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1월 14일 오전11시 경기도 파주시 재해대책본부, 주부 10여명이 막 도착한 매일유업 트럭에서 내려진 분유통을 한두개씩 받아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평생 이렇게 반가운 선물은 없었어요.물난리통에 분유 사러갈 틈도 없고...할 수 없이 밥을 먹였더니 애가 밤새 설사를 하는 거예요.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趙애리(29.파주시금촌2동)씨는 10개월된 딸아이가 분유통을 안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비치기까지 했다. 이날 주부들을 감동시킨 '특별 구호품'은 중앙정부나 자치단체가 보낸 것도 아니고 매일 유업의 호의도 아니었다. 한 30대 서민 부부가 10년동안 간직해온 정성이 밴 것이었다.
88년 봄 결혼한 이 부부는 신혼여행조차 변변히 다녀오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아 결혼 10주년때 해외여행을 가기로 한 뒤 매달 7만원씩 적금을 부어왔다. 회사원인 남편의 월급으론 결코 적지 않은 액수였고 집장만이 급해 아파트 중도금으로 쓰고 싶은 유혹도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았고 결국 올해초 1천만원을 모으게 됐다하지만 집중호우가 이들의 마음을 바꿔놓았다. 수해지역 어린이들이 분유와 기저귀가 없어 고통받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뒤 이들을 돕기로 한 것.
이들은 수재의연금을 기탁하는 대신 직접 물품을 전달하기로 하고 매일유업에 전화를 걸어 분유 6백만원어치 5백30통을 구입하고 나머지 4백만원으로 기저귀를 샀다. 그리고는 매일유업에 부탁해 14일 경기도 파주와 의정부,서울 노원구 등 수해지역에 분유를 전달했다. 15일엔 남편이 친구의 트럭을 빌려 직접 기저귀 2천개를 파주시 조리면,광탄면 등 오지마을을 돌며 나눠줬다.
이들의 선물이 전달된 뒤 지역 대책본부와 동사무소 등에는 "분유도 나이단계별로 준비하고,기저귀도 남녀용을 구분하는 등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전화로 인사라도 해야겠다. 도대체 그분들이 누구냐"는 문의가 쏟아졌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이웃을 위해 좋은 일 한 것만으로 충분하다"며 기자에게조차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1998년 8월 17일.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