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자 (마태복음 20 : 20 - 28)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靈界(영계)에 있어서는 이 세상
과 비교할 때 가치의 顚倒(전도, 뒤바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애통하
는 자가 복이 있고, 약하고 온유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 것이 아니고 자비를 베푸는 자가 복이 있는 것
입니다.
  쌩켸비치의 소설 『쿼바디스』에 보면 뵈느퀴스는 처음 카타콤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로마의 군인으로 걸어온
자기의 세계가 무너져 버리는 감을 느꼈습니다. 기상천외의 세계, 그러
나 숭고한 最高律理(최고율리) 차원의 세계의 복음이 저의 암울한 마음
의 문을 두드릴 때 놀라운 생명의 빛을 받게 되었습니다.
  천국은 파라독스(Paradox, 逆說)한 원리를 따라 전개됩니다.
『욕됨과 영광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無名한 자
같으나 有名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절망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는 자요,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荊棘(형극)의 황무지를 파헤치는 勞苦(노고)의 血汗(혈한)없이 沃土
(옥토)를 얻을 수 없고, 김매는 수고와 거름을 짊어지는 고역 후에 苦
盡甘來(고진감래), 즉 추수하는 자의 喜悅(희열)이 滿面(만면)에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남들이 春園(춘원)에서 享樂(향락)의 歌舞(가무)에 眈溺(탐닉)할 때
臥薪嘗膽(와신상담), 감옥과 같은 독방에서 공부와 연구에 전념을 다하
는 자가 비로소 천년 후까지 빛나는 성공의 영광을 기대하게 되는 것
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들을 위
하여 주님의 左右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즉 주님이 왕이
되시면 政丞(정승)의 자리를 요구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주님의 답변
은 『너희의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님의 마시려는
잔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었습니다. 마실 수 있다고 대답했던 두 제
자 중의 하나인 야고보는 결국 모든 제자들 중에 제일 먼저 순교의 피
를 흘렸습니다.
  그리스도의 쓴 잔을 마시지 않고 하늘 영계의 영광된 자리를 바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영원한 나라의 만민의 선망의 대상이 될
『생명의 면류관』은 순교의 피를 흘리는 자들이 받아쓰도록 되어 있
는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 보다 크고 으뜸이 되려는 야고보와 요한도 그랬거니와
이를 비난하는 다른 열 제자들의 힐난하는 마음들도 다같이 시기와 투
기의 온상을 이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이
되지못하고 反目疾視(반목질시)하며 분열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그 존재까지도 인식하지 못하는 이방인들은 하나
님이 그들을 멀리하고 내버렸으므로 그 세계에서는 재물과 수단과 선
전과 모략과 아첨 중 저희 임의로 권세를 마구 휘두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아침에는 바벨론에 있고, 저녁에는 메데바사에 있으
며, 어제는 헬라의 광대한 판도인가 하면, 오늘은 동서의 강철같은 로
마입니다. 그러나 내일은 자유진영과 鐵의 장막의 소련과 중공등 列國
(열국)의 興亡盛衰(흥망성쇠)!
  모두 다 홀연히 왔다가 홀연히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없어지지 아니하는 것,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가 있습
니다. 창조주되시고 절대자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
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
라』
  인생들은 위대한 인물이 되고자 급급하고 있으나 그 길은 『크고자
』하면 『섬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의 逆理(역리)도 진리입니
다. 즉 『섬기는 자』가 진실로 『큰 자, 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
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
능력으로 섬김의 도를 다하게 하십니다. 어거스틴은 『겸손한 마음은
모든 은혜를 받는 그릇이 된다』고 했습니다. 섬기는 자가 되어 자기를
낮추면 낮출수록 그만큼 자기가 올라간다는 원리를 깨달아야 하겠습니
다. 나무뿌리가 땅속으로 내려갈수록 위로 뻗는 가지가 무성하고 좋은
열매도 많이 맺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數學(수학)의 三角函數(삼각함수)의 원리와 같습니다. sin곡선을
그림으로 그리면 파도같은 모양으로 그려 나가는데 파도가 내려간 만
큼 다음은 올라가고 또 내려가고 다시 그만큼 올라가는 것과 같다고
보겠습니다. tangent곡선은 무한히 밑으로 내려가는가 하면 다음에는
무한히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 이치와 같이 우리는 섬길수록 섬김을 받는 자가 될 수 있고, 자아
를 죽일수록 참된 자아가 살게 되며, 우리는 겸손할수록 큰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 생활에 있어서 자기 실력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을
퍼붓고 자기 의견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다수결에 불복하는 경우가 있
습니다. 이는 자기를 이기지 못하는 약자요, 바람에 실려 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암적 존재입니다.
