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대화를 하는 경우에,
이해성이 많고 유쾌해 보이는 사람이 아주 드문 이유의 하나는,
사람이 십중팔구까지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정확한 대답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가 말하고자 마음 먹고 있는 것에
생각을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특출하게 수단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또 특출하게 상냥한 사람일지라도
다만 주의 깊은 듯한 표정을 보이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러한 사람의 눈 속 마음속에는
그저 멍하니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자기가 말하고자 생각하고있는 것에
한 순간이라도 빨리 이야기를 되돌리고 싶어하는
조바심이 엿보이는 것이다.
대저 그러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고자 조바심하는 일이
남을 기쁘게 하거나 남을 설득하거나 하는 데에는
하나의 졸렬한 방법이요,
잘 듣고 대답하는 것이 대화를 주고받는 경우의
훌륭한 태도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 라로시푸코의 <잠언과 성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