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10-12

"의를 위히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핍박을 받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형은 디오코(1377)입니다. 이 단어는 문자 적으로 '추적하다, 추구하디, 뒤쫓다, 쫓아내다(몰아내다)'라는 뜻이며, 비유적으 로 '열심히 추구하다, 성취하려고 노력하다, 얻으려고 애쓰다, 박해(핍박)하다' 등을 뜻합니다.
핍박받는 자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선물 신약성경에서 가장 보편적인 의미는 '박 해하다' 흑은 '핍박하다'이며, 이 구절에서도 이런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핍박 ' 보다는 '박해'라고 하는 것이 더 강한 표현입니다. 박해를 받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 편에 있다는 표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핍 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앞 구절들에서 천국의 참 백성들이 어떻게 형성되어 점차 완성을 향해 나 아가는지 살펴 보았습니다. 이 모든 구절들은, - 천국 백성이 자기를 어떤 존재로 자각하며, - 무엇을 갈망하며, - 하나님의 순결의 은사를 통해 내적 성품이 어떻게 변모하며,- 인간들 중에서 온유하고 긍휼을 베풀고 평화를 가져다 주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어떨게 행동하는가를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완성된 초상화를 그리는데 그 밖에 무엇이 더 있어야 합니까? 그 그림에 붓질
을 더 가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세상이 그들에게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러한 사역에 대해 세상이 주 는 삯이 무엇인가? 그러한 인격들에 대한 세상의 인식이 무엇인가? 를 말해야 합 니다.
세상에 대한 천국 백성의 관계는, 핑화를 가져다주는 자, 화해를 조성하는 자로서 의 관계입니다. 반면 그들에 대한 세상의 관계는 적대와 증오의 관계입니다. 의를 위하여 핌박을 받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나는 이 구절도 역시 선행하는 7가지 복처럼 적용에 있어서 보편적, 영구적인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의를 위해 핌박받는다는 이 특성은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 로 바로 앞에 나오는 특성들에서 유래하며, 그 특성들의 계속적 작용을 전제로 합 니다.
여기에 부가된 복은 어떤 임의의 약속이 아니라 다른 7 가지 복처럼 인격적 특성 과 밀접한 연속 관계를 지닌 것입니다. 이 마지막 복은 첫번째 복을 다시 반복한 것임에 유의하십시요. 이것은 전체 완전 사상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모든 복이 이 복의 요소들에 불과하며, 싱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어지 는 초기의 복이 최고의 기독교적 인격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복과 동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후자가 충분한 발전을 하게 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1. 화평케 하는 자들에 대한 세상의 보상

하여튼 이 구절이 오직 어느 특정 시대에만 적용되며, 특히 기독교의 초창기와 밀 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생각도 일 리가 있습니다.
. 그리고 주님은 제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에게 자신을 따르는 댓가로 이 세상에서 어떤 것을 획득할 생각을 가졌서는 안된다고 아주 분명하고도 솔직하 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기에서, 앞의 7 가지 복과 똑 같은 어떤 일반적 원리를 천명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바로 뒤의 구절에서는 본문의 일반적 진슬을, 곁에서 듣는 청증들에게 적용시키고 있습니다("너희를"). 이와 같이 이 양 구절에서 일반적 원 리의 천명과 그 적용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청중들의 개인적 체험은 이 일반 원리를 임증해 주는 실례이지, 일반 원리를 무너 뜨리는 사례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 사상은 지극히 일반적인 관점에 서 성경에 매우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1) 이 적대 관계는 진정한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이의 불가피한 관계입니다. 선행하는 구절들에서 묘사하고 있는 인격적 특성들을 살펴보시십시오. 하나 하나 가 모두 불신앙인들이 결코 공감을 느낄 수 없는 것들이며, 그들의 습관과 거리가 먼 것들입니다. 행동 원리도 다르고 실천도 다릅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대해,하나의 항시적인 견책이어야 하며, 구체화된 양심이어야 합니다.
그 대립 관계를 종식시키는 길은 둘 뿐입니다.- 세상에 그리스도교적 인격을 심어 주든지, 아니면 그리스도교적 인격이 세상으로 타락하든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 로 우리는 전자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2) 반대와 반감이 일정한, 한결같은 결과로 나타고 그것이 핍박으로 구체화됩니 다.
어둠은 빛을 싫어합니다.
물론 개증에는 마음에 감동을 받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선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인정하는 어떤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고상한 인 격이, 보다 열등한 인격을 사랑할 수는 있어도 열등한 인격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는 못합니다.
실천과 관련하여 - 의로운 삶이 당사자를 '인기 있는' 인믈로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견해와 관련하여 - 열성적인 신앙적 견해들은 어떤 종류건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한 열성적 견해의 고백이 아니라 그러한 열성적 견해의 실천이, 특히 어떤 신 기하고 이상한 견해의 실천이, 보통 사람들로 하여금 그 열성적 그리스도교 신앙 에 대해 화를 내게 만듭니다.
나태, 자만심, 타고난 보수적 경향등이 모두 힘을 합해서, 모든 것을 다도하고 '세상을 뒤집어 엎고자'하는 그 불편한 열성가들의 존재에 대해 분을 냅니다.
핍박 기질의 씨앗이 인간의 본성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몰고오는 폭풍으로 그 씨앗이 발아합니다.

