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선기 목사

  성경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가 된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성경에 대해 3무현상이 있다. 무지(컴맹이 아니라 성경맹이다)와 무력과 무관이다. 이 셋은 서로 연관이 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경공부가 새로워져야 한다. 성경을 많이 알아야 하며 바로 해석해야 하며 무엇보다 구체적으로 살아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살아 있는 성경공부가 되어야 한다.

  나는 성경에 무식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면 이번 여름에 성경을 좀 공부하기를 바란다. 두 번째는 무력이다. 성경공부는 하는데 말씀이 능력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모습은 설교들을 때 아무 생각없이 듣는 것이다. 성경이 무능력하고 읽다가 아 이 말씀하고 다가오는 일이 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도해야 한다. 내가 순복음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보니깐 많은 분들이 30분전에 와서 기도하고 있었다. 나는 일찍 교회에가면 주보를 보든지 하면서 시간을 때우는데 나와는 달랐다. 그때 생각하기를 내가 설교해도 은혜받겠구나라고 생각하였다.

  세 번째는 무관이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성경공부를 하지만 감동이 되고 은혜가 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오늘 우리 사회와 내 삶과, 별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TV를 보면서 신문을 보면서 청년으로서 1996년대에 한국에 살고 있는 나에게 아무런 관계가 없는 책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저도 벌써 성경책 모양부터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중요한 책같아보이지만 와닿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말씀을 오늘 우리의 삶과 연관시키는 성경공부를 중요하게생각하여 이 부분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저의 교회 장로님 한분이 건축하시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현장에서 불법으로 일하길래 불법이 아니냐고 하니깐 목사님 이런 것들은 우리들에게 맡겨두시고 이런 것은 저희들에게 맡겨두십시오.라고 하였다. 건축하면서 생기는 문제는 성경과 일절 관련없다는 것이다. 너무 확신있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성경을 공부해도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분은 악의로 그런 것이 아니지만 한국교회의 모습이다. 컨링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다. 그러니깐 우리나라가 변화되지 않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이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이 오늘 우리의 삶에 관련이 있다는 것을 공부하려고 한다. 오늘 그예기만 한다.

  우선 간증을 좀 하고자 한다. 여러분 가운데서도 성경을 잘 읽는 분이 있겠지만 저는 너무 성경을 많이 읽어서 눈이 나빠져 안과에 가기도 하였다. 성경퀴즈대회도 나가고 암송도 하였는데 선교단체에 들어가서 훈련하면서 잘못된 것을 알았습니다. 네가 읽고 깨달은 말씀이 네 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변화를 줄것인가 하는 것을 강조하는데 상당히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식이지 삶에 영향을 끼치는 참된 성경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깐 그때부터 성경이 정말 재미있기 시작하였다. 매일 아침 QT를 하였다. 제일 중요한 것은 QT였습니다. 목사님 말씀도 중요하였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바로 QT였습니다. 그렇게 오래하고도 요정도니깐 그것이 없었다면 엉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회에서 성경공부 가르쳐주신 것이 너무 Data중심의 성경공부였구나라고 생각하였다.

  신학교에서 가서 깨달은 것도 있는데 신학교에서 성경을 공부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꿈을 깨야한다. 두꺼운 신학서적들을 가지고 성경을 연구하는데 그것은 자기의 전공으로 학문으로 성경을 연구하지만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성경은 별로 가르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E랜드에서는 주일성수 문제가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옷가게는 주일날 문을 닫지만 피자가게를 열면서 주일날 문을 닫을까 하는 유혹을 받았다. 그래서 매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설악산 켄싱턴 호텔을 시작하면서 주일날 문을 열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였다. 그래서 연구하려고 신학자들의 내용을 공부하였는데 그들의 중심관심은 왜 주일날로 변화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제일 중요한 것,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하는가 하는 내용이었는데 결론은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고 말았다. 맥이 빠졌다. 그런데 그것이 신학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사실 우리들이 가진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자기들을 잘모르고, 우리들의 관심을 이야기하면 또 그들이 의아해하는 것이다.

