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호 교수  

완벽주의는 지나치게 꼼꼼하고 철저하며 결코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말한다.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에 대한 기대와 기준이 매우 높기 때문에 특별히 잘 한 경우가 아니면 마음에 차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실수없이 잘 하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태도와 행동이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자기의 행복을 방해할 만큼 지나치다는 것이 문제다.
완벽주의 성향을 지닌 부모는 자녀를 양육할 때에 완벽주의 태도를 나타낸다. 자녀에 대한 기대와 기준이 너무 높기에 7살짜리 개구쟁이 아들에게 옆집에 사는 12살짜리 형처럼 행동하라고 말한다./ 자녀에 대한 칭찬과 인정에 매우 인색하다. 아무리 잘해도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녀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 한다. 예를 들어 9살짜리 딸아이가 시험지를 보이며 “엄마, 나 백점 받았어요.” 라고 하면 엄마는 “네 짝은 몇 점 받았는데?”라고 묻는다./ 자녀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며, 실수를 하면 비판적인 말을 한다. “내가 뭐랬어! 기다리라고 그랬지. 넌 애가 왜 그 모양이니? 칠칠맞게.”/

완벽주의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태도나 사용하는 언어 중에는 항상 “더(more)”라는 암시적인 메시지가 있다. 더 노력하고 더 잘하면 칭찬해 줄 거라는 메시지다.


미실다인(W. Hugh Missildine)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 안에는 두 개의 자아가 있는데, 하나는 부모의 생각과 태도와 행동을 닮은 내면부모(inner parents)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의 양육태도에 대한 우리의 반응으로 형성된 내면아이(inner child)이다.(“상담과 치유” 2004년 겨울호, 필자의 글 “방치된 내면아동의 치유”를 참고.)
완벽주의 부모의 양육을 받으며 자란 사람의 내면에는 그런 완벽주의를 닮은 내면부모가 있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부모의 말과 행동과 태도 등을 보고 듣고 경험함으로서 형성된 자아이다.
완벽주의 내면부모는 자신, 특히 자기의 내면아이에게 완벽하기를 기대하고 요구한다. 그것은 어린시절의 부모가 자기에게 완벽을 요구했던 것만큼 강력하다. 자신의 내면아이에게 거의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스스로 자기를 칭찬하는 일이 없으며, 남과 비교하고, 비난하고, 내면아이에게 항상 더 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결과 이미 부모를 떠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완벽주의의 기대와 요구에 시달린다./ 완벽주의 내면부모는 자기의 자녀를 완벽주의로 양육하려 하며, 자기의 배우자가 완벽하게 행동하기를 기대하고 요구한다. 그들을 칭찬하거나 인정해 주는 일이 없으며, 다른 자녀나 배우자와 비교하고, 항상 더 잘하기를 요구한다. 그 결과 완벽주의 양육태도는 세대를 넘어 대물림되고 부부는 갈등을 겪게 된다.


완벽주의 부모의 양육을 받으며 자란 사람의 내면에는 또 하나의 자아 즉 인정받지 못한 내면아이가 있다. 완벽주의 양육태도는 자녀의 마음 속에 인정받지 못한 내면아이를 만들어 낸다. 인정받지 못한 내면아이의 특징과 역할은 무엇인가? 칭찬과 인정에 목말라 하며 매우 집착한다.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 속에 있는 인정욕구의 탱크(tank)가 텅 비어 있다./ 그가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동기와 목적은 인정을 받는데 있다. 그러나 자신은 그런 내적인 동기를 모를 때가 많다. 그는 단지 인정받기 위해 일하고 인정받기 위해 사람을 만난다. 인정받기 위해 선물을 주기도 하고 선심을 쓰기도 한다./ 의존적이며 눈치를 많이 본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지 못하고 항상 상대방의 표정이나 분위기를 살핀다. 눈치를 보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적절한 눈치행동은 센스로 간주된다. 문제는 그것이 지나치다는데 있다. 눈치행동이 지나치면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다./ 성공과 성취에 몰두한다. 왜냐하면 성공은 부모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아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성공은 항상 과시적이다./ 결혼도 하나의 성공으로 생각하며 부부간의 성 생활에 있어서도 친밀감보다는 성취감을 맛보려 한다. 그 결과 부부는 정서적으로 이탈되고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삶의 휴식과 쉼표가 없다. 인생을 달리기처럼 살아간다. 왜냐하면 성공과 성취를 위해 총력 질주하기 때문이다. 그는 집에 퇴근하면서도 일거리를 들고 오며, 휴가를 가면서도 서류봉투를 가지고 간다. 그에게는 일중독의 가능성이 있다. 지치고 탈진할 때까지 일하는데, 아무리 일해도 만족이 없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낮고 수치감이 많으며 매사에 자신감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그의 내면아이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치감은 죄책감과 다르다. 죄책감은 내가 실수를 했다고 말하는 것이지만, 수치감은 나 자신의 실수라고 말하는 것이다./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많다. 그는 간혹 학교에 갔는데 책가방을 두고 온 꿈이나 시험을 보려고 하는데 연필이 없어서 당황하는 것 같은 꿈을 꾼다./ 자기가 한 일이나 업적에 대해서 과소평가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잘한 일인데도 스스로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려서 자기가 잘한 경우에도 부모는 칭찬이나 인정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기쁨이나 만족이 없고 항상 공허함과 비애를 느낀다. 비가 와서 우울한 것이 아니다. 그의 내면이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우울하다./ 긍정적인 면도 있다. 완벽주의 부모 밑에서 자란 인정받지 못한 내면아이를 지닌 사람은 대개 머리가 명석하고 매사에 철저하기 때문에 공부나 일을 잘 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출세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혼자 일하는 전문분야에서 성공하는 예가 많다. 그러나 마음속엔 진정한 만족과 행복이 없다.


