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호(교수, 장신대 기독교교육학)

성탄절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절기 가운데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성탄절은 아름다운 꿈과 소망을 가져다 주었고 많은 어린이들이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도록 한 가장 귀한 은총의 절기였다 성탄 절기를 맞아 한 가난한 부부가 서로를 위해서 자신이 가장 아꼈던 머리카락과 시계를 팔아서 상대방의 머리빗과 시계줄을 샀다는 오 헨리의 단편 소설 만큼이나 우리의 가슴깊이 새겨지는 절기이다.
하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성탄절이란 그저 화려하고 흥분되고 즐거운 기간과 같이 이해되어짐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백화점이나 유흥가에서 더욱 환영 받아지는 것 같고 세모의 한 부분처럼 여겨지는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차츰 성탄의 절기에 대한 교회의 노력이 시들어진다는 사실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많은 행사들이 축소되고 그저 하나의 진부한 연중 행사 정도로만 여겨지지 않는가, 이제 사용할 수 있는 자료들도 모두 다 사용했고 새로운 자료들도 개발되지 않고 있고 더구나 텔레비전이나 영화같은 대중 매체에 밀려 교회 교육은 더욱 위축되고 있지나 않은지 자문해 본다.
교회는 부활절과 더불어 성탄절을 가장 중요한 행사로 지켜 왔다. 주님이 부활하신 뒤 초대 교회가 당시 부활과 수난을 중심으로 삼았을 때에 마태와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에 나타난 복음의 의미를 발견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성탄에서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고 구유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거처를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강보로 상징되는 하나님 영접을 보게 된다. 이방인들이 가장 먼저 경배함으로 인해 예수의 탄생이 만민을 위한 구원의 사건임을 성탄의 이야기는 수난과 부활 못지 않게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
부활절이 소홀히 되는 지금 그나마 애써 지켜온 성탄절마저 소홀히 하게 된다면 우리는 참으로 중요한 신앙적 유산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어떻게 성탄절을 가르칠까라는 질문으로 성탄절을 올바로 지킬 수 있는 몇가지 방안들을 함께 생각하고자 한다.
먼저 이 글에서 두 가지 관점을 전제한다.
먼저 가르친다는 의미를 일상적인 의미보다 넓게 생각할 것이다. 흔히들 가르친다는 말은 학교식의 관점에서 규정한다. 교실이 있고 책과 책상이 있으며 가르치는 교사와 학생이 있는 그러한 상황을 연상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의 가르침은 이러한 제한된 의미에서 벗어나서 배움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의미한다. 단지 책을 통한 배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통한 배움, 참여를 통한 배움, 심지어 무의식적 배움까지도 가르침은 함축하고 있다.
다음으로 성탄절을 가르치는 목적을 신앙의 관점에서 볼 것이다. 신앙의 관점이란 성탄절은 교육적으로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신앙 성장의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의 성장은 엡 415절의 말씀과도 같이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함을 말한다. 여기서 범사란 말은 지적인 면, 정적인 면, 의지적인 면, 자아의 면, 공동체적인 면 사회적인 면, 그리고 초월적인 면을 통틀어서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성탄절을 가르치는 목적은 신앙의 모든 면들이 골고루 균형 있게 자라도록 돕는 사역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온전한 성탄절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음 네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1. 전체 공동체의 신앙 고백적 행위
가장 먼저 성탄절은 공동체 전체의 행사가 되어야 한다. 성탄절은 시간이 갈수록 어린이 중심의 절기가 되고 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어린이들의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따라서 어른들은 그저 구경꾼이 되거나 아니면 헌금하는 정도로 참여하는 부분적이고 간접적 절기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어쩌면 성탄절의 의미가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퇴색되어 가는 것은 그 행사의 진행이 어린이를 중심으로 되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성탄절은 아예 어린이 절기로까지 고정되어 버린 것 같다.
