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영 순(크리스찬치유상담연구원)  

1. 시작하는 말

개인의 어떠함을 말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자존감이 있다, 혹은 없다’라는 표현보다는 ‘자존감이 높다, 혹은 낮다’라고 말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존감(self esteem)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높다고 말할 때 그 의미는 이렇다;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나를 좋아 한다; 내 의견이나 견해에 대해 대체적으로 만족 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능력 있어서 과제를 수행할 때 보통 성공 한다; 성적인 존재로서의 나(여성됨/남성됨)에 만족한다 등. 이처럼 높은 자존감의 소유자는 통합성, 정직성, 책임성, 정열, 사랑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흐름을 말한다. 그(녀)가 살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좋고 안전하며 그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할 뿐 아니라 결정한 것에 최선을 다하며, 그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에 타인들을 존중하며, 인생의 어려운 부분들은 인간적으로 수용한다.
자존감이 낮다고 말할 때 그 의미는 다르다; 할 수만 있다면 내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다른 성공한 사람들처럼) 변화시키고 싶다; 다른 사람에게 내 의견이나 감정상태를 표현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가끔 내가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껴져 의기소침 한다; 중요한 사람과의 교분을 통해 정체성을 추구 한다; 변화를 두려워한다 등. 낮은 자존감의 소유자는 자신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감과 함께 자기 무가치함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그것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공포심과 상대에게 보상받으려는 이기심 때문에 방어적 행동을 하며, 타인들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으로 그의 자율성과 개성은 무력해 지고 남성 혹은 여성으로서 정체감도 확립하지 못한다. Carroll Saussy, God Images and Self Esteem: Empowering Women in a Patriarchal Society(Louisville, Kentucky; Westminster/John Konx Press, 1991), 173-75; 김영애,『사티어 의사소통 훈련프로그램』(서울; KFTC, 2002). 182-83; 데이비드 칼슨, 이관직 역, 『자존감』(서울: 두란노, 2002).

자존감이 높다는 말은 한 인격으로 스스로를 만족해 한다는 의미이다. 만족이란 반드시 조건이 충족 되어야만 느낄 수 있는 정서가 아니다. 만족감은 자존감과 연결되어 있다. 자존감은 일종의 인지 능력으로 인생 조건에 대해 나름대로 유익과 손해를 판단할 수 있으면서, 예기치 못한 인생의 어려움에 대해 인간적 한계를 인정할 수도 있는 태도를 말한다. 그러므로 자존감은 반드시 행복한 조건이 되어야만 느낄 수 있는 느낌이 아니다. 이러한 인생 태도에 대해 학자들은 가족규칙들이 융통성 있게 적용되는 가족구조가 결정적이라고 말한다. 가족은 자존감을 학습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원가족에서 배운 자존감을 가지고 우리는 관계(relationship) 안에 들어가며, 그 관계의 연결선상이 체계이다. 자존감을 형성하는 장소, 즉 가족은 하나의 체계(system)이며 각 구성원간의 상호의존성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상호의존성은 관계의 역학을 뜻한다. 나의 됨됨이는 자존감에 달려 있으며, 내가 관계 속에 들어갈 때는 지배력(power)이 관계성에 영향 미친다. 어떤 두 사람도 함께 있으면 그 순간부터 관계의 우위를 차지하려고 하며, 그 결과 한 사람이 지배하고 다른 사람이 복종하는 상보성 아니면 두 사람이 경쟁하는 대칭성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자존감이 높아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으면, 두 사람의 상호 욕구 충족이 일어나는 대등성 관계를 발달시킨다. 김선남, 『자기성장 집단상담 모형과 프로그램』(서울; 중앙적성출판사, 2001), 191-92.

본 논문은 체계의 한 요소인 관계(relationships)와 그것에 동기부여 하는 힘(power)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힘은 그 자체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어떻게 그것이 정의되고, 습득되고, 사용되는가 하는 것이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체계적 성격을 갖고 있는 힘이 가족체계를 감싸고 있는 우리나라 사회구조와 무관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임정빈.정헤정 공저,『성역할과 여성』(서울; 학지사, 1997); 이혜성, 『여성상담』(서울; 도서출판 정일,1998).
자존감에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한 성적 존재로서의 자기 평가는 여성 의회원의 40%를 넘는 스웨덴과 5%도 안 되는 우리나라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문화권의 큰 차이 없어도 대부분의 여성들은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여성의 책임이라는 문화적 명령을 계속 받아들인다. 여성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훈련되며, 그리하여 여성은 그들의 결혼에 책임을 느낀다. Carol Gilligan, "Remapping the Moral Domain; New Images of the Self in Relationship," Claudia Zanardi, Essential Papers on the Psychology of Women(New York; New York University, 1990), 481; Nancy Chodorow, The Reproduction of Mothering: Psychoanalysis and the Sociology of Gender(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8).
만약 관계가 잘못 되면 그것은 여성의 잘못인 것이다. 한국의 여성(어린이)은 사회구조의 참여율만큼이나 복지적 혜택을 못 받는 위치이고 보니, 남성에 비해서(혹은 어른에 비해서) 관계성에 있어 그만큼 주도성이 없다고 봐야겠다.
본 논문에서는 특정 관계(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 다수와 소수)에 흐르는 힘(power)에 의해 어떻게 체계가 자기규제(self regulation)를 하는지 그 ‘기민성’을 알고, 그 기민성에 대처하는 목회상담을 의도한다. 자존감은 어떤 관계를 만나든지 간에 영향을 줄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반드시 긍정적 결과만을 예상할 수 없는 것이 내가 누구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따라 부정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관계에서는 당신은 다수의 입장에서 사회적 통념에 더 편안함(안전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사회적 통념에 공격을 당하기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결혼 적령기를 넘긴 사람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가족이라는 제도권에 속해 있다면, 그렇지 않은 않은 소수의 사람에 대해서보다 ‘안전감’을 느낄 것이다. 안전감을 느끼는 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독신, 결손가족, 이혼한 사람 등)에 대해 불리한, 혹은 편견을 담은 사회적 통념을 만들어 낼 것이다. 다른 한편, 가정폭력과 성폭력이 세계 수위권에 들어 있는 나라에 사는 여성(혹은 아이)으로 우리는 대부분의 남성들(어른들)이 느끼지 않아도 되는 안전에 대한 위협을 느끼면서 사회적 약자에게 가하는 통념(‘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지’, 혹은 ‘옷을 야하게 입었으니까 강간을 당하지’ 등)까지 감수해야만 한다. 더군다나 폭력의 피해자 개인에게 현실의 모든 상황과 문제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우는 것이 우리나라 복지의 현실이고 보면 상담의 역할에 대해 그렇게 낙관할 수 없다.
폭력은 목회 상담가에게 상담가로서의 정체성에 보다 입장을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하는 분야이다. 권력관계(power-relationship) 속에서 피해자가 당하는 사회적 통념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에 목회 상담가로서의 정체성이 달려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힘이 관계성을 가지고 있는 개념이라면, 상담도 그 관계성을 풀어가는 것으로 그 기민함을 살려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가족치료’라는 말보다는 ‘관계치료’를 선호함을 전제한다. D. S. Becvar & R. J. Becvar, Family Therapy: A Systemic Integration, 정혜정. 이형실 역, 『가족치료: 체계론적 통합』(서울; 도서출판 하우, 2001), 13-15.
체계는 우리에게 문제를 조망하게 해 준다면, 관계는 우리로 하여금 치료의 구체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2. 체계와 관계성

1) 체계의 경계성(boundary)