  저는 해군 군목으로 있을 당시 미국으로 건너가 Newport의 군목학
교에서 공부할 때 같이 간 분의 성적이 저보다 떨어질 때 은근히 기뻐
하는 나의 모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九萬里 異域(이역)에 와서 둘이
똑같이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하는데 자기 혼자만 올라가려고 하는 아직
죽지 못한 나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軍宗監(군종
감)을 오랫동안하고 다른 군목이 군종감이 되었을 때 자기는 그 밑에
서 함대 군목으로 그를 섬기며 복종한 군목이 있었다는 아름다운 이야
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직책에 있을 때는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다가도 그 직
책에서 물러나게 되면 그만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무관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낮은 위치에서 잘 섬기는 것이 귀한 일입니다.
  마가복음 7:24∼30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은 주님께로부터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개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겸손히 주를
섬김으로 그 믿음이 누구보다도 위대하다는 확증을 주님께로부터 받았
습니다.
  전에 동경 올림픽 대회의 마라톤 경주에서 Salon선수가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해 맨 뒤로 쳐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선
수가 모두 골인한 후에도 운동장 몇 바퀴를 혼자서 돌고 끝까지 달려
들어왔습니다. 그때 그를 위해 많은 관중이 박수갈채를 보냈는데 일등
한 선수보다 더 많은 박수를 받는 것을 TV 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꼴
찌가 되어서도 그는 마라톤 선수로서의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로말카는 『겸손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요,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겸손히
섬길 줄 모르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볼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수건으로 허리를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
셨습니다. 마리아는 자기의 가장 귀한 보물 나드香油(향유)를 예수님의
먼지투성이의 발에 붓고 여인의 가장 귀한 머리털로 씻겨 드렸습니다.
다시 생각해 볼 때 예수께서 제자들의 더러워진 발을 씻기신 것은 예
수 그리스도의 玉體內(옥체내)의 피로써 사람의 가장 더러운 죄를 씻어
주시는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섬기러 오신 주님의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벌레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무한한神으
로서 有限(유한)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道,
겸손의 道, 섬김의 道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민망하
여 죽게된 몸으로 血汗(혈한)의 철야기도를 드린 후에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셔서 터졌고, 채찍으로 수
없이 맞아 온몸이 찢기셨으며, 사람들로부터 많은 嘲笑(조소)와 蔑視
(멸시)를 당하시면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나아가
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양발과 양손에 쇠못을 박히시고 창으
로 허리를 찔리셨으니 그 고통, 그 아픔은 이루 다 형용할 수 없는 것
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에게 내리실 형벌과 저주
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순간은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진 엄청난 죄인으로서 하나님께 저주받
아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는 순간이었기에 그 고통이 너무나 견디기
어려워 주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絶叫(절규)하셨습니다. 즉 자기 목
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주시는 섬김의 絶頂(절정)을 이루신 것
입니다.
  이 쓴잔의 結晶(결정)이 사망을 이기신 부활이요, 땅끝까지 울리는
구원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이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
름에 꿇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과 사람을 섬기는 쓴잔을 마시지 않고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주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질까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내 몫에 태인 십자가 늘 지고 가리다
   그 면류관을 쓰려고 저 천국 가겠네』(찬송가 365장 1, 2절)

   歷代(역대)의 主의 종들이 逆境(역경)과 苦海(고해)를 건너왔던 것입
니다. 主를 위해 獄(옥)에 갇히는 것과 수없는 매를 맞는 것과 破船(파
선)과 강도의 위험과 자지 못함과 주리고 목마른 것과 춥고 헐벗은 것
과... 이제는 모두가 死線(사선)을 넘어서 영광의 彼岸(피안)에 도달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형제의 발을 씻어 주는 섬기는
자, 주님의 잔을 우리도 마시는 참으로 큰 인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
다.

