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준

앞으로 수회에 걸쳐서 웨슬리의 신학사상을 연재하려고 합니다. 그는 한 신학자나 성직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감리교회의 사상적 기초를 놓았고 오늘의 모든 감리교 신학은 그의 사상과 직, 간접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고로 그의 사상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신앙을 바로 이해하고 정도를 걸어 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참고서는 "웨슬리와 감리교신학"(감리교신학대학교 출판부, 1999)이란 책으로써 평신도가 읽을 수 있도록 편집하려고 합니다. 이 책은 제가 한국웨슬리신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을 때 신학자들의 글을 편집한 것입니다. 웨슬리 신학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를 원하시는 분은 위의 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머리말
역사적으로 보면 어떤 교파나 대표적인 신학자의 신학 체계를 근거로 하여 사상이나 교리를 세운다. 그 예로 로마가톨릭교회는 중세의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루터교는 그 교조인 루터의 '소교리문답집', 그리고 개혁교(장로교)는 교조인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감리교의 교조인 웨슬리는 신학을 체계화한 것이 없다. 그러면 그가 감리교의 기초가 되는 교리와 신학에 대하여 무관심하였단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는 수 많은 신학 논문에서 그것을 말하고 있다. 그는 다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체계화하지 않은 것뿐이다. 그 이유는 교리나 규범을 만들어 놓으면 신앙이 편협해지고 율법주의적으로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오히려 교리와 신학의 폭을 넓힘으로써 신앙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감리교의 특징을 아래와 같이 정의하였다.

"감리교인의 특징은 그가 지니는 어떤 종류의 의견에 있지 않다. 그가 이러저러한 종교적 형식에 찬성하는 것, 그가 어떤 특수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 그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의 판단에 동조하는 것은 초점을 흐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리교인이란 이러저러한 의견의 소유자라고 상상하는 사람은 누구나 문제 전반에 대한 무지를 노출시키는 것이며, 진리를 전적으로 오인하고 있는 것이다."

교리나 신학이 체계화되면 고정되고 편협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시비가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웨슬리는 교리와 신학의 울타리를 넓힘으로써 서로 입장이 다른 신앙인을 가급적 많이 포용하는 태도를 취한 것이다. 따라서 감리교인은 누구나 그 울타리를 넘지 않는 한 신앙생활과 신학활동에 있어서 최대한의 보장을 받을 수 있었다. 그의 원칙은 "보편적 정신"을 근거로 하여 인위적인 모든 장벽을 넘어, 넓은 마음과 자유로운 생각으로 신앙생활 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감리교의 특징이고 정신이라고 하겠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난 세기 말에 한국감리교가 두 신학자 변선환 박사와 홍정수 박사를 이단자라고 추방한 것은 웨슬리의 사상에 대한 무지에서 온 결과라고 하겠다.

2. 감리교 교리와 신학의 4가지 표준
웨슬리는 자기가 몸담고 있던 성공회의 3가지 표준 곧 성서, 전통, 이성에 '경험'을 추가하였다. 그러나 그는 어디에서도 이 4가지 표준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 이 4가지 표준은 미국 감리교가 신학연구를 통하여 웨슬리의 사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요약한 독창적인 결실이라고 하겠다. 미국 연합감리교의 헌법서라고 할 수 있는 "The Book of Discipline"에는 웨슬리의 신념을 아래와 같이 약술하고 있다: "웨슬리는 기독교 신앙의 살아있는 핵심은 성서 안에 계시되었고, 전통에 의해 조명되었고, 개인적 경험에서 생기를 얻었고, 이성에 의하여 확고해졌다고 믿었다." 아래서 이 4가지 표준을 차례로 생각하고자 한다.

