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13:25-33

건강한 자아상을 확립하라

사람이 어떤 눈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근시안적인 눈을 가진 사람은 바로 눈앞의 일밖에 보지 못하지만 비전을 가지고 먼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는 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상당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아니면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충분한 자질과 장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아가십니까? 아니면 메뚜기 같이 약하고 약한 존재라고 여기고 있나요?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한 두 번째 단계는 건강한 자아상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느끼는지에 따라 성공의 크기가 결정 될 수 있고,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나기도 합니다.


자기존중은 마음 깊은 곳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감정인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나 판단입니다. “나는 나 자신이 좋아” 혹은 “나는 내가 싫어” 와 같은 말이 자기존중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자아상은 일종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는데 ‘스스로 자신을 그린 그림’ 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자아상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보다는 자신에 대한 ‘시각’을 반영한다는 점입니다.

자기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건강한 자아상은 개인의 성공과 행복을 결정하는 핵심요소 중 하나입니다. 자기개념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반응한다는 데 있습니다. 심리학적 증거에 따르면, 우리의 행동은 자아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론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진 사람이 큰 거래를 따내거나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거나 회사 야구시합에서 장외홈런을 터뜨릴 수도 있는 반면 건강한 자아상을 가진 사람도 때때로 실패를 경험합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자화상은 현실로 그대로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우리는 마음에 품은 이미지 이상으로 성공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자격이 없어. 하찮은 존재야. 매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어. 나는 약하고 부족한 사람이야.‘ 이런 생각은. 행동으로 그대로 나타납니다.  “나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 “왜 하필 나야?”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없어.” 자아상이 약한 사람의 대화 속에는 늘 이런 문구가 따라다닙니다.

반면 하나님과 같은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만족한 삶을 살아갑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음을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고 좋아하심을 알기에 자신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당당하게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지금의 모습으로 창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위한 목적과 계획이 있으심을 믿습니다. 저는 제가 세상에 있는 누구와도 다른 유일한 존재인 줄 압니다. 아버지께서는 저를 위해 좋은 것을 예비해 놓으셨기에 당장 그것을 찾아보려 합니다” 자아상은 육체의 일부분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을 통제하는 무의식속의 ‘관리인’ 이어서 마치 자동차의 자동속도조절장치와 같은 기능을 담당합니다. 속도를 시속 100킬로미터에 맞춰놓으면 도로 상황에 따라 차의 속도가 늘거나 줄어도 자동속도조절장치는 항상 원래의 속도를 회복시켜 줍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자존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남의 말, 이를테면 부모나 주위의 친구의 생각이 나의 자아상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자신이 만든 이미지로부터 자아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자기 성격이나 외모, 능력, 업적에 따라 자기 맘대로 자화상을 그려 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자아상이 하나님의 음성과 정확히 일치해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사로 보시며 우리의 잠재력을 우리 자신보다도 더 굳게 믿고 계십니다. 우리를 위한 큰 계획이 있으시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아상이 약한 탓에 우리는 늘 김빠지는 소리만 해댑니다. “ 하나님,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저 말고 능력이 많고 배운 것도 많은 다른 사람을 찾으세요. 저에겐 그런 능력이 없어요.”

구약에 나오는 기드온이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어느 날 천사가 기드온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믿든 말든 하나님은 우리 역시 이런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도 불굴의 용기와 힘과 잠재력을 소유한 용사입니다. “ 하나님은 저만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 거예요. 저는 용사가 아닙니다. 용기도 없고 강하지도 않아요. 저를 놀리시는 건가요? 기드온이 저랑 같아요? 기드온은 자신감과 결단력이 있는 위대한 리더니까 하나님이 그런 엄청난 말씀을 하신거죠.” 정말 그럴까요? 당시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기는 악한 미디안에게 국토를 유린당하고 있었습니다. 천사가 기드온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자 기드온의 본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저 같은 것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겠습니까? 저의 집안은 므낫세 지파 중에서도 가장 보잘 것 없습니다. 저는 그런 제 아버지 집에서 가장 못난 사람이고요.”

중요한 사실은 기드온이 자신을 보는 시각과 하나님의 시각이 전혀 달랐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두려움이 앞섰으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를 강하고 용감한 자로 대하셨습니다. 기드온은 스스로 약하다고 생각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강한자로 보셨습니다. 기드온의 눈에 자신은 부족하고 결단력이 없는 존재였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그는 유능하고 대담한 리더였습니다. 결국 기드온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용사로 보십니다. 우리 스스로 생각하기엔 그렇지 않아도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이미지는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성경에서 말씀하신 그대로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때로 우리는 스스로 자격이 없고 결단성도 없으며 약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나 한 몸 챙기기도 바쁜 ! 하찮은 존재라고 자기를 비하합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뛰어난 용사입니다!

