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영 교수  

몇 년 전, 이야기치료 학술대회에 참여했다가 이야기치료로 명성을 떨치는 마이클 화이트가 어느 한 실어증환자를 치료한 경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이 사례를 녹화하여 테이프를 통해 소개해 주었다. 그 이후로 시간이 많이 지나서 자세한 사례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받았던 감동과 치료의 몇몇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게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 여인은 30대 중반쯤 여성으로, 태어나서 오랜 기간 동안 부모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고 말을 잃어버리게 된 여인이었다. 그녀의 삶은 처음부터 가족의 사랑이나 친구들간의 교류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황폐한 삶이었다. 아무와도 말을 하지 않았던 그녀인데도, 그녀는 성인으로 자라났고 그리고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그 남편과 의사소통을 시작했고 그에게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의 권유로 치료자를 만나게 되었고 치료를 시작했지만, 도무지 남편 외의 사람에게는 말을 해본 적이 없는 그녀는 남편을 통해서 자신의 말을 전달하는 식으로 치료에 참여하고 있었다. 치료자가 대화 중에 한 질문은 단순했다.
"무엇이 당신을 지금까지 지탱해 주었습니까? 가장 견디기 어려운 때를 어떻게 견뎌왔나요?" 치료자의 전제는 그녀를 지금까지 살아 있게 해준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혹독한 학대와 미움,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비록 말을 하지 못해서 외톨이였고 고독했지만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 남아 있었던 것은 그녀에게 무엇인가 바램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남편의 귀에 속삭인 말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녀가 심한 학대를 받았을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숲 속으로 달려가서 나무에 손을 대고 오랫동안 서 있었다. 그럴 때면, 서서히 조금씩 나무의 생명력이 그녀에게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이 이 나무와 너무나 비슷하다 고 느끼게 되었다. 비록 말을 하지는 않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 나무가 자신과 동일한 생명체로 느껴졌던 것이다. 자신도 나무처럼 살아가리라고 그녀는 결심을 하곤 했다. 언젠가는 꽃을 피워보리라, 열매를 맺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온 것이다.
마이클 화이트는 이 사례를 "치료자는 자기에게 온 단 한사람도 포기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는 말로 정리했다.
이 말은 내가 상담자로서 살아가는데 가장 나를 지탱해주는 말이 되고 있다. 우리는 어느 한 사람도 포기할 수 없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의 실체를 가르쳐 주셨다. 사람들 안에는 말할 수 없이 귀중한 생명이 들어있기 때문에 우리는 단 한사람이라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 생명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생명은 곧 희망이며 이 희망의 불꽃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사람에게는 기회가 있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굳게 믿고 오늘도 하나님의 뜻으로 내게 오게된 한 사람 한 사람을 귀중히 맞이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