1) 성서
웨슬리는 철두철미 성서에 근거한 신학자이다. 그는 "저로 하여금 한 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 되게 하소서"라고 하였고 또한 "나의 근거는 성서이다. 그래, 나는 성서 고집쟁이이다. 나는 크든지 작든지 모든 면에서 성서를 따른다"고 하였다. 그의 설교는 성서에 기초를 두었고 비록 인용구가 없는 경우에도 그 내용이 성서에서 온 것이었다. 그가 스스로 "한 책의 사람"이라고 한 것은 성서만 읽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성서 이외에 수 많은 책을 독파하였다. 또한 그가 감리교 교리나 신학은 성서만을 유일한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는 전통, 이성, 경험 등이 교리와 신학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웨슬리가 "한 책의 사람"이라고 하여 성서 고집쟁이라는 별명이 붙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헌법서에 잘 요약되어 있다. 즉 "성서는 기독교 교리를 위한 제일차적인 출처요 기준이다." 여기서 일차적이라는 말은 그의 교리와 신학 형성에 있어서 성서가 전통, 이성, 경험 보다 우선하는 표준이라는 것이다. 환언하면 성서는 전통, 이성, 경험이 신앙적인지 이해하는데 있어서 일차적이고 궁극적인 표준이 되는 반면에 다른 3가지 요소는 성서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이차적 표준이라는 것이다.

왜 성서가 교리와 신학을 현성하는데 일차적 표준이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성서가 하느님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웨슬리가 성서 이외의 3가지 표준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하느님의 진리에 접근하는 인간적인 도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것들은 하느님의 진리인 성서를 해석하는 방법은 될 수 있어도 하느님의 진리 자체일 수는 없는 것이다.

2) 전통
웨슬리는 전통이 이차적 표준이지만 이것 없이는 교리와 신학을 형성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비록 그는 성서 고집쟁이기는 하지만 모든 분야에 관한 책을 읽었고 특히 기독교 전통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고 200여권의 고전을 번역 출판하기도 하였다.

웨슬리는 기독교 전통가운데 고대교회와 영국교회를 중요시하였고 로마 가톨릭교회는 무시하였다. 그는 비록 16세기 종교개혁 전통에 의존하는 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다. 그가 전통을 선별하는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성서 또는 복음에 적합한가에 달려 있었다. 그는 고대교회의 교부들이 복음을 해석하는데 실수하자 아니하고 실수를 피하기 위해서 성령의 도움을 받았다고 칭찬한 적이 있다. 바로 이것이 전통을 평가하고 수용하는 기준이었던 것이다.

왜 전통이 신학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아니될 요소인가? 전통이란 북음의 진리를 각 시대를 위해서 해석하는 노력인데, 복음은 하나이지만 해석의 관점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것이다. 이 다양한 전통은 복음을 충실히 해석하려는 노력이었다는 의미에서 가치있는 것이다. 지난 2000년의 교회역사는 성서 해석의 역사라고 말해서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오늘의 교회는 그 성서 해석의 토대 위에 서 있어야 하고 또한 우리 시대를 위한 해석을 일삼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전통을 무시하면 우리 스스로 기독교 전통에서 소외되고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3) 이성
웨슬리가 활동하던 18세기 서구사회는 이성의 지배 아래 있었다. 특히 기독교 이신론(理神論, Deism-인간이 이성으로 절대적 진리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신의 계시가 필요 없다는 학설, 일명 자연신론)이 풍미했던 시대에 이성을 신앙의 원수로 거부하는 전통주의도 있었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성을 동반자로 보고 적극적으로 받아드렸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참된 종교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건을 발굴하려 할 때, 하느님이 주신 이성을 유감없이 활용하라고 주장할 뿐 아니라 권고하는 바이다" 고 하였다.

웨슬리는 이성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면서 이성적인 것과 기독교적인 것의 일치를 주장하는 이신론에까지 나아간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는 이성을 포기하는 것은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고 비이성적인 종교는 거짓종교라고 주장하므로써 이성적인 종교가 참 종교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웨슬리에게 있어서 지식은 신앙을 대신할 수 없다. 신앙은 이성적이어야 하지만 이성적인 것이 곧 신앙적인 것은 아니다. 그는 이성의 지식이 신앙의 경험에 이르게 되면 이성의 자연적 감각에서 신앙의 영적 감각으로 비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이 신아의 차원까지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능력에 의해만 가능하다고 한다. 이 말은 비록 우리가 이성을 통해서 종교에 관한 많은 지식을 알 수 있지만 하느님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때 우리가 죄인이지만 용서받고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믿게 된다는 것이다.