가족치료 상담가들이 한 가족원의 증상을 진단할 때 누가 누구의 옆에 있고, 누구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으며, 누구를 쳐다보고, 누구에게 기대고, 누구한테 멀어지려 하는지, 누가 다른 사람하고 관계를 맺기가 힘들어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는지, 그것에 대한 다른 구성원들의 반응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들은 가족체계의 패턴과 위치를 알기 위함이다. 한 가족원의 문제 증상은 이런 증상을 유지시키는 패턴을 변화시켜 가족체계 전체의 변화를 유도할 때에 적절하기 때문이다. Robert Sherman & Norman Fredman, 김영애 편역, 『부부. 가족치료 기법』(서울; 하나의학사, 1996), 181-82.
또 하나의 진단 방법으로, “당신 가족의 적절한 아침 인사 방식은 어떠한 것인가? 가족논쟁에서 허용되는 행동과 허용되지 않은 행동은 무엇인가?” 하고 묻기도 한다. 불쾌감의 우회적 표현, 문제의 회피, 애정의 표현방식 등은 가족원들이 어떻게 기능하는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는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부부나 가족의 관계성을 측정해 보기 위해 상담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즉, 평소 자기가 배우자(부모)에게 주로 하는 행동은 무엇인가? 평가/비난, 충고/조언, 지시/명령, 침묵/무시, 복종/거짓수용, 경청/공감, 표현/압력 등의 예가 있다. 또 다른 질문으로, 평소 자기가 부모(배우자)에게 주로 갖는 느낌에 해당되는 것은 무엇인가? 불안, 공포, 열등감, 죄책감, 실망, 적개심, 반발심, 사랑, 기쁨, 이해, 존경, 희망 등의 예가 있다. 김선남, 『자기성장 집단상담 모형과 프로그램』(서울; 중앙적성출판사, 2001), 192-93.
이처럼 가족체계 내의 의사소통과 가족 구성원이 어떤 관계성을 이루고 사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체계란 무엇인가, 어떻게 작용하는가, 그리고 가족생활과의 관련성이 먼저 이해되어야 한다.
체계의 특성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하나의 체계는 전체를 형성하기 위하여 서로 관련을 맺고 있는 대상들의 조합이다. 체계의 한 요인이 변화하면 그에 따라 다른 요인들도 변화하며, 이러한 변화는 원래의 변화 요인에 다시 영향을 미친다. 하나의 체계는 대상(object), 속성(attribute), 관계(relationship) 그리고 환경(environment)의 네 가지 요소들로 구성된다. 대상은 체계의 부분이며 가족체계에서는 가족원들이 이에 해당된다. 속성은 체계와 개개의 구성원들의 자질 혹은 고유성을 말한다. 가족이나 가족원은 목표, 에너지, 건강, 인종적인 유전 등과 같은 가족체계의 속성을 가진다. 가족체계의 부분들 사이의 ‘관계’는 가족원들 사이의 관계가 된다. 가족관계는 응집과 적응의 수준에 이르게 하는 의사소통에 의하여 특징화된다. ‘환경’도 체계의 구성요인인 이유는, 체계가 주위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족체계의 관점은 가족 상호작용의 분석과 미래의 상호작용의 예측, 그리고 체계내의 의미 있는 변화의 발생을 분석하는 데 도움을 준다. Kathleen M. Galvin& Bernard J. Brommel, Family Communication, 노영주 외역, 『가족관계와 의사소통: 응집성과 변화』( 서울; 도서출판 하우, 1994), 46.

가족에는 부부로 이루어지는 하위체계,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하위체계 등의 하위 체계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하위체계는 각 경계선에 신축성이 있으면서도 분명하여서 다른 하위체계로부터 침해를 받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문제가정에서는 흔히 부부 하위체계가 견고하지 못하므로 자식세대가 경계선을 침범하여 부부하위체계에 개입하게 된다. 김성천, “가족치료의 이론과 실제”, 서울여성의 전화, 『가정폭력상담원 전문교육집』(제 30기), 95.

그러므로 건강한 가정은 위계질서가 분명한 것으로 나타난다. 김혜숙, 『가족치료의 이론과 기법』(서울; 학지사, 2003), 75-76.
그런데 누가 힘을 더 많이 행사하느냐에 따라서 가족의 위계질서도 결정된다. 힘을 어느 한 사람만 너무 과다하게 행사할 때 가족원간에 불평과 불만이 쌓이게 된다. 그리하여 가족간의 은근한 힘 겨루기는 위계질서에 혼란을 초래한다. 건강한 가정은 부모가 동등하거나 비슷한 권력을 갖고, 아이들은 부모보다 적은 권력을 갖는 가정을 말한다. 진영석, 『가족치료』(서울; 백산출판사, 2002), 24-25.
부부관계에 있어서 권력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겉으로는 평화로울지 모르나 갈등의 뿌리가 있어서 지배받는 배우자나 아이에게서 문제증상이 나타난다. 아이가 부모보다 많은 권력을 갖거나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지니고 있을 경우에는, 아동이 부모를 지배하게 되고, 부모의 통제력 결핍으로 부모학대 등의 문제 소지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부부관계에 문제가 생길시 가족 내의 각 하위체계간의 경계선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 하위체계간의 경계선의 탄력성이 가족체계의 건강성을 말해준다 하겠다.


2) 관계성의 주요소: 힘(power)

힘(power)은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능력 또는 잠재력을 말한다. 힘은 체계적 특성을 지닌 사회구조적 요소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나타나는 상호작용적 요소, 그리고 결과적 요소들을 포함하는 다차원적 현상이다. 힘(권력)은 사회체계 내에서 다른 구성원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개인의 잠재적이거나 실제적인 능력을 말한다. 그러므로 힘은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관계의 속성을 가진다. James N. Poling, The Abuse of Power: A Theological Problem(Nashville; Abingdon Press, 1991. 25-26.
가족 안에서 권력이라 함은 가족 내에서 다른 성원들 간의 행동을 통제, 유발, 변화시키는 능력 또는 작용이다. 권력은 또한 가족 내에서의 의사결정 능력으로서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잠재적 능력이다. 권력은 가족원들이 갈등적인 목표를 가지는 가족환경 내에서 그들의 목표를 성취해 낼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옥선화, 정민자, 고선주, 『결혼과 가족』(서울; 도서출판 하우, 2000), 127-28.

가족권력의 원천은 어떤 가족원이 특정 상황에서 상대를 통제할 기회를 증가시켜 주는 자원이다. 가족체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섯 가지 사회적 권력의 원천을 살펴보자.
a) 처벌(강제적 권력): 한 개인이 일정 방식으로 행동하거나 또는 행동하지 않을 경우에 어느 누군가가 자신을 처벌할 수 있다고 믿을 때 권력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b) 긍정적인 강화(보상적 권력): 한 개인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어느 누군가가 제공할 수 있다고 믿을 때 권력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c).전문성(지식): 다른 가족원이 자신보다 어떤 주제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믿을 때 권력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d) 합법성(지위): 한 개인이 특정 역할은 어떤 합법적인 책임을 수반한다고 받아들일 때 권력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e) 동일시(준거적 권력): 한 개인이 자신을 상대방과 유사하게 보고 그 지위를 수용할 때 권력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f) 설득(정보적 권력): 한 개인이 상대방의 조리 있는 주장을 받아들일 때 권력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캐슬린 갤빈, 버나드 브롬멜, 노영주 외역, 『가족관계와 의사소통: 응집성과 변화』(서울; 도서출판 하우, 1994), 191-94.

