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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를 분명히 알아야 성공합니다 (마 16:21-27)
오늘 마태복음 16장 21절에서 27절 말씀을 가지고 '정체를 분명히 알아야 성공합니다' 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립니다. 어제 저녁 때 방영된 동물의 세계를 보았습니다. 무당새와 향우새가 등장하는데 무당새가 열심히 집을 짓고 일을 낳습니다. 주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향우새가 무당새가 둥지를 비운 사이에 알을 하나 놓고 사라집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무당새가 알을 품고 새끼를 부화시켰는데 향우새가 새끼 때부터 큽니다. 열심히 물어 먹이는데 나중에 제 새끼는 향우새 새끼에게 먹이를 빼앗겨서 전부 굶어 죽고 치어 죽습니다. 결국 향우새 새끼만 키웠습니다. 그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제 새끼는 다 죽이고 원수의 새끼만 키웠습니다. 정체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의 가르침을 따라서 성경이 밝혀주는 이모저모의 정체를 한 번 살피고 정체를 분명히 알아야 우리 인생을 승리하고 믿음을 성공한다는 뜻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I. 사탄의 정체입니다 (21-23)
여러분 사탄 혹은 마귀는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먼저 천사들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천사들 중에는 일곱 천사장이 있고, 천사장 밑에는 또 역시 많은 천사들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전설과 우리 성경을 종합해 보면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루시퍼라고 하는 제사장 하나가 은연중에 자기도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다고 하는 생각을 가진 겁니다. 교만한 생각입니다. 어떻게 피조물이 하나님과 같아 질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대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루시퍼를 하늘 나라에서 축출해 버린 겁니다. 하늘 나라에서 루시퍼가 그 휘하에 있는 많은 천사들과 함께 축출 당해서 공중에 자리잡고 공중 권세를 잡은 자가 됩니다. 맨 우두머리인 루시퍼가 사탄 즉, 마귀라는 놈이요, 그 다음에는 그 중간 계층에 천사들이 악의 영들이 되고, 졸개들이 귀신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놈의 사탄과 악령들은 공중 권세를 잡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이간을 시키는 겁니다. 또 너와 나 사이에 권세를 잡고 역시 이간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마귀가 끼여들게 되면 부부 지간에도 사이가 벌어지고 싸움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 다음에 형제지간에도 이간질하므로 싸움이 일어나게 되고, 친구지간에도, 교인간에도 이간질을 합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을 멀리 하게 되고 이런 짓을 하는 것이 바로 사탄의 정체입니다. 이 사탄은 우리가 바로 알지 아니하면 영적인 싸움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탄은 우리와 타협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는 것이 사탄입니다. 우리가 그 정체를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을 바로 믿으며 바로 섬기며 믿음 생활 바로 하겠느냐 그런 얘기입니다.
그러면 본문으로 돌아가서 본문이 밝혀주는 사탄의 정체를 상고해 봅니다. 21절에서 23절까지입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시고 예수님이 사탄의 정체를 아주 정확히 꼬집어 밝혀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예루살렘에 있는 장로들, 대 제사장들 서기관들이 힘을 합해서 나를 붙잡고 나는 그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게 된다" 고 하셨습니다. 많은 고난을 받는 다는 말은 죽지 않을 정도로 매로 맞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죽임을 당하고 즉, 십자가에 죽으시고, 제 3일에 살아나리라고 말씀을 계속 했더니 베드로가 나서면서 "예수님을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그리하지 마옵소서 결단코 주에게 이런 일이 미치지 아니하리다" 라고 합니다. 주님이 얼마나 노여우신 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존재는 베드로 자체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사탄의 꼬임을 받아 마귀의 말을 대변하고 있다는 겁니다. 본문의 간하다라는 뜻이 뭡니까? 어른이 어린아이에게 타일러서 고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자기 주제에 누구를 붙들고 간합니까? 예수님이 누구신데 붙들고 타이르는 겁니까? 그리고 그리하지 말라, 그런 일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즉 사단은 예수님의 일을 반대하는 자입니다. 이처럼 사단의 꾀에 빠진 자도 교회의 일을 반대하곤 합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노여우신 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고 책망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네가 주제 파악도 못하고 누구를 타이르고 반대하느냐 그 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만민의 죄를 담당하시고 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어 구원하려고 오시지 않았습니까? 예수님 자신이 이렇게 해야 된다 하는데 왜 네가 나서서 그리 하라 말라 그러느냐? 라는 뜻입니다. 즉 만민 구속 사업을 못하게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동정해서 하는 말이지만 분명히 사탄의 말입니다. 믿음 생활은 우리가 예수님 뒤에 서서 따라가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예수님의 생활을 따르고 예수님의 모습을 뒤따라가면서 배우고 본받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수보다 앞서서 설치는 겁니다. 살짝 예수님과 위치를 바꾸어 버립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이래라 저래라합니다. 여러분 사탄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자세로 달려듭니다. 예를 들게 되면 먼저는 주의 일을 노골적으로 반대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잘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런 오류에 빠지게 합니다. 베드로가 시시하게 믿는 사람입니까? 제자들 중에서도 으뜸이라 자처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이런 짓과 이런 말을 했다는 말입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무엇을 가리킵니까?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는지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보이는 대로 다 달라고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안 주시려면 나를 불러가 주시옵소서라고 꼬리표를 붙입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기도입니까? 