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교수

오늘은 영하 10도를 육박하는 북극의 한파의 영향으로 뉴저지의 아파트에서 유유자적하였다. 호주 오픈 테니스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이라 모로코 선수인 유네스 엘 아이나위(Younes El Aynaoui)와 미국의 신예 앤디 로딕(Andy Roddick)의 남자 단식 16강전을 관전할 기회를 가졌다. 올 스무 살의 앳된 앤디와 서른 한 살의 두 아이의 아버지인 유네스와의 싸움이었다. 다섯 번째 세트의 접전은 가히 점입가경이었다. 다섯 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언제 누가 이길까 하는 추측이 난무하여 지루한 것이 더 재미있는 접전이었다. 집중력, 체력, 심리적 안정성, 기량 모든 면에서 볼만한 경기가 아닐 수 없었다. 호주 멜버른의 시간으로 저녁 7시 반에 시작한 경기는 만 명이 넘는 관중가운데 어떤 사람도 결과를 예측하고 떠나는 사람도 없이 경기는 정확히 4시간 59분이 걸려서 젊은 앤디가 이겼다. 총 게임 수는 여든 세 게임이며 마지막 세트는 21대 19로 결국 앤디의 승리였다. 참고로 스코어를 소개하면, 앤디 vs. 유네스 4-6, 7-6(5), 4-6, 6-4, 21-19였다.

얼마나 놀라운 접전이었는지 경기가 끝나자마자, 프로 선수에서 은퇴하고 경기 해설자로 활약하는 존 메켄로가 코트로 나아가서 두 사람과 인터뷰를 하였다. 앤디에게 경기의 소감을 묻자, "유네스는 대단한 선수입니다. 이 승리로 진짜 겸손해졌습니다(Younes is a class act and I'm truly humbled by this victory)."고 말하였고 유네스에게 묻자, "앤디는 강한 서브를 넣었습니다. 끝날 때까지 약해지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하였다. 모로코에서는 어떤 배경에서 테니스 선수가 되었는지 물음에 유네스는 "부모님들이 지원해 주셔서 우리나라에서는 테니스를 치면서 먹고살게 된 유일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답하였다.

상담칼럼에 갑자기 무슨 테니스 타령인가 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삶의 모든 국면들이 상담의 기조를 이루는 성격과 심리, 기분과 감정, 선택을 위한 집중력과 결단력, 이러한 모든 국면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가늠하는 판단과 분별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이해할 만 한 것이다. 모든 경기들이 기술과 체력과 함께 심리적인 면을 어떻게 관리하고 조절하는가에 따라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때에 심리적인 결함을 가지고서야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 자기관리를 위한 겸손이 인격성장에 중요한 것처럼 경기를 하는 선수들의 자기관리를 위한 상담 또는 심리치료는 불가피하다.

경기 내내 해설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앤디에게는 정신적인(mental) 국면이, 유네스에게는 체력(physical)이 극복해야 하는 도전의 국면이었다. 특히 앤디는 미국에서도 유망주로 손꼽히는 선수였지만 번번이 심리의 안정을 잃고 집중력을 놓쳐버린 채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는 단점을 가진 선수였다. 이번 경기에서는 특히 중요한 순간들, break point(자신이 서브하고 상대방에게 한 타만 지면 그 게임을 잃게 되는)의 순간에 자신이 때린 스트로크를 아웃이라고 선언하는 주심의 오심과도 싸워야 했으며, 세 번째 세트에서는 결국 오심으로 한 세트를 잃기도 하였다. 어느 틈에 마음을 가다듬고 경기에 다시 임하며 끝까지 충실한 내용의 경기를 벌였다. 이제 그도 노련해 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그랜드 슬램 테니스 경기에서 준결승 진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자신을 이기고 상대방을 압도할 만한 집중력과 심리적인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은 체력과 기량을 갖춘 후에 모든 면에서 가져야 하는 중요한 국면이 아닐 수 없다.

해설자들마저도 이러한 경기를 볼 수 있었다는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기록할만한 경기였으며 기념이 될 만한 사건이었다고 덧붙였다. 모두들 테니스를 사랑하는 사람들로서 흐뭇함과 영예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다른 면 한 가지는 그들의 경기의 내용이다. 한 타 한 타 최선을 다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간혹 곡예사나 보여줄 만한 기술적인 스트로크들은 액션 영화나 드라마 못지 않은 볼 만한 장면들이었다.

오늘 이러한 사건을 경험하는 것을 나 혼자만 하지 않고 주위에 증인들이 있었다는 것도 즐겁고 흐뭇한 일이었다. 무슨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고 경기에 이기려는 욕심보다도 경기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노력하는 자세를 가진 이 두 선수의 경기와 마지막에 서로를 존중하고 칭찬하는 모습이야말로 남을 돌아볼 줄 모른 채 경쟁일변도로 이기고 자기만 살아남기 위해서 다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상큼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