권력 원천에 대한 다른 말로, 경제적 자원(직업과 수입의 정도), 규범적 자원(연령), 감정적 자원(만족도), 개인적 자원(신체적 매력, 역할수행 능력, 성격), 인지적 능력(교육수준)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권력 용어는 상대방이 상황을 지각하는 방식에 의해서 정의된다. 가족관계 내에서 어느 누구도 위의 여섯 가지 권력원천을 모두 똑같이 가지고 있거나 또는 주어진 상황에서 그 모든 것을 사용하지는 못한다. 남편은 보상적 권력과 전문적 권력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같은 가족 내에서 자녀들은 특별히 그들의 의견이 격려 받고 또 존중된다면 합법적 권력과 설득적 권력을 사용하게 된다.
권력원천은 권력결과에 영향을 준다. 가장 큰 보상을 제공할 수 있는 가족원들이 가장 큰 권력을 가진다. 자원이란 한 사람이 목표를 달성하거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어떤 것이다. 권력원천은 보상과 관련되며 이것은 권력의 결과에 영향을 준다. 처벌을 피하는 것, 긍정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 전문가로부터 배우는 것, 명확하게 정의된 규정 속에서 지내는 것, 타인과 동일시하는 것, 설득당하는 것, 타인들이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는 것 등이 보상될 수 있다. 이러한 권력원천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지닌 욕구 만족과 목적 달성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구조주의 가족치료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기법으로 ‘하위체계와 동맹 맺기’가 있는데, 이것은 역기능적으로 분배된 힘과 거리를 조절하여 구성원간의 적절한 경계를 형성시키기 위하여 사용된다. 치료자는 일시적으로 한 하위체계(부모나 자녀들)와 동맹을 맺음으로써 자신의 힘과 권위를 그 하위체계나 하위체계 내의 구성원에게 더하여 가족체계의 구조에 변화를 유도하고, 변화가 이루어지면 다시 다른 하위체계와 동맹을 맺어 이 하위체계를 강화시킨다. 이 기법의 전제는 부모는 자녀에 대하여 적절한 권위와 지도력을 지녀야 하고, 이러한 권위와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행력 또한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하위체계로서의 부모 하위체계는 자녀들이 형성하는 하위체계보다 위에 존재하는 상하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부부간의 하위체계는 배우자로서 서로 동등한 위치를 갖는 동시에 부모 하위체계로서 적절한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모든 조직에 있어서 힘의 사용과 분배는 매우 중요하다. 하위체계 구성원들 사이의 힘의 분배 또한 평등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Robert Sherman & Norman Fredman, 같은 책, 197-98.



3. 힘의 사회화와 양상

1) 출생가족과 권력사용의 영향

부부가 사용하는 권력과정 유형은 출생가족에서의 경험에서 유래된다. 물리적 통제를 사용하는 가족에서 자라난 사람은 그와 같은 방식을 따른다. 지배적인 아버지를 가진 아들은 자기가 부인과 동등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출생가족은 아동이 최초로 권력에 대해 학습하는 곳이다. 출생가족에서 사용되었던 전략은 자녀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에 또다시 반복된다. 침묵과 같은 권력행사의 유형은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사람들은 어린 시기에 학습한 방식들에 대해서는 거의 의문을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Gayla Margolin, "Effects of Domestic Violence On Children," 57-59.

한 아기가 온 가족의 생활을 지배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어린아이들도 권력을 행사한다. 자녀들은 성장하고 변화함에 따라 가족구조 내에서 좀더 많은 권력을 요구하며 행사하게 된다. 윌리엄 글래써, 김인자 역, 『행복의 심리: 선택이론』(서울; 한국심리상담연구소, 1998), 70-72.
6세 경에는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늦추려고 투쟁하지만, 16세 경에는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투쟁한다. 학령기 자녀들은 부모들이 모르는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기 시작하면서 권력을 획득한다. 청소년기는 자녀들이 부모의 권력을 거부하고 반항하므로 가족 내에서 문제가 된다. 자녀로서의 권리의식이 강해 “호루라기(whistle)를 불어서라도” 부모의 관심과 애정을 가지려고 하는 것도 일종의 힘 행사이다. Carol Gilligan, Meeting at the Crossroads: Women's Psychology and Girls' Development(New York; Valentine Books, 1992), 52-57.
권력이 공유되는 가족 내에서는 그러한 변화를 환영하겠지만, 남편지배형, 부인지배형의 가족에서는 그것이 위협이 된다. 온정적인 가족환경에서는 자녀들이 새로운 재능을 발달시키도록 훌륭한 재능에 대해 좋은 보상을 받는다. 부모들이 자기의 요구와 소망을 서로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잘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지의 여부가 권력에 영향을 준다. 또한 이러한 요구를 배우자나 자녀들이 수용하느냐 거부하느냐가 권력결과에 영향을 준다. 부부간의 상호독립 또는 의존성의 정도도 역시 가족 권력체계에 영향을 준다.
가족 내에서 권력이 수행되는 방식은 권력과정을 살펴보거나 가족원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상호작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과정들은 가족의 토의, 논쟁, 문제해결, 의사결정, 위기 등의 시점에서 상호작용에 영향을 준다. 이 과정을 영향력, 설득, 주장성 등을 통한 통제의 시도라고 한다. 어떤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몇 번이나 이야기 하는가, 얼마 나 오랫동안 하는가, 누구에게 이야기 하는가와 질문, 이야기 방해, 침묵의 패턴도 포함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가장 오랫동안, 가장 크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권력을 가지지 않을 때도 있다. 가족권력에 영향을 주려는 시도에서는 주장성(assertiveness)과 통제(control)가 있다. 주장성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효과적인 시도 또는 영향력을 뜻한다. 가족집단에 의하여 누구의 의견이 수용되는가, 가족에서 누가 누구에게 협력하는가, 누구의 영향력이 어떠한 상황에서 중요하게 되는가 등이 판단기준이다. Carol Gilligan, In a Different Voice; Psychological Theory and Women's Development, xiv, 173.


2) 부부의 권력유형

부부의 권력구조가 극단적 부인지배형이나 남편지배형인 경우에 가정폭력이 빈번한 것으로 보고 되었다. 남편의 경제적 자원이나 위신이 부인에 비해 낮을수록 남편는 남성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물리적 폭력을 좀 더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에 대한 불만족은 상대 배우자의 강력한 권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동형은 권위를 공유하고 의사결정을 공동으로 수행하는 것이 특징이며 모든 주요 영역에서 강력한 결정권을 가진다. 자율형에서는 부부가 권위를 나누어 가진다. 즉 남편과 부인은 비교적 동등한 권위를 갖되 각기 다른 영역에서 권위를 가진다. R. Emerson Dobash-Russell Dobash, Violence Against Wives(New York; The Free Press, 1979), 93-96; Vernon R. Wiehe, Understanding Family Violence, 102.
각 배우자는 특정 문제에 대해서 완전히 책임을 진다. 영역의 분배는 역할 기대와 거의 일치한다. 결혼 만족도는 평등형(공동형과 자율형) 부부에게서 가장 높게 나타나며 남편지배형이 그 다음, 부인지배형에서는 가장 낮게 나타난다. 부인이 스스로 지배적이라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만족점수가 낮게 평가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부인은 무력하거나 무지한 남편을 보충하기 위하여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어떤 연구에서는 부인지배형에서 남편은 부인만큼 불만족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역할무능(role incapacity)이론이 뒷받침해 준다.
부부간의 권력은 한 배우자가 상대방을 사랑하고 필요로 하는 정도를 살펴보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최소관심의 법칙”(the principle of least interest)에 근거하여, 가장 애착을 가지는 배우자는 관계에서 적은 권력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관심이 적은 사람이 상대방을 더욱 쉽게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방과의 관계 이외의 관계, 즉 “대안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상대방에 대해서 권력을 가진다. 단지 대안적인 관계를 가진다고 해서 더 큰 권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대안적인 관계가 실질적 위협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어느 정도 관계에 몰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Kathleen Galvin & Bernard Brommel, Family Communication, 197-202.

