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영교수  

오래된 노트를 정리하다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인간에게 기적이 일어난다. 물에 빠졌던 사람이 떠올라오고, 그는 헤엄칠 수 있게 되고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기뻐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게까지 된다. 다시는 땅은 그리워하지 않는다. 그는 땅보다는 바다의 자유를 더 사랑한다. 그는 땅의 안정을 찾지 않고 도리어 바다의 불안을 찾는다.” 누구의 글인지 알 수 없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매력적인 글이다. 지금 나는 이 글을 다시 보면서 이야기와 관련해서 생각하게 된다.

Hoffer는 인간을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했다. 이 말은 우리가 늘 이야기하면서 사는 존재라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이야기는 인간의 삶에 가까이, 그리고 폭넓게 관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과 경험을 알고자 하면 그의 이야기를 알아야만 한다.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에 의지하여 자신의 삶을 만든다. 이야기의 구조와 원리는 인간의 삶의 구조와 원리와 똑같이 닮은꼴이다. 이야기는 우리 삶의 반영인 동시에 거꾸로 우리 삶은 우리가 하는 이야기의 반영이다.

이야기는 구상(plot)을 추구한다. 이야기 안에 원래 구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상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목적은 이야기에 있어서 구상(plot)이나 패턴을 추구하는 것과 동일하다. 원래 삶의 이야기에는 의미나 패턴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삶 자체는 우리에게 어떤 모델로서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이야기가 우리에게 이런 모델을 보여준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 지를 알고 싶어하며, 그 삶을 어떻게 꾸려갈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런 모든 이해의 밑그림을 그려주며, 삶을 설계해 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이야기이다. 그런 만큼 이야기는 우리 삶의 본질이며 삶을 살아가는 토대가 된다. 이렇게 볼 때 이야기와 인간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의 세계는 바로 그 사람의 이야기의 세계이며, 그것을 떠나서는 그를 알 수도 그를 만날 수도 없다.

예술을 인생을 모방하고 인생은 예술을 모방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이야기에도 적용된다고 Bruner라는 학자는 주장하였다.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모방하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모방하면서, 즉 그 이야기에 따라 살아간다. 세익스피어는 일찍이 이런 사실을 간파하고 “당신은 자신에 대해하고 있는 이야기를 조심해야한다. 반드시 당신은 그 이야기에 의해 살게 될 것이니까”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수많은 이야기가 우리에게 와 닿는다. 이 이야기들은 우리 안에서 다시 경험되고, 또 수정되어서 우리의 것이 된다.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를 따라 살아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아가는가와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가는 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성인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영원으로 인도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지극히 짧고 덧없이 느껴지는 인간의 삶에 의미와 영속성이 있음을 알려준다. 우리의 이야기가 계속 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떤 이야기는 그 사람의 삶이 끝나도 지속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지금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자유로운 존재가 되게 해주는 기적이다. 우리는 이야기가 없다면 결코 우리라는 감옥을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야기는 나를 넘어서 다른 세계와 다른 사람을 만나게 해주며 다른 시대를 이어주는 다리와 같다. 이야기는 우리를 해방시키고 자유로운 바다를 헤엄치게 해주는 우리 삶의 기술이다. 이야기로 우리의 삶은 풍성해지기도 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느끼게도 된다. 성인들이 남겨준 이야기로 우리는 이런 기적을 함께 체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