4) 경험
웨슬리는 성공회의 3가지 표준에 경험을 추가함으로써 그의 독특한 신학을 만들었다. 그는 성공회가 이성으로 성서와 전통을 객관적인 진리가 되게 하려는 노력을 인정하면서도 그 위에 경험을 추가함으로써 부족한 면을 보완하려는 것이다. 성공회가 이성으로 성서와 전통을 객관적인 진리로 부각시켰다면 웨슬리는 경험을 통해 성서와 전통의 진리를 주관적인 것으로 만들었다고 하겠다. 그는 어떤 진리가 성서, 전통, 이성 등에 의해 밝혀졌다고 할지라도 경험을 통해 생명을 얻지 못하면 나와 관계된 진리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경험이란 인간의 자연적인 감각을 통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감각의 경험을 뜻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신앙경험을 하게 하는 것은 자연적인 감각을 갖고 있는 인간 나 자신이 아니라 나에게 영적 감각을 주시는 하느님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올더스게잇의 회심할 때 직접 체험하였다. 그는 이제까지 성서, 전통, 이성 등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올더스게잇의 회심을 통해 비로서 구원을 확인하게 되었고 그 경험의 빛에서 성서, 전통, 이성을 재조명할 때 새로운 생명이 솟아난 것이다. 따라서 그의 회심 체험은 그의 신학의 근거가 되었다.

3. 맺는 말
위에서 말한 바를 요약하면 웨슬리 신학의 일차적인 표준은 성서이다. 따라서 성서 없이 그의 신학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성서만으로는 신학이 성립될 수 없다. 우리는 성서만이 신학의 표준이라는 보수주의의 주장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신학이 아니라 성서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며 세상에 그런 신학이란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감리교 신학은 성서, 전통, 이성, 경험 등 4가지 표준을 모두가 포함해야 하는 것이다.

웨슬리 신학의 4가지 표준은 서로 불가분리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것은 전통에 중심을 둔 보수주의 신학만도 아니고, 이성에 중심을 둔 자유주의 신학만도 아니며, 경험에 중심을 둔 신비주의 신학 만도 아니다. 웨슬리가 제시한 감리교 신학은 4가지 표준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유기체적 신학이라고 말해서 좋을 것이다.

웨슬리 신학의 특징을 끝으로 말을 맺겠다. 첫째로 그것은 다원적이다. 웨슬리가 신학의 구성 요소로 4가지 표준을 제시한 것은 신학의 폭이 넓음과 동시에 다양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리교 신학은 획일적이거나 유일할 수 없고 그 대신 공통의 표준을 지녔다는 의미에서 하나인 동시에 다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의 특징은 웨슬리의 신학은 상대적인 것이다. 모든 신학은 그 시대에 있어서 가장 보편적이고 완벽한 것을 지향하지만 그것은 시대적 산물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새 시대는 새로운 관점에서 성서를 해석해야 하는 요구 때문에 초시간적, 초공간적인 신학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제아무리 과거에는 완전한 신학이었다고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그 의미와 영향이 약화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18세기 웨슬리의 신학이 오늘 우리에게 적합할 수도 없고 별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셋째의 특징은 웨슬리 신학은 미래지향적이다. 그는 종교개혁과 영국 성공회의 신학 전통 위에 나름대로 새로운 신학을 형성하였다. 이것은 그의 신학적 관점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우리는 웨슬리의 후예로써 그의 4가지 표준과 그의 신학을 근거로 해서 우리 자신과 우리 시대 및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신학을 창조하는데 힘써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웨슬리 신학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또한 그것을 계승하는 일이다. 웨슬리 자신도 우리에게 그렇게 하도록 요청한다.따라서 감리교의 신학은 영원히 웨슬리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