그러나 성탄절은 교회 공동체 전체의 행사로서 어린이의 행사이자 어른들의 행사이다. 오히려 어른들의 행사가 될 때 더욱 그 신앙적 의미는 깊어지고 어린이들은 이를 통해서 신앙의 더 깊은 배움을 갖게 된다.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에 가장 먼저 어른들이 찾아와 경배하였지 않는가? 어른들은 성탄을 통해서 다시금 주님에 대한 자기 신앙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들의 신앙을 위해더 만이 아니라 어린이들을 위해서라도 성탄의 절기에 참석해야 한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청소년은 청소년대로, 성인은 성인대로 성탄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성탄절이 공동체 전체의 신앙 고백적 절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성탄절기는 다른 절기와 함께 기독교 공동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중요한 상징적 수단이며 공동체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를 더욱 공고히 하고 구성원들로 하여금 강한 소속감과 유대감을 심어준다. 이러한 소속감과 유대감은 ‘소속이 곧 배움이다' 라고 말한 제롬 브루너(Jerome Brunner)의 말과도 같이 다른 어떤 방식의 가르침보다 더 효과적인 배움을 어린이들에게 제공해 준다. 절기를 통해 어린이들은 공동체에 참여하게 되고 소속하게 되며 공동체의 믿는 바를 체험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 체험이 신앙적 삶과 인격으로 나타난다. 단지 말이나 글로써 배워지는 것이 아니라 참여로, 소속됨으로써 배워지는 강력한 방법이다. 동시에 오늘날 세대간의 단절이 심각한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절기는 다시금 세대를 이어주는 중요한 방편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성탄절을 공동체적으로 지켜야 하는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2. 성탄절에 대한 비평적 성찰
다음으로 성탄절에 대한 비평적 성찰의 배움이 요구된다. 성탄절은 하나의 행사가 아니다. 여기서 행사라는 말의 의미는 본래의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그저 때가 되었으니 그냥 지나치지는 못하겠고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의미이다. 많은 교회들이 성탄의 깊은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하나의 행사로 보내고 있음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성탄절을 비롯한 모든 절기는 본래의 사건과 신앙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 사건과 의미는 시대를 통해서 기억되고 재해석되어야 하며 그리고 새롭게 적용되어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재해석의 작업은 결코 간단한 일도 아니며 소외되어서도 안된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스러운 재해석을 통해 절기는 하나의 역사적 유물이나 생명없는 전통으로 남게되는 것을 거부한다. 과거의 전통이 오늘날 생명을 갖기 위해서는 비평과 재해석이라는 작업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따라서 성탄절을 너무 행사 위주나 들뜬 기분에서 지킴으로 인해 본래적인 의미와 그 현대적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은 필히 재고해야 한다.
이로 보건대 우리는 이번 성탄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한가지 가르침의 방법이 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성탄을 잘 알고 있느냐? 성탄에는 어떤 복음적 메시지가 있느냐? 과연 우리가 지금 행하고 있는 성탄의 행사들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왜 장식을 하는지, 왜 선물 교환을 하는지? 이러한 모습들은 본래의 정신을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지? 이러한 질문들을 갖고서 비평적으로 성찰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크리스몬을 장식함에 있어서 화려한 것보다는 의미를 충분히 살린 크리스몬을 만들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3. 상상력을 통한 충실한 재현
다음으로 성탄의 사건을 가능한 있는 그대로 충실히 재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유대인들은 절기를 실제의 상황처럼 재연했다. 유월절을 지키면서 실제의 상황과도 같이 누룩없는 빵을 먹고 과거의 복망을 입고 그럼으로써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고 그 사건 자체가 계시하는 메시지를 들었다. 따라서 절기의 경우 사건 자체를 가능한 있는 그대로 충실히 재현하는 것이 첫번째 과제이다. 성탄절 또한 가능한 본래 모습 그대로 재현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바대로 성탄의 의미를 찾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는 우리의 상상력을 사용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재구성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이는 단지 말이나 글로서 배우는 모습을 벗어나서 우리의 감정, 자아, 그리고 상상력의 통로를 통해서 성탄을 배우는 것을 말한다. 성탄의 사건을 연극을 통해서나, 노래 극을 통해서, 또는 동화와 같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충실히 재현해 보도록 하자. 우리의 의미를 넣기보다는 사건 자체가 갖는 의미가 저절로 나타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4. 성탄의 사회적 책임
마지막으로 우리는 성탄의 사건과 아울러서 사건이 담고 있는 의미의 현대적인 정신을 추구해야 한다. 바로 성탄절의 사회적 의미이다. 성탄절의 의미는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기뻐하며 나아가서 사회에 알리는 행위이다. 이 마지막 사회적 책임이야말로 성탄절 행사의 최종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 성탄절 교육은 공동체 전체가 성탄의 의미를 비평적으로 성찰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하며 마지막으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것으로 마무리 될 것이다. 이 마지막 노력이 없다면 예수님 탄생은 세상의 구주가 아니라 ‘교회의 구주'가 되려고 오신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교회 안팎에서 소외받는 이웃들, 연약한 지체들, 잊혀진 고마운 사람들을 찾아서 작게나마 감사의 뜻을 전하고 이로서 주님의 사랑을 전한다면 그 어느 화려한 행사보다 귀한 선물이 될 것이다. "누구든지 너희에게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하신 주님의 말씀이 어느 때 보다 가장 소중하게 다가오는 절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