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67
수지산성교회가 이 땅에 예수님의 핏값으로 세위진지 만 21년이 되었다. 갑작스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브라함처럼 순종하며 걸어온 지난 세월들이 까마득한 옛 이야기 같다.
경상북도 김천의 작은 시골마을에 교회를 개척하려는 계획을 강권적으로 바꾸셔서 서울 성내동의 지하실에 교회를 세우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시작된 목회사역은 정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한 걸음씩 나아간 아브라함의 길이었다.
오직 성경말씀대로 순종하다가 옆집 할아버지 내외의 오해를 사게 되고 결국 삼 년 만에 그 지역에서의 목회사역을 접고 당시 개발중이었던 분당 끝자락의 소형 임대 아파트 단지 내 상가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교회를 부흥시켜 주셨다.
당시의 오해 사건의 내용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다가 생긴 결과였다. 당시 사택이 연립주택의 반지하 였는데 몸이 아픈 성도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안수받기위해 교회와 사택으로 찾아 왔었다.
어떨때는 새벽 2시에도 찾아 오는데 그 여성도를 붙들고 기도하면 그 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이 발악을 하면서 엉엉 울기도 하고 빌면서 난리를 쳤다.
‘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 명령하면 앙칼진 목소리로 ‘안 가!’ 대꾸하면서 밤새도록 실갱이를 하다가 새벽기도를 가기로 했었다.
그런 일이 있던 날 오전에 아내와 함께 교회를 가기위해 집을 나서는데 마침 옆집에 사시는 할아버지 내외와 마주치게 되어 ‘안녕하세요?’ 하며 미소띤 얼굴로 인사를 했더니 그 분들이 인사를 받기는 커녕 우리 내외를 쳐다보면서 인상을 쓰고 외면 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동네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매일 밤마다 부부싸움을 하고 겉으로는 안 그런척 하는 가증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나는 그곳에서의 사역을 더 이상 계속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분당으로 교회를 이전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행동이 미련했지만 내 마음과 믿음의 중심을 아시는 우리 주님께서는 교회를 부흥시켜 주셔서 결국 이곳에 교회를 건축하게 하셨고 신도시로 바꿔 주시면서 오늘과 같은 목회를 하게 하셨다.
내가 만일 개척시절에 지혜롭게(?) 목회를 했었더라면 오늘의 내가 어떻게 쓰임받고 있을까? 과연 오늘의 나와 수지산성교회가 이 모습으로 존재 할 수 있었을까? 지금와서 돌이켜 보니 그때 미련할 정도로 순종했던 그 믿음이 더 더욱 그리워 진다. 왜 그럴까 ?
오! 주여
오해를 샀어도
그때의 그 미련함과 순수함이 그립나이다.
(주후 이천십일년 칠월 첫째 주)
경상북도 김천의 작은 시골마을에 교회를 개척하려는 계획을 강권적으로 바꾸셔서 서울 성내동의 지하실에 교회를 세우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시작된 목회사역은 정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한 걸음씩 나아간 아브라함의 길이었다.
오직 성경말씀대로 순종하다가 옆집 할아버지 내외의 오해를 사게 되고 결국 삼 년 만에 그 지역에서의 목회사역을 접고 당시 개발중이었던 분당 끝자락의 소형 임대 아파트 단지 내 상가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교회를 부흥시켜 주셨다.
당시의 오해 사건의 내용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다가 생긴 결과였다. 당시 사택이 연립주택의 반지하 였는데 몸이 아픈 성도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안수받기위해 교회와 사택으로 찾아 왔었다.
어떨때는 새벽 2시에도 찾아 오는데 그 여성도를 붙들고 기도하면 그 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이 발악을 하면서 엉엉 울기도 하고 빌면서 난리를 쳤다.
‘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 명령하면 앙칼진 목소리로 ‘안 가!’ 대꾸하면서 밤새도록 실갱이를 하다가 새벽기도를 가기로 했었다.
그런 일이 있던 날 오전에 아내와 함께 교회를 가기위해 집을 나서는데 마침 옆집에 사시는 할아버지 내외와 마주치게 되어 ‘안녕하세요?’ 하며 미소띤 얼굴로 인사를 했더니 그 분들이 인사를 받기는 커녕 우리 내외를 쳐다보면서 인상을 쓰고 외면 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동네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매일 밤마다 부부싸움을 하고 겉으로는 안 그런척 하는 가증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나는 그곳에서의 사역을 더 이상 계속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분당으로 교회를 이전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행동이 미련했지만 내 마음과 믿음의 중심을 아시는 우리 주님께서는 교회를 부흥시켜 주셔서 결국 이곳에 교회를 건축하게 하셨고 신도시로 바꿔 주시면서 오늘과 같은 목회를 하게 하셨다.
내가 만일 개척시절에 지혜롭게(?) 목회를 했었더라면 오늘의 내가 어떻게 쓰임받고 있을까? 과연 오늘의 나와 수지산성교회가 이 모습으로 존재 할 수 있었을까? 지금와서 돌이켜 보니 그때 미련할 정도로 순종했던 그 믿음이 더 더욱 그리워 진다. 왜 그럴까 ?
오! 주여
오해를 샀어도
그때의 그 미련함과 순수함이 그립나이다.
(주후 이천십일년 칠월 첫째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