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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4~10
구약 성경 사사기를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삼손과 들릴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실패한 삼손의 삶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삼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시려고 세우신 지도자라는 사실입니다. 사사기 13장 말씀을 보면 그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는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소라 땅에 사는 단 지파 마노아의 아내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삿 13:3~5)
다시 말해서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여 부르신 인물이 바로 삼손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가 실패했습니다. 아주 비참하게 그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것이 잘못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삼손에 관한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하나님의 선택은 아주 탁월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인물이 아주 준수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매우 용맹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다만 용감했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로서 매우 지혜로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패했습니다. 그 까닭은 그가 성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맡은 바 사명에 대해서 성실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 대해서도 성실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비참한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아무리 탁월할지라도 인간이 불성실하면 그 뜻을 그르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아 정체성의 상실입니다. 때문에 우울증에 쉽게 걸립니다. 심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누구이고 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도 자신의 신분을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딸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교회가 아닙니까? 때문에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과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배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예레미야를 택하셨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그는 택하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다. 그는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선택된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그를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그렇게 선택된 민족입니다. 신명기 7장 6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께서 그 선하신 뜻을 이루시려고 친히 택하신 존재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에베소서 1장 4절~6절 말씀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선택된 하나님의 일꾼은 그 삶이 특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야 합니다. 특별한 사람이 평범하게 사는 것은 잘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고 태어난 사람이 사람을 위하여 살아서는 아니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나실인은 나실인으로 살아야 하고 제사장은 제사장으로 살아야 하며 선지자는 선지자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한 성도는 성도답게 살아야 마땅합니다. 불신자처럼 살아서는 아니 됩니다. 나실인으로 태어난 삼손은 결코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서는 아니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머리를 깎아도 괜찮습니다. 이방 여인과 결혼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아니 됩니다. 예레미야가 선지자가 된 것은 자신의 결정이나 선택에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스스로 준비되지 못한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그는 사람들을 설득할 만한 말주변이 없으므로 선지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부르심에 따를 수 없다고 예레미야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자기의 능력이 아니라 부르신 분의 능력에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부족함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이 스스로 무력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그는 하나님께서 가라고 말씀하시는 곳에 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시는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하라는 그 말씀을 전하고 대언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또 자신이 뭔가 창의적으로 하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다만 말씀의 심부름만 하라는 것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곳에 가서 주어진 말씀만 전하면 그만이라는 말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그가 전한 말씀에 대한 수용 여부까지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전달해야 할 말씀을 가감하거나 왜곡하지 말고 그대로 바로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일꾼에게 있어서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온전한 순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예레미야에게 맡겨진 사명이 위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십자가를 피할 수 있게 하시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도와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어찌 보면 하나님의 일꾼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 삶을 책임져 주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때문에 부르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꾼의 삶은 담대하여 온전히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그 주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세상을 이기신 분이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하반절)
제가 알고 있는 분이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그 많은 부채를 갚기 위해서 밤잠을 자지 않고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부채는 계속 늘어나기만 했습니다. 그분은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분은 자기 사업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셔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 때부터 그분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쪼개어 전도하러 다녔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분이 미쳤다고 했습니다. 아예 쪽박을 차려고 그런다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회사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분의 재기의 비결은 간단했습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에 다시금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꾼의 종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일하는 일꾼, 일 자체를 위하여 일하는 일꾼,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일꾼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 종류의 일꾼 가운데 어떤 일꾼에 해당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부르셨고 또 보내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온전한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은 우리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일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보내심을 받은 삶의 현장에서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능력을 날마다 체험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스러운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 강석공 목사 설교 중에서
구약 성경 사사기를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삼손과 들릴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실패한 삼손의 삶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삼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시려고 세우신 지도자라는 사실입니다. 사사기 13장 말씀을 보면 그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는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소라 땅에 사는 단 지파 마노아의 아내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삿 13:3~5)
다시 말해서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여 부르신 인물이 바로 삼손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가 실패했습니다. 아주 비참하게 그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것이 잘못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삼손에 관한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하나님의 선택은 아주 탁월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인물이 아주 준수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매우 용맹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다만 용감했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로서 매우 지혜로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패했습니다. 그 까닭은 그가 성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맡은 바 사명에 대해서 성실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 대해서도 성실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비참한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아무리 탁월할지라도 인간이 불성실하면 그 뜻을 그르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아 정체성의 상실입니다. 때문에 우울증에 쉽게 걸립니다. 심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누구이고 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도 자신의 신분을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딸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교회가 아닙니까? 때문에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과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배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예레미야를 택하셨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그는 택하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다. 그는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선택된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그를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그렇게 선택된 민족입니다. 신명기 7장 6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께서 그 선하신 뜻을 이루시려고 친히 택하신 존재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에베소서 1장 4절~6절 말씀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선택된 하나님의 일꾼은 그 삶이 특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야 합니다. 특별한 사람이 평범하게 사는 것은 잘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고 태어난 사람이 사람을 위하여 살아서는 아니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나실인은 나실인으로 살아야 하고 제사장은 제사장으로 살아야 하며 선지자는 선지자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한 성도는 성도답게 살아야 마땅합니다. 불신자처럼 살아서는 아니 됩니다. 나실인으로 태어난 삼손은 결코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서는 아니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머리를 깎아도 괜찮습니다. 이방 여인과 결혼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아니 됩니다. 예레미야가 선지자가 된 것은 자신의 결정이나 선택에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스스로 준비되지 못한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그는 사람들을 설득할 만한 말주변이 없으므로 선지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부르심에 따를 수 없다고 예레미야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자기의 능력이 아니라 부르신 분의 능력에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부족함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이 스스로 무력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그는 하나님께서 가라고 말씀하시는 곳에 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시는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하라는 그 말씀을 전하고 대언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또 자신이 뭔가 창의적으로 하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다만 말씀의 심부름만 하라는 것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곳에 가서 주어진 말씀만 전하면 그만이라는 말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그가 전한 말씀에 대한 수용 여부까지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전달해야 할 말씀을 가감하거나 왜곡하지 말고 그대로 바로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일꾼에게 있어서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온전한 순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예레미야에게 맡겨진 사명이 위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십자가를 피할 수 있게 하시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도와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어찌 보면 하나님의 일꾼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 삶을 책임져 주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때문에 부르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꾼의 삶은 담대하여 온전히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그 주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세상을 이기신 분이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하반절)
제가 알고 있는 분이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그 많은 부채를 갚기 위해서 밤잠을 자지 않고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부채는 계속 늘어나기만 했습니다. 그분은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분은 자기 사업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셔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 때부터 그분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쪼개어 전도하러 다녔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분이 미쳤다고 했습니다. 아예 쪽박을 차려고 그런다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회사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분의 재기의 비결은 간단했습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에 다시금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꾼의 종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일하는 일꾼, 일 자체를 위하여 일하는 일꾼,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일꾼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 종류의 일꾼 가운데 어떤 일꾼에 해당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부르셨고 또 보내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온전한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은 우리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일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보내심을 받은 삶의 현장에서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능력을 날마다 체험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스러운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 강석공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