현대의 많은 부부들이 권력의 평등을 강조하는 가족이념을 발달시키려고 시도한다. 또한 자녀가 있는 사람은 자녀가 권력을 공유하는 것을 장려하고자 한다. “각 개인은 인격적인 존재이다” 혹은 “우리는 모든 의견을 존중한다”는 그런 종류의 가족이념은 권력을 공유하게끔 유도한다. 가족이 모든 가족원들의 성취라는 이념을 지향할 때, 권력차원은 가족의 목표들을 반영할 것이다. 만약 어떤 가족이 성별에 관계없이 자기 충족을 위해서 자신의 잠재력을 발달시켜야 한다고 믿는다면 이 가족에서의 권력과정과 결과는 남성이 여성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족과 다를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족체계는 그 가족이념이 어떻게 작용되는지를 보여주는 권력패턴을 형성하게 된다.

3) 의사소통과 권력

인정, 무시, 거부 행동은 친밀감의 발달과 권력에 영향을 주는 전략이다. 인정은 승인 또는 동의를 의미하며 권력을 얻기 위해 상대방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자 할 때 혹은 상대방에게 보상을 주고자 할 때 사용될 수 있다. 칭찬을 잘하는 아버지는 긍정적인 지지를 필요로 하는 자녀로부터 권력을 부여받는다. 부부관계에서도 이처럼 권력을 획득하는 방법으로서 긍정적인 인정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부정적 피드백은 일관성을 뜻하며 변화를 극소화시키면서 일정기준을 유지하는 반면, 긍정적 또는 변화를 가져오는 피드백은 부부체계를 다른 수준으로 재조정한다. 부정적 피드백의 예로, 남편이 처음으로 아내를 때렸을 때, “다시 한 번 날 때리면 떠나버리고 말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면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긍정적 피드백의 예로, 처음으로 남편이 신체적 학대를 했을 때 부인이 이를 막을 수 없다면 때리는 것이 오랜 동안 갈등 패턴의 일부가 될 것이다. 송성자, 『가족과 가족치료』(서울; 법문사, 1995) 221-23.

또한 가족원들은 무시라는 처벌전략을 통하여 상대방을 열세한 권력의 위치로 몰아낼 수 있다. 부인지배형이나 부인이 지배적인 성격을 가진 부부의 상호작용은 토론이 길었고 남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요약하면 한 배우자가 지배적일수록 그 상대방 역시 지배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배적인 말투가 투쟁적인 의사소통을 발달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남편이 지배적일 때 부인의 상호작용 방식은 질의응답식이다. 남편의 성격이 지배적일 수록 부부는 상대방의 결혼 만족도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다. 부인이 지배적인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Kathleen Galvin & Bernard Brommel, Family Communication, 211-13.

응집을 이루기 위해서 각 가족은 특정인에게 과도한 권력을 부여하지 않으면서 친밀성을 허용하는 의사소통 패턴을 성취해야 한다. 자기와 상대방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행동은 어떤 다른 지배구조 유형에서보다 평등한 상호작용 구조에서 효과적으로 의사소통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가족유형은 가족원 각자가 정직하게 자신의 감정과 포부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유형에서는 좀더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발달된다. 권력은 상대방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막는 방법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부모가 자녀의 문제를 떠맡을 때 그들은 자신의 것이 아닌 권력을 갖는 것이다. 타인의 의사 결정을 해 주는 남편, 부인, 연인 등은 상대방의 권력을 잠정적으로 감소시킨다. 평등한 가족관계에서는 가족원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각자가 권력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4. 힘(power)의 남용/사회적 통념/목회상담

1) 갈등의 해결양식: 폭력

갈등은 인간관계나 결혼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정상적인 부분이다.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두 사람 사이에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으며, 그것은 때때로 어렵거나 중요한 문제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갈등 해결의 목적은 갈등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억제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있다. 갈등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문제를 해결하는 당신의 태도를 반영한다. 다음의 항목들 중에서 당신은 어떤 태도인가? 즉, 심각한 부부갈등은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심각한 부부갈등이나 폭력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해결된다; 어릴 때 학대받고 자란 아이는 커서 모두 학대자가 된다. 부부갈등은 한정된 사람에게만 나타난다. 당신이 행복하고 안하기는 상대에게 달려 있다. 부부 사이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문제의 소지를 가지고 있는 상대가 먼저 변해야 된다 등. 정민자, 『가정폭력 가해자를 위한 가족상담프로그램』(서울; 도서출판 양지, 2002), 164.
폭력은 갈등을 해결하는 의사소통의 한 방법이다. 타협이나 협상의 의사소통으로 풀 수 있는 갈등을 행위자가 자기의 힘을 남용하여(abuse) 상황을 통제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방법으로 상대를 조정(control)하는 것을 말한다. 통제(control)에는 여러 유형들이 있다. 눈 및, 제스쳐, 행동을 통해서 상대를 협박하는 것,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는 것, 상대를 무시하는 말, 상대가 좋아하지 않은 별명 사용이나 농담을 하는 것, 외부접촉이나 친구관계 등을 제한하는 것, 아내에게 자신의 소득액을 알리지 않는 것, 생활비를 아부를 해야 주는 것, 중요한 결정을 늘 자신 혼자 하는 것 등.
이처럼 폭력은 어떤 관계 안에서 한 사람이 다른 상대방을 지배하고 그에게 힘을 행사하기 위해 심리적 또는 신체적 학대를 가하고, 위협하고, 협박하고, 고립시키거나 경제적으로 억압하는 양식을 말한다. 하다못해 상대를 무시하는 ‘농담’도 그러한 관계가 가능하기 때문에 하는 힘 행사의 한 방법이다. Vernon R. Viehe, Understanding Family Violence: Treating and Preventing Partner, Child, Sibling, and Elder Abuse(London, New Delhi; GAGE Publications), 75.

통계에서는, 부부의 권력관계(power relationship)와 갈등, 남편의 아내폭력률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와 가계소득은 거의 상관관계가 없고, 교육의 수준은 경미함과 심함의 차이로 나타났다. 갈등 수준이 중간 단계를 넘어서 높은 단계에 이르면, 남성우위형과 권력분리형으로 차이가 두드러진다. 갈등이 낮았을 때와 높았을 때의 차이가 평등형의 경우, 20%밖에 되지 않아 갈등수준이 높아져도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력분리형 역시 남성우위형과 마찬가지로 갈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데 여성우위형이나 평등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나타냈는데, 이 부부는 전통적인 성역할을 기본으로 해서 성립될 가능성이 높으며, 우리나라 부부의 권력분리형은 의사결정권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규범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재엽, “한국 가정의 폭력 실태와 원인”, 서울 여성의 전화, 『여성상담전문교육자료집』 (31기), 49-50.

흥미로운 점은, ‘태도가 ‘행동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아내구타에 대해 허용적 태도(경우에 따라서는 아내의 뺨을 때릴 수 있다)는 남성이 더 높게 나왔는데(아내도 이런 허용적 태도를 갖는 사람이 적지 않다), 평소에 아내를 때릴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세 배 더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한 폭력의 경우에 있어서도, 허용적인 태도를 가진 남성이 무려 4배 이상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강도가 높게 나타났다. 김재엽, “가정폭력의 태도와 행동 간의 상관관계 연구”,『 한국가족복지학』, 통권 제 2호, 1998.
폭력에 대한 허용적 태도는 의사소통에도 잘 나타난다. 남편이 폭력을 행사했는데, 남편의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성 관계를 더 성의 있게 해주거나, 잘못했다고 빌면서 밥상을 더 풍성하게 차려주는 것은, 남편의 폭력을 정당화시켜주는 행위이고 그것을 더 강화시켜도 좋다는 암묵적인 긍정으로 결과 지어질 때가 많다. 부부체계에 환류(feedback)가 부부 행동의 패턴을 만든다고 하였다. Pamela Cooper-White, The Cry of Tamar: Violence Against Women and the Church's Response(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5), 102-103.
힘을 행사하는 의사소통에 대해 피해자가 부정적 피드백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하지 못할 때 가해자의 권력남용 의사소통 방식은 계속되고 또한 강화된다.
가정폭력과 사회폭력의 상관성은 피해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로잡는 데 매우 중요한 점이다. 전문가에 의하면, 사회적 폭력이 증가할 경우 가정폭력이 늘어나는 경향이고, 가정폭력이 증가할수록 사회적 폭력이 늘어난다고 하였다. 가정폭력 간에는 서로 연관성이 있어 남편과 부인사이의 폭력이 있는 경우 자녀에게도 폭력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가정폭력의 반복 및 전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는 의미이다. 즉 가정폭력을 경험함으로써 폭력사용법과 폭력이 어떠한 상황에서 정당화되는지를 학습하면서 성장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폭력을 생활에서 활용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즉 성적 불평등, 사적 공간으로서의 고립화, 사회적 통제의 결여, 폭력을 관용하는 사회적 규범 등이 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Gayla Margolin, "Effects of Domestic Violence on Children," Penelope Trikett & Cynthia Schellenbach ed., Violence Against Children in the Family and the Community(Washington, DC;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1998), 77-90.

