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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행11:19-26)
행1:8-9에 따르면 부활하시고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계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시기 직전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아마도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또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리라는 것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행8:1에 보면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했고, 그 아래 4-8절에서는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남기신 말씀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루어지게 하실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매일의 구제에서 빠진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헬라파 사람 일곱을 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은혜와 권능과 지혜가 충만했던 스데반은 오래 사역하지 못하고 곧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 자신은 오래 사역하지 못했지만 그의 순교에 이어 전개된 상황은 그 혼자 오래 사역하며 거둘 수 있었을지 모르는 결실보다 훨씬 큰 복음의 확산을 불러왔습니다. 그 첫 결과가 스데반 다음으로 일곱 사람의 명단에 오른 빌립의 전도였습니다. 예루살렘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나자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는데 그 중 빌립이 사마리아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표적을 행하고 귀신들을 내쫓자 많은 사람이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며 크게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북쪽 사마리아로 갔던 빌립은 다시 주의 사자의 지시를 받아 남쪽으로 내려가서 에티오피아여왕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에게 예수를 가르치고 복음을 전한 후 세례를 주었으며(행8:26-38) 그 밖의 여러 성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행8:40). 그렇게 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주의 말씀이 현실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교회에 닥친 박해와 순교의 환난으로 인해 교회가 예루살렘 밖으로 퍼져나가고 유대인의 울타리를 벗어나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선교적 교회로 발전하는 새 시대가 열리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모교회인 예루살렘교회의 후견 아래 이방선교의 전초기지가 된 안디옥교회의 탄생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먼저 19-21절은 어떻게 안디옥에 복음이 전파되게 되었는지, 어떻게 이방인교회가 설립되게 되었는지 그 기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다음 22-24절은 모교회인 예루살렘교회가 이 신생교회를 돕기 위해 스데반처럼 훌륭한 일꾼인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함으로써 그 교회를 더욱 튼튼히 세우고 크게 성장시킨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그리고 25-26절에서는 크게 성장한 안디옥교회의 사역을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지자 바나바가 나중에 사도 바울이 된 사울을 동역자로서 데려옴으로써 안디옥교회가 더욱 크게 성장하며 거기서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생겨나고 그리스도의 교회의 세계선교를 위한 전진기지로서 든든한 발판을 다지게 됨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안디옥은 로마제국 전체에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세 번째 가는 도시였으며, 로마황제가 임명한 총독이 다스리는 수리아지방의 중심도시였습니다. 지중해연안으로부터 20마일 정도 내륙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남쪽으로는 팔레스타인과 이집트로 통하고, 동쪽으로는 페르시아로 통하며, 서쪽으로는 소아시아반도로 통하는 로마제국의 교통과 무역의 요충지로서 "동방의 여왕, 위대한 안디옥"이라고 불릴만한 도시였습니다. 안디옥은 동서의 문화가 뒤섞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세계를 향하여 퍼져나가기에 적절한 곳이었습니다. 거기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강력하게 자리 잡은 것입니다. 그리고 신실한 종 바나바와 위대한 사도 바울의 공동사역을 기초로 하여 교회가 튼튼히 서고 거기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생기며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사람들을 온 세상에 일어나게 하는 선교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 모교회와 후에 사도 바울이 개척하여 세운 모든 이방인교회들 사이에서 그 전략적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기 70년 예루살렘의 파괴 후에 기독교 안에서의 지도적 공백을 메운 교회가 또한 안디옥교회였습니다.
