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5:17-1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하였습니다(마 5:9). 이는 화평한 환경에서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화평할 수 없는 환경에서 화평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화평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기록하기를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하였습니다(골 1:20).


1.하나님과 화목(和睦)하는 복입니다.
본문 18-20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하였습니다.


하나님과 화목 하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우리들의 죄악을 위하여 죽음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그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즉 당파와 시기, 질투로 인해 분열되어 있으며 또한 거짓 사도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된 고린도 교인들이 화목한 관계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과의 화목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복음의 본질을 통해서 고린도 교인들의 영적 질병을 치유시키고자 했습니다. 한편 바울이 화해의 메시지를 전할 때 그것은 사실상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과 동등한 권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욥기서 저자는 기록하기를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 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하였습니다(요 22:21). 이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네가 만일 전능 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는 말입니다(욥 22:21-30). 하나님과 원수를 맺고는 결코 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는 것입니다(시 73:28).


2.형제와 화목 하는 복입니다.
마 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하였습니다. 본문과 같은 내용의 일들은 실제 생활에서 끝없이 많이 일어나는 사건들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앞에서 엄숙하게 예배드리다가 양심에 거리끼는 죄나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자기의 그릇된 행위가 기억난다면 지체 없이 화해의 노력부터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하였습니다(막 11:25). 이는 믿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믿는 자들이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에 대한 관계는 서로 불가 분리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용서하시는 자와 용서받는 자 사이에는 하나의 결속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해 주신 것과 같이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는 것이 요구됩니다. 만약 그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는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와 화목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예배가 상달되는 복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가인의 제물처럼 주께서 화해가 없는 사람들의 예배를 받지 아니하신다면 이는 불행입니다.


3.원수와 화목(和睦)하는 복입니다.
창 45:4-5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하였습니다. 이는 요셉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다가 애굽으로 팔아먹은 원수와 같은 형들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당황하는 형제들을 따뜻한 말로 위로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서 그들을 대하였으나 여기서는 그들의 동생으로 처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라는 말은 요셉이 그들을 여전히 형으로 모시는 겸손을 보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양심에 가책을 촉구하는 말로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하는 것은 요셉은 형제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형제들이 이 문제를 가장 부담스럽게 생각하였으므로 한시 바삐 해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요셉의 이 말은 그들의 잘못을 추궁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리고는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요셉이 형제들의 걱정을 덮어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로하며 마음에 평안을 주기 위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은혜로 역경을 이긴 자가 갖는 넓은 자비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요셉의 이러한 행동에서 형제 사랑에 대한 전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에게 심적인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내셨나이다'하면서 그들의 행동 배후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말로 형들이 자기에게 했던 지금까지의 일어났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 되어진 일임을 거듭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형들은 두려움이 얼마나 컸던지 먼 후일까지도 그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창 50:15-18). 이는 원수와 대결하지 않고 마음을 편하게 하고 형제를 대할 수 있는 크나큰 복입니다. 사람이 원수를 앞에 두고 불목(不睦)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요셉은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목하게 사는 것이 복임을 알고 그렇게 하였습니다(창 42:22, 44:16).


"결론"
살전 5: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하였습니다. 이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들의 영적인 지도자들을 최대한 존경하고 순종할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그들이 존경할 대상은 장로, 혹은 감독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존경하고 귀히 여겨야 할 이유는 그들의 직책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 즉 그들의 봉사와 수고 때문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에 입각한 것입니다(롬 12:18, 14:19). 하나님과 화목하고 형제들과 화목하며 원수들과 화목 한다면 이는 크나 큰 복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원수를 맺고 살면은 불안하고 답답한 삶이 되지만 모두 용서하고 화목하게 살면 이는 천국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어찌 복이 아니겠습니까? 화목하고 볼 일입니다.

출처/이윤근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