자아상을 바꾸라

누구나 자아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의견에 동의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강하고 용감한 사람으로 보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이제 변명 같은 것은 그만하고 믿음으로 나아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일을 행하십시오. 혹시 약점만 보거나 자신감이 없어서 온전한 삶을 나중으로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직장이나 교회에서 리더 자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변명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역사회에서 봉사할 수 없다고, 곤궁에 빠진 친구를 도울 수 없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시지도 않았지만 기드온이 책임을 회피하도록 놔두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자기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완벽한 사람만 사용하려 ! 하신다면 누가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불신앙과 메뚜기 사고            

400여 년 동안 애굽 땅에서 노예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으로 해방되어 모세의 인도로 광야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란 광야 가데스 접경에 이르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진격해서 그 땅을 차지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백성들은 앞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 정탐꾼을 보내자는 의견을 내었습니다. ‘정탐꾼을 보내서 우리가 싸워서 얻어야 될 가나안을 좀 잘 미리미리 조사를 해서 유익한 정보를 얻은 다음에 그 정보를 기초를 해 가지고 전략을 세우고 그래서 전쟁을 합시다’ 라는 의견은 그럴듯해 보이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1장22절에 보면 하나님이 정탐꾼을 보내라고 한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탐꾼을 먼저 보내자고 아이디어를 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꼭 그렇게 고집을 피우면 한번 정탐꾼을 보내봐라' 하고 마지못해 허락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속에 잠복해 있는 불신앙을 합리성에 포장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 결과, 이 정탐꾼 사건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비참해졌! 습니까? 그들은 보고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두려움만 심어주었고 불신앙이 모든 사람들에게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속에 잠복해 있는 불신앙이 얼마나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는가를 우리는 미리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잠복성 불신앙이 고개를 들면 우리를 메뚜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듭니다. 무엇이 메뚜기 사고입니까? 문제는 커 보이고, 자기는 작아 보이고, 하나님은 안 보이고, 세상만 보이는 것이 바로 메뚜기 사고입니다. 믿음이 없어지고 불신앙이 그들의 의식을 사로잡으니까 작은 성곽도 하늘에 닿을 큰 성곽처럼 보인 것, 이것이 메뚜기 사고입니다.

메뚜기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첫째로 마음에서 선전포고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생각은 마음에서 싹트고 자라는 내면의 태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내 모든 생각, 좋은 생각, 나쁜 생각, 메뚜기 같은 생각, 거인 생각, 다 가릴 것 없이 모든 생각을 예수님 앞에 갖다 놓고 예수님이 그 생각을 다스리도록 위임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 주십니다.

둘째로 크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선포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광대하십니까? 오늘도 이 우주만물을 보존하시면서 지키시며 우리의 생명을 지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입니까? 이 인류 역사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을 고백하고 순간순간 이 하나님을 마음에 묵상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내가 메뚜기처럼 보인다고 생각되는 사고는 모두 사라집니다.

잠복해 있는 불신앙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중요한 계기가 되면 우리를 망칠 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메뚜기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무서운 힘이 될 수가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걷잡을 수 없는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우리는 처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고 그 하나님의 크심을 선포하고 묵상하면서 기도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승리하는 자 되어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 영광 돌리는 내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열 명의 이스라엘 정탐군들이 자신을 메뚜기에 비교한 것은 신앙적으로 자신을 비하하고 믿음을 상실한 메뚜기 신앙입니다. 이런 메뚜기 눈으로 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영적 무기력증에 빠집니다. 이러한 메뚜기 눈과 반대되는 것이 바로 여호수아 갈렙의 눈입니다. 그들은 적이 비록 강하고 클지라도 하나님 안에서 능히 이길 것이라는 신앙의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은 ! 만용이 아니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 나온 용기요 확신입니다. 이제부터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그 어떤 위기가 여러분을 흔들어도 결코 두려워하거나 도망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십시오. 여러분은 약하지만 여러분 안에는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힘든 싸움이 되리라 예상한 모세는 전투에 앞서 적을 알고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보냈습니다. 6주 후에 정탐꾼들이 정보를 입수하여 돌아왔습니다. 일단 모두의 입에서 반가운 소식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듣던 대로 정말 훌륭한 땅입니다.” 그러자 온 무리가 입을 모아 대답했습니다. “아멘!” 정탐꾼들의 말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이 포도송이와 석류를 보십시오. 우리가 본 과일 중에서 가장 크고 맛이 좋습니다. 그뿐입니까? 여기 꿀도 맛보세요. 맛이 기가 막힙니다.” 이번에도 모두 입을 모아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소식이 떨떠름했습니다. “하지만 그 땅에는 거인들이 있더군요.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 떼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오, 저런!” 계속해서 정탐꾼 열 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만 우리에겐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런 거인들을 물리칠 수는 없어요. 너무 크고 강하다고요. 스스로 보기에도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했습니다.”