치유를 위해서는 치유를 돕는 상담자나 치유를 받는 내담자의 노력과 열망이 모두 있어야 한다. 먼저 상담자는 유아의 심리상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상담이나 치유가 필요한 사람의 내면상태는 유아와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인즈 코핫은 유아가 지닌 과대자기 욕구가 충족되지 아니할 때 나타나는 문제에 대해 연구했다. 코핫에 따르면 유아는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본래의 자기애적 지복(primary narcissistic bliss)의 상태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그 지복의 상태는 유아를 돌보는 부모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깨지고 만다. 그러면 유아는 그것을 다시 회복하기 위한 시도를 하게 되는데 그 시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부모를 이상화하는 것이다. 유아는 자기의 리비도를 부모에게 투사함으로 부모를 이상화한다. 부모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느끼며 부모를 이상적인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 결과 유아의 마음속엔 이상화된 부모의 원상(idealized parental image)이 만들어진다.

다른 하나는 자기를 이상화하는 것이다. 유아는 리비도를 자기 자신에게 투사함으로써 자기를 이상화한다. 자기를 완벽하고 이상적인 존재로 느낀다. 그 결과 유아의 마음속엔 자기애적이며 과시적인 욕구로 가득 찬 과대자기(grandiose self)가 형성된다. 과대자기는 으스대고 뽐내기를 좋아하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기 원하는 자기이다. 이때 부모는 반영(mirror)을 통해서 유아를 칭찬해 주어야 한다. 그 칭찬은 찬사와 찬양과 경배 수준의 칭찬이어야 한다. 짝짝꿍의 행동이나 걸음마 같은 작은 성취라도 그렇게 칭찬해 줄 필요가 있다. 그러면 유아가 지닌 자기애적 과대자기는 수정되어 현실적이고 적절한 야망(ambitions)으로 바뀌어 인격에 통합된다. 그러나 만약 그런 과대자기 욕구가 충족되지 아니하면 자기애성 인격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자기애적 인격장애는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와 특권의식 그리고 자기 찬사에 대한 과도한 욕구를 특징으로 한다.

완벽주의 부모의 양육을 받으며 자란 사람의 내면 속에 형성된 인정받지 못한 내면아이는 과대자기 욕구를 지닌 유아의 심리상태와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므로 치유를 위해서는 그의 인정욕구가 충족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그의 인정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 치유적으로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제이 얼리는 단순한 욕구만족(gratification)과 치유적 반응으로서의 필요충족(meeting needs)을 구분했다. 욕구만족은 내담자가 원하는 대로 그에게 위로와 만족을 줌으로써 그를 기분좋게 해주는 것이다. 필요충족은 어린시절 내담자의 결핍된 욕구를 채워줌으로써 치유를 돕는 행동이다. 상담자의 행동이 내담자에게 단순한 욕구만족이 아니라 치유적 반응으로서의 필요충족이 되기 위해서는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 기준이란 내담자가 자기의 결핍된 인정욕구를 인식하고 그 욕구가 왜 결핍되었는지를 이해하고 통찰한 다음에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인식과 통찰이 없이 주어지는 욕구충족은 단순히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에 불과하며 그것은 치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인정욕구를 단순히 만족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치유적으로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한편 인정받지 못한 내면아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내담자 자신의 자기치유 과정이 필요하다. 내담자는 상담자나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 스스로 자기를 칭찬하고 인정하는 자기 지지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은 외부의 칭찬이 없을 때에도 그 칭찬을 지속할 수 있는 내부의 지지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내담자는 자기를 인정하고 사랑해 주는 대상을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에게로 방향 전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사람으로부터의 인정과 사랑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완벽을 요구하시지 않는다. 나의 모습 그대로를 수용하시며 인정해 주신다. 그리고 앤소니 드 멜로(Anthony de Mello)가 강조했던 것처럼 내 안에는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만이 아니라 오히려 인정하고 사랑해 주고 싶은 욕구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은 또 하나의 욕구로서 우리 안에 존재하며, 그 욕구를 충족하며 사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정받지 못한 내면아이를 치유하는 과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