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우리 밥이라! (민1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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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
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
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
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민1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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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황제 네로는 1C 경에, 왕위에 올라 앉기 위해서 자기 어머니를 독약을
먹여 죽게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아내를 부정하다고 해서 독사에 물려 죽게 했습
니다.
시상(詩想)을 떠 오르게 하기 위해 로마시에 불을 질렀고, 그것을 수습할 길이
없으니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웠다. 그래서 120만의 기독교인들이 순교를 당
한 것이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서 똑같은 세월의 시간을 지나는데, 어떤 사람은 그 시간
을 잘 보낸 사람이있고, 어떤 사람은 헛되고 부끄럽게 보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믿음으로 보여 주시는 것을 믿음으로 따라갈 때, 그들은 하나님 앞에 선택받은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신앙으로 살아간 사람들이 육체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믿
음으로 영의 것을 바라본 것 처럼 믿음으로 바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
와 약속과 능력을 믿음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은 반드시 사람들에게 먼저 언약을 하십니다. 모든
하나님의 축복은 언약을 통해 먼저 보여 주시고, 그것이 이루어 지는 기간이 있
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왜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가?" 하고 조급해 하고 안
달을 하지만, 다 때와 기한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더딘 것 같지만, 이르지
도 않고 더디지도 않게 하십니다. 그래서 조급하지 말고 잠잠히 기다리라고 했습
니다(신27:9,애3:26).

오늘 본문에서는 가나안을 정탐한 열 두명의 주인공들이 등장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가 보니까, 문제가 생겼습니다.
열명의 사람이 절망적인 보고를 한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인 앞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
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
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
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보고를 한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듣고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곡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
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겠느냐!" 하면서 원망을 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입니
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가진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찢고 분히 여기며,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
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하면서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
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대단한 고백입니다. 이 짧은 보고의 시간에 열명의 부정적인 사람은 단 한마디
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십
니다!" "하나님이 기뻐 하시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면서 하나
님을 찾으며, 두려울 것이 없다는 보고를 한 것입니다.
똑 같은 상황이지만,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변화가 옵니다. 믿음이란,
겨자씨만 해도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운다고 했습니다(막11:23). 믿음은 엄청난
기적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가하면, 머리에 있는 이의 새끼인 석케만 합니다. 집에 100
알쯤 보관을 했는데, 100알 이라야 아주 조금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라고 자라
서 새가 깃들일 만큼 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신앙이라는 것은 기적을 가져옵니다. 엄청난 능력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주인
공 두 사람은 믿음으로 바라보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그들은 밥이라"
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것 처럼 신바람 나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들은 "우리의 밥
이라"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얼마나 멋있는 신앙고백입니까?

우리의 생활 주변이 비록 암담하고 힘이 없는 것 같습니까?... 막힐데로 막힌 것
같습니까?... 믿음의 눈을 뜨고 주님의 뜻을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분별하기 어려우면, 무릎을 꿇고 주님앞에 간구하시기 바랍니
다. 마음의 두손을 들고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깨닫는 영을 주셔서... 본문에
나타난 주인공 처럼, 좋은 세월의 주인공이 될 줄 믿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여호수아와 갈렙, 이 두사람은 어떤 신앙을 가졌기에 좋은
날의 주인공이 되었습니까?