또한 폭력은 이것에 대해 잘못으로 규정하지 않는 사회문화적 태도, 제도, 법에 의해 계속적으로 유지된다. 이 말은 폭력에 대한 우리의 법과 사회의 메시지는 일조하는 바가 크다는 뜻이다. 일반 범죄와 비교하여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심각한 범죄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디어, 교육, 종교기관, 제도, 법, 문화 등을 통해 사회화되고, 그 과정에서 폭력을 부추기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성 역할의 규범을 학습한다. 그런데 우리의 사회 권력구조(경찰, 법, 관례)가 일반적으로 힘이 있는 남성을 선호하고 힘이 없는 여성을 소홀히 하는 것이 사실이다(예. 성폭력). 성폭력에 대한 ‘통념’을 봐도 어떻게 그것이 여성(어린이)의 사회적 지위와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즉, 성폭력은 젊은 여성들에게 일어난다(통계를 보면 30%가 만 13세 미만의 어린이다). 여자들의 야한 옷차림과 행동이 강간을 유발한다(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사회 풍토의 문제이다. 남성이 짧은 옷을 입는 경우에는 성적 대상 혹은 성폭력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여자들은 강간당하기를 바란다(아무리 사소한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해도 분노와 수치심이 오래간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순결관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 후유증-자살, 사회부적응, 정신병 등-에 시달린다). 성폭력은 억제할 수 없는 남성의 성충동에 의해 일어난다(남성의 공격적인 성행동을 남성다운 행동이라고 묵인하거나 심지어 조장하는 사회적 풍토의 문제이다). 대부분의 강간은 낯선 사람에 의해 발생한다(2002년 한국성폭력상담소 통계를 보면,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이 76.6%이다). 강간범은 정신이상자이다(대부분 사회생활을 멀쩡히 잘하는 정상적인 사람들이다. 자신이 겪는 소외감, 열등의식, 박탈감, 분노 등을 표출할 대상으로 성적 공격에 대항을 못한다고 보는 여성과 어린이를 택한다). 여자가 끝까지 저항하면 강간은 불가능하다(여성은 극도의 공포와 수치심을 느껴 저항하기보다는 무력해지기 쉽다. 많은 경우 말로 위협하는 정도가 아니라 때리거나 흉기로 위협하기도 한다). 강간은 폭력이 아니라 조금 난폭한 성관계이다(성관계란 남녀간에 애정이나 친밀감을 나타내는 의사소통과 상호교감의 한 방법이다. 강간은 강제에 의해 다른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범죄이다. 강간은 성관계가 아니라 성폭력이다). 여성들이 조심하는 것 말고는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것으로 이는 여성의 행동을 제약하고 구속하는 소극적 임시방편이다. 진정한 해결은 성폭력을 방조하거나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야 하고 적극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등. 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자료집』(성폭력상담소, 2003), 54.
폭력에 대한 개인적 대처에도 생각해 볼 점이 있다. 폭력행위가 부정적 결과 (예를 들어, 배우자의 가출, 법원의 접근 금지 명령, 감옥 혹은 별거)없이 긍정적 보상만 준다면 폭력의 재 시도는 쉽게 이루어 질 것이다.

2) 사회적 통념

힘의 남용에 대한 사회와 개인의 대처방식이 만들어 낸 결과가 바로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다. 김광일 편저, 『가정폭력; 그 실상과 대책』(서울; 탐구당, 1987), 37-44.
이 사회적 통념은 엄청난 위력으로 피해자의 무력한(powerless) 심리를 조장하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떤 시도도 좌절시킨다. 피해 여성들의 ‘우울증’은 이 거대한 통념 앞에 너무나 무력해서 생긴 병이다. 우울증의 근저에는 다음과 같은 사고가 지배적이다. 즉, 가해자를 떠나기가 두렵다; 취업능력이 없다; 자녀들에겐 그래도 아버지가 필요하다; 여성들은 어디 가서 쉽게 도움을 얻을 수 없다; 혼자되고 외로운 것이 두렵다; 내 행동이 달라지면 남편/애인이 변할 것이다; 폭력적인 남성을 떠나는 것이 종교적 신념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막연하게 자신(피해자)에게 잘못된 것 같다; 타인(교회사람, 친정 식구, 친구 등)으로부터 비난을 받을까 두렵다 등. Dana C. Jack, "Silencing the Self: The Power of Social Imperatives in Female Depression," R. Formanek & A. Gurian, Women and Depression(New York; Springer Publishing, 1987).
또한 사회적 통념은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회적 태도를 만들어 낸다.

a) 가정폭력은 부부싸움이 아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이기 때문에 남이 간섭할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가정폭력은 일방적인 폭행으로 치명적인 신체적 손상과 정신적인 황폐화를 야기한다.
b)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는다? 가해자들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거나 이유 없이 폭력을 일삼는다. 설혹 상대방에게 결점이 있다 해도 그것이 매 맞을 이유가 될 수 없다.
c) 내 마누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것은 아내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가부장제의 산물이다. ‘북어와 마누라는 사흘에 한번씩 패야 한다,󰡑혹은 ’아내가 잘못하면 때려서라도 고쳐야 한다‘는 통념 때문에 아내폭력이 정당화되고 있다.
d) 자식이 잘못하면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우리사회는 아이들에 대한 체벌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정당화 해왔다. 교육의 매, 사랑의 매라는 이름아래 폭력이 난무했던 때가 있었다.
e) 가해자는 정신병자나 알코올 중독자이다? 알코올은 단지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들에게 자신의 폭력적 행위에 대한 정당화와 변명을 할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며, 매 맞는 아내에게 술만 아니면 남편의 폭력은 중단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게 한다.
f) 가정폭력은 가난한 집에서 많다? 많은 사람들이 가정폭력은 계층이나 지위와 관련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피해자를 위한 쉼터의 통계자료에서는 빈부고하를 막론하고 어느 사회계층에서나 발생된다고 나타났다.
g) 맞고 사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 피해자는 반복되는 폭력으로 공포와 좌절 속에서 사는 사람이다. 피해자의 행동양상이 이상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반복된 구타의 결과이지 원인은 결코 아니다.
h) 집 안 일이니까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남의 집 안 일에 끼어들면 안 된다.󰡑는 통념은 가정폭력을 방치하고 은폐시켜 왔다.