마태복음 20 : 20 - 28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靈界(영계)에 있어서는 이 세상
과 비교할 때 가치의 顚倒(전도, 뒤바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애통하
는 자가 복이 있고, 약하고 온유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 것이 아니고 자비를 베푸는 자가 복이 있는 것
입니다.
  쌩켸비치의 소설 『쿼바디스』에 보면 뵈느퀴스는 처음 카타콤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로마의 군인으로 걸어온
자기의 세계가 무너져 버리는 감을 느꼈습니다. 기상천외의 세계, 그러
나 숭고한 最高律理(최고율리) 차원의 세계의 복음이 저의 암울한 마음
의 문을 두드릴 때 놀라운 생명의 빛을 받게 되었습니다.
  천국은 파라독스(Paradox, 逆說)한 원리를 따라 전개됩니다.
『욕됨과 영광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無名한 자
같으나 有名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절망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는 자요,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荊棘(형극)의 황무지를 파헤치는 勞苦(노고)의 血汗(혈한)없이 沃土
(옥토)를 얻을 수 없고, 김매는 수고와 거름을 짊어지는 고역 후에 苦
盡甘來(고진감래), 즉 추수하는 자의 喜悅(희열)이 滿面(만면)에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남들이 春園(춘원)에서 享樂(향락)의 歌舞(가무)에 眈溺(탐닉)할 때
臥薪嘗膽(와신상담), 감옥과 같은 독방에서 공부와 연구에 전념을 다하
는 자가 비로소 천년 후까지 빛나는 성공의 영광을 기대하게 되는 것
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들을 위
하여 주님의 左右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즉 주님이 왕이
되시면 政丞(정승)의 자리를 요구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주님의 답변
은 『너희의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님의 마시려는
잔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었습니다. 마실 수 있다고 대답했던 두 제
자 중의 하나인 야고보는 결국 모든 제자들 중에 제일 먼저 순교의 피
를 흘렸습니다.
  그리스도의 쓴 잔을 마시지 않고 하늘 영계의 영광된 자리를 바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영원한 나라의 만민의 선망의 대상이 될
『생명의 면류관』은 순교의 피를 흘리는 자들이 받아쓰도록 되어 있
는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 보다 크고 으뜸이 되려는 야고보와 요한도 그랬거니와
이를 비난하는 다른 열 제자들의 힐난하는 마음들도 다같이 시기와 투
기의 온상을 이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이
되지못하고 反目疾視(반목질시)하며 분열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그 존재까지도 인식하지 못하는 이방인들은 하나
님이 그들을 멀리하고 내버렸으므로 그 세계에서는 재물과 수단과 선
전과 모략과 아첨 중 저희 임의로 권세를 마구 휘두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아침에는 바벨론에 있고, 저녁에는 메데바사에 있으
며, 어제는 헬라의 광대한 판도인가 하면, 오늘은 동서의 강철같은 로
마입니다. 그러나 내일은 자유진영과 鐵의 장막의 소련과 중공등 列國
(열국)의 興亡盛衰(흥망성쇠)!
  모두 다 홀연히 왔다가 홀연히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없어지지 아니하는 것,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가 있습
니다. 창조주되시고 절대자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
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
라』
  인생들은 위대한 인물이 되고자 급급하고 있으나 그 길은 『크고자
』하면 『섬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의 逆理(역리)도 진리입니
다. 즉 『섬기는 자』가 진실로 『큰 자, 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
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
능력으로 섬김의 도를 다하게 하십니다. 어거스틴은 『겸손한 마음은
모든 은혜를 받는 그릇이 된다』고 했습니다. 섬기는 자가 되어 자기를
낮추면 낮출수록 그만큼 자기가 올라간다는 원리를 깨달아야 하겠습니
다. 나무뿌리가 땅속으로 내려갈수록 위로 뻗는 가지가 무성하고 좋은
열매도 많이 맺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數學(수학)의 三角函數(삼각함수)의 원리와 같습니다. sin곡선을
그림으로 그리면 파도같은 모양으로 그려 나가는데 파도가 내려간 만
큼 다음은 올라가고 또 내려가고 다시 그만큼 올라가는 것과 같다고
보겠습니다. tangent곡선은 무한히 밑으로 내려가는가 하면 다음에는
무한히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 이치와 같이 우리는 섬길수록 섬김을 받는 자가 될 수 있고, 자아
를 죽일수록 참된 자아가 살게 되며, 우리는 겸손할수록 큰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 생활에 있어서 자기 실력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을
퍼붓고 자기 의견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다수결에 불복하는 경우가 있
습니다. 이는 자기를 이기지 못하는 약자요, 바람에 실려 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암적 존재입니다.
