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24
고귀한 사역자 (히 12:1-3)
David Livingstone은 아프리카에서 사역했던 가장 위대한 선교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이 거대한 대륙의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어느 날, 그에게 복음을 한번도 접하지 못한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콩고를 가로질러 가라는 강력한 계시를 받고, 어떤 부족의 마을 근처에 가게 되었다. 그 마을에는 외부 사람들이 들어오려면 부족장과 마을 사람들 앞에 서서 허락을 받아야 하는 관습이 있었다. 만일 허락을 받지 못한다면 그는 생명을 내어놓아야 했다.
허락을 받으면 선교가 가능하고, 허락을 못 받으면 순교였다.
그 부족에 들어가는 허락을 받기 위해 리빙스턴은 원주민 마을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와도 좋다는 추장의 허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추장은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샅샅이 뒤지며 검색했다. 그는 자기 보따리 속에 있는 성경책, 종이, 옷, 신발, 담요 등과 마지막으로 그의 염소를 내어놓았다.
리빙스턴은 위장병 때문에 매일 염소젖을 마셔야만 했다. 그에게 마실 물이 필요할 때 이 염소가 꼭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위장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했고 매일 먹는 염소젖을 통해서 위장이 나아가고 있었다.
추장은 이 위대한 선교사가 가져온 물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때 리빙스턴은 기도했다. “하나님, 다른 것은 몰라도 염소는 가져가지 말게 해 주세요. 제가 살아가는데 염소가 얼마나 필요한지는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시지 않는가? 하나님, 저 추장의 눈을 가려주셔서 염소만큼은 탐내지 않게 해주세요!”
그러나 추장은 염소 앞으로 걸어가더니 그것을 지목했다. 그러자 그를 따르던 한 사람이 재빨리 염소를 몰고 갔다. 리빙스턴은 멍한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치 갑작스럽게 그의 삶이 멈추어 선 것처럼 보였다. 그의 심경은 참 허탈했다.
잠시 후 염소를 몰고 갔던 토인이 돌아와서 그에게 교환의 대가로 막대기를 하나 주었다.
“이 막대기가 뭐야?” 리빙스턴은 외쳤다. “날 조롱하는 거야? 내 생명을 유지하던 것을 가져가고 막대기를 줘?”
옆에 서있던 사람은 그 상황을 깨닫고 재빨리 그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것은 단순한 막대기가 아닌다. 그것은 추장의 홀이다.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당신은 이 부족과 이 지경 내의 어느 마을이든지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다. 이것은 추장이 당신에게 준 안전을 보장하는 통행증이다.”
리빙스턴은 그제서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은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전파되기 시작했고, 리빙스턴은 놀랍게도 위장병이 치유되어지는 은혜도 체험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온전한 헌신을 원하신다. 부분적인 헌신이 아닌, 총체적인 헌신을 요구하신다.
연초에만 다짐하는 일시적인 사역자가 아닌 1년 내내, 그리고 일평생의 사역자가 되기를 바라고 계신다. 값싼 헌신의 사역자가 아니라 고귀한 사역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 모두 「고귀한 사역자」가 되시기를 바란다.
주님을 가장 잘 섬긴 자들은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역의 장에 뛰어든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이 구세군의 창시자인 William Booth에게 그의 성공 비결을 물었을 때 부스는 잠시 침묵하다가 눈물 어린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보다 더 훌륭한 두뇌와 기회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요. 그러나 저는 저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심했었다.”
그렇다. 하나님께 자신을 던진 자가 고귀한 자가 된다.
1월 한 달 동안 임명 예배와 또 헌신 예배가 계속 이어진다.
또한 다른 여러 모습에서 사역자가 세워지고, 성경은 맡은 자들에게 충성을 요구하고 있다.
쓰임 받는 사역자, 고귀한 사역자가 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를 통하여 온전함을 이루고자 한다.
1. 서로 세워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의 몸 된 교회에 함께 부름 받은 동역자라면, 서로 세워주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인(人)자가 이미 인간은 서로를 받쳐주는 것으로 설명이 되어 지고 있지 않은가?
홀로 살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간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역은 홀로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모습은 곧 우리 신앙을 훈련하는 일일 뿐 아니라, 우리의 이웃에 대한 태도에서 우리의 신앙 성숙도를 측정할 수 있는 아주 절호의 기회이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충만한 교회였지만, 바울로부터 책망을 받는다.