(3) 환경에 따라 핍박의 국면이 변합니다.
우리가 꼭 엄격하고 모진 종류의 핍박만을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시대에 는 사람들에게 완전한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며, 아무도 신앙 때문에 형벌을 당하 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가 대중의 도덕에 영항을 미쳐 인간들을 그리스도의 의의 표준으로 견 인하기도 합니다.
오랫 동안 그리스도교 진리가 선포된 영국이나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오늘 날 그 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한다 하더리도 전혀 해로움이 없으며, 심지어는 이것이 바른 삶의 태도로까지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변에는 언제나 적대 의식이 흐르고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일정한 종교의 신조를 열렬히 받아들이고 그 교리대로 살아본다면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회적, 경제적, 교회적 관계에 있어 일반의 인식이 별로 되어 있지 않은, 그러한 그리스도교 진리들을 선포하고 강조해 보시오.
사업 관계나 사회 생활에서, 그리스도교의 높은 도덕를에 집착해 보시오.어떻게 되겠습니까?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핌박을 받으리라"라는 말씀을 실감하게 됩니다.
(4) 현대적 형태의 핍박들도 아마 옛날 형태 못지 않게 견디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현대적인 것들은 투기장의 사자나 화형에 비해 매우 사소한 것이 사실입니다.
비쭉이는 입술, 점잖은 비꼼, 소외, 공적인 위치에 있을 경우 신문 지상에서 보내는 독
있는 증상, 비방, 냉소적 별명 등등은 사소한 것이지만 역시 매우 현실 적인 증오의 표
현들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암살자의 칼 대신 암살자의 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 들에도, 고문대에 의연히 서던 옛날의 영움적 신앙에 못지 않은 믿음이 요구됩니 다. 그리고 혀를 마구 쏘아대는 오늘날의 심성도 '그리스도인들을 사자에게로'라 고 고함질렀던 옛날의 심성 만큼이나 악랄한 것입니다.

(5)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핍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한 가지 큰 이유는, 실제적 적대 행위가 별로 없었다는데 있습니다.
'너회가 세상에 속하였다면 세상이 자기 것을 사랑할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에 영 향을 미쳤지만 세상 역시 교회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초대 교회 형태와 같은 열성 적인 선(善)이 오늘 날은 었다는데 대해, 대개가 의견이 일치를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물론 핍박도 없을 것이며, 종교는 무사 안일의 길을 걸을 것이고, 그리스도인들이 세인들과 나란히 달려갈 것입니다. 따라서 누가 누구인지를 아무 도 분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아가, 많은 사람들은 분명한 그리스도교적 의무를 회피하고 자기 몸을 소규모 동호인 집단 속에 감춤으로써 핍박을 모면합니다.

a) 우리는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리스도교적 성품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결 코 없도록 합시다.
상대의 총탄이 나의 화살 위로 쏟아져도 항복의 깃발을 올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 다.
당신은 당신의 행동 원리들을 공공연히 고백하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까? 사회에서 당신의 행동 원칙들이 조롱 거리 밖에 되지 못한다고 생각 한적은 없없었습니까?

b) 우리가 그리스도와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신의 성품과 인 격적 결함 때문에 핍박을 받아서는 안되겠습니다.

c) 우리 자신이 핍박자가 되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그러한 기질은 인간 본성 속에 내재해 있습니다.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신앙인을 핍박하
는 자들이 종종 있어 왔습니다.
잔인하리 만큼 날카로운 비평, 불 같은 증오, 관용을 베플지 못하는 성격 등이 종종 그
리스도인의 얼굴에 먹칠을 해 왔습니다. 우리는 항상 온유하고 긍휼을 베 풀며 화평케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남이 진리를 받지 않으려하면 단지 그들을 설득하고 구원하고자 노력할 뿐, 화를 내거나 저주해서는 안됩니다.
굳은 지조와 관용을 동시에 유지하기는 극히 어렵습니다. 온갖 신앙에 대해 관용 을 베품으로써 스스로가 위험에 빠져서는 안되며, 한편 자신의 신념에 강력하게 집착한 나머지 적들에게 쓸데 없는 분노를 발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세상의 불신앙과 세상의 핍박에 대해, 하나님은 위대한 자비의 표본이시고, 그리 스도는 위대한 인내의 표본이심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됩니다.

