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1:19-21


미국의 유명한 실업자 카네기가 어떤 회사를 방문했는데, 그 회사의 가장 중심적인 자리에 그가 볼 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정말 볼품없는 그림 한 장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 그림 속에는 커다란 배가 한 척이 놓여 있었고, 그 배를 젓는 노는 그냥 모레 위에 내동댕이 쳐져있었습니다. 마침 썰물 때라 배는 모레 위에 얹혀 있었는데, 그 배의 모습은 쓸쓸하고 절망스러워 보였습니다. 카네기는 별로 아름답지 못한 모습의 그림을 왜 가장 중요한 곳에 둔 것인지 궁금하여 그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밑에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절망적인 상황이기는 했지만, 반드시 밀물 때가 오면 이 배는 물위로 두둥실 뜰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주는 말이었습니다. 카네기는 이 회사 사장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여 이 그림을 여기에 붙여 놓았습니까?" 했더니 "제가 젊어서 세일즈맨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실패를 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 때는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았습니다. 하는 일마다, 계약하는 것들마다 왜 그렇게 장애가 많은지 다 막혀 버린 때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일즈 일을 하기 위해서 어느 손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손님에게서 이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손님에게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이 그림을 내게 주셨으면 좋겠습니다”하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손님이 잊어버리지 않고 이 그림을 제게 보내왔습니다.  

볼품없고 절망적인 그림이기는 했지만 이 그림을 보면서,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을 희망의 상황으로 바꿨기 때문에 그는 그 그림을 가장 좋은 자리에, 가장 중심적인 자리에 걸어 두었던 것입니다.


신학자 에밀 부르너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사람의 폐에 공기가 필요하듯이 인간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낙망이라고 하는 것은 바보들의 종말일 뿐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돈"이 있습니다. 돈이 우리에게 힘이 되고 용기가 됩니다. 그래서 돈이 떨어지면 맥이 떨어지게 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애를 씁니다.  "돈은 죽을 사람도 살린다"는 말도 있듯이 돈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돈 보다도 힘이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지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식이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는 말 이 있듯이, 모두 인류대학에 가려고 하고 학위를 따려고 합니다. 법률적인 지식이 없을 때 변호사나 법관에게서 열등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세무 지식이 없어 어려움을 당할 때도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지식이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돈과 지식은 우리에게 끝까지 힘이 되어 주지 못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경험"이 힘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돈이 필요하고 지식이 하나의 수단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가 마지막 하나님의 나라에 갈 때에, 마지막 영생 얻는 이 문제 앞에서는 돈도, 지식도 필요 없습니다. 쌓아둬 봐야 소용없습니다. 우리는 빈손 들고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본문의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는데 이 감옥에서 고통 받는 자신의 절망스러운 상황에 대해서는 일체 말을 하지 않습니다. 분명 그는 어려운 상황, 고통 받는 상황에 있었지만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오히려 아주 당당하게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살고 있다" 이것이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담대하게 하는 용기가 되었습니다. 간절한 ! 기대, 진지한 소망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이 가졌던 기대와 소망은 무엇이었을까요?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19절)

여기서 "이것"이라고 하는 것은 "복음전파"를 말합니다. 복음 전파로 인한 기쁨, 곧 많은 !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사실 뿐 아니라 나아가 나도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나의 구원도 얘기를 할 줄로 믿는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감옥에 갇혀있다고 하는 현실적인 절망의 상황에서 출옥(出獄), 곧 감옥에서 나온다고 하는 희망을 의미하기도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영적 구원을 의미합니다.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구원입니다.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라! (20절 상반절)

바울은 자기의 믿음의 담대함을 위해서 거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기 위해서 어떤 것을 하더라도, 무슨 짓을 하더라고 부끄러움 없기를 바랬습니다. 우리가 소망은 있는데 하는 짓이 부끄러우면 설 자리를 잃게 되고 힘을 잃게 됩니다. 시인 윤동주는 일제시대 때 생체실험의 대상으로 알 수 없는 주사를 맞고 죽어 갔지만, 서시에서 발견되듯이 그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시구처럼 그렇게 살다가 갔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기를 기도하며, 간구하는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존귀함을 받는 삶을 살라! (20절 하반절)

인도의 수상 네루는 죽을 때 '내 몸을 불살라 한분 재로 남겨 인도 땅에 뿌려라. 내 한 줌의 재로 인도를 기름지게 하라"고 유언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살아도 죽어도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 이것이 바울의 기대요 소망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얻을 것, 바랄 것이 많지만 궁극적인 것은 구원입니다. 또한 우리는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손가락질을 당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영광, 명예는 간 곳이 없고, 구원받은 감격으로 그리스도만을 존귀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대이상으로 채워주시는 분

