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렬 교수 

발달심리학적으로 볼 때 중년기는 청소년기에 형성된 자아정체감을 바탕으로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기반을 잡고 성공하기 위해 청년기 동안 정신없이 달려온 지금까지의 삶을 평가하는 시기이다. 즉, 지금까지의 생활이 과연 내가 원하던 삶이었는가? 앞으로도 이와 같은 삶을 계속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진솔하게 대답해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I. 중년기의 발달심리적 특징


1. 신체적 변화에 대한 민감한 반응

중년기에 이른 사람들은 자신의 용모 변화와 건강상태에 대해 과민한 반응을 보인다. 특별히 아픈 곳이 없는데도 건강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기울인다. 남자의 경우에는 특히 자신의 성적 능력의 변화 여부에 큰 관심을 보인다. 젊었을 때와 비교해 성적 능력이 감퇴되어 간다고 느껴지면 남성으로서의 매력과 의미도 상실돼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필요 이상으로 과장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그 한 방편으로 젊은 여성과의 성적인 관계를 통해 자신의 능력과 매력을 검증해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여성의 경우, 신체적 변화를 통해 중년이 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즉 눈가에 늘어난 주름살, 흰 머리카락 등을 통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느낌을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도 시작하고 새로운 의상도 마련하는 등의 행동을 보인다. 동시에, 다른 사람 특히 남성으로부터 아직도 젊고 여성으로서의 매력도 있다는 것을 인정받으려 한다.

2. 시간 조망의 변화

사람은 45세를 전후해 자신의 일생 전체를 보는 시간적 조망이 변하게 된다. 이 나이에 이르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인 죽음에 대해 점차 뚜렷하고 구체적이며 개인적인 것으로 느끼게 된다. 따라서 심리적으로 느끼는 시간의 흐름이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 같은 일년이라도 젊었을 때보다 매우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낀다. 그래서 별다른 일 한번 제대로 못한 채 허송세월 하다가 죽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감을 갖기도 한다.

3. 자기 이해 수단의 다변화

중년에 이르면 자신에 대한 이해의 수단이 다변화된다. 즉, 젊은 시절에는 건강하던 부모가 노인이 된 모습, 지금까지 어린애라고만 여겨졌던 자녀가 장성한 성인이 된 모습, 그리고 중년의 특징이 완연한 자신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이 더 이상 청년이 아니라 중년이라는 현실을 절감하기도 한다.

4. 내향적 경향의 증가

중년에 이르면 사고와 행동에 있어서 내향적 경향이 증가하고 자신의 내면 세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다. 젊었을 때 외부의 영향을 받고 설정하였던 인생의 목표나 의미에 대해 많은 사고를 하게 되고, 자신의 내적 세계를 보람 있게 하고 자기실현을 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더불어,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하여야 할 때도 자신의 오랜 경험에 비추어보고 나서 신중히 검토하고 조심스럽게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다.

5. 성역할 지각과 행동의 변화

우리 중 대부분은 출생할 때부터 시작된 사회화의 영향으로 청년기까지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행동하도록 교육받는다. 이와 같은 사회화의 결과로 남자는 여성다운 행동을 억제하고 회피한다. 마찬가지로 여자도 남성적인 행동은 억제하고 회피한다. 하지만 중년이 되면 지금까지의 사회화 과정을 통해 형성해 온 행동과 가치관을 유지하려는 압력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증가한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남자는 유친성과 양육 동기 및 의존성 등이 증가하고, 반대로 여자는 여성적인 성향이라고 여겨지는 수동적이고 의존적이고 관계지향적인 태도에서 적극적이고 독립적이고 자기주장적으로 변하게 되며 행동에서 남성적인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렇게 보면, 남녀 모두 나이가 들어가면서 양성화되어 간다고 할 수 있다.


II. 중년의 위기

중년기는 자녀들이 모두 성장하여 부모의 곁을 떠나는 자녀의 진수기(進水期)이므로 대부분의 부모가 텅 빈 둥우리(empty nest)를 경험하게 된다. 직장에서도 승진 및 의미 있는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기회의 한계 등을 절감하는 시기이다. 이와 같은 사회적 심리적 가정적 변화는 중년에게 자신과 자신의 일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게 하고, 나이에 대한 시간적 조망을 바꾸어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 재평가하도록 하며, 미래의 삶에 대해 준비하게 하는 귀중한 발달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
중년의 위기는 이상에서 살펴 본 것처럼 발달과 변화의 과정을 포함하는 것으로, 가치관이나 행동의 변화 때문에 생기는 일시적인 심리적 혼란감이라고 할 수 있다. 중년의 위기를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보람 있는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에 유념하여야 한다.

1. 변화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중년에는 노화에 따른 신체적 매력의 상실, 성적 능력의 감퇴 등이 나타난다.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발달상의 자연스런 현상이다. 따라서 젊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승산 없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중년의 멋과 이점(利點)을 살리고 외면적 치장보다는 내면적 성숙을 이루도록 노력한다.

2. 부부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여성으로서의 역할은 주로 어머니이기 때문에 자녀의 양육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따라서 아내로서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경우가 많다. 남자의 경우에도, 젊었을 때는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중요하고, 따라서 남편으로서의 역할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중년에는 텅 빈 둥지가 되고, 직장과 사회적 관계에서도 한계가 나타나는 만큼 지금까지 외부로 쏠려 있던 관심을 내부로 돌려 부부간의 관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 관계에서 보람과 만족을 얻도록 하여야 한다.

3.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갖는다

젊었을 때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취미가 있더라도 사회적인 책임이나 역할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그림을 그리는 취미를 가지고 싶어도 자녀가 아직 어리고 과도한 교육비 등으로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녀가 부모 곁을 떠나는 중년이 되면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중년에 중요하게 고려할 것은 자원봉사 활동이다. 사람이 진정으로 보람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경우는 외부적인 보상을 받거나 처벌을 피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신실한 애정과 관심에 따라 아무런 외부의 보상 없이 봉사하는 경우이다. 따라서 중년에 얻게 되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자신의 손길을 진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베풀면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도 중년을 잘 보내는 한 방편이다.

4. 융통성 있는 사고와 개방적 태도를 갖는다

젊은 시절부터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경험에 사로잡혀 판단과 사고의 경직화를 초래하지 말고, 융통성과 개방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여야 한다. 젊은 세대의 성장을 격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따뜻하게 지켜보면서 인생의 선배로서의 역할과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 이때 명심할 점은 조언자로서의 위치에 만족을 하여야 하며, 젊은이들에게 권위적인 위치에서 명령하고 통제하려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