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 31일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길을 걷다가 건국대학교 앞 책방에 들러 성공회대학교 신영복 교수가 1995년부터 1996년 8월까지 중앙일보에 기행 엽서로 연재했던 글을 묶어 낸 <나무야 나무야>를 읽다가 마음에 와 닿고 맥이 서로 통하는 글 몇 줄 약간 각색하여 여기 소개합니다.

하나. 나침판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반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이 바들바들 떨고 있습니다. 여윈 바늘 끝이 그렇게 떨고 있는 한 그 나침반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지가 살아 있음이 분명하며, 그리고 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은 옳다고 믿어도 좋습니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운 그 떨림을 멈춘 채, 어느 한 쪽만을 가리키며 고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 남침판을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나침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 역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조금씩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합니다.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며 내용입니다.

"편안함" 그것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편안함은 흐르지 않는 강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불편함"은 흐르는 강물입니다. 흐르는 강물은 수많은 소리와 풍경을 그 속에 담고 있는 추억의 물이며 어딘가를 희망하는 잠들지 않는 물입니다.

셋. 갈채와 통곡
관객들의 뜨거운 갈채와 함께 막이 내리면 그는 분장실에 홀로 남아 통곡하였습니다. 당신은 그 통곡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갈채는 그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주인공에게 바치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에 그는 통곡하였습니다. "나는 왜 드라마의 그 주인공처럼 살지 못하고 무대 위의 그림자로 살고 있는가?" 이것이 그의 통곡의 이유였습니다.

텅 빈 분장실에 홀로 남아 쏟아내는 그의 통곡 때문에 당신은 그를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통곡은 그를 인간으로 세워놓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1996, 돌베개, 52, 82, 1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