우리의 삶과 믿음의 형편이 좋다고 세상 사람들 모두가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대이상으로 채워주시기를 원하시는 좋으신 주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기대이상의 인격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몇 가지 반응을 나타냅니다. 상대방이 기대이상의 관심과 사랑을 베풀면 닫힌 마음의 문빗장이 열리고 마음이 기뻐집니다. 기쁜 마음 가운데서 상대방을 칭찬하는 말이 나오고 그것을 통해 또 다른 기대감이 연출됩니다. 이것을 기대감의 선순환(善循環)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현상유지를 위해 부름 받은 자가 아니라 신앙생활의 전기를 만들어 부흥의 역사를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과 신앙생활의 현주소를 재발견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마음껏 개발해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 받아야 합니다.

믿음생활의 거품을 과감하게 걷어내자.

우리가 삶에 감동이 있고, 기대이상의 열매 맺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삶의 원리가 필요한데 우선 믿음생활의 거품을 과감하게 걷어내야 합니다. 성도들의 믿음생활에도 거품이 존재합니다. 성도들이 믿음생활의 인플레(Inflation)라는 거품들을 걷어내지 않는다면 사회로부터 동료들로부터 외면 받을 것입니다. 초대교회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그들이 말하는 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았기에 이웃들로부터 그리스도인(Chris! tian)이라는 복된 이름으로 불리었습니다(행 11:26). 예수 믿는 사람들이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믿음 생활의 구조조정이 필요합니다. 체면치레, 이기주의, 냉소주의, 둔감한 마음, 비판적 체질, 불순종 체질을 걷어 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실증(實證)을 하나님 앞에 보이며 살아야 합니다.

기대 수준을 높이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놀라운 선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열정 속에서 매일 아침을 맞으십시오. 우리 인생은 꿈보다는 ‘기대’를 따라갑니다. 기대한 만큼 이룹니다. 긍정적 생각을 품은 인생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부정적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인생은 꼬이게 마련입니다. 패배와 실패, 삼류인생을 기대하면 잠재의식은 우리를 그쪽으로 몰아가, 평범한 수준 이상의 어떤 시도도 못?! 構?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을 확장하려면 기대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삶의 변화는 바로 생각의 변화에서 출발합니다.

성공하는 마음가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마음을 올바른 방향에 맞추고 희망찬 말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입니다.“오늘은 멋진 날이 될 꺼야. 하나님이 내 발걸음을 인도해 주실 테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감싸고 있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고 있어. 오늘 하루가 정말 기대되는군!”


믿음과 기대로 하루를 시작하고, 밖에 나가서도 좋은 것을 기대하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상황이 내게 좋은 쪽으로 바뀌기를, 사람들이 만사를 제쳐두고 나를 도와주기를 기대하고, 시간과 장소가 내 편이 되기를 기대할 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상황이 내게 유리한 쪽으로 바뀌기를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은 커다란 소망을 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소망이 없는 믿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히11:1) 소망의 또 다른 이름은‘높은 기대’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해야 합니다. 기대는 기회의 문을 열고 사회적 성공을 가져다주며 인생의 난관을 뛰어넘게 해주는 원동력입니다. 하나님은 기대한 만큼의 복을 주십니다. 기대하지 않으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늘 똑같은 수준을 기대하는 사람은 영원히 제자리를 맴돕니다. 기대가 삶의 한계를 긋습니다. 예수님은“너희 믿음대로 되리라"(마9:29) 고 말씀하셨습니다.“네 믿음이 기대한 만큼 주겠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벗어나라!

감옥에 갇혀 있는 장기수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네게 미래란 없어!”입니다.  마지막 남은 작은 희망조차 앗아 버리는 가혹한 말입니다. 그런데 ‘바깥에’ 살면서도 스스로 만든 절망이란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더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어?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아. 설치지 말고 조용히 현실을 받아들이라고.’아닙니다! 우리는 감옥을 부수고 나올 수 있습니다! 문은 열려 있습니다. 단지, 좋은 삶을 기대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멋진 미래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좋은 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라

