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 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 흥얼거리며 우리의 김삿갓이 어느 날 함경도 안변 땅을 지나다 회갑 잔치 집을 보았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리오. 김삿갓이 잔치 집 문안에 들어서니 그 집 하인 놈들이 김삿갓의 꾀죄죄한 모양을 보고는 박정하고 매몰차게 내칩니다.

하여, 김삿갓은 일필휘지로 人到人家不待人 主人人事難爲人 사람이 사람 집에 왔는데 사람 대접이 이 모양이니 이 집주인은 도무지 사람답지 못 하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글을 본 주인이 버선발로 쫓아 나와 하인 놈들이 철이 없어 그리 하였으니 용서하시고 안으로 드십시오 은근히 권합니다. 김삿갓은 못이기는 체 잔치 상 한 모퉁이에 앉았습니다. 잔치 상에 앉은 손님들도 조금 전 김삿갓의 글을 보았는지라 회갑을 축하하는 시라도 한 수 짓고 술 한잔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하니, 김삿갓 옳은 말이외다 하고, 祝壽宴이라 제목을 달고 시를 짓기를...

彼坐老人不似人 : 저기 앉은 저 노인 사람 같지 않도다
疑是天上降神仙 : 하늘 신선이 하강하신 듯하구먼
眼中七子皆爲盜 : 내 보니 일곱 아들놈들 모두 도둑놈이로다
偸得王桃獻壽宴 : 왕궁의 복숭아를 훔쳐내어 이 자리에 바칠 듯하구먼

저기 저 노인 사람 같지 않다 하니 모두 바짝 긴장하다가 하늘 신선이라니까 휴- 합니다. 저 일곱 아들놈들 모두 도둑놈이라니까 또 바짝 긴장하다가 왕궁의 복숭아라도 따다 바칠 효자들이라니까 오 그러치 그러쿠말구 합니다. 긴장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시입니다. 시적 맥락이 비슷한 요즈음 시 한 수를 옮겨봅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을 년
미친개한테 주둥아리 물릴 년
달리는 차바퀴에서 튕겨 나온 돌에 맞아 죽을 년
발바닥을 바늘로 죽을 때까지 찔러도 시원찮을 년
아무리 심한 욕을 하고
죽일 년 살릴 년 해 보아도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나. 쁜. 년.

이 시 제목이 참 인상적입니다. <사랑 해>.
<원태연 시집, 알레르기, 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