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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파리의 외곽에서 나치 총살대에 의해 실행되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처형사진으로 2006년 6월 21일 영국 데일리 메일지에 처음 공개된 사진이다.

1941년 2월 파리의 외곽에서 나치 총살대에 직면한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유일하게 알려진 사진이 처음으로 보도되었다.

위의 사진은 1941년 2월 21일에 있었던 나치스의 레지스탕스 처형지로 선택된 몽블랑에서 덤불에 숨어 몰래 사형 집행을 참관해던 독일 군인에 의해 촬영되었다.

그리고 살해된 레지스탕스 대원들과 1,000명 이상의 '인질'에도 불구하고, 나치가 레지스탕스 세력들이 이러한 참혹한 사진들을 독일에 대한 반대 선전으로 사용될것에 우려하여 레지스탕스 처형 사진의 보도를 금지하는등 어떤 사진도 존재시키지 않으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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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양민들을 학살하는 독일군 - 19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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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에 질린 폴란드 여성들을 학살시키기 위해 무자비하게 숲으로 끌고 가는 독일군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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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에 의해 폴란드 크라코프에서 학살된 민간인들 -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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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을 침략하여 장갑차의 지원아래 불을 질러 양민들을 학살시키기 위해 민가로 내려가고 있는 독일군 - 19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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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스에 의해 유고슬라비아에서 학살된 양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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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6일 데일리 메일지에 공개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정보부의 기록에 의하면 영국에 의해 점령된 지역의 독일군 전쟁 포로 심문시 포로가 쉬면서 내뱉었던 고백은 제 2차 세계 대전에 독일 나치가 노출시킨 폭력과 '일반'독일 군인들의 전쟁 수행 방침을 알수 있었다.

영국군의 독일군 포로 심문에서 어느 독일군 병사는 가증스럽게도 무고한 민간인과 적군의 대량 학살이 재미와 순수한 즐거움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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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비니챠(Vinnitsa) 인근에서 시체를 매장시킬 구덩이를 파놓고 권총으로 학살을 일삼는 나치스 대원 -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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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러시아(벨라루스)에서 빨치산들을 학살시키는 나치스 SS 병사들 -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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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러시아에서 민간인들을 학살시키는 나치 SS 병사들 -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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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굶주린 나치스의 소련 민간인 처형 장면. 이 사진은 독소전쟁 말기에 소련군의 공세에 사망했던 사진속 나치 장교의 수첩속에서 발견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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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에 학살된 가족의 시체를 보고 오열하는 우크라이나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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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키에프 이반고르드 인근에서 유대인 모자(母子)를 총살시키는 나치스의 SS대원들 -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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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우크라이나 Mizoch에서의 유대인 학살 - 1942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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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우크라이나 Zdlobunov에서의 유대인 학살 - 194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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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스몰렌스크 인근 벨리츠에서 민간인들을 학살시키는 나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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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에 의해 총살되는 소련의 빨치산 - 19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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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러시아 민스크에서 빨치산으로 활약하다 나치에 의해 처형된 키릴 트루스와 마샤 브루스키나와 블로디아 - 1941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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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빨치산들에 대한 보복으로 독일군이 학살시킨 민스크의 유대인들 - 19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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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에 의해 라트비아 빌니우스에서 학살된 유대인들 - 19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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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스의 지령하에 유대인 여성들을 학살로 내모는 라트비아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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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에 의해 라트비아 리바우 스케데 해변에서 학살되는 유대인 여성들 - 1941년 12월 15~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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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여성을 처형시키는 나치 SS여성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