'믿음의 눈’으로 행복하고 건강하고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미래가 암울해 보여도, 낙심하고 절망하고 싶은 유혹이 들어도, 소망의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힘을 얻으라는 말입니다. 바로 오늘, 기적을 보여 주시리라 확신하십시오. 높은 기대를 품는 순간부터 잃어버린 것이나 ! 과거의 실수, 실패가 눈에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이 자신을 지배합니다. 마음에 기대하는 대로 행동이 나타납니다. 항상 승리와 풍요로움, 축복과 희망을 생각하십시오. 긍정적이고 순수하고 멋진 생각을 품으십시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 엘리야는 평생 수많은 기적을 행했습니다. 제자 엘리사는 그런 기적의 현장을 어김없이 따라다녔습니다. 임종이 가까운 엘리야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자 엘리사는 거침없이 대답했습니다.“선생님보다 두 배로 큰 영감을 원합니?! ?. 선생님보다 두 배나 강하고 두 배나 많은 복을 받기 원하며 두 배로 많은 기적을 행하기 원합니다.”엘리야는 방자한 제자를 꾸짖지 않았습니다.“엘리사야, 정말 어려운 걸 요구하는구나. 하지만 내가 네 곁을 떠날 때 네가 나를 보게 되면 네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엘리야의 말을 다시 해석하면 이렇습니다.“하나님이 보게 허락하셔야 네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하지만 엘리야의 의도를 이렇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네가 보는 그대로 될 것이다. 네가 가슴과 머리로 미래를 바! 라보고,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화면에 나타난 미래를 보면 그 미래는 네 삶 속에서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영적인 눈’으로 무엇을 보는지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일곱 번이나“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그렇게 물으십니다. 성공한 인생을 꿈꾸는 사람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합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저 높은 하늘이 아닌 땅만 바라보는 인생은 점점 구렁텅이로 빠져듭니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를 통해 행하시려는 놀라운 일이 방해를 받습니다. 이는 영적 원리이고 심리학적 사실입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보는 곳을 향해 나아갑니다. 따라서 마음으로 보지 못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마음으로 어떤 미래를 봅니까? 지금보다 강하고 행복하고 건강한 자신의 모습이 보입니까? 하나님의 복으로 가득한 미래가 보입니까? 마음으로 본 복은 반드시 우리를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환경을 바꾸십시오. 신세 한탄만 하고 앉아 있지 마십시오. 정말 내 인생이 나아질까 하는 걱정일랑 저 멀리 던져 버리십시오. 그리고 꿈꿀 수 있는 곳을 찾으십시오. 교회일 수도 있고 강변 혹은 공원일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곳 말입니다. 부정적인 환경을 떠나 승리의 분위기가 넘치는 곳으로 가십시오. 절망이 아닌 희망이 있는 곳을 찾으십시오.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어딥니까? 좋은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 일을 마음에 그리십시오.

꿈꿀 수 있는 곳을 찾으라

지혜로운 자와 사귀면 지혜를 얻는 것처럼, 성공한 사람과 함께하면 오래지 않아 성공을 얻게 됩니다. 성공한 사람의 비전은 전염성이 강해서 우리 마음속으로 금세 파고듭니다. 승리의 분위기에 머물면 오래지 않아 승리의 이미지를 얻습니다. 또 믿음의 사람과 어울리면 오래지 않아 믿음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암탉과 함께 모이를 쪼고 있는 한, 독수리와 함께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놀라운 선물을 준비하고 계시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열정 속에서 매일 아침을 맞이하십시오. 혹시 상황이 여러분 뜻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주저앉지 마십시오. 올바른 방향을 마음에 새기고 그 방향으로 끝까지 나아가십시오. 우리의 할 일은 믿음과 기대 속에 살면서 꾸준히 하나님의 선하심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 ?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의 삶을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좋은 선물을 창고에 수북이 쌓아 두고 계십니다. 이제부터 그 선물을 찾는 방법을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놀라움을 기대하기

매일 매일에는 놀라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놀라움을 기대하고 있을 때에만, 그 놀라움이 우리에게 닥쳐왔을 때 그것을 볼 수 있거나, 들을 수 있거나, 또는 느낄 수 있습니다. 매일 매일 우리에게 찾아오는 놀라움이 슬픔으로 오든, 기쁨으로 오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놀라움은 우리의 가슴에 새 자리를 열게 할 것입니다. 이 새 자리에서 우리는 새 친구를 환영할 수 있으며, 그리고 우리가 공유하는 인간애를 더욱 완전히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감사와 고마움 안에 거하는 것, 감격과 충만 속에 머무는 것, 그것이 영성 생활의 시작일진데, 우리에게 삶은 신비이며, 놀라움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느끼고, 누리며 살아간다면  우리들의 삶이 그리 피폐하고, 그리 메마르고, 그리 어둡고 막막하지 않을 것입니다. 매일 매일 놀라움과 떨림이 가득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서정호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