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8월의 필리핀 선교지 답사를 위해 공항행 리무진 버스를 타려고 단국대 앞 정류장엘 가니 함께 동행 하는 황준목이 가족의 배웅을 받고 있었다.

요즘 젊은 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황준목도 자기 가족을 아주 귀하고 애틋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참 다행스러운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우리 아이들이 아기일 때 그런 사랑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철도 덜 들고 게다가 교회까지 다니지 않던 영적 방황기에 결혼하여 낳은 아이들이기에 애틋하고 사랑스런 마음이 많이 부족했었다.

그러다가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온 후에야 비로소 자식의 소중함과 귀함을 알게 되었지만 유아기 때 아비로부터 받아야 할 사랑의 시기를 돌릴 수는 없었다. 몇 년 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목회자가 되고 교회를 개척하면서, 나는 아내와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두 아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었다.

“이제부터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주의 종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목회를 돕는 가족이 되야 한다. 만일 아버지의 목회에 걸림돌이 된다면 누가 되었건 버릴 테니 그리 알아라.”- 내 딴에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회자로서의 결단을 가족들에게 보여 준다고 이렇게 말했지만 가족들 입장에서는 특히 어린 두 아들 입장에서는 아마도 엄청 두려운 일이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개척 교회 목회자의 자식으로 살면서 무조건 절약하고 절제하며 살아야 됨을 무언중에 강요받으며 자라난 아들들이었기에 때로는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아들들이 자신들의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욱 애틋하고 사랑을 많이 해주는 게 보기가 좋았다. 이번 필리핀 선교지 답사를 위한 일정이 한 주간 가까이 되지만 수요일에 먼저 귀국하도록 스케쥴을 짠 것도 황준목과 그 가족을 위한 배려였다.

아마도 밤마다 인터넷을 통해 화상으로 가족과 통화 한 것 같은데 가윤이가 제 아빠를 보면서 화면에 비친 얼굴을 잡기 위해 손을 내 밀더라는 얘기를 들으니 내 마음이 한켠으로 찡 하였다.

나는 이렇게 가족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아들들의 모습이 너무 감사하고 기쁘다. 왜냐하면 내가 이들에게 그렇게 잘 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수요일 낮 비행기로 귀국하기 위해 마닐라 공항으로 향하는 황준목의 마음이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는 나의 마음 또한 감사하고 기쁘기가 한량없었다.

오! 주여

우리 수지산성가족들 모두가

자기 가족을 귀하고 애틋하게 생각하게 하소서.

(주후 이천십삼 년 유 월 둘째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