2. 핍박받는 자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선물

핍박받는 자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선물은 "하니님의 나라" 곧 "천국"입니다. 이 마지막 약속은 첫번째 것과 동일합니다. 이는 이 복의 완전성과 포괄성을 표현하 는 것입니다.
나머지 모든 복은 이것의 구성 요소들에 불괴합니다.
핍박받는 성도에게 주어지는 이 최고의 상급은, 첫번째 복, 즉 겸비한 죄인들에게 주어지는 복의 보다 완전한 소유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애초에 이 천국을 얻 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지극한 복락이 자신에 대한 남의 태도에 달려 있다거나. 혹은 순교자 들이 아무도 이룰 수 없는 어떤 위치를 확보하게 된다는 의미가, 이 약속에 내포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핍박을 가져오는 그 인격의 자연적 결과로 하늘 나라가 주어지는 것이며, 핍박이 가져오는 그 인격의 발전 때문에, 천국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기타의 약속들 처럼 이것도 이증적으포 성취됩니다.

(1) 현재적 보상이 있습니다.
핍박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만든 어떤 인격의 결과입니다.
현재 천국은 그들의 것입니다. 그들은 현재 천국 백성입니다. 천국은 이미 주 어졌습니다.
핍박은 현재의 천국 소유 의식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고 기쁨이 넘치게 만듭니다.
핍박은 적대적 세상과 분리된 어떤 강력한 소명 의식을 가져다 줍니다. 토마스 플러(Thomas Fuller)가 어디에선가 표현한대로, 수평적으로 확장할 공간이 없는 도시에는 건물이 위로 높이 올라가듯 고난의 시대에 교회는 높이 덕을 쌓아 올리게 됩니다.
핍박은 소망을 더욱 밝게 빛나게 하고 견고하게 해 줍니다. 따라서 핍박은 무한히 향기로운 지복이 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은 하늘이 열린 것과 예수께서 마치 자기 종을 영접하고 지지하기 위해 일 어서신 듯,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순교자들에게는 이러한 영광 이 얼마나 많이 주어졌는가.
바울과 실라는 채찍 자국으로 등에 멍이 들고 피로 얼룩져 있었으나, 감옥의 벽에 는 그들의 찬양이 울려 펴졌습니다. 비록 적지만, 우리도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당하면서, 그들과 동일한 천국 소유 의식 및 보다 완전한 천국 소유에 대한 밝은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2) 사람들이 자격에 따라 상급을 받는, 천국에서의 미래 보상이 있습니다.
세상의 악에 바르게 대처하였다면 우리는 장차 천국을 보다 완전하게 소유하게 될 것입
니다.

(3) 끝으로, 이 모든 8 가지 복이 하나의 사슬과 같다는 점과, 모든 복의 토대는 회개와 믿음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많은 가난한 사람들과 많은 어린 아이들이 주를 위해 화형을 당한 일부 순교자들 보다 천국에서 더 높은 지위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경력아닌 인격이 천국에서의 지위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회개의 마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완 전한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그 뿌리에서부터 서서히 잎이 나고, 나중에 이삭이 피고, 결국 그 이 삭에서 무르익은 열매가 열립니다.
여기에, 인격에 대한 예수님의 이상이 있습니다: 영적 가난, 애통해함, 온유, 의 에 대한 목마른 갈망, 긍휼, 마음의 청결, 화평케 함, 의를 위해 핍박 받음, 이것 이 복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격의 내재적 행복 외에 무엇이 영흔의 창된 행복인가에 관한, 예 수님의 이상이 여기에 있습니다: 천국 소유, 하나님께 위로를 받음, 땅을 상속받 음, 의에 대한 갈증에 대한 완전 충족, 하니님으로부터 긍휼을 얻음, 하나님의 아 들이라는 이름, 그리고 마지막으로, 첫째와 같은 천국 소유입니다. 예수님의 이상 이 딩신의 이상입니까?
그러한 인격이 인간이 도달할수 있는 것 중 최고의 것이며,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참된 행복 이고, 그것이 저열하고 거짓된 기쁨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다 준다고 당 신은 믿습니까?
만일 그렇게 믿는다면 당신은 햄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다면 당신은 주님이 그리신 그 이상을 당신의 목표로 삼은 것이고, 따라서 주께서 말씀하신 그 복을 당신의 위대한 상급으로 획득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