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영교수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며 누구나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타고나면서부터 행복의 조건들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이 보인다. 흔히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조건들을 남들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온 스승들은 행복의 조건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다. 하이데거라는 철학자는 자기가 가야할 참다운 길을 가는 것을 본래적 실존이라고 불렀다. 자기가 갈 길을 알지 못하고 남이 대신 자기 안에 들어와 살고 있는 것은 비본래적 실존이다. 남이 대신 사는 것은 남들의 기준에 따라 삶을 사는 것을 말할 수도 있다. 참다운 삶을, 즉 본래적 실존은 행복을 향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지나온 우리의 인생 길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를 생각해보면 우리 자신에게 어떤 조건이 따르지 않는 때였다. 방금 태어난 아기는 그 주변을 행복하게 하고, 또 자신도 행복하다. 부모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그 아기를 바라보고 사랑해준다. 아기의 존재 자체만으로 행복이 넘치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그 아이가 자라나기 시작하면서 조건들이 따라붙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많은 조건들이 아이를 따라다니게 된다. 아이의 천국은 바로 조건없이 사랑받았던 때이다. 상담가 로저스는 부모로부터 받고자하는 인정과 거부로 인해 아동의 자아는 상처를 입게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상담에서 무조건적 수용을 통해 부모로부터 받는 상처를 회복시키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행복은 조건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조건을 파괴하는 것이다. 한창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을 둘러싼 조건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랑을 하면 상대방에 대해 눈이 먼다는 것이 아마 그런 말일 것이다. 어릴 때에는 부모에게서, 조금 자란 후에는 주변 또래들에게서 행복의 조건들을 배우고 이에 맞추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쓴다. 거부의 상처는 이런 우리의 수고가 보상받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우리가 미처 채울 수 없는 조건들이 들어있다. 그 조건들은 우리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멀고 먼 것들이다.

참된 행복은 조건을 파괴하고 나오는데 있다. 무조건이라는 말이 바로 그런 의미일 것이다. 조건의 파괴--조건 없는 사랑, 조건 없는 보상, 아무런 조건이 없는 것 사람들은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다. 나를 둘러싼 조건들이 얼마나 나를 얽어매고 있는지를 알기 시작한다면 새로운 눈으로 삶과 행복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진정으로 좋은 것들은 모두 조건을 넘어서는 것이다. 사랑, 우정, 동료애, 나눔. 긍휼, 자비... 행복은 조건을 버리고 참다운 삶에로 과감하게 나아갈 때야 올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