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영 교수  

누구에게나 어려운 날이 오게 된다. 마치 석양에 저무는 해와 같이 희망이 사라지고 캄캄한 밤을 예고하는 그런 어두운 날이 있다. 또한 비록 우리 안에 있는 어두움이 아닐찌라도, 이 세상에 편만해 있는 고통과 어둠을 날마다 보고 들으면서 살아가노라면, 저절로 그 어둠 속에 빠져드는 그런 때가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된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을 볼 때에도 그런 어둠에 잠겨든다. 우리는 누구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해서, 혹은 내 주변의 사람들이나, 나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로 인해서 어두운 날을 맞이하게 된다. 요즈음은 특히 전쟁과 질병의 소식들, 우리가 사는 오염되고 무질서한 환경, 혹은 예전처럼 봄이 서서히 오지 않는 혼탁한 기후까지 이런 저런 일들이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봄이 와서 세상은 환한 빛으로 물들어가지만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이런 봄을 보지 못 하게 하는, 참된 삶을 외면하게 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무엇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삶에서 어떤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일까? 또 왜 참되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스스로 반문해 보면서 우리가 참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세상과 사물을, 가족과 사람들을 오직 하나의 관점에서 내 자신의 눈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 러시아의 어느 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나와 거리를 두고 그 삶을 바라볼 수 있을 때 한층 성숙해진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을 마치 먼 우주 공간에서 내려다보듯이 조금 떨어진 관점과 시각에서 바라보게 될 때, 자신 안에는 지금까지 자기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과 모든 일, 모든 사람들을 바라본다면 분명히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보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문제에 갇혀 있을 때에는 이런 외부적인 관점에서 사람이나 사물을 보기가 무척 어렵다. 자신에게 가려져 있는 많은 것들은, 일단 그 상황으로부터 빠져나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때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고, 이런 새 관점에서 볼 때 그 문제는 이미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주위에는 여러 가지 다른 가치관과 관점을 지닌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들에게 힘을 주는 종교적인 가치와 삶, 또는 이웃과의 삶,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삶과 다양한 가치들이 존재한다. 이 각각의 다른 가치들과 삶이 우리에게 색다른 관점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새로운 도전을 제시해 올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이 모든 세계와 가치들 가운데 몇몇 안 되는 소수만을 선택하여 그 안에 안주하고 있다. 또 그 안에서 문제를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잘 아는 세계 이외에도 더 많고 다양한 세계가 존재하며, 내가 알고 있는 어느 한 면을 벗어나면 다른 많은 면들이 발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상담에서 한 개인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조차도 숨겨져 있는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것이다. 한 말썽꾸러기 아이가 있다. 사람들은 그가 보여주는 면만을 알고, 오직 그의 행동에 의해서만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한다. 그러나 그 아이의 영혼은 그보다 훨씬 더 깊고, 맑고, 순수한 것을 감추고 있다. 보통 우리의 눈이 어둡고 가려져 있어서 그 아이의 영혼을 놓치고 그 아이의 행동을 보고 ''저 아이는 문제아야''라고 단정짓고 만다. 그러나 한 걸음만 떨어져 나와 새로운 안목에서 그 아이의 영혼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그 아이에 대해 새로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우리의 눈이 밝아져서 이 세계와 사물들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고 이 시간이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축복으로 비춰진다면 분명히 우리는 자신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문제들 안에 갇혀 있는 자신을 어디선가 바라볼 수 있다면, 문제와 자신을 다르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사랑의 신비로운 운행이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사물을, 역사와 민족들의 운명을 인도해가고 있다고 믿는 믿음 체계가 있다.
이런 체계들은 우리 자신의 삶을 색다른 안목에서 볼 수 있는 눈을 제공한다. 나 외에도 나를 중심으로 혹은 나와 상관없이 돌아가는 많은 체계들을 생각해 보면 오늘 나의 삶이 나 하나만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삶이 다른 삶과 맞닿아 있고, 또 다른 삶과 신비한 사랑과 미움의 고리를 맺고 있다. 한 걸음 물러 나와 이런 관찰을 하면 새삼스러운 일들이 눈에 띄게 된다. 이렇게 새롭게 눈을 뜨면 하나의 어두움은 새로운 결실을 낳는 계기가 되고, 우리는 또다시 참된 삶을 위한 새로운 투쟁을 준비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안목을 통해 어려운 날이 온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거기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면, 반드시 그 날이 가고 새로운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