑은 끝없는 사랑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끝은 결론이 아니라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불타듯 뜨겁던 사랑은 어느 순간엔가 식어버리고 맙니다. 몇 번이라는 숫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얼마 만큼이라는 양적인 개념도 아닙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사랑하는 것입니다(마 18 : 22).

(3) 처음 사랑은 구속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서 우리가 죽을 것을 그분이 죽고, 내가 죄인된 것을 그가 죄인이 되고, 내가 창에 찔릴 것을 그가 당하셨다는 사실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실질적인 구속의 은혜를 깊이 사무치게 체험하는 것입니다. 실질적인 구속의 은혜를 깊이 사무치게 체험하는 것입니다(엡 2 : 1). 그래서 그리스도의 이러한 사랑이 내 속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를 때 절망하지 않게 되고 불안과 불만이 사라지게 됩니다.

3. 모든 사람이 이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처럼 은혜스럽고 뜨거웠던 처음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육체의 쾌락과 안일에 빠져 결국 마음의 평안까지 상실해 버렸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을 보면 교리나 제도와 형식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보다 우선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의 감정에 따라 사랑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의 신자들은 거짓을 가려낼 만큼 지혜롭고 훌륭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 책망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칭찬 받기를 원하고 먼저 사랑받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만큼 옳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만큼 수고 할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지 못한다면 에베소 교회와 같은 책망을 받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없다고 합니다.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다고 합니다. 더 이상 양보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악함과 육체적인 소욕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좇기를 포기했습니다. 그것은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4. 처음 사랑을 찾읍시다

사도 바울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하며(고후 5 : 13),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좋아하고 존경하고 자랑합니다. 그리스도의 처음 사랑을 회복하게 되면 인간의 사랑도 깊어집니다. 사랑의 역사는 서로 귀히 여기며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살전 5 : 13). 그래서 잃어버린 신뢰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사랑은 일부분을 드리는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자기 전체를 드리는 것입니다(히 10 : 10). 변질되지 않는 사랑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늘 울어도 눈물로써 그 은혜를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헌신한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사랑과 기쁨을 찾을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처음 사랑을 회복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삶을 보장해 주실 것입니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