여기에서 “스스로 보기에도”에 주목합시다. 그들 앞에 놓인 적과 장애물에 비해 그들의 자아상은 너무나 작고 초라했습니다. 그들은 적이 몰려오기도 전에 스스로 무력하게 쓰러지는 불쌍한 메뚜기 떼와 똑같았습니다. 이 열 명이 부정적인 보고를 한 이유는 겉으로 보이는 상황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입니다. 이래서는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패한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두 정탐꾼,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분명히 정탐하고 온 땅은 똑같았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마치 다른 땅을 다녀온 것처럼 말했습니다. “모세, 우리는 충분히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무시무시한 거인들이 사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보다 훨씬 크십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어서 가서 그 땅을 차지합시다.”

이 얼마나 위대한 믿음인가요?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강해서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지극히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흔하디흔한 ‘메뚜기’를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명령을 실천할 ‘능력’과 자세를 갖춘 적극적인 사람을 원하십니다.

불행히도 애굽에서 나온 그 많던 사람 중에서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땅에 들어갔지만 나머지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믿음과 자존감의 부족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풍성한 미래를 그들에게서 빼앗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히브리 백성에게 승리를 약속하셨지만 연약한 자아상 때문에 그들은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들이 약속을 성취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그들의 시각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요? 성공한 사람, 건강하고 활기차고 행복한 사람으로 보는가요? 하나님을 위해 쓰임을 받는 사람으로 생각하는가요? 스스로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행할 ‘충분한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가요? 하나님과 그 크신 능력 안에서 스스로 상당하다고 확신하는가요? 아니면 자신을 하찮은 ‘메뚜기’로 보는가요? 하나님은 우리를 ‘충분한 능력’의 소유자로 보십니다. 상황을 좋은 방향으로 되돌리고 싶다면 먼저 ‘믿음의 눈’으로 새로운 미래를 꿈?! 毛杵? 합니다. 스스로를 행복하고 성공한 사람으로 보는 시각이야말로 인생 의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기 위한 열쇠입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승자이자 불굴의 용사로 바라보십시오. 우리는 목표 없이 아무렇게나 인생을 떠도는 무의미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 대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불행과 낙심, 외로움, 병마, 패배 속에서 허덕이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게 아닙니다. 인생의 고난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자신도 모르게 패배에 익숙해진 사람도 있고, 잘못된 생각에 빠져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보다 훨씬 못한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던 자아상은 이내 일그러진 지 오래입니다. 환경이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그러니까 부모님이나 친구의 상처 주는 말과 행동, 의견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니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습니다. 나쁜 쪽으로 왜곡된 자아상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이런 그릇된 이미지를 받아들일 때 낙심과 가난, 아니 그보다 훨씬 무서운 파괴의 힘이 우리를 파멸로 이끕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 瀏? 깨진 거울에 보이는 우리의 모습이 정말로 현실이 되어 버립니다. 죽을 때까지 인생의 쳇바퀴 속에서 맴도는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마음을 잘 다스리고 생각을 통제하여 하나님의 선하심 속에 거하기 바랍니다. 항상 작은 생각과 믿음과 기대를 품는 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작은 행복뿐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처럼 눈에 보이는 약점과 실패와 불가능만 생각하면 결국 ‘메뚜기 정신’이 우리 속에 뿌리 내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 속에서도 놀라운 일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엄청난 잠재력과 재능을 숨겨 놓으셨지만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신을 보고 믿음으로 나아가며 하나님이 주신 꿈과 소망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준비가 된 사람만이 그 잠재력을 분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사로 창조하셨다는 믿음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그 믿음을 끊임없이 성장시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차고 넘치는 복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출처/서정호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