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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1~7
오늘 성경에 보면 크리스찬인 우리가 누구냐? 에 대한 정의가 나오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4~5절 “허물로 죽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인데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셨고, 지금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사는, 천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땅에 살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참 좋은 말씀인데 엄격하게 말하면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 살면서 상당히 불리하게 살게 만드는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살 때 미국에 사회학자들이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을 어떻게 학문적으로 표현하느냐 하면 ‘marginal people’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변인’이란 말입니다. 한국인은 미국 시민권자로 살더라도 항상 주변인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화와 질서와 외모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크리스찬들의 상황과 비슷하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지고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 “너희는 이 세상과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라. 만일 너희들이 이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너희들 속에 없느니라.” 이처럼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지만, 이 땅에 집착해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땅의 것을 잊어버리고 하늘을 쳐다보며 살아라. 위엣 것을 바라보며 살아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하늘을 바라보고 살기에 이땅에서는 주변인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주변인으로 이 땅에 사는 크리스챤들은 쉽게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땅의 법칙에 따라 살지않고, 하늘의 법칙에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왼뺨을 때리거든 오른 뺨을 내밀라고, 즉 손해 보고, 용서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은 “이 땅에서 담대하게 살아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주변인으로서 우리가 이 땅에서 담대하게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첫째, 4절에 보면 “허물로 죽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히시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중요하게 가르쳐주는 말씀 중에 하나는 우리가 예수님 믿기 전에는 죽은 상태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 만나서 살아가는 삶으로, 새로운 삶으로 성경은 규정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알기도 전에 주님께서는 나를 아시고 나를 불러서 주님을 영접하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이같이 죽었다가 사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를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 옆에 예수님과 함께 앉히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크리스찬이란 바로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지만 사실은 하늘에 계신 예수님 옆에서 함께 하늘에서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고 있지만 바로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아서 살아가는 천국 백성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아서 살아가는 천국 백성이라는 이 확실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주변인으로 살면서도 우리는 충분히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 역대하 16장 9절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 땅을 두루 살피시면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능력을 베푸시느니라”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다, 전심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이런 말은 우리가 좀 더 쉽게 말하면 열망이고 야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땅의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바로 하나님을 향해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거룩한 열망, 거룩한 야망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진 소유가 우리 것입니까? 아니 하나님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진 소유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분명히 알 때, 우리는 담대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약해지는 것은 이 땅의 것에 미련과 애착을 가질 때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땅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천국 백성으로 사는 우리는 이땅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을 하나님은 우리를 오늘 보다 내일 더 잘 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려고 오셨고 더 풍성한 삶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고 하나님께 맡길 때 우리는 이 땅에서 담대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땅을 살아갈 때 느낀 감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사는 것입니다. 비행기 조정사가 캄캄한 밤중에도 편안하게 비행기를 조정 하는 것은 느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계기판을 보고 하기 때문입니다. 수1: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담대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출처 : 강용구 목사 설교 중에서
오늘 성경에 보면 크리스찬인 우리가 누구냐? 에 대한 정의가 나오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4~5절 “허물로 죽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인데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셨고, 지금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사는, 천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땅에 살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참 좋은 말씀인데 엄격하게 말하면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 살면서 상당히 불리하게 살게 만드는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살 때 미국에 사회학자들이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을 어떻게 학문적으로 표현하느냐 하면 ‘marginal people’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변인’이란 말입니다. 한국인은 미국 시민권자로 살더라도 항상 주변인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화와 질서와 외모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크리스찬들의 상황과 비슷하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지고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 “너희는 이 세상과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라. 만일 너희들이 이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너희들 속에 없느니라.” 이처럼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지만, 이 땅에 집착해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땅의 것을 잊어버리고 하늘을 쳐다보며 살아라. 위엣 것을 바라보며 살아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하늘을 바라보고 살기에 이땅에서는 주변인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주변인으로 이 땅에 사는 크리스챤들은 쉽게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땅의 법칙에 따라 살지않고, 하늘의 법칙에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왼뺨을 때리거든 오른 뺨을 내밀라고, 즉 손해 보고, 용서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은 “이 땅에서 담대하게 살아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주변인으로서 우리가 이 땅에서 담대하게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첫째, 4절에 보면 “허물로 죽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히시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중요하게 가르쳐주는 말씀 중에 하나는 우리가 예수님 믿기 전에는 죽은 상태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 만나서 살아가는 삶으로, 새로운 삶으로 성경은 규정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알기도 전에 주님께서는 나를 아시고 나를 불러서 주님을 영접하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이같이 죽었다가 사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를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 옆에 예수님과 함께 앉히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크리스찬이란 바로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지만 사실은 하늘에 계신 예수님 옆에서 함께 하늘에서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고 있지만 바로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아서 살아가는 천국 백성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아서 살아가는 천국 백성이라는 이 확실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주변인으로 살면서도 우리는 충분히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 역대하 16장 9절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 땅을 두루 살피시면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능력을 베푸시느니라”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다, 전심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이런 말은 우리가 좀 더 쉽게 말하면 열망이고 야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땅의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바로 하나님을 향해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거룩한 열망, 거룩한 야망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진 소유가 우리 것입니까? 아니 하나님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진 소유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분명히 알 때, 우리는 담대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약해지는 것은 이 땅의 것에 미련과 애착을 가질 때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땅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천국 백성으로 사는 우리는 이땅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을 하나님은 우리를 오늘 보다 내일 더 잘 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려고 오셨고 더 풍성한 삶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고 하나님께 맡길 때 우리는 이 땅에서 담대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땅을 살아갈 때 느낀 감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사는 것입니다. 비행기 조정사가 캄캄한 밤중에도 편안하게 비행기를 조정 하는 것은 느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계기판을 보고 하기 때문입니다. 수1: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담대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출처 : 강용구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