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교수  

세상을 살면서 남을 돌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남의 깊은 속사정을 살펴야 하는 상담은 기법이나 기술을 습득했다고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상담을 정의해 본다면, "자기의 삶을 반추하여 자기를 발견하고 개발하여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기 아닌 다른 삶의 영역에 깊은 부분까지 들어가서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공감할 수 있는가가 상담과 치료의 관건이다. 그런 차원에서 심리 역동적 측면을 발굴하려는 접근법이 상담가의 자기 개발을 위하여 유용하다. 특히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는 것은 비록 과거 지향적이며 생물학적 환원주의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상담가가 되기 위한 적절한 훈련의 방법이다.

상담대학원에서 필자는 상담가의 자기정체성 개발을 위한 세미나의 도입부에 반드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주고받도록 한다.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기억, 가장 어릴 때의 기억을 회상하는 것이다. 유아기에 경험한 일들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기억해 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기억해 내고 나면 자신의 노력에 만족을 얻게 된다. 이야기하면서 감추어졌던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직업의식과 도덕률에 사로잡혀서 살아가고 있으며 겉으로 드러난 자기 모습이 진짜인 줄 알고 있으니 그렇다.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지 못하고 발견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껍데기만의 자기 모습이 전부인양 붙들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떤 중년의 부인은 어린 시절 기억들을 더듬다가 자기가 어머니를 미워하고 질책하고 그러면서도 닮아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뒤늦게 사십대 중반에 어머니를 어린 아이처럼 그리워하며 눈시울을 적신다. 중년 후반의 남성은 네 살 때 변소에서 볼일을 보고나서는 반드시 “엄마, 똥!”하고 노래하듯 부르짖으며 엄마만이 유일한 해결사(?)였던 기억을 더듬어 내다. 엄마가 제공하는 손길에만 만족을 얻는 항문기적 자기 집착을 발견하고 ‘어머니’가 자신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는지 새삼스럽게 발견하고 놀라기도 한다. 어떤 목회자는 자신이 목양하는 곳에서 만난 오십대 후반의 교인과 만날 때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부담감을 가지게 되어 고민하였다. 그런 가운데 그 마음의 부담이 이미 고인이 되신 아버지와 자신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어 그것이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수수께끼가 풀려나가는 것을 경험하였다. 이를 계기로 자기 아들들에게 더욱 친밀한 아버지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게 되었다고 술회한다. 감정적으로 멀리 있는 아버지를 경험한 아들은 자연히 자신의 아들들에게 정서적으로 밀착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의식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경험하지 못한 이유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는 일은 자기가 경험한 인생을 해석하는 작업이다. 우리들이 기억하는 인생 초기의 경험들은 언어로 서술하고 기록할 수 있는 시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식 심층에 깔려 저장되어 있다. 이것이 표면에 부상하여 떠오를 수 있는 것은 알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의미를 가지고 해석되어야 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런 기억들을 말로 표현하다보면 자기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이 기억의 파편과 이야기 조각들이 자기를 이루고 있는 신화며 신념이자 가치관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들이여!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자기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어린 자신과 만나보자. 자기만의 이야기를 구성해보자. 기억은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다. 만나게 된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불쌍히 여기며(슬픈 연민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 어떠한가! 상처의 고통으로 얼룩진 과거를 두려워 말고 가서 어루만지고 내가 지금 가진 힘으로 치료해보자.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어린 시절 추억을 더듬는 작업을 통하여 새로운 삶의 힘을 얻게 되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