그들의 충성과 은사가 오히려 화근이었던 것이다.
성경은 협력을 말하지만, 획일을 요구하지 않는다.
분명히 기억하시라. 자기와 다르다고 비난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수준이 낮은 사람이다.
어떤 분이 비난의 부작용에 관하여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다.
①그것은 결코 치료하지 않는다 - 그것은 항상 상처를 줄뿐이다
②그것은 결코 사람을 완전하게 하지 못한다 - 그것은 오직 관계를 파괴시킬 뿐이다
③그것은 결코 결속시키지 않는다 - 그것은 오직 분리시킬 뿐이다
④그것은 결코 세우지 않는다 - 그것은 오직 허물뿐이다
⑤그것은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 그것은 오직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할 뿐이다
요한 복음 9장에 보면 날 때부터 소경 된 이를 예수님께서 실로암 못으로 보내 눈을 뜨게 해 주는 기적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서 비난하며 예수님을 고발하고 있다. 자기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한 구세주 앞에서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다며, 예수님과 그 눈이 뜨이고 구원받은 사람들을 인정할 수 없다며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비난을 통해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인가? 비난은 단 한번도 사람을 세우거나 살린 적이 없다.
이것이 곧 요한복음 9장에서 주지시켜주시는 예수님의 메시지이다. 비난은 백해무익이다.
혹시 우리들 중에 교회 일을 하다가 상처를 받아 주님과 교회로부터 멀어진 분이 있는가?
“사람들은 다리를 놓는 대신, 담을 쌓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다.”(조셉 포트 뉴톤)
우리는 그 어떤 비난이나 비판 앞에서도 결코 위축되지 않고 헌신하는 고귀한 신자가 되시기를 바란다.
2. 두 번째는 성령 받아 사용되어져야 한다.2.
주님께 바쳐지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기 위해서, 고기는 각이 떠져야 하고, 곡식은 부서져야 하고, 포도주는 제단 위에 쏟아 부어져야 한다.
우리 자신도 기꺼이 부서지고 바쳐지기를 바란다.
얼마 전 어떤 부자 집 여인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었다. 그는 매우 부자였지만 또한 매우 검소했다. 그런 여인이 자기 집에 제일 먼저 전기를 가설하겠다고 하자 사람들이 놀랐다.
드디어 전기를 가설하고 몇 주 후 계량기 검침원이 찾아왔다. 검침원이 전기가 잘 들어오고 있는지 묻자 여자는 그렇다고 했다. 검침원이 다시 물었다.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군요. 부인 댁 계량기는 거의 제자리 걸음이다. 전기를 쓰고 계신 있는가?”
“물론이죠.” 여자가 말했다. “저녁마다 해가 지면 촛불 붙이는 데 필요한 시간만큼 전깃불을 켜지요. 그리고는 꺼버립니다.”
전기는 들어오지만 이 여인은 전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도 똑같은 실수를 하고 있지는 않는가? 성령 충만한 은혜를 약속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가?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나약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이 안타까운 부자처럼 전기를 가설해 놓고도 여전히 촛불을 켜고 살 듯이, 성령 충만함을 축복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력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성령님은 우리의 삶을 촛불 인생에서 전기 인생으로 그 능력의 등급이 달라지게 해주신다.
성령은 먼저 거듭나게 하신다.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성령을 통해 우리는 과거에서 단절될 수 있다. 그동안 속해 있던 세상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길로 가야할 사람이 그 구원을 나타내며 살아야 할 공간일 뿐인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영혼은 이제 세상을 이길 수 있다.
요일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이것은 죄를 이긴다는 것이고, 세상의 것들을 이긴다는 것이며, 어두움을 이기는 것을 말한다.
또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자녀의 특권을 누리게 될 줄로 믿기 바란다.
요 16:23~24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자녀가 된 우리는 이제 비로소 주님을 나타낼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의 능력이 흘러 넘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성령님은 능력의 영이시다
나의 한계를 훨씬 능가하는 힘을 공급해 주신다.
성령님은 창조적 인생을 살게 해주신다.