상담가가 문제시하는 부부(자녀)폭력은, 내 안에 어떤 내적 갈등이 생기면 (열등감, 스트레스 등), 그래서 어떤 불편한 심기가 만들어지면, 때릴 구실을 만들고, 걸려들면 때리고, 때리고 나면 긴장이 풀리는데, 이런 현상이 반복해서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그런 폭력을 말한다. 그들이 때리는 이유는, 때리지 않고서는 긴장이 고조되어 견디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워크샆에서 발견된 흥미로운 점은, 한번 쯤 폭력을 행사해 본 사람은 이 ‘긴장’의 의미를 잘 아는데 비해, 폭력을 행사해보지 않은 사람은 폭력과 관계하여 긴장이 생기고 이완이 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3) 상담적 접근방법

가해자의 ‘책임감’/ 피해자의 ‘죄책감’ 다루기

사람들 간의 힘 겨루기는 평생을 간다. 권력은 중독성이 있다. Philip MacGrow, Self Matters, 장석훈 역, 『자아』(서울; 청림출판, 2001), 460-62.
만약 어떤 사람이 일정 기간 동안 당신을 지배하는 권력을 누려 왔다면 그를 변화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국 그들에게 권력이 있는데 무슨 이유로 그 권력을 당신에게 넘기겠는가? 무슨 말인고 하면, 힘을 행사해 온 사람이 그것을 그만 두기가 그렇게도 어렵다는 말이다. 가해자가 스스로 상담에 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가해자가 상담에 임하는 경우는 ‘법’에 의해 명령을 받았을 경우이다. ‘비자발적 상담’이란 말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상담가는 힘의 부정적 사용(남용, 혹은 폭력)에 대한 입장이 분명하다. 즉, 폭력이 성장한 가정이나, 미디어, 사회 등에서 보고 배운 ‘학습된 행동’인 만큼 재학습을 통하여 비폭력적이고 보다 건설적인 행동으로 대치할 수 있다고 본다. 갈등은 감정적 협상이나 인지적 타협을 통해서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하다. 폭력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행위자가 ‘선택한’ 행동인 것이다. 힘의 부정적 사용이란 상대방을 통제하고 일시적인 힘을 얻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만 힘과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 강압은 외적인 통제만을 가능하게 할 뿐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부모 있는 데서만 공부하는 채한다거나, 아내가 원치 않아도 성관계를 받아들이거나 하는 것은 외부적 통제에 지나지 않지, 실제로 아내의 마음과 사랑까지 통제되어서 나오는 순응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상담가가 폭력에 가져야 할 입장은 폭력은 교정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즉, 행위자는 폭력이 아닌 다른 행동들을 선택할 수 있다. 폭력은 남자와 여자 (혹은 어른과 아이)의 불평등한 권력의 결과이다. 음주와 약물복용이 폭력의 근본원인은 아니다. 알코올이나 약물중독은 폭력행동과 분리시켜서 다루어야 한다. 부부갈등, 직장문제, 성적인 문제, 그리고 자녀양육문제가 폭력의 근본 원인은 아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스트레스의 원인이며, 스트레스가 높다고 해서 모두가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가해자 치료프로그램의 근본 목적은 폭력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부부상담과 가족치료는 가해자가 자기 폭력 행위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느끼고 스스로 폭력을 자제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아내가 남편의 폭력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때 그 효과가 있다. 가해자 치료 프로그램에서는 폭력에 대한 ‘책임성’ 부분에 대해 가해자가 다음과 같은 입장을 가질 때에야 법원에 상담이 성공적으로 종결되었음을 보고할 수 있게 된다.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해서 상담가는 누가 폭력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야 할 대상인지를 분명히 인식한다. 피해자의 자아 강도는 ‘죄책감’(내가 폭력을 도발했다)으로부터 벗어날 때에야 건강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자신이 여성을 폭행했고 조종했으며 그녀의 뜻에 거슬러 폭력을 행사했음을 인정한다.
. 자신의 행위가 아내/애인에 의해서 도발된 것이 아니며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임을 인정한다.
. 자기가 잠시 이성을 잃었던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때 아내/애인으로부터 어떤 호의적 반응을 기대하고서 하는 게 아님이 분 명하다.
. 자신이 아내/애인의 용서를 받을 권리가 없음을 이해한다.
. 아내/애인이 자신을 다시는 신뢰하지 않을지도 모르며, 영원히 자기를 두려워하게 될 수도 있음 을 깨닫는다.
. 자기의 명예가 보호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 자기가 앞으로 폭력을 휘두르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를 평화적으로 도와줄 사람이 자신에게 필요함을 안다.
. 폭력의 원인이 자기와 아내/애인과의 관계나, 그 여성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분명히 인식한다.
. 앞으로 다른 여성을 구타할 위험성(가능성)이 자기에게 있음을 안다.
. 자신에게 폭행당한 여성은 스스로가 원해서가 아니면 위의 사항들을 자신으로부터 들어주어야 할 의무가 없음을 인식한다. James Ptacek, "Why Do Men Batter Their Wives," in Issues In Intimate Violence, 186-94; Korean American Women In Need, 『자원봉사자교육자료집』, 19-20.



피해자에 대한 상담가의 치료 목표는 결국, a)손상된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고, b)나약해진 자아를 강하게 해주고, c)독립심을 키워주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상담가는 피해자에게 다음의 세 가지를 주문할 수 있다. a) 폭력을 당한 사람은 외부와 접촉하지 않고 고립되어 산다. 남편이 외부접촉을 금지하는 경우도 많고 부인 자신도 자존심이 상해 외부접촉을 꺼린다. 그러다 보면 외부 정보를 외면하고 살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통로가 막히고 그래서 더욱 더 자아가 약해진다. 친정, 친지, ‘여성의 전화’ 같은 데 말하도록 권하고 같은 피해자들과 접촉하기를 권해, 자기 혼자만 그런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님을 알림으로 용기를 갖게 한다. b) 가정폭력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다. 잘못된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체념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책이나 강연 테입을 듣도록 권장한다. 그들이 가진 잘못된 생각이란, “남편은 갈등이 많으니까 그럴 수 있다. 남자는 여자를 때릴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혹은 더 잘 대해주면 폭력은 없을 것이다. 나는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등이다. 잘못된 고정관념을 바꾸어 주는 일이 자아강도를 높이는 길이다. c) 가까운 미래에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탐색하게 도와주고 폭력을 피할 수 있는 혹은 감소시킬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모색 한다. 누구도 ‘안전하고 친밀한 관계’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강조한다.

‘문제’중심보다는 ‘해결’중심으로 Peter DeJong & Insoo Kim Berg, Interviewing For Solutions, 허남순, 노혜련 역, 『해결을 위한 면접』(서울; 학문사, 1998); 김윤주, “문제중심모델과 해결중심적 단기치료모델의 비료”, 여성부 주관, 『가정폭력. 성폭력 전문상담원 및 관계공무원 교육』(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2), 124-30.


