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신5:7

제목 :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제1계명)

소품으로 손거울을 준비한다.
강대상에 올라갈 때 얼굴에 휴지조각을 붙인다.
사모가 손짓을 하면 그제서야 발견한 것처럼 거울을 보면서 떼어낸다.

내 얼굴에 무엇이 묻었는지 거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외모는 거울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우리의 심령 상태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롬7:7에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과 무엇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는지에 대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심령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 구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율법 중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계명이 각각 몇 개씩이라고 하였습니까? (248개, 365개, 총613개) 이를 두 가지로 요약하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마22:37~40) 이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롬13:10에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십계명을 포함한 성경의 모든 계명은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로 요약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십계명 중 첫 번째 되는 제1계명 “내 앞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계명은 다른 어떤 계명보다 소중하고 중요하기에 하나님께서는 가장 첫 번째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사실 이 계명은 법으로 어떤 종교를 국교로 정하지 않은 한 아무런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계명이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이므로 이를 잘 기억하고 준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싱가폴을 여행하고 온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 나라에서는 껌을 씹기만해도 벌금을 내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껌을 아무 곳에나 뱉으면 벌금을 내지만 씹는 것만으로 벌금을 내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싱가폴에서 껌을 씹었다는 이유로 벌과금을 부과할 때 한국의 법이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벌금을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그 나라에서는 그 나라의 법을 따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또한 우리는 하늘나라의 백성이요, 세상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이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이 첫 번째 계명은 우리가 누구를 경배해야 할 것인지 그 대상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고 웅변하고 있습니다.

어떤 30대의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하여 결혼도 늦추고 몸도 돌보지 않고 오직 공부에만 전념하였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기만 하면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몸에 약간의 이상을 느꼈지만 자신의 인생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무시하였습니다. 어느 날 너무 몸이 아파서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이미 암이 온몸에 퍼져서 오늘 밤을 넘기기가 어렵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그에게 앞으로 8시간 정도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절망감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후 2시간 쯤 지났을 때 편지 한 통이 그에게 배달되어 왔습니다. 변호사가 보낸 편지였습니다. 그 청년에게는 작은 아버지가 한 분 계셨는데 큰 부자였습니다. 그 작은 아버지는 자식도 없이 한평생을 보내다가 갑자기 죽었는데 그의 재산을 상속을 받을 사람을 찾다보니 유일한 법정상속자가 바로 그 청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속 절차를 밟기 위하여 만나자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이제 그 청년은 수십억원의 재산을 물려받고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의사에게 물어봅니다. “이제 제 생명이 얼마 남았죠?” “앞으로 6시간 남았습니다.”

얼마 후 또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 총장이 보낸 편지였습니다. 그 청년이 제출한 박사 학위 논문이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되었으며, 앞으로 1주일 뒤에 있을 학위수여식에 참석하라는 초청장이었습니다. 슬픈 표정을 지으며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봅니다. “이제 내 생명이 얼마 남았죠?” “앞으로 4시간 남았습니다.”

다시 세 번째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그것은 그 청년이 열렬히 사랑하였던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당신의 청혼을 허락합니다. 만나서 결혼식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다시 물어봅니다. “이제 내 생명이 얼마나 남았죠?” “2시간”

죽음을 앞둔 이 청년에게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일까요? 그는 지식과 돈과 명예와 행복한 가정을 얻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만 이제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돈, 지식, 권력 얻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고, 하나님보다 이것들이 더 소중하다고 여긴다면 그것이 바로 1계명에서 말하는 다른 신이요, 우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다른 신 즉 재물이나 지식, 권력이나 명예, 그 외 세상적인 쾌락을 네 앞에 두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오직 하나님만이 경배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고전8:5~6에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신 아버지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의 걸음걸음을 지켜 인도하시고 구원해 주는 구원자가 되십니다. 요17:3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금으로 신상을 만들어 모두 그 앞에 절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만일 그 명령을 어기면 뜨거운 풀무불에 던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금신상앞에 절하는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심문하는 왕 앞에서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단3:16하~18의 내용입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 말을 듣고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왕은 풀무불의 온도를 7배나 뜨겁게하여 그 가운데로 던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타지 아니하도록 보호해 주셨습니다.

마6:24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경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을 두지말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신앙의 절개를 지키도록 요구하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사이에 있어서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자기만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 폭언일 수가 없고, 여자가 한 남편만 사랑하는 것은 오히려 행복이요 축복입니다. 하나님만 사랑하고 그를 섬기라는 것은 우리와 아름다운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기 원하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우리 편에서 볼 때에는 축복이요 행복인 것입니다.

이제 제1계명이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제1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은 유일한 참 신이 되심과 우리 하나님이 되심을 알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우리의 절대적인 신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 외의 대용품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의 것을 아무리 쫓아다녀도 목마름이 해갈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을 섬길 때에는 다음과 같은 신앙고백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도다” (아멘) 지금 내가 어떤 형편에 처해있든지 나에게는 부족함이 없다는 위대한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출34:7에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죄를 용서하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대까지 보응하리라” 회개할 자는 용서하시고 회개치 않으면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를 지식적으로 아는 것으로만 그쳐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할까요? 우리는 그 분과 전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 분의 능력과 성품을 알 뿐 아니라(知), 그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고(情), 그 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意)입니다. 우리가 그 분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그 분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보이시고 축복하여 주십니다.

시53:1에서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여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롬1:21을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 않고 감사치 않는 것을 경계하시는 것입니다.

딤후3:2~5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자들의 모습을 찾아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제1계명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마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것이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하게 전달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가장 소중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다 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1:1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남녀간의 사랑도 1:1입니다. 중간에 그 어떤 다른 것도 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삼각관계는 갈등, 불행, 고통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먼저 하나님의 약속을 절대 신뢰하는 것입니다. 사26:4에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모든 축복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입니다. 시106:1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다른 신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다고 하였습니까?

질투와 진노를 격발하십니다. 신32: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질투는 사랑과 비례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참아 보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숭배자들은 유황불 못에 던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계21:8에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출처/윤성화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