존 맥스웰 著, 「당신 안에 잠재된 리더십을 키워라」 - 한 등대지기 이야기
암벽 해안에서 일하던 등대지기는 한 달에 한번씩 기름을 공급받아 등댓불을 지켰다. 등대가 마을에서 멀지 않다 보니 손님들이 자주 왔다. 하루는 어떤 여자가 난방에 필요하다며 기름을 구하러 왔다. 또 하루는 어느 남자가 등잔불을 켠다며 기름을 청했다. 모두 그럴듯한 요구인지라 이 등대지기는 달라는 대로 기름을 다 주었다. 그러다 보니 등대의 불을 켜지 못하게 되었다.
그 바람에 여러 척의 배가 암초에 부딪쳤다. 그래서 상부에서는 이 등대지기를 다음과 같이 질책했다. “당신에게 기름을 공급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즉 등대를 밝히라는 것이었소.”
오늘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신 이유는 성령으로 거듭나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사역자로 사용하시려 한 것이다.
오늘은 특별히 교사 임명 예배이다.
교육 현장은 별도의 마련되어진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반 교육이 학교 교사들로써만, 그리고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요즘 전인 교육을 많이 이야기 한다. 학교는 지식과, 지식 축적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인생에 대해 배우는 것은 오히려 일상의 삶에서 충만히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반 학교 교육에는 어머니들이 치마 바람을 날리며 자녀들의 학업에 온 정성을 기울인다. 그런데 기독교 교육, 교회 교육에서 우리네 부모들, 그리고 일반 성도들은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가?
어느 사회, 어느 공동체이건 후세를 키우지 못하는 사회, 공동체는 미래가 밝을 수 없다.
우리네 부모들이 왜 기쓰고 아들을 낳으려고 했는가? 출가외인 딸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고, 아들만이 그 부모의 미래를 책임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과거 한 시대에 아들을 낳을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 아닌가? 가끔은 요즘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말이다.
에스겔서 19장을 보면 요시야와 여호야김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두 왕은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당대의 훌륭한 왕이었으며 많은 업적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엇보다 중요한 내일을 준비하지 못했다.
자기 후세들을 올바르게 양육하지 못했고 미래의 지도자로 키우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의 황홀했던 문명, 다시 피어날 것 같았던 희망의 징조는 당대에서 꺾여 버리고 말았다.
저는 이것이 우리가 섬기고 있는 교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들의 교회가 2세를 키우는 일에 실패한다면, 다음 세대를 위한 지도자를 양육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땀 흘려 주 앞에 헌신하고, 장막터를 넓히고, 선교하는 모든 것이 헛되며 그 모든 노력이 당대에 꺾이고 말 것이다.
얼마나 쓸쓸한 이야기인가?
먼 훗날 주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 땅이 짓밟힌다고 생각해 보라.
지금 유럽에 가면 옛날에 전성기를 누렸던 교회들이 하나 하나 모슬렘에게 팔려 모슬렘 사원으로 변조되기도 하고, 쇼핑 센터로 변하기도 한다고 한다.
거기에도 한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복음을 위하여 애썼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내일의 지도자를 육성시키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에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교회학교 교육의 중요성이 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먼저 주의 은혜를 체험하고,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가슴으로 체험하고 성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고, 또 제자를 양육할 수 있는 지도자를 키워야 한다. 그래서 이 복음의 역사가 계속되도록 해야 한다.
바울도 디모데가 자기에게서 복음을 받았다는 사실로 만족하지 않았다.
딤전 4:11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이 신앙의 위대한 영향력이 계승될 수 있을 때 저와 당신이 땀 흘려서 이룩한 신앙의 아름다운 역사가 후세의 영광으로 계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배워야 한다.
자기 일생을 중국에서 선교하며 보낸 허드슨 테일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이것이 일생동안 그의 사역의 원리였다.
사람들은 더 나은 방법을 찾지만, 하나님은 더 나은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의 조건으로서 성경이 철저하게 요구하는 것은 그의 기술이나 능력이 아니라 순종이다.
여러분들이 서로를 세워주고, 또 성령 받은 대로 여러분들이 주님을 위해 사용되어질 때, 우리들의 미래는 더욱 활짝 열리게 될 것이다.
교육,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기도, 내가 복 빌어 기도해 준 저 아이들이···
귀중한 비전을 가져 보라.
어차피 한번 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 아니던가?
귀중한 직임에 헌신하여 서로를 헌신하고,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하며 사는 여러분이시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출처/ 김철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