해결중심상담에서 말하는 기본원리는 이렇다. 즉,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성공했던 경험에 일차적인 초점을 두는 것으로 내담자의 강점과 자원 그리고 능력에 초점을 두며 결함이나 장애는 가능한 다루지 않는다. 이 모델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보다는 무엇이 잘 되었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므로 과거를 깊이 연구하기 보다는 내담자로 하여금 현재와 미래의 상황에 적응하도록 돕는데 일차적인 관심을 갖는다. 그리하여 구체적으로 삼는 중심 철학은, a) 내담자가 문제 삼지 않는 것은 건드리지 말라. b)일단 무엇이 효과가 있는지를 안다면 그것을 더 많이 하라. c)그것이 효과가 없다면 다시는 그것을 하지 말고 그것과는 다른 어떤 것을 하라.
‘문제’ 중심 모델과 ‘해결’ 중심모델에는 차이점이 있다(이텔릭체는 ‘문제’ 중심이다). a) 내담자의 문제와 그 해결책은 별개이다(문제와 해결책 사이에 필수적인 관계가 있다). b) 문제보다는 내담자가 원하는 바에 초점을 둔다(문제의 진단에 관심을 둔다). c) 내담자의 문제의 사정보다는 내담자의 장점이나 예외에 대한 탐색이 내담자의 문제해결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본다. d) 문제와 관련된 개인/사회력 조사(문제가 언제 더 심각한가? 문제가 왜 발생하였는가?)를 최소화하고 문제가 해결된 예외 상황이나 문제가 없었던 때에 관하여 질문한다(언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가?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때 무엇을 하는가?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과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상황은 무엇인가?). e)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에 관한 전문가이다(치료자는 내담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이다). f) 내담자의 준거틀 (전문가의 준거틀)을 사용한다.
해결중심 상담에서는 내담자의 준거틀(frame of reference)이 매우 중요하다. 준거틀이란 개인 또는 집단이 자신들이 경험하고 지각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체계화하기 위해 활용하는 범주들의 집합이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a) 그들 주변에서 그들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선택하고, b) 선택한 것의 의미와 중요성을 결정하고, c)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관리하거나 그것과의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해결중심 상담에서는 “문제”에 대한 시각도 다르다. a) 내담자의 지각에 대한 질문과 내담자의 언어에 대한 존중, b) 제시된 ‘문제’가 내담자에게는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에 대한 파악, c.내담자는 어떠한 것들을 시도해 보았는가? d) 내담자가 가장 먼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그리하여 상담도 구체적으로 a) 상황파악 단계(폭력의 상황과 관련된 정보를 정확히 얻는 시기), b) 응급처리 단계(신체적 정신적 손상에 대한 응급치료와 응급피신), c) 관계형성단계(피해자는 가해자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 모두에 대한 불신이 강해, 상담자나 지지자까지 불신할 수 있다), d) 대책수립단계(여건 참작해 적절한 방법으로 대책 마련) -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분석적이고 역동적인 접근은 비능률적) 폭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논의 한다.
권력관계의 피해자 인만큼 상담의 내용도 사회의 성역할 기대들이 내담자에게 어떻게 불리하게 영향 미쳤는지, 어떻게 남성과 여성이 다르게 사회화 되었는지, 내담자가 삶을 통해서 경험했던 직접, 간접적인 성역할 메시지(언어적, 비언어적)를 확인하게 하여 현재 자신의 성역할에 있어서 긍정적, 부정적인 결과들을 깨닫게 한다. 내담자의 여러 관계 속에 흐르는 힘의 관계성의 인식과 내담자가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데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상담자는 남성과 여성이 일반적으로 다른 종류의 힘을 갖는다는 정보를 주며, Rita N. Brock, "And a Little Child Will Lead Us: A Christology and Child Abuse," Joanne C. Brown & Carol R. Bohn, Christianity, Patriarchy, and Abuse; A Feminist Critique(Cleveland, Ohio; The Pilgrim Press, 1989), 42-43.
내담자에게 어떤 힘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본다. 내담자는 그동안 힘을 발휘했던 양식을 알아보고 그러한 양식에 맞는 전략을 배울 필요가 있다. 박애선, “여성주의 상담(Feminist Counseling)", 서울 여성의 전화, 『여성상담전문교육집』(제 30기), 104-05.
구체적으로 ‘역할극’, ‘선택하기’, ‘무력감’, ‘거리감’, ‘역할 전환’, ‘경계선’, ‘변화에 대한 두려움’, ‘그때와 지금’ 등은 각 상담 회기마다 제목을 가지고 시도해 볼 수 있는 피해자를 위한 주제들이다.피해자의 의사소통 방식을 알아차리게 하기 위해 'I Message'도 섣불리 교육시키기 보다는 어느 정도 자아강도가 확인되었을 때 시도해 보게 한다. 권력관계에 대한 자각 없이 ‘I Message'가 쓰여질 때 오는 저항의 피해가 적지 않다. ’나‘,’상황‘,’대상‘을 일치시키기 위한 의사소통도 권력관계의 진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Ed Jacobs, Creative Counseling Techniques, 설기문. 이경임 역, 『창조적 상담기법』(서울; 양서원, 1999).


피해자를 위한 영성안내(Spiritual Direction)

피해자들의 “왜 이런 일이 나와 내 가족에게 일어나는가,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놔두셨는가, 이것이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하는 질문들은 고통의 의미를 알아보려는 몸부림이며 영적인 질문들이다. 그런데, 기독교 전통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오용은 가정폭력 피해자로 하여금 죄의식을 느끼게 하고, 스스로를 탓하고, 고통을 겪도록 상당한 기여를 한다. Joanne Brown & Rebecca Parker, "For God So Loved the World?" in Carol Adams & Marie Fortune, Violence Against Women and Children: A Christian Theological Sourcebook(New York; Continuum, 1995), 52-57.
피해자들이 고통 하는 경험에 대해 가해자들은 종교적 전통을 사용하여 자신의 폭력을 합리화한다. “성경에서 말하기를” 하며 핑계 대고, 합리화한다. “계명을 지키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매주 매일 예배에 충실 하라, 철야예배를 언제까지 하라, 아침금식을 얼마간 하라, 더 열심히 기도해라.”등의 조언이나 충고가 인생의 질문에 대해 단순하고도 완전한 해답들로서 제시될 때, 단순함에 대한 환상이 생긴다. 즉, 고통에 대해 의지적으로 저항하기보다는 자신의 고통에 대해 스스로를 책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단순한 공식 (만약 당신이 기독교인이라면, 그런데 고통 받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당신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표시이다), 즉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적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어떠한 형태의 고통도 하나님의 처벌이나, 혹은 버림받았다고 느끼게 한다. 그러나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지지해주고,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확신, 괴로운 경험들이 일으키는 질문과 기꺼이 씨름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 기독교 상담가가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Marie M. Fortune, "The Transformation of Suffering: A Biblical and Theological Perspective," in Violence In the Family, 243-50.

고통의 경험 (왜 내가 괴로움을 겪고 있는가?)을 ‘원인-결과 관계 시각’에서 응답하는 사람 (예. 남편의 학대는 내가 17세 때 탈선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벌)은 자신의 괴로움을 오래 전에 있었던, 자신이 죄의식을 느껴왔던 사건에 대한 정당한 처벌로 여겨, 결과 (남편의 학대)와 이유(십대시절의 죄)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고통의 본질 (남편의 학대)에 대한 초점을 잘못 맞추어 자기 고통에 대한 책임소재(학대하는 남편)를 제대로 찾지 못한 것이다. 너무나 많은 신앙이 돈독한 사람들이 피해자에게 격려(empowerment)한답시고 ‘잊어버리고 용서하라’라는 말을 한다. 그래야 상처로부터 치유(healing)된다는 것이다. 이름 하여 2FF 기법(Forget/Forgive/Healing)이라고 불린다. 회개(테슈바)라는 말은 ’돌아감‘ (죄지은 후에 하나님께 돌아감)이라는 뜻인데, 유대교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죄는 뉘우침과 고백으로 되는데 반해, 인간에 대한 죄는 반드시 다음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본다. 즉, 잘못에 대한 시인, 자신의 잘못으로 학대당한 사람에게 용서구하는 것, 행동의 변화이다. Marie M. Fortune, "Forgiveness: The Last Step," in Violence In The Family: A Workshop Curriculum For Clergy and Other Helpers (Cleveland, Ohio; The Pilgrim Press, 1991), 173-76.