  저는 해군 군목으로 있을 당시 미국으로 건너가 Newport의 군목학
교에서 공부할 때 같이 간 분의 성적이 저보다 떨어질 때 은근히 기뻐
하는 나의 모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九萬里 異域(이역)에 와서 둘이
똑같이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하는데 자기 혼자만 올라가려고 하는 아직
죽지 못한 나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軍宗監(군종
감)을 오랫동안하고 다른 군목이 군종감이 되었을 때 자기는 그 밑에
서 함대 군목으로 그를 섬기며 복종한 군목이 있었다는 아름다운 이야
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직책에 있을 때는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다가도 그 직
책에서 물러나게 되면 그만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무관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낮은 위치에서 잘 섬기는 것이 귀한 일입니다.
  마가복음 7:24∼30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은 주님께로부터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개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겸손히 주를
섬김으로 그 믿음이 누구보다도 위대하다는 확증을 주님께로부터 받았
습니다.
  전에 동경 올림픽 대회의 마라톤 경주에서 Salon선수가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해 맨 뒤로 쳐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선
수가 모두 골인한 후에도 운동장 몇 바퀴를 혼자서 돌고 끝까지 달려
들어왔습니다. 그때 그를 위해 많은 관중이 박수갈채를 보냈는데 일등
한 선수보다 더 많은 박수를 받는 것을 TV 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꼴
찌가 되어서도 그는 마라톤 선수로서의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로말카는 『겸손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요,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겸손히
섬길 줄 모르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볼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수건으로 허리를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
셨습니다. 마리아는 자기의 가장 귀한 보물 나드香油(향유)를 예수님의
먼지투성이의 발에 붓고 여인의 가장 귀한 머리털로 씻겨 드렸습니다.
다시 생각해 볼 때 예수께서 제자들의 더러워진 발을 씻기신 것은 예
수 그리스도의 玉體內(옥체내)의 피로써 사람의 가장 더러운 죄를 씻어
주시는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섬기러 오신 주님의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벌레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무한한神으
로서 有限(유한)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道,
겸손의 道, 섬김의 道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민망하
여 죽게된 몸으로 血汗(혈한)의 철야기도를 드린 후에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셔서 터졌고, 채찍으로 수
없이 맞아 온몸이 찢기셨으며, 사람들로부터 많은 嘲笑(조소)와 蔑視
(멸시)를 당하시면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나아가
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양발과 양손에 쇠못을 박히시고 창으
로 허리를 찔리셨으니 그 고통, 그 아픔은 이루 다 형용할 수 없는 것
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에게 내리실 형벌과 저주
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순간은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진 엄청난 죄인으로서 하나님께 저주받
아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는 순간이었기에 그 고통이 너무나 견디기
어려워 주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絶叫(절규)하셨습니다. 즉 자기 목
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주시는 섬김의 絶頂(절정)을 이루신 것
입니다.
  이 쓴잔의 結晶(결정)이 사망을 이기신 부활이요, 땅끝까지 울리는
구원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이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
름에 꿇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과 사람을 섬기는 쓴잔을 마시지 않고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주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질까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내 몫에 태인 십자가 늘 지고 가리다
   그 면류관을 쓰려고 저 천국 가겠네』(찬송가 365장 1, 2절)

   歷代(역대)의 主의 종들이 逆境(역경)과 苦海(고해)를 건너왔던 것입
니다. 主를 위해 獄(옥)에 갇히는 것과 수없는 매를 맞는 것과 破船(파
선)과 강도의 위험과 자지 못함과 주리고 목마른 것과 춥고 헐벗은 것
과... 이제는 모두가 死線(사선)을 넘어서 영광의 彼岸(피안)에 도달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형제의 발을 씻어 주는 섬기는
자, 주님의 잔을 우리도 마시는 참으로 큰 인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
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