  교회교육과 신학교 교육이 성경을 삶과 연결시켜주는데 부족한 면이 있다. 그런 이유중의 하나가 70년대 한참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민주화 운동 사회참여는 성경과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복음전하고 선교하고 제자양육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민주화 운동, 사회참여 등에 대해서 수 많은 언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책 중에 프라이 저스티스라는 책이 있는데 성경 구절중 사회참여에 대한 내용만을 나열한 성경이었습니다. 제게 많은 사람이 성경을 공부하도록 하였지만 성경과 우리의 삶을 연결시켜주지 못한 것입니다. 70년대에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서도 그런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살아있고 생동력있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들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삶에 대한 해답입니다. 그러나 금광석 속에서 금을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내 삶에 팔요한 금이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찾아내려해야합니다.

  저는 특별히 90년대가 되고 나서 느끼는 것은 정치문제도 아니고, 민주화도 아니고, 이념도 아니고 요즘은 대중문화에 대한 것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등장한다. 컴퓨터, 락카페, 케이블 TV등이 더 영향이 있다. 우리는 발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생각하며 연결하려 할 때 성경은 다이나믹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성경에 대한 이미지를 먼저 가져야한다.

  성경은 먼저 책이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이다. 그래서 이것을 너무 귀중하게 생각하서 잘 보관해두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후-탁"교인이 많습니다. 또한 "출장갈 때 성경 꼭 가져갑니다. 왜 가져가느냐. 그래야 안심이 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고 부적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갖고 다니더라도 성경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이 책의 말씀을 귀하게 여겨야하는 것이다. 성경책을 베고 잘것인가 말것인가?하는 고민을 해보았는데 나는 관계없다. 부담스럽다....하는 내용이 많이있겠지만 저는 잘 베고 잡니다. 저도 예전에는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종이요 가죽이지만 거기에 있는 말씀이 귀한것이라고 생각하고나서 부터이다. 책으로서의 성경은 내가 배고자는 것에 부담이 없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냥 배고 잡니다. 성경을 책으로 이해하는데 성경을 책을 말씀으로 생각지 않았으면 좋겠다. 책을 읽듯이 차곡차곡 읽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책을 읽을떄 문법을 따지고 단어의 뜻을 생각하면서 읽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연구를 고전을 연구하듯이 종교개혁때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고전어를 연구하고 공부하였다. 열심히 연구하되 예를 들어 자료를 찾아가며 사전도 찾아가며 연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성경은 내용을 보면 씨앗의 이미지가 있다.

씨앗이 마음의 밭에 떨어져 열매를 맺기도 하고 맺지 못하기도 하는 것이다. 거기서 성경의 이미지는 사람의 마음속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그런 이미지이다. 나중에 열매까지 맺게 하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 말을 가지고서 꽝 맞고 꺼꾸러지는 역사가 있는 것이다. 세상의 책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성경은 책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영향력을 일으키는 것이다.

  양식의 이미지, 칼의 이미지, 방망이, 등불, 거울의 이미지가 모두 존재한다. 지금까지는 교회에서 이런 이미지들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요번에 강조하고 싶은 성경의 새로운 이미지는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이런 이미지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창을 통해 밖으로 보면 창이 어떤 상태냐에 따라밖에  있는 물건이 달리 보인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어떤 창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그냥 눈으로 보면 눈으로 보는 것 같지만 익숙해진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보면 세상을 보는 안목(Framework)으로 성경을 보면 성경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을 통해서 그런 것을 보자는 것이다. E 랜드에서 가장 중심을 두는 것이 바로 성경을 통해서 사업을 하는 문제들을 올바로 처리하자는 것이다.

  성경은 창문의 이미지이다. 여러분들이 신문을 볼 때 성경을 통해서 신문을 보는 일을 해야한다. 거기에 성경이 말하는 죄가 보인다. 성폭행의 문제들이 신문에 나오는가 그러면 이것이 소돔과 고모라구나, 갈라디아서의 죄이구나라고 생각해야한다.

또 중요한 이미지는 채의 이미지이다. 세상지식은 아무런 가치 없다고 배웠으나 그것은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성경으로는 세상에서 살지 못한다. 세상의 지식은 어떤 의미에서 더 많이 공부해야한다. 말씀공부하느라고 성적이 좋지 않다고 합리화하는 자는 하나님앞에서 욕을 된통얻어 먹습니다. 세상 지식도 많이 집어넣어야 합니다.