첫째는, 믿음의 확신입니다.
본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했는데, 이는 하나님
이 함께 해 주신다는 믿음의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그대로 믿은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좋은 길을 열어주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불가능하고
막힌 길이라도 좋은 길로 열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마6:22-23절 말씀에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성결교단 처음에는 미국에서 젊은이 두 사람이 은혜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그 두사람의 마음에 믿음의 영이 뜨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전신 기술
자였는데 사표를 내고, 아시아 선교에 뜻을 품고 선교사로 갔습니다.
그래서 1901년「카우만」과「길보른」이라는 두 사람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복음
을 전했는데, 여기에서 한국의 김상준과 정 빈이라는 두 젊은이가 공부를 하고,
은혜의 체험을 해서 한국으로 돌아와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초교파적으로 단순히 순복음만을 전하다가 그 세력이 커져서 성결교회
라는 교단이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생기게 된 것입니다. 다른 교파는 외국의 선교
사들이 와서 복음을 전한 것이지만 우리 성결교단은 한국사람에 의해서 출발한
자생적 교단이라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갖는 것입니다.
전에는 외국의 구제를 받았지만, 지금은 외국에 신학대학을 세우고 선교사를 보
내는 주는 교단이 되었고, 한국의 3대 교파중에 하나로 크게 성장을 하게 된 것
입니다.
이것은 카우만과 길보른이라는 두 젊은이가 영의 눈을 뜨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을 하고, 뭇 영혼을 구원하겠다는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부르심에 대한 결단
을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율곡 선생은 10년의 앞날을 내다보며 임진왜란을 대비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영국 수상 처어칠은 20년을 내다 보았습니다. 또한 유명한 역사학
자인 아놀드 토인비는 100년 앞을 내다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대만 생각하지 말고, 자녀들과 후손들을 생각하고 멀리 내다
보아야 합니다. 육신의 눈으로 당장만 보지 말고, 현실에만 안주하지 말아야 합니
다. 앞을 내다보는 믿음의 눈으로 창조적인 새역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의 이
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거역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민14:9절 말씀에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하고 좋은 날이 오면 이것이 자기의 처세가 좋아서 된
줄 알고, 자기의 지혜가 좋고 자기의 머리가 좋아서, 자기의 재주가 좋아서 그런
줄 알고, 그 원인을 자기에게 돌립니다.
위에 계신 하나님이 여러모양으로 돌보아 주셨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모르는 사
이에 "아차" 하는 순간에 그렇게 하기가 쉽습니다.
잘 살고 부러울 것이 없을 때, 배부르고 등이 따뜻할 때는 위에 계신 하나님이
이렇게 도와 주셨다는 것을 잊어 버리기 쉽습니다(신8:11).
그런데, 정반대로 슬픔이 있고 고통이 있고 외로움이 있고 어려움이 있을 때에
는 그 원인을 제일 처음에는 자기 주변의 이웃부터 찾습니다. 가족들에게 돌리고
이웃에게 돌리지만, 그러나 자기를 먼저 찾아야 합니다. 자기의 헛점을 보완하고
잘못을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이외의 사람들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사회 심리
학적인 측면으로 보면, 자기는 잘 했고, 모든 것이 옳았는데... 하고, 주변의 사람
들이나 가족들이나, 혹은 사회에 그 원인을 돌리는 것입니다.
가족들에게 돌리면, 그 원망이 가족들에게 갑니다. 자식이 어떻고 남편이 어떻
고... 원망을 합니다.
오래전에 부흥집회를 인도하는데, 어떤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이런 여자하고는
도저히 못살겠습니다..." 하면서 이유를 잔뜩 늘어 놓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이혼
하시지요" 하면서 남의 교회니까 정신 버쩍 차리라고 충격요법을 썼더니, 우물쭈
물 하더니 "자식이 있고, 이제는 늙어서 이혼할수도 없고...." 하면서 우물쭈물 하
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건은 새것 일수록 좋지만 사람은 오래 될수록 좋은 법
입니다. 왜냐하면 서로의 장단점을 잘 알기 때문에 조금만 양보하고 이해하면 아
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면, 자기 이외의 사람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원망을
돌리면, 어떤 자식은 "이 힘든 세상에 왜 날 낳아가지고 이렇게 고생을 시키느
냐"고 하는 녀석도 있습니다. 원망이란 습관화 되고, 체질화 되고, 전염성을 가지
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자기에게로 돌리면 심성이 좋은 길로 변화를 가져 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웃에게 돌리고, 하나님에게 돌렸습니다. 그것이 상승작용을
해 가지고 결국은 멸망한 것입니다.