안디옥교회의 설립을 전후한 교회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됩니다. 예루살렘교회가 매일의 구제에서 빠진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의 문제로 잠시 술렁거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에 헬라파 사람 일곱을 세워 그 문제를 해결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 사람들을 헬라권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일곱 헬라파 사람 중 으뜸이었던 스데반이 곧 순교하는 시련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교회성장의 계기로 삼으셨습니다. 빌립이 당장 그를 대신하여 사마리아 선교에 나서게 하셨고, 스데반 같은 사람인 바나바를 들어 세우셨으며 그를 통해 이방선교의 전초기지가 된 안디옥교회를 성장시키셨습니다. 한편 교회의 가장 열성적인 박해자였던 청년 사울에게 손을 대셔서 그를 교회의 가장 위대한 선교자요 신학자로 돌려놓으셨고 바나바의 손을 통해 그를 안디옥에 오게 하셔서 안디옥교회를 근거지로 위대한 선교의 발걸음을 내딛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의 헌신과 수고가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다고 오늘 본문 21절은 밝히고 있습니다. "주의 손"이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권능과 선한 뜻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친히 그곳 사람들을 확신시키시고 설득시키심으로써 많은 사람이 믿고 주께로 돌아서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박해가 닥칠 때마다 교회성장과 복음확산의 기회로 삼으신 이도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굳건하게 믿음을 지키는 이들과 틀림없이 함께하심을 보여주셨으며, 사도들이 갇힐 때마다 천사를 보내셔서 구해내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서 그들의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하시고 그들의 믿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들을 더욱 크게 교회의 성장과 복음의 확산에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바쁘고 치밀하게 일하셨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사울의 눈을 멀게 하시고는 환상 중에 아나니아를 부르셔서 사울에게로 보내시고 그의 눈을 다시 뜨게 만드신 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라 증언하는 사도로 바꾸어놓으셨습니다(행9:10-22). 한편 베드로에게는 환상 가운데 하늘에서 내려오는 큰 보자기 같은 그릇 안에 든 각종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을 잡아먹으라 하시며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가르치심으로써 그가 이끄는 예루살렘교회가 앞으로 벌어질 이방인선교를 향해 마음을 활짝 열도록 미리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를 그에게 보내셔서 베드로로 하여금 환상 중에 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당장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알지 못하는 베드로와 고넬료가 각각 기도하고 있을 때에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이 서로 만나도록 친히 움직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대해 계속되는 박해에도 일일이 대응하셨습니다. 헤롯왕에 의해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순교를 당하고 베드로는 다시 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사자를 보내셔서 베드로를 기적적으로 탈옥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사자를 통해 헤롯을 치시고 벌레에 먹혀 죽게 하셨습니다. 감옥에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출옥하게 되는 일은 사도 바울에게도 행하셨습니다(행16:16-40).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도 바울에게 놀라운 방법으로 함께하심을 확신시키신 후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행18:9-10)이라 독려하시며 그를 더욱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굽힐 줄 모르는 사도들의 전도활동과 함께하셔서 그들이 가는 곳마다 기쁨을 일으키셨고(8:8, 13:48), 교회를 흥왕케 하셨습니다(9:31, 12:24, 13:49, 16:5, 19:20).
오늘 본문이 전하는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예루살렘교회를 비롯한 모든 새로운 교회의 놀라운 성장과 흥왕이 모두 하나님 자신이 친히 역사하신 결과였듯이 세계가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본 한국교회의 성장과 부흥도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도 함께하시며 강하게 역사하셨음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 가운데 살아계셔서 움직이고 계심을 확신하며, 이 사실로부터 위로와 용기와 기쁨과 복음전파의 의지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23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했다" 했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는 것은 사람들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놀랍게 살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안디옥의 교인들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고 권했습니다. 친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한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말고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은혜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굳건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역사는 사도와 신자들의 믿음과 선교의 열정과 더불어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와 바울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기적 같은 방법으로 그들을 구출해주셨듯이 우리 또한 온갖 위험으로부터 구해주실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들이 그러한 하나님의 함께하시고 구원하시는 손길을 확신하며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하신 말씀 따라 복음을 쉬지 않고 전했듯이 우리도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전해야할 말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한다는 것은 바로 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절대적인 신뢰와 전적인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하나님나라의 건설을 위해 신실한 일꾼들의 진리전파의 열정과 용기를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또 기억할 것은 환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각자와 교회에는 끊임없이 시험과 시련이 닥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끝날까지 마귀는 살아있을 것이며 그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성장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귀가 우리에게 행하는 시험과 시련 자체를 막으시기보다는 우리가 그 시험과 시련을 이기기를 원하시며 이기도록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귀를 피하기보다 하나님과 함께함으로써 그에게 맞서 싸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친히 놀랍게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교회가 흥왕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온 세상에 확장시키십니다. 우리를 하나님나라의 도구로 사용하시며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나라 확장의 기회로 삼으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도 음미해볼만 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그 이름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이들을 가리키며, 특히 비판과 비아냥을 섞어 붙인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입만 열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자나 깨나 예수 그리스도밖에 모르는 자들이란 말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딱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었던 말을 그리스도인들이 싫어하지 않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렇게 안디옥이라는 인종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도시에서, 굳건한 마음으로 주님을 떠나지 않으며, 신실한 말씀의 사도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편협한 민족주의에 사로잡혀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하는 말입니다. 주님께 붙어있기보다는 시류에 편승하고 세상권력을 두려워하며 그 권력에 아부하면서는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자격이 없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른 말씀의 양육을 받기를 기뻐하는 이들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수 있음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선교의 힘도 참 그리스도인 됨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 앞에서 우리 자신은 과연 어떠한지 곰곰이 되돌아보는 이번 사순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늘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하는 우리가 됩시다. 그래서 어디서나 참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그리고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교회가 됩시다.
출저/이수영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