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영교수  

사람은 만남을 통해서 살아가고 그 만남의 성격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 같다. 행복한 만남은 삶을 살아가면서 얻게되는 가장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태어나서 얼마나 많은 만남을 거쳐서 오늘의 내가 되는 것일까? 서로 옷깃을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던 옛 말에는 어쩐지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신중함이 담겨져 있는 듯하다.
여러 다양한 만남 중에서도 상담 속의 만남은 참으로 특별한 만남이다. 상담관계에서 의 만남은 이중적인 면이 있다. 상담자는 상담의 기술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을 가지고 내담자를 대하게된다. 그러나 언제나 내 경험으로는 인간적인 면이 상담의 기술보다 앞선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상담자로서 단 한 번도 불행했던 만남은 없었다. 내담자에게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편에서는 이 만남이 내게 주어진 참으로 큰 특권이고,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과분한 만남들이었다. 나에게 와서 나를 믿고 그들의 삶의 여러 비밀과 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들려준 내담자들이 나는 얼마나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특별히 아동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내게 감동과 여운을 남겨주고, 생명과 이 삶에 대해 보다 겸손해지게 되는 그런 종류의 만남들이다.
얼마 전 학대받은 아동들의 집단상담을 하게 된 일이 있다. 처음에 아이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그들이 마음 문을 열기가 참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마음의 빗장이 굳게 닫혀져 있다. 그들은 쉽게 자신을 열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학대의 결과에서 오는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아동들은 누구도 신뢰할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고, 또한 사람들도 자신을 해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단을 진행한지 얼마 가지 않아 아이들은 조금씩 마술처럼 마음을 열고 내가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들에 대해 말을 하기 시작한다.
''내가 왜 태어났을까, 나는 왜 이런 엄마 아빠에게서 태어났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죽어버리고 싶어요. 어떤 때는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라든가 ''칼로 내 손가락을 이렇게 잘라봤어요.''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몇 끼는 배가 고파도 참을 수 있어요. 그러다 역에 가서 시식코너에서 얻어먹고, 정말 또 배가 고파서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갔어요.'' 가출과 자살에 대 한 생각들, 부모에 대한 회의와 원망, 따돌림당했을 때의 아픔에 대하여 거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해주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하찮은 존재라 는 것을 절감하면서 나는 몹시 당혹감을 느꼈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다는 말인가, 이들의 아픔을 어떻게 치유하고 희망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어느 한 아이가 ''우리 반 친구가 나더러 같은 반이 돼서 되게 재수 없다고 했을 때 정말 속상했어요''라고 한 말이 내 마음 속에 가시처럼 박혀 들어 왔다. 나는 마지막 날 끝날 때 서로에게 편지 쓰는 시간에 ''내가 만일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너와 꼭 같은 반이 되어서 네 친구가 되고 싶구나. 네가 얼마나 재미있고 소중한 친구인지 알기 때문이지.''라고 써주었다. 그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마지막 헤어지는 날 차에서 내리지 않으려고 했다. 차가 골목을 돌아 갈 때까지 쫓아오면서 바라보던 그 아이의 눈망울. 세상이 조금만 더 따뜻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담자가 이런 아이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여기에서 상담에서의 만남이 성격을 생각해 보게 된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는 것. 불신과 회의가 가득 차 있는 세상에서 끝까지 신뢰를 보여주는 것. 그리고 중단하지 않고 그와 함께 빛의 통로를 찾아내는 것. 메마른 땅을 단비로 적시면 갈라지고 터져 버린 틈새가 새로운 흙들로 메워 지듯이 아프고 갈라진 마음의 틈새로 생수가 흘러들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이 만남이 진정으로 축복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상담은 어쩌면 매우 인위적인 만남에서 인간적인 만남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상담자의 기술과 이론은 물론 내담자를 어떻게 인도하면 좋을지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그러나 상담의 순간 순간에는 이런 이론들과 함께 내담자를 알게되고 그와 마음을 열어 허심탄회하게 만나는 진솔하고 인간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상담자에게나 내담자에게 이런 만남을 갖는 것은 서로를 위한 축복이며 매우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