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일입니다. 내 나이 열 넷, 순진했던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중학교에 입학하여 들뜬 마음으로 학교에 등교했습니다. 키순서로 번호를 정했는데, 난 약간 큰 키라 약 70명 중 64번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번호 순서로 각자의 책상을 지정해주셨습니다. 번호가 뒷번호였던 난 맨 뒷자리나 앉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짝은 당연히 65번이었습니다. 그런데 새 반, 새 친구들은 남자아이들 뿐이라 서로 누가 주먹이 세냐는 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자신을 드러내려고 주먹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난 여느 아이들처럼 순진하고 유치했던 것 같습니다. 남자아이들은 가끔씩 치고 받고 했습니다. 저 역시 덩치도 크고 키도 컸기에 반에서 힘 좀 쓰는 녀석들의 무리에 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도 별로 세 보이지도 않는 녀석과 시비가 붙었는데 때려주기는커녕 무지 맞았습니다. 졸지에 난 반에서 가장 약한 아이 중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녀석, 저 녀석 모두 날 무시했고 난 어쩔 수 없이 참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내 짝 65번과 시비가 붙었습니다. 내 짝은 싸움을 잘 안 했지만 나름대로 반에서 힘 깨나 알아주는 녀석이었습니다. 약간 겁이 났지만 용기를 내 냅다 주먹을 몇 번 날렸습니다. 65번은 맞더니 당황해하면서 화를 냈습니다. 조금 있으면 그보다 약한 난 무수히 그 녀석에게 맞을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움인지 수업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셨습니다. 그 녀석은 주먹 한 번 못 날리고 억울하게 몇 대 맞기만 한 거죠. 그 녀석은 억울하고 분해서인지 수업 시간 동안 '너 죽었다'는 듯이 계속 뭐라고 중얼거리더군요. 솔직히 전 몹시 떨었습니다. 수업 종이 울리면 보나마나 맞을 것이 분명했으니까요. 어떻게 수업 40여분이 지나갔는지 모릅니다. 종이 울리자 65번은 천천히 일어섰습니다. 난 속으로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손을 내밀더군요.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우리 사이 좋게 지내자." 의외였습니다. 그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전 맞을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십여 년이나 지난 지금, 전 가끔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 나에게 피해를 주었고, 나에게 상처를 주었으니까요. 그런데 내 마음에 분이 가득하고 억울함을 느낄 때면 가끔 65번이 생각납니다. 65번이 무슨 이유로 그렇게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상처 준 사람들에게 손 내밀지 못하는 나로서는 지금도 나에게 손을 내밀던 짝의 그 용기가 부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