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 고전15:3~4      

제목 :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이 세상에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초자연적인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TV에서도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나 사건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모두 호기심을 가지고 보면서, 놀라기도 하고, 감탄사를 발하기도 합니다.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서도 이런 일들이 주위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큰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에 있어 분수령이 되는 한 놀라운 사건,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부활의 사건에 있어서만큼은 참으로 냉담한 반응을 보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가 있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부활이 없는 기독교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무신론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그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였습니다. 전도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이야기하자 상대방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지요. 이에 전도자가 다음과 같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의 모든 이치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계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얼마나 되겠어요?”

“저 바다 백사장의 많은 모래 중 하나 정도 될까요?”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당신이 모르는 수많은 자연과 우주의 이치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셨다가 다실 살아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일까요?”

“⋯⋯”

히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손으로 그 분을 만져볼 수 없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그 분을 보고, 믿음으로 그 분의 말씀을 듣고, 그 분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믿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묻히셨던 무덤으로 가 봅시다. 가서 그 분이 뉘이셨던 자리, 비어있는 무덤을 확인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입술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하고, 땅끝까지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록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습니다.(아멘) 저희들은 지금 66권 성경의 모든 내용을 잘 요약한 사도신경의 내용을 함께 고백합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고백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두 개의 기둥 위에 세워진 집과 같습니다. 이 두 가지가 없으면 기독교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기독교의 각종 절기 중에서 성탄절보다 더 축제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어야 할 절기는 바로 부활절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말씀드리기 전에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장사지냄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완전히 죽으신 것이 아니라 잠시 기절하였다가 깨어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매우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릴까요?

예수님께서는 양 손과 양 발에 손가락 굵기의 못이 박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옆구리는 창으로 찔렸고,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으로 인한 상처가 깊이 패였고, 온 몸은 채찍을 맞아서 만신창이가 되어있습니다. 여섯 시간동안이나 계속하여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들어가기 전 온몸은 세마포로 꽁꽁 묶였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단순히 기절하신 것이라면 그런 몸으로 어떻게 무덤을 탈출할 수가 있습니까? 제대로 걸을 수 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의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워 떨고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나타나셨고, 갈릴리 바다에 가서 고기를 잡고 있는 베드로에게 나타나셨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저들의 말대로 예수님이 잠시 기절하였다가 깨어난 것이라면 어떻게 그런 몸으로 여러 곳을 다니며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죽으셨다는 것을 로마의 병정이 확인하였습니다. 요19:32~34에 의하면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운명한 것을 확인한 후 빌라도는 예수의 시체를 공회원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게 내어주어 장사지내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죽으셨다는 증거입니다.

고후15:3~4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장사지낸바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예수님께서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10:9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을 얻는 신앙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믿음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확실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전15:14~20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실지 못하였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약 성경에 예언되어져 있습니다.

시16:10에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시118:17에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이다.” 시30:3에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 자신이 부활을 예고하셨습니다.

요2:19~21에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마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17:22~23에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빈 무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합니다.

성경 말씀에 의하면 대제사장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무덤을 지키던 군사들에게 돈을 주며 “제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를 훔쳐갔다”라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도록 시도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억지인지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무덤에 들어간 후 큰 돌로 입구가 막혔습니다. 그리고 무덤의 입구에는 로마 황제의 도장으로 봉인되어 누구든지 그 봉인을 허락없이 떼는 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로마의 군대가 무덤 입구에서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시체 도난을 방지하기 위하여 단단히 지키고 있습니다.

이런 엄중한 상황 가운데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를 포함한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이라도 발라드리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들이 무덤에 갔을 때 놀라운 사건을 목격하였습니다. 큰 지진이 나며,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큰 돌을 굴러내고 그 위에 앉아있는 것이었습니다. 보초를 서고 있던 로마의 병사는 두려워서 마치 죽은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마28:6)고 말하였습니다. 순간 여인들은 기쁨과 두려움이 교차하였습니다. 여인들은 즉시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자 다음에는 자기들 차례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하였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몇몇 제자들은 이제 다시 갈릴리 바다로 돌아가서 고기나 잡으며 살아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들은 나약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히실 때 모두 도망갔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조금이라도 기억했다면 저들은 부활하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라도 해야 할 것이지만 전혀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제자들이 생명을 걸고 예수님의 시체를 훔치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까요? 만약에 예수님의 시체를 훔치는데 성공했다고 해도 그 다음에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말입니까?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자신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이야기, 자신들이 목격한 사실을 말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즉시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갔고, 빈 무덤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현장 확인까지 마친 베드로의 반응도 실망스럽습니다. “야!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부활하셨다”라고 기뻐하며 소리친 것이 아니라, 눅24:12에 의하면 “기이하게 여겼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미루어 보건대 예수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갔다는 것은 수용하기 어려운 억지입니다.

넷째,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증거는 사도 바울의 회심이 증명합니다.

사도 바울이 회심하기 전에는 매우 오만하기 짝이 없는 교회의 핍박자였습니다. 그가 고백한대로 여러 연각자보다 유대교에 대한 열심이 특별하여 교회를 핍박하였고, 스데반 집사의 순교 이후 교회를 핍박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너무도 확실하게 예수님과 대면하는 그 순간부터 그의 삶은 변화되었습니다. 교회의 핍박자에서 땅 끝까지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아그립바 왕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행26:23에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베스도가 사도 바울에게 “너의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구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 일은 한 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라고 단호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다섯째,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증거는 베드로와 제자들의 변화된 모습 속에서 증명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였으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오순절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난 이후 담대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행3:15에 “(너희들이)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보고 목격한 증인이었습니다. 베드로 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부활의 도를 담대하게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이 일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버릴 수 있겠습니까?

여섯째, 초대교회의 중심 설교는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오순절 성령충만이 있은 후 베드로의 설교 주요 내용은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그 설교를 듣고 3천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설립과 성장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그 중심에 있었던 것입니다.

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왜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일까요?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가 말씀하신 모든 것이 진실하다는 증거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부활할 것임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믿고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다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기만 하면 쉼과 안식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기만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시면 다시 와서 우리를 영접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약속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분명하신 것처럼 이 모든 약속 또한 분명히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믿는 성도들도 이 세상 마지막 날 다시 부활하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날이 오면 우리의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죽어야 할 몸이 죽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죽음이니 고통, 눈물이 없는 그 나라에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증거입니다. 온 인류가 원죄와 자범죄로 인하여 사망의 종이 되었으며,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사망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셨지만 장사한 지 사흘만에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승리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우리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확신하여야 합니다. 우리도 이러한 부활신앙을 가지기만하면  우리의 죽었던 환경이 살아나게 됩니다.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하게 됩니다. 어둠의 세력이 물러가고 광명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무궁토록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탄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담대한 믿음 가운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