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영교수  

내가 만일 드라마를 쓴다면 내가 만난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누구의 이야기도 평범하거나 하찮은 것은 없다. 사람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이야기는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슬프고 아름답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는 것은 내가 정신병원 사회복지사였을 때 만났던 아이들이다. 어느 시인이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린이는 무력하고 약하나 그들의 약함을 통해 인간의 영혼이 얼마나 부드럽고 온순하며 아름다운 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답고 선하게 만드셨는지를.

그 중에 특히 생각나는 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자라서 어떤 세상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러나 그때에는 스스로 말하지 못했다. 다만 행동으로 몸으로 삶에 대해 저항하고 슬픔으로 그의 갈망을 표현했을 뿐이다. 그는 끔찍한 살인 사건을 자신의 눈앞에서 목격했던 아이였다. 그는 외삼촌이 자기 앞에서 할아버지와 어머니를 총으로 쏘아 죽였던 사건의 현장에 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그 아이를 받아줄 수 있었던 곳은 오직 아동 정신병원이었는데 그곳에서도 그는 힘든 삶을 살았다. 그는 아무에게도 그 사건에 대해 입을 열어본 적이 없다. 아무도 그에게 묻거나 하지 않았다. 다만 주변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것으로써 자신을 표현했던 그를 우리는 환자라고 불렀다. 그 어린 환자는 자기 주변 사람들을 참아낼 수 없었다. 야생 동물 같던 그에게 아무도 가까이가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표현할 다른 방법을 몰랐고 그 눈망울에는 늘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가 놀이터에 나가면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하루종일 갇혀있는 정신병동의 아이들에게 놀이터는 최상의 장소였다. 그것을 얻기 위해 아이들은 바른 행동을 하고 점수를 따야만 한다. 점수를 따지 못한 아이들은 이 특권을 빼앗겼다. 이것은 병원 치료 프로그램 중에서 질서를 가르치는 행동치료의 한 부분이다. 대부분 아이들은 요구된 행동기준에 맞추어 놀이터나 야외로 나가는 이 상을 얻고 싶어한다. 그러나 개별상담 시간은 이런 규칙의 예외를 허락하였다. 그 시간 동안에는 개별상담자들이 안전하게 느끼는 한 아동과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따라서 어느 면에서 아이들에게는 은혜의 시간이다. 그 아이는 이 은혜의 시간을 놀이터에서 보내기를 원했다. 평소에 늘상 행동 자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놀이터에서 나가면 마치 새장을 빠져나온 새처럼 그는 자유로와 진다. 걱정도 없고 불안도 없고 허망한 기대도 없다. 그저 기어다니고 마음대로 뛰어다니고, 맑은 웃음소리로 놀이터를 가득 채운다. 그 아이는 조금 전과는 전혀 딴 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몹시 놀란다. 이 아이가 저 안에서 그렇게 위협적이고 경계 대상이었던 아이인가? 그렇게 온 세상을 저주할 것 같은 눈초리로 반항만 하던 아이였던가. 지금 이곳과 저곳의 차이는 무엇인가? 인간의 영혼 안에는 얼마나 많은 모습이 감추어져 있단 말인가. 인간이란 얼마나 복잡하고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인가? 그렇게 가망 없어 보이던 그 어린 환자가 얼마나 삶에 대해 온몸으로 기쁨의 빛을 뿜어내고 있는가? 그의 발랄함과 생기가 속속들이 내게 전달될수록 나는 그의 갈망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영혼 깊숙이 선하고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감추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치유에 대해서 늘 생각하는데, 그때 그런 순간은 치유의 순간으로 기억된다. 그에게보다 나에게 더 큰 치유의 순간으로. 우리를 자신에게로 돌이켜주는 순간, 그 아이가 나에게 허용해 준 순간, 그 자신 그대로의 모습을 비추어 준 순간들.

인간이 슬픔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선함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선하게 만들어진 까닭이다. 거부하고 또 거부되는 그 무엇으로 인해 고통은 찾아온다. 우리의 약함은 아픔을 부르지만 우리 자신의 감추어진 비밀을 드러내준다. 만일 우리의 영혼이 강철로 만들어져 있다면 고통도 아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연약하고 또 선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언제나 고통으로 넘쳐나고 그 고통은 언제나 갈망을 낳는다.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은 모든 것에 우리는 갈망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이리도 연약하단 말인가. 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고통을 느끼도록 만드셨을까. 우리가 채워야 할 그 갈망의 깊이는 얼마나 깊은 것일까. 하나님 자신의 닮은꼴인 우리는 사랑이 아니고서는, 진정한 사랑이 아닌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존재들이 아닌가.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의 운명-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함과 아름다움으로 빚어진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약할 때 가장 우리 가까이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 아닌 것으로 인해 고통 당하고 진실된 사랑으로 채워지기 위해서 끝없이 갈망하고 있는 존재들인가. 이런 것들을 만나게 해주는 이야기들보다 더 생생한 드라마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