주님의 뜻은 내 알바 아니라 하고 또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상관이 없다는 자세입니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만 주시고 아니 주시려면 날 죽여 달라는 뜻 아닙니까? 아니 기도하는 사람이 누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겁니까? 잘 믿는 것 같아도 주님이 그렇게 섭섭해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에 알고 하는 것도 있고 심지어 모르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 주여 내가 이러 이러한 기도를 했지만 이것이 주의 뜻이라면 다 이루어 주시고 주님의 뜻이 아니라면 아니 주셔도 감사합니다. 주님 뜻이 이루어지이다 라고 해야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그런 것은 내 알바 아니라는 것이 아닙니까? 내 원하는 대로만 해 주시고 아니 주시려면 나를 죽여 달라고 하니 왜 주님께 이래라 저래라 합니까? 예수님보다 앞에 서면 안됩니다. 사탄은 이렇게 잘 믿는 것처럼 하면서 항상 예수 앞에 서서 구원하는 사역에 훼방을 놓습니다. 그 다음에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라고 하셔서 교회 앞에 거침돌이 됨을 밝혀 주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넘어지게 한다는 겁니다. 요즘말로 하자면 교회에 상처를 주고, 교회에 손해를 끼치는 존재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일을 망쳐 놓으려는 마귀는 지금 성도들의 믿음을 망쳐 놓으려고 합니다. 즉 교회에서 거침돌이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로 교회에 유익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기 이익만 챙기면서 교회에 손해를 주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입니다. 마귀 노릇 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입니까? 사탄은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않게 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게 하는 겁니다. 사람이 사람일을 생각하는데 뭐가 나쁩니까? 라고 할런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인자가 올 때 즉, 재림할 때의 상황은 노아 홍수 때의 상황과 똑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소돔이 불 심판 받을 때와 똑같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그들은 심판을 받기 전에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집을 짓다가 심하실 때 전부 망했다는 겁니다. 이 일곱 가지 생활은 우리들도 다하고 있지 않습니까? 일곱 가지 생활을 보면 어찌 망할 일이요. 심판 받을 일입니까? 그러나 그 생활로 심판 받을 이유는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집을 짓는 생활 중에서 "하나님" 소리가 어디 있습니까? 이 사람들은 하루 종일 그리고 일년이면 열 두달, 365일 동안 일곱 가지 생활만 생각했지 한번도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그렇게 괘씸하게 보셨습니다.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완전히 추방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일. 즉 인본주의. 인도주의라고 하는 것이 기독교 윤리요 도덕인 줄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일을 직접적으로 반대하고 나섭니다. 이어서 교회 일에 거침돌이 됩니다. 마지막에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인본주의 자입니다. 여러분 사탄의 정체가 이렇다는 것을 아시고 나도 사탄에게 유혹을 받고 있지 않나? 스스로 조심해야 됩니다. 사탄의 정체를 알아야 영적인 싸움에서 우리가 싸워 승리할 수 있습니다.
II. 제자의 정체입니다 (24-)
이 말씀은 믿는 사람의 정체 또는 성도의 정체라 그래도 좋습니다. 여러분들이 직장에 나갔을 때 혹은 일터에 나갔을 때 여러분의 정체를 완전히 밝혀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광성교회 성도 혹은 집사라고 자기의 정체를 밝히고 직장 생활을 해 보십시오. 이렇게 밝히고도 할 말 못 할말을 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할 짓 못할 짓도 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갈 데 못갈 데를 다 가는 교인이 있습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정체를 밝히지 말고 안 믿는 척하고 사는 게 오히려 나을런지 모릅니다. 얼마나 하나님께 욕을 돌립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말로 해도 좋고 행동으로 표현을 해도 좋습니다. 집사의 정체를 밝히고 집사다운 집사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24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예수님이 "믿는 사람은 바로 이렇게 산다 또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정체를 분명히 가르쳐주십니다. 첫째로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는 자입니다. 즉 믿는 사람은 예수님 앞에서 항상 나 자신을 부인하라는 겁니다. 예수님 앞에서 자꾸 나를 내세우면 뭐가 됩니까? 결국 예수님과 충돌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교회 앞에서 항상 나를 내세우고 내 생각만 내 생각이라고 주장하면 어떻게 합니까? 당회가 모였을 때, 혹은 제직회가 모이고, 각 부서가 모였을 때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라고 내 생각을 내세우면 "하나님의 생각"은 어떻게 된 겁니까? 교회에서 내 생각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모였다 하면 성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는 예수님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내세우고, 말씀을 내세우고, 하나님을 내세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자신을 부인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충돌이 생겨 믿음의 생활을 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 입니다. 자기십자가를 진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남의 십자가를 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의 경우를 보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예루살렘 거리에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즉 십자가에 처형되는 사람이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를 지고 공동묘지까지 가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십자가를 살기 위해서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서 지고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말씀은 너희도 목숨을 내놓고 나를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나를 따라오라 그런 말씀입니다. 