피해자에게 있어 용서란 폭행한 남편이나 애인에 대해 그의 행동을 묵과하거나 면제해 준다는 말이 아니라 이제까지의 모든 과오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을 수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피해자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는 더 이상 폭력이 내 인생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 이제는 더 이상 내 잘못이라고 자신을 학대하지 않겠다. 나는 더 이상 삶 속에서 다른 사람을 신뢰하고 사랑할 능력이 없는 존재라고 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겠다. 이제는 더 이상 학대당한 기억이 나를 계속 지배하고 자신을 희생시키는 데로 몰아넣지 않도록 하겠다. Marie Fortune, Sexual Violence: The Unmentionable Sin: An Ethical and Pastoral Perspective (Cleveland, Ohio: The Pilgrim Press, 1983), 209.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시간(timing)이다. 학대 경험을 해소시키기 위해 피해자가 학대자를 용서하게끔 목회자나 상담가는 밀어붙인다. 용서는 피해자의 치유과정을 앞당기기 위한 수단이지만, 피해자들은 자신의 보조에 맞추어 용서하게 될 것이며, 다른 사람들의 기대로 밀어붙일 수 없다. 그들만의 알맞은 때가 존중되어야 하며, 준비가 되었을 때 용서가 가능한 것이다. 기독교 가르침에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통을 겪지 않으리라고 약속한 곳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고통을 겪을 때 임마누엘 (시편 22:55)하시는 신실한 분이라는 것이다.

5. 마치는 말

폭력과 관계된 여러 상담적 접근 방법들이 있다. 사회학습이론, 공격성, 가족체계, 기질론, 성격론, 스트레스 진단법 등. 그러나 그 이론들이 어떠하든지 간에 가해자는 폭력을 ‘선택해서’ 한다는 점이다. 기질이 공격적이라서, 혹은 가족체계에서 그렇게 학습해서, 스트레스에 대처능력이 부족해서, 충동조절이 안 되서가 아니다. A유형이 아무 관계에서나 공격적이 되는가? 스트레스를 자기보다 힘이 많은 상사한테 푸는 사람이 있는가? 힘을 남용하는 사람들은 기실 모두 관계 속에서 ‘전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의 내적 좌절을 ‘상대를 골라서’ 풀거나 행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힘이 받쳐주기 때문에 그 관계에 따라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폭력에 관한 한 여성 목회상담가로서 필자는 상대적인 중립성을 옹호할 수가 없다. 또한 필자는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박혀 있는 가부장적 가치에 물들어 있는 가족들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신념에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여성(어린이)에게 있어 현실은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상담가는 권력관계의 피해자인 여성을 만날 때 그 여성이 힘겹게 싸우고 있는 사회적 통념의 무게를 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나의 태도는 흑인 여성주의자(womanist)에게서 영향 받은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일반적 심리 발달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보인다. 각 인간이 처한 고유한 환경과 그 안에서의 관계성이란 것이 있는데 어떻게 ‘일반적’(general) 심리가 가능하겠는가 하고 묻는다. 백인과 흑인의 심리가 다르며, 흑인 남성과 흑인 여성이 또 얼마나 다른가? 그들은 사회구조가 백인 남성 중심으로 되어 있는 곳에서 흑인 여성의 인간으로서의 권리 서열은 거의 바닥이라고 본다.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의 삶의 방법론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심리 기제도 다를 수밖에 없단다. 백인 여성에게 있어 개인적 성취가 중요한 이슈일지 몰라도, 흑인 여성에게는 개인보다는 공동체가 더 중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백인 중심 사회에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Jacquelyn Grant, White Women's Christ and Black Women's Jesus: Feminist Christology and Womanist Response(Atlanta; Scholar's Press, 1989), 216; Grant, "Come to My Help, Lord, For I'm in Trouble; Womanist Jesus and Mutual Struggle for Liberation," Maryanne Stevens ed., Reconstructing the Christ Symbol; Essays in Feminist Christology(NY/Mahwah; Paulist Press, 1993), 66.

흑인여성들의 성차별주의에 대한 시각은 백인 여성(feminist)과는 현저하게 다르다. 그들에게는 현실에 근거한 관계성의 기울기(leveling) 작업이 명확하다. 누가 누구에 대해서 힘이 더 있는지는 그들에게 그렇게 애매모호 하지 않다. 미국에서는 같은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자라도 경찰이 흑인을 대하는 것과 다른 소수 민족을 대하는 것과 백인 여성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그들(경찰, 혹은 판사)은 누가 그들 세계에서 더 힘이 있는지를 안다. 그리고 도와주는 움직임도 그에 맞게 기민하다. 신고에 출동한 경찰들은 “의도적으로” 국제 결혼한 가정폭력 피해자(소수민족)의 말보다는 미국인 가해자 남편의 말만을 듣는 것도 힘이 갖는 기민성 때문이다. Shamita Das Dasgupta, "Women's Realties: Defining Violence Against Women by Immigration, Race, and Class," Raquel Kennedy Bergen, ed., Issues In Intimate Violence(London, New Dehli; SAGE Publisher), 212.

권력관계 속에서의 힘의 기민성은 피해자를 돕는 상담가의 역할에서도 드러난다. 특별히 그 상담가가 여성일 때 더욱 그렇다. 가정폭력 성폭력과 관계된 여성들은(치료자이든 지지자이든 간에) 피해자와의 동일시나 역 전이를 피할 수 없다. 피해자들의 절대 다수가 여성인 것이다. 피해자들의 심리적, 신체적 피폐성을 목격하면서 여성으로서 자신(상담가, 자원봉사자)은 안전한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음을 절감하게 된다. 피해자들의 무력감은 곧 여성상담가들의 무력감이 된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복지 시스템은 피해자의 숫자를 따라가지 못한다. 가정폭력법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찰들이 너무나 많다. 안다고 해도 그들에게 있어서 폭력은 ‘상해’여야만 범죄로 보이는 것이다. 심리적, 정신적, 성적, 약한 신체적 폭력은 폭력으로도 보이지 않는 현 실정이다. 제도가 피해자를 앞서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견디다 못해 또 다른 범죄를 범하고서야 느리게 따라 움직인다.
이런 현실이고 보니 실무자들이나 자원봉사자들은 서서히 지지자(advocate)로서의 자기 정체감에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다른 상담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소진(burn-out)하는 데 비해 가폭. 성폭 종사자들은 그 후유증으로 공감피로(compassion fatigue)에 시달린다. 소진과 공감피로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필자의 논문을 참조하시오. 고영순, “공감피로와 Focusing 치료”, 『목회와 상담』(2002 가을, 제 3호), 324-28. 상담자의 소진에 대해서는 A. M. Pines, Burnout from Tedium to Personal Growth(New York; MacMillan, 1981), 37-38.
공감피로의 근저는 무력감(powerless)이다. 피해자들을 도와주고는 싶은데, 사회구조가 너무나 지원체계가 부족한 데다 피해자의 사회적 통념까지 부족해 그 일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적지 않게 비난받기 일쑤이다(이혼을 부추긴다는 둥, 가족을 해체시킨다는 둥). 상담가들은 파트너의 학대를 도발하지 않도록 여성에게 행동을 바꾸라고 격려하지만, 그녀 행동의 변화가 어떤 것이든 그가 학대를 그만두는 결정요인이 되지 못한다. 수 천 년을 내려온 가부장제의 문화, 제도, 관습이 가진 힘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구타자의 폭력이 노출되지 않고, 두 사람 사이의 ‘관계 개선’에 초점 맞추는 가족체계 이론적 접근이나, 폭력 남편이 자기의 폭력과, 그리고 자기가 섬김을 받아야 한다는 권리의식을 가진 상태에서는 부부상담이 고려될 수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부부상담과 가족치료는 가해자가 자기 폭력 행위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느끼고 스스로 폭력을 자제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아내가 남편의 폭력에 대하여 책임감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때 그 효과가 있다. Demie Kurz, "Old Problems and New Directions in the Study of Violence Against Women," in Issues In Intimate Violence, 198-99.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까지 밝혀진 가장 ‘치료 효과가 있는’ 중재는 가해자의 ‘체포’에 있었다는 점이다. 즉 법적인 제재가 없이는 폭력이 근절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정폭력법’의 실제적 시행(enforcement)에서부터 우리의 건강한 가정문화가 만들어 진다는 점을 잊지 말자. 인격을 존중하는 고상한 문화가 서구 유럽에서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법이 뒷받침되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