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영교수  

인생은 캄캄한 밤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머니의 태 속이 그러했고 우리가 참 삶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때는 바로 인생의 밤으로부터다.

내가 비록 유한한 이 삶의
어둠 속에서 진통하지만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니네.
빛은 여기에 없으나
나는 천국의 삶을 지니고 있다네.

영혼의 밤을 노래한 십자가 요한의 시의 한 구절이다. 현재 갇혀있는 어둠이 끝이 없지만 그 어둠보다 큰 사랑의 빛을 발견하리라는 시인의 바램을 보여주는 한 구절이다.

빛을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밤을 필요로 한다. 사람이 성숙하는 단계마다 그 전 단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 단계에 밀착되어 있는 이기심과 우리를 가리고 있는 어둠과 투쟁한다.

이 어둠은 우리들의 욕구로부터 시작되며, 우리가 집착하는 그릇된 자아와 함께 있다. 우리는 매우 당연하지만, 근원적이지 않은 그릇된 자아의 요청을 늘 받으며 그것과 씨름한다.

참 자아와 그릇된 자아에 대한 페닝톤의 말에 따르면, 그릇된 자아는 계속 소유하는 것과, 무언가를 하는 것, 그리고 남들의 평가에 의존해서 발달해간다. 이 그릇된 자아는 우리 삶의 당연한 욕구로부터 시작되지만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키워가는 것으로 우리를 곤란에 빠뜨린다.

그러나 일단 그 욕구가 충족된다고 끝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며 어두움이다. 우리는 늘 보다 높은 것을 원하며 더 낳은 삶과 사랑을 찾아 나선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생존으로부터 시작해서 쾌락을 추구하고, 그 다음에는 집단에의 소속을, 또 다음에는 자아의 독립을 추구해간다. 더 큰 사랑을 향한 갈망을 멈추지 않는다. 이런 추구 자체는 원래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해가는 방향에서 쉽게 그릇된 방향을 택하며, 이런 것들은 우리 삶에 고난과 혼란을 불러온다. 우리 자신에 대한 이기적이며 낮은 수준의 사랑은 보다 큰 사랑에 의해서만 벗어날 수 있다.

아동이 성장하는 과정은 바로 낮은 자기 집착적인 사랑을 벗어나는 과정이다. 참된 자아에 눈뜨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자신에 대해 길러온 사랑을 조금씩 벗어나야한다. 그것이 우리의 고난이고 투쟁이며 성장을 위한 발돋움이다.

사랑이 우리 눈을 멀게할수록
다른 삶의 빛을 더 불러오리니

보다 큰 사랑에 눈뜨게 될 때까지 우리 눈은 어둠으로 가려져 있다. 보다 큰 사랑이 우리를 덮을 때, 이제까지 해 왔던 투쟁을 그치게 된다. 상담을 받으면서도 대부분은 변화에 저항한다.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존해온 안락함이 때론 우리의 성장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상담은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지만, 보다 큰 의미와 사랑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변화하기 어렵다. 보다 큰 의미와 사랑만이 우리가 아껴온 사랑을 대신하고 바른 방향을 가르쳐준다.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지금도 이 순간을 살아간다. 아픔을 느끼는 것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부분은 비록 감추어져 있을지 모르지만 보다 큰 사랑을 향한 갈망이다.

그것은 우리 삶이 낡은 사랑을 떠나서 한 단계 한 단계 성숙하도록 부름 받았기 때문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