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 롬8:31~39    

제목 :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고사성어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자를 직역하면 용의 그림에 마지막 점을 찍어 눈을 그려 넣는다는 뜻입니다. 용의 그림에 눈이 그려져야 비로소 그림이 완성된다는 것이지요. 이 고사성어의 뜻은 ‘용의 그림에 눈을 그려 넣는 것처럼 무슨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일을 완성하는 것’이란 의미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신앙에 있어서 화룡점정과 같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없으면 기독교가 존재할 수 없다고 여길만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입니다. 이 두 기둥이 기독교를 지탱해 온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만약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빼어낸다면 그 분은 비극적인 생애를 마친 한 사람의 성인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의 기대를 온 몸에 받으며 3년간 짧은 사역을 하였지만 종국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약관 3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하였으니 참으로 불운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신 동안 자신의 흔적을 남기신 것이 별로 없습니다. 책을 쓰시거나, 집을 지으시거나, 결혼을 하셔서 자손을 남기신 일이 없고, 어떤 단체를 만든 경우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그가 죽어 장사지난 바 된 무덤조차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빈 무덤이 예수님의 부활을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장사지낸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승천(昇天)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장사지낸 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까지 이 땅에 거하신 기간은 고작 40일, 그 짧은 기간동안 예수님은 부활하신 자신의 몸을 제자들에게 보이시며 저들에게 믿음을 확고하게 갖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하심은 예수님 자신에 의하여 미리 예언된 것입니다. 요20:17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라”(요16:7) 저들은 예수님께서 떠나가신다는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하였고, 그것이 왜 저들에게 유익한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약 승천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이 여전히 지상에 거주하고 계신다면 어느 특정한 한 지역에서만 거하실 것입니다. 저희들이 특별히 초청장을 보내어도 대한민국에는 자주 오시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지 않으셨다면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희들이 성령의 은사를 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와 지금과는 시간적으로 2천년의 차이가 납니다. 예수님이 지상에 거주하고 계신다고 해도 이러한 시간과 문화적인 격차, 세대간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으로 우리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이제는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 삶을 인도하십니다. 성령님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죄를 지으면 애통한 마음을 주십니다. 환난과 고난 가운데 처하더라도 넘어지지 않고 하나님만을 붙들게 힘을 주십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으로 우리들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입니까?”(행1:6) 이 질문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지금 제자들의 관심은 여전히 예수님께서 정치적인 메시야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유대인의 왕으로 등극하며, 이 때 자신들이 한 자리 차지할 것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말씀하시고는 하늘로 올라가 버리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나라의 정치적 회복을 기대하였던 제자들의 기대가 일순간에 거품으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날 텅 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은 어쩔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때 천사가 나타나서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 이 말씀은 갈릴리 사람들로 하여금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도래되었다’ ‘성령의 시대가 도래되었다’ ‘교회의 시대가 도래되었다’는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난 후 함께 모여서 간절히 기도하던 120명의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님이 강하게 역사하셨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고, 회개하고 돌아온 성도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의 초대교회는 날이 갈수록 부흥되고, 수많은 기적이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동안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을 전하시고, 병자를 치유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성령님을 보내시고 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교회로 하여금 예수님의 하시던 사역을 계속하도록 하고자하는 뜻이 있습니다. 자신의 사역을 교회에 위임하신 것입니다.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몸된 교회를 통하여 남은 일을 감당하기 원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드려지는 곳이며,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고 가르쳐지는 곳입니다. 또한 이웃에 대한 아름다운 섬김과 교제의 삶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치유와 은총과 사랑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주신 것처럼 오늘 날 우리 선한이웃교회가 그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 사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2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옵니다. 왕이 다시 돌아오는 날 - 즉, 이 세상 마지막 날이 되면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행한대로 남김없이 결산하게 될 것입니다.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우리를 구분하셔서 오른편 양을 향하여 축복하시면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반대로 왼편 염소를 향하여 책망하시면서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은 곧 하나님께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가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셨지만 지금 가장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낯선 이방인의 모습으로, 굶주리고 옥에 갇힌 자의 모습으로, 병들고 남루한 자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마치 예수님을 영접하듯이 따뜻하게 영접하고 돌보아주어야 합니다.

이 땅에 가난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교회는, 성도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관심과 시선이 어디에 머물러 있습니까? 오늘날 많은 교회가 이런 일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무관심과 잘못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고자하는 노력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피의 값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찾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저들의 고통을 보고, 그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에게 나아갑시다. 교회가 이 일에 게을리하면 하나님께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많은 영혼을 보내어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성 프란시스는 거지에게 입을 맞추고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주었으며, 마더 테레사는 죽어가는 사람을 위한 사역을 감당하였고, 윌버포스는 노예해방을 위하여, 부쓰는 구세군을 설립하여 불우한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섰고, 지금도 이러한 일들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일들을 사람들 앞에서 떠벌이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없이 빛없이 봉사하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갚아 주실 것입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남은 사역을 감당할 교회를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요15:16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수많은 실패와 배신을 거듭한 제자들을 향하여 “저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고 하셨습니다.

다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셔서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고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이 질문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사도신경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라고 고백합니다.

빌3:22에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다는 것이 문자적으로 하나님은 왼편, 예수님은 오른편에 앉아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우편(右便)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첫째는 위엄과 권능, 영광, 명예를 상징하는 것이며, 둘째는 재판을 열 때 변론하는 사람이 서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다는 첫 번째 의미는 예수님께서 성육신하기 전의 모습대로 하나님과 동등됨을 회복하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음을 의미합니다.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빌2:10에는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동등한 위엄과 권능, 영광과 명예를 가지신 예수님께서는 장차 이 땅의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다는 두 번째 의미가 무엇이라고 했나요? 재판장에서 변론하는 사람이 서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죄를 변호하여 사망과 멸망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와서 우리의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우리의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될 것입니다.(사1:18)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자신의 찔린 손과 발, 옆구리를 보이시면서 “제가 이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살 찢고 피 흘려 죽었습니다. 이제 이 죄인이 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믿고 나아왔으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변호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와 간구를 쉬지않고 계십니다. 오늘 읽은 본문 롬8:34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아멘)

히7:24에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하실 수 있나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도 사53:12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시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하여 이 땅에 계실 때 뿐 아니라 승천하신 후에도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계속 기도하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기도를 하지만 때로는 정욕으로 쓰기 위하여 잘못 구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 성령님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보다 지혜롭습니다. 그 기도는 진정 우리를 위한 기도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기도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기도입니다.

마지막으로 행8장을 보겠습니다. 여기에는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 당하기 직전 성령에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는 순간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행8:55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그렇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시험과 환난 가운데 처해있을 때 함께 격려하시면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 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습니다.(아멘)  또한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썩지 아니하고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될 것을 믿습니다.(아멘)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지금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계시는데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을 믿고 고대합니다.(아멘)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천하 인간에게 구원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