사람이 집안에서 원망을 자꾸하면 부부가 닮아 갑니다. 자식들이 닮아 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니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고 끝내는 하나
님을 거역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생활속에서 신앙의 눈이 떠 있는 사람은 그런 원망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좋은 소식은 자꾸 퍼지고 확산 되어야 하지만, 나쁜 소식은 가
능한한 꿀꺽 삼켜 버려야 합니다. 이런 체질화된 품성이 우리에게 이루어 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약속인데, 그 약속은 기한이 되면 이루어 집니다. 이 약
속은 동물의 세계에서는 없습니다. 인간 세계에서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약속하시고, 이삭과 약속하시고, 야곱에게도 약속하셨
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인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이 정하신 기한을 믿음으로 분별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분별하기 어려우면 무릎을 꿇고 주님앞에 간구하면, 주님께서
반드시 깨닫는 영을 주십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믿음으로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미래를 밝게 여시고, 새역사
창조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셔서 모든 사람들에게 신앙의 인격자라고 일컬음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현재의 고난만 바라보고 짜증을 내면, 이스라엘 민족과 다를바가 없습니
다.
우리는 "하나님을 거역할 수 없다"고 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현재가 비록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바라
보고 신실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힘이 생기고, 소망이 생기고,
담대하고, 능력이 생깁니다.
종교개혁자인 칼벵은 로마서 8:18절을 아주 좋아했는데, 임종을 앞두고 이 말씀
을 25번이나 외웠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
교할 수 없도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하면서 이 귀한 말씀을 마지막 순간까지 부여잡고 외우고 또 외우고 하면서 주님
앞에 갔습니다.
사람이 가장 고통스러운 때가 속사람의 영혼이 육체의 몸에서 빠져 나오는 순간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영이 떠나서 영원한 세계에 가면 영원한 영광이 있는
데, 현재의 고난은 비교가 안되는 놀라운 영광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맙시다. 하나님을 거역하지 맙시
다. 하나님의 언약을 부여잡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선택받은 주의 백성들이 되시
기를 바랍니다.

세번째는, 두려워 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본문 9절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그 땅의 거민이 장대하고, 여리고 성이 아무리
견고해도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
다. 그래서 결국 두려워 하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들은 그들의 믿음대로 가나안
땅을 차지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우화나 설화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입
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함께 해 주셨는가 하면, 애굽에서 나오는 것만 해도 10가지 재
앙을 쏱아 부어서 말없이 꼼짝없이 내 보냈습니다. 당시에 노예는 국력인데 어떻
게 바로가 내놓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로 아무 말 없이 내놓게 된 것입
니다.
당시 노예들은 장정만 해도 60만명인데, 바로 왕국에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니
까 어쩔수 없이 내놓게 되었습니다. 홍해를 갈라내어서 건너게 하신 일이며,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불기둥으로 보호하신 일이며,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일
등등...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요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능치 못함이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자상하게 인도하셨는가 하면, 구름이 시속 4km의 속도로 이
동했는데 이는 아녀자들이 걸어 갈 수 있을 정도의 속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그마치 40년동안이나 계속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강한 바람이
불어와서 구름이 빨리 지나갔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을 것입니
다.
그래서 본문의 주인공 두 사람은 "하나님이 우라와 함께 하시니 두려워 할 것이
없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길이 막힌 것 같습니까?... 이 나라의 경제, 우리의 앞길이 막힌 것 같습니
까?... 믿음의 눈으로 분별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하는 믿음이 불같이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이런 믿음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믿음이 내 안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이 불 같이 일어
납니다.
본문 민14:8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
여 들이시고..."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문제가 없다는 것입
니다.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면, "소원을 만족케 하십니다"고 했고(시145:16), 보호
하시고(시145:20), 식물을 주신다고 했습니다(시136:25). 이는 경제적으로 부요케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시121:8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
지 지키시리로다" 했습니다.

자식도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려고 하는 자식이 더 예쁩니다. 마음이 더 가는
자식이 있는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를 보십시요. 에서는 털이나고 건장하여 사내
같이 생겼는데, 밤낮 사냥을 하기 위해서 돌아만 다닙니다. 그런데 야곱은 털도
안나고 당시 사회로서는 사내답지 않았지만 어머니만 따라 다니고, 어머니가 기
뻐하는 일이라면 눈치 빠르게 했습니다. 하는 짓이 귀여운 짓만 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대부분 그 아내의 말을 잘 듣게 되는데, 아합이라는 왕은 이세벨이 자
꾸만 옆에서 속닥거리니까 결국은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는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야곱은 그 어미에게 잘 보인 까닭에 아버지 이삭에게서 축복을 받는데, 야
곱은 이스라엘 민족사에 창조적인 주인공이 된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임마누엘 칸트」같은 사람은 80여 년의 생애를 살아가면서 그의 생활 철학은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해 드릴까?" 하고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면 지체하지 아니하고 "예"하고 순종하며 따라갔
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예" 하고 따라가고,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면 뒤돌아 서고, 잘라 버리고, 끊어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
고, 어여삐 보시고,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귀한 삶의 시간을 부여 받았습니다. 이 시간은 내 자
신이 주도해 나가야 합니다.
나그네 삶의 여정을 지나면서 ①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 갑시다. 그 하나님
앞에 ②거역하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 갑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③두
려울 것이 없다는 믿음으로 살아 갑시다. 우리 성광의 권속들은 새역사 창조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