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이 드문 이른 새벽 거리에서 큰 가방을 든 두 남녀가 택시를 세웠다.
"아저씨, 여기서 가장 가까운 호텔로 가 주세요."
사십대 초반쯤 돼 보이는 여자의 말에 경철 씨는 백미러로 그들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여보 지금 당장 당신을 집으로 모셔갈 수 없어 정말 미안해요."
"이해하오. 꼭 오 년 만이구료. 아이들은 많이 자랐겠지?
"네. 나리와 경민이가 중학생이 됐어요. 여보, 아이들이 좀더 자라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만 기다리기로 해요..."
"알겠소. 내 이제부터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하리다. 뭐든 말만 하시오."
남편이 아내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말했다.
"당신은 미국에서 오 년 동안 계셨던 거에요. 우선 따뜻한 물로 목욕한 뒤 푹 주무세요. 그 사이 제가 나가서 당신이 갈아 입을 옷을 사 오겠어요. 그런 다음 편하게 식사를 하고 아이들의 선물을 사서 저와 함께 집으로 가면 돼요."
그러자 남편은 아내의 손을 꼭 잡은 채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제서야 경철 씨는 그들의 딱한 사정을 알 게 되었다.
작은 식료품 가게에서 잠깐 차를 세운 경철 씨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두부를 한 모 사서 차 안에 있는 그 부부에게 내밀었다.
"잠시 차를 세워둘 테니 이것 좀 드슈."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그들을 차 안에 남겨둔 채 한참을 밖에서 서성거리던 경철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몇 년 전 천안 교도소 앞에서 두부를 가져와 기다리고 있던 죽은 아내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좋은생각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