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영교수  

오늘 나에게 이 질문을 던진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이렇게 질문한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내가 바로 그와 같은 질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삶에 대해 얼마나 깊은 비탄과 고뇌를 품고 당신이 이 질문을 하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이 질문이 우리가 사는 한계 상황과 거기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시험들에 대해 던져진 것이라 봅니다. 이 질문에 직접 답을 할 수는 없지만, 내 나름대로 도달한 어떤 생각을 전하려합니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당신을 떠올리면서...

먼저 이 질문에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힌 당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지요. 산을 넘을 수 없으면 돌아서 가라고. 여기에서 우리는 돌아갈 길이 어디인지 찾아봐야겠습니다. 고뇌와 슬픔이 파도와 같이 밀려올 때, 그 속에 파묻혀져 버리지 않도록 우리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를. 이 때 우리는 이렇게 되물을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 끝 모를 어둠은 어디까지 나를 끌고 갈 셈인가?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기 위해 어떤 빛을 따라가야 하는가?” 당신은 지금 당신의 주변은 어둡고, 당신은 그 속에 있음을 확인합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부딪혀 넘어진 이것으로 인해, 당신은 당신의 세계가 갑자기 흔들리는 것을 느낍니다. 이제까지 당신을 든든히 받쳐 주었던 그 세계가 말이지요.

그러나 당신의 부딪힘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부딪혀 넘어지기까지는 당신이 아직 생각할 수 없었던 그런 새로운 세계를.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세계가 희미한 빛을 띄고 당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냥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는 것, 어둠이 계속 나를 물고늘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슬픔이 당신을 속여 어둠 속으로 계속 당신을 끌고 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그 어둠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냥 넘어진 채로 그대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성서에서 우리는 이와 유사한 비유를 볼 수 있습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잠 4장 18절). 여기에서 의인과 악인의 출발점은 같습니다. 만약 의인과 악인이 다른 것이 있다면 의인은 어둠을 박차고 빛을 찾아 나오는 것, 그래서 점점 더 밝은 곳에 이르는 것이고, 악인은 넘어진 채로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그냥 그럭저럭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더 절망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어둠을 깨닫고 빛을 찾으려 노력하다보면, 어느새 빛의 축복을 담뿍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빛을 향한다면 그 빛으로 이미 한발 다가선 것입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신의 닫혀진 세계를 고집한다면, 우리는 더 절망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을 인도해줄 빛이 있음을 믿고, 또 그 빛을 찾아 나올 용기를 가지는 것, 여기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샛별은 더 밝게 빛납니다. 당신의 샛별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 빛의 존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 빛을 따라 당신이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길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