십자가라는 건 그렇게 간단한 얘기가 아닙니다. 여러분 목 내놓고 사는 사람처럼 무서운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제 십자가를 지고, 순교적인 각오와 자세를 가지고 따르는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이요. 예수 믿는 믿음의 사람의 할 일이라는 뜻입니다. 즉 믿음의 사람의 정체는 이렇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나를 쫓을 것이니라'하여 제자는 예수 닮는 사람임을 가리킵니다. 나를 쫓다. 나를 따르다 하는 말씀은 "닮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믿음이 뭡니까?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겁니다. 십년을 믿고도 예수 닮은 데가 하나도 없다고 하면 그것은 헛 믿어도 진짜 헛 믿은 겁니다. 믿음이란 내가 예수님의 말을 닮아 가고, 예수님의 마음씨를 닮고, 예수님의 정신을 닮고, 예수님의 생활을 닮는 겁니다. 예수님이 정해 놓으신 목표, 나의 목표로 삼고 닮아 가는 겁니다.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삶이요. 이런 사람이 바로 제대로 믿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정체, 또는 제자의 정체라고 꼬집어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이 본문을 통해서 여러분 자신을 한 번 돌이켜 보십시오. 옆 사람 손가락질하면서 네가 들어야 할 말씀이다 라고 절대로 그러지 마십시오. 나는 지금 신자의 정체를 숨기고 사는가 밝히고 사는가 또 신자의 정체를 가지고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를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성도의 정체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서 바로 믿는 그 신앙으로써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III. 사람의 정체입니다 (25-27)
이것은 믿으나 안 믿으나 사람이라면 이렇게 살고 이래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묘한 존재입니다. 천사와 같은 영물도 아니고, 짐승과 같은 동물도 아닙니다. 천사와 같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적인 면도 있고 짐승과 똑같은 육신이 있어 이것을 함께 가진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살아가다 보면 천사의 경지로 자꾸 승화되어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는 사람도 있고 타락을 거듭하여 짐승의 경지까지 떨어지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은 참 묘합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제대로 된 사람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십니다. 25절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구원코자 하면 즉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잃으면 그 사람은 산다. 또는 구원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에 내 목숨을 투자하며 내 인생을 투자하고 살아야 되는지 분명히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본문은 무엇을 위해 살며, 어떻게 살며, 어떻게 죽어야 되며, 또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살 것인가를 분명히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얘기하면 인생은 바로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사람은 잘 사는 것 보다 바로 살아야 됩니다. 떼돈을 벌고 살면 잘 산다 그럽니다. 요즘 떼돈을 벌었지만 인생을 바로 살지 못하고 지탄을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난해도 인생은 바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자가 되고 인생을 바로 살면 더 좋은 겁니다. 본문이 바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인생을 바로 살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26-) 사람은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내 몸을 내가 귀히 여기지 않으면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귀히 여겨 주리라 생각하십니까? 나는 이렇게 귀한 몸 가졌다 생각하고 귀히 여겨야 됩니다. 그런데 왜 술 먹고 담배를 피워 귀한 몸을 망쳐 놓습니까?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 아내를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내가 귀하면 내 아내도 이웃도 천하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얼마나 인생의 존귀함을 가르쳐 주는 귀한 말씀입니까? 여러분은 귀한 존재입니다. 사람을 귀한 존재로 알고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7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각 사람이 행한 데로 갚는다는 말씀은 책임적 존재라는 겁니다. 사람은 책임질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짐승에게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반드시 책임을 묻는데 그 이유는 자유를 주셨기 까닭입니다. 여러분은 말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한 말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지십시오. 행동의 자유가 있습니다. 무슨 짓이라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행동에는 반드시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 책임을 물으십니다. 책임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살고 이런 존재라는 것을 알고 교인이 되기 전에 사람다운 사람이 먼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바르게 살고 귀하게 살고 책임 있게 사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사람다운 사람의 정체입니다. 이것을 알고 살아야 인생을 승리합니다.
우리는 정체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먼저 사단의 정체를 알아야 승리합니다. 사단은 직접 또는 간접으로 주의 일을 반대하고 훼방을 놓습니다. 또 교회에서 거침돌이 됩니다. 그리고 철저히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인본주의 자입니다. 그 다음에 성도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자기를 부인하는 자요. 자기 목숨을 주를 위해 내놓는 자요. 예수님을 닮아 가는 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인이기 이전에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하고 천하보다 귀한 줄 알아 귀히 살아야 하고 책임질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상에서 정체를 분명히 알아야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고 믿음이 생활도 승리하고 인생을 승리하게 됩니다.
출처/김창인목사 설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