다니엘 같은 사람은 이방나라에서 그 나라의 지식을 통달했습니다. TV도 세상 문화도 넣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채 역할을 해야합니다. 성경위로 세상 지식을 막 집어 넣어서 성경을 통해서 걸러지는 것은 받아들이고 나쁜 것은 버려야 합니다. 크리스챤은 영화를 봐야합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걸러야 합니다. 성경적으로 옳은지 그른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학시절에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책을 읽었는데 읽다 보니깐 읽으면서 요구절은 성경몇장몇절을 읽었다면 이런 소리를 하지 않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어가는 것입니다. 니체의 책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걸러야합니다. 만약 니체의 책을 먼저 읽었다면 거꾸로 되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채가 되어야 합니다.


  이 두가지의 이미지는 꼭 기억해야합니다. 성경을 깔고 그 위에 세상 모든 지식을 집어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채가 너무 엉성한 사람은 껴봤자 술술 다 빠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열심히 공부해야하는 것이다. 세상 지식을 바로 캐취하기 위해서는 바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공부의 목적은 성경책을 때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연구의 목적은 이 성경을 통해서 내가 변화되는 것이다. 내가 또 중요한 것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것이다.

(단9: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단9: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단9: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다니엘이 성경공부를 하였는데 예레미야의 책을 가지고 공부하였다. 70년이후에 돌아오리라고 예언하였다. 성경을 보고 시대를 안 것이다. 시대를 알면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통일문제에 대해서도 둘이 하나되겠다는 에스겔의 말씀처럼 찾아내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해야하는 것이다. 시대를 보고 성경을 통해 깨달은 것을 기도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통일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625중에 났습니다만 어떤든 우리는 기도할 문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성경공부는 책을 때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내가 변하고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공부해야하는 것이다.

  성경공부의 방향(본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야한다.

  과거의 일이지만 항상 살아있고 의미 있는 책이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할 필요가 있다.

(고전10: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예를 들어 정경유착의 문제는 오늘날도 문제이다. 정경유착은 우리나라의 문제만이아니라 옛날에도 있었다는 것이다. 왕하 15:19- 보면 므나헴이라는 왕이 앗수르 왕을 매수하기 위해서 부자들을 불러 왕에게 돈을 주게 되고 그 반대급부를 체우는 것이다. 정경유착의 문제는 옛날부터 있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성경하고 무관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문민정부의 역사 바로세우기도 마찬가지이다. 요시야, 느헤미야도 그렇다. 김진홍 목사님의 책을 보니까 요시야는 개혁에 실패하고 느헤미야는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요시야의 개혁은 저변확대가 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 문민정부의 내용을 볼 때 조금 부정적으로 보이는 내용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성경이 이렇게 되면 살아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영적 이야기만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를 비춰주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성경을 보다 보면 성경을 통해서 오늘 우리들의 삶을 비판할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과 현실을 연결해야한다.

  현실속에 일어나는 일들을 현실 속의 사건과만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사람들에 주신 교훈과 오늘 우리에게 대한 교훈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지혜에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고 하는 말씀에 대해서 이렇게 적용하고자 한다. "컴퓨터에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그로인한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고 적용한다.

  컴퓨터에 대해서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죄악에 빠질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들이 보는 영화나 음악에 대해서도 연결할수 있다. 예전에 책을 통해 크리스챤이 TV를 봐야하는가 하는 내용을 읽었는데 읽지 말라고 하였다. 가요를 부르는 것도 상상할수 없다는 것이다. 목사님의 아내가 가요를 부르는 일을 보고 산타루치아를 부르는 것을 보고 실망했다는 것이다. 내가 그 목사님께 갔다간 완전히 지옥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영화를 안보는 것이 아니라 걸러내는 것이 되어야 한다. 크리스챤이 영화를 무분별하게보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성경과 연결시켜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볼 때 성경과 연결시키는 연습을 하자는 것이다.

  예를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라고 들었는데, 그 영화에 대한 평이 많이 있는데 어느분이 이렇게 말했다. 순애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니깐 그렇지 않았다. 어떤 크리스챤은 간음이라고 평가했다. 그것은 너무한 것 같다. 성경에 비쳐보니깐 이 여자의 행복은 다윗이 밧세바와 똑 같은 행동이었다. 여자는 간음죄를 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여자에게 용서해주어야할 부분이 있다. 간음한 여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서 회개의 여부를 떠나 한 번 죄를 짓고 끊었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통해서 발견하는 것이다. 성경을 통해서 보니깐 죄이다. 그러나 간음에 대해서 변호할 것은 아니지만 그 선에서 끝내었다는 것은 인정해주어야한다는 것이다. 제가 요번에 프리즘이라는 잡지를 출판하는데 프리즘에 보면 소설에 대한 것이 나온다. 너희가 제즈를 믿느냐라는 것은 아무리 걸러도 나올것이 없다. 예를 들어 원초적 본능이라는 영화는 걸러내어도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 데드맨 워킹이라는 영화는 꼭 보기를 바란다. 어떤 영화인가 하면 어떤 기독교인이 일반 영화중에 기독교적인 사상이 있는 영화에 대해 상을 주는 영화인데 대학교에서 단체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그것은 굉장히 많이 걸러서 우리에게 유익한 그런 영화라고 생각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해서도 서태지를 좋아할수 있느냐 없느냐보다는 그들의 음악을 듣고서 내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서태지 노래를 가지고 성경공부를 해봤는데 컴백홈을 읽어보니깐 가만히 성경하고 연결하다 보니깐 누가복음 15장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집을 나간 아이의 심정은 공통적으로 느낄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컴백홈의 아이는 아직도 이를 갈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눅15장의 내용은 해결받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오늘날 집을 나가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는 하였지만 정말 그리스도 안에서만 해결되는구나라고 생각하였다. 노래가 공감을 주지만 해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을 프리즘에 내었는데 중3이 편지를 써서 정말 좋았다고 편지하였다.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서태지를 다루어 주어서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쭉 공부하다 보니까 서태지에게도 문제가 많이있더군요라고 써놓았다. 나는 그것이 중요하였다. 서태지 듣지마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공부하니깐 문제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이 성경공부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라는 책은 걸르면 많은 내용이 나온다. 젖은 손이 애처러워라는 노래도 의미가 많다. 만약에 그 시간에 환란과 핍박 중에서를 부부모임에서 부른다면 은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가요지만 성경 말씀을 통해서 걸러볼떄 부부간의 마음을 잘 담고 있다는 것이다.

  지식과 행동을 연결해야한다.

  사랑에 대해서 많이 알아봤자 사랑해야한다. 사랑을 나눌수 있도록 해야한다. 성경공부의 핵심이다.

  신앙과 생활을 연결시켜야한다.

  내게 일어나는 생활의 모습과 신앙을 연결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의사항으로는

  성경을 예화사전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느헤미야에서 직장생활에 적용하는 문제를 다루어 가는데 어떤 분이 느헤미야와 삼국지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하였다. 성경은 우리에게기준을 갈그치는 것이긴 하지만 내 삶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주적 섭리는 기록한 책이다. 삼국지에는 그것이 없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부터의 구속사역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속사를 성경을 통해서 볼수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룻기를 공부할 때 고부간의 문제이다. 그래서 5월달에는 많이 공부한다. 그러나 생활의 책만은 아니다. 룻기를 통해서 가르쳐 주는 중요한 진리는 메시야의 조상가운데서 이방인 여자 룻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방인 가운데서 여자가 혈족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복음이 이방인과 여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냥 보면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면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컴퓨터의 문제인데 바코드가 컴퓨터라고 열결해버리는 것은 위험하다. 성경과 오늘의 문제를 연결하는 것은 존경할 만이다. 그러나 그 공식을 정형화하면 성경에서 한 부분을 아예때버리는 것이다. 성경의 666은 여러 가지를 상징하고 있는데 그들은 666을 컴퓨터라고 하는 아이덴티파이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계시록의 짐승은 로마제국을 상징하였다. 그러면 짐승은 로마제국이라고 정형화시키면 짐승의 내용을 다 지워버려야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666의 사탄적 요소를 컴퓨터에서 발견할수 있으므로 조심하자는이야기는 할수 있어도 그것으로 정형화시키면 안된다.

  살아 있는 성경이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성경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문제는 무지의 문제이다. 무지를 극복하면 무력을 극복해야한다. 그러려면 기도해야한다. 그러면 무관의 문제를 극복해야한다. 저는 나의 사랑하는 책이 성경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에게도 그렇습니까?

  이 성경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살아있는 책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