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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문을 여는 축복 (말라기 3:7-12)
사람이 잘되며 행복 되게 사는 것은 우리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이 세상에 와서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하여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하는 이 확실한 약속은 확실히 지금 그 효력을 발생하는 중에 있습니다. 구원은 성도가 받는 가장 큰복입니다. 신자가 받은 구원의 축복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공로가 아니고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이올시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새 출발입니다. 그 새로운 삶의 행위이올시다. 그래서 신앙과 행위의 일치가 행복입니다.
신앙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은 그 행동으로 그 행위를 증명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가령 ①주일을 거룩히 지켜야 합니다. 주일은 축복이 쏟아지는 날입니다. ②전도하며 봉사해야 합니다.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복을 받게 하십니다. ③말씀을 배우며 가르쳐야 합니다. 성령충만 받고 능력 받습니다. ④성도간의 서로 교제하며 섬겨야 합니다.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행복을 받습니다. ⑤십일조와 헌금생활을 해야 합니다. 창고가 쌓을 곳이 없도록 물질의 복을 받습니다. ⑥믿음소망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⑦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감사 속에는 무수한 꽃이 만발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행복의 명령입니다.
오늘은 하늘 문을 열고 복을 부어주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그것은 물질 축복에 대한 약속입니다.
특별히 모든 축복가운에 저와 여러분이 세상에 살면서 먹는 것이나, 입는 것이나, 거하는 것이나, 자녀양육에나, 하고 싶은 어떤 모든 욕망의 필요 수단인 물질에 대해서, 특별히 잘 사는, 물질축복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은 그 물질축복에 대한 결정적인 하나님의 약속이 십일조라고 하는 표현으로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Ⅰ. 첫째로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축복의 명령은 역시 사람에게로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이 선하신 명령이 발동을 하고 있습니다.
1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라고 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라>고 거듭 연발함으로, 이 약속의 명령이 신실함을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명령이 신적인 산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명령은 책임 있는 명령임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성경이 이 사실을 거듭함으로 이 십일조 명령에 대한 축복의 확약이 하나님께서 보증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진실 무망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Ⅱ. 둘째로 십일조는 성경의 일관된 진리이올시다.
1) 모세 이전의 시대에도 십일조 진리는 살아 있었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성경의 최초 언급은 아브라함에게서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저 메소포타미아 왕국의 연합군에게 빼앗긴 조카 롯과 그의 가족과 재산과 소돔의 백성들과 재산을 도로 찾아 돌아 올 때, 개선장군 아브라함에게 두 임금님이 나와서 환영을 해 주었습니다.
한 임금님은 소돔의 왕이었던 사람입니다. 한 임금은 뜻밖에 처음 만나는 그 멜기세덱이라고 하는 살렘 왕의 환영이었습니다.
살렘 왕이 손을 들고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하면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너희를 축복하사 전쟁에서 승리케 하셨다>고 전승 원인을 알려줄 때에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가져온 전리품 가운데 십의 일조를 떼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에 이겼다고 하는 멜기세덱의 왕에게 들인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전쟁승리에 대한 아브라함의 감사 표현이었습니다.
2) 그 후에 야곱은 벧엘에서 십일조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야곱이 형을 피하여 밧담 아람으로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1800 여리가 넘는 외삼촌 집으로 도망하던 야곱이 사닥다리 계시를 통하여 자기에게 나타내신 하나님께 소원한 고백가운데 하나가 <내가 반듯이 부자가 되어서 돌아오면 그 얻은 소득의 십분지 일을 주님에게 받치겠다>고 한 사실은, 모세 이전세대에도 벌써 하나님께서 십일조 계시가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의 법치국가의 형성은 확실히 모세로부터 시작됩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 때에 일어날 생활 헌장들을 계시 받을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위하여 소득의 십일조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도록 법제화했습니다.
곡물과 포도주와 가축의 십일조를 받치고 징수하는 일은 그 다음 이스라엘 신전국가 시대에 왕들이 행할 중대한 정사중의 하나였습니다.
4) 신정국가 시대에 왕들은 이 십일조를 징수하여 왕국의 성소를 유지하고 관리하고 신령한 종교적인 행사를 집전하는데 아주 요긴한 재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히스기왕 같은 분은 십일조 징수를 훌륭하게 수행하여서 종교적인 목적을 잘 수행했습니다.
느헤미아 같은 지도다도 이 십일조 징수를 성실하게 수행해서 그 난국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인 제전을 아주 성실히 수행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왕들은 이러한 신성한 십일조를 악용하여 자기의 정치적인 목적이나 사리사욕에 오용함으로 하나님을 노엽게 한 일도 있습니다.
5) 십일조는 포로기와 포로기 후에도 행했습니다.
포로시기나 포로기 이후에 십일조 규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행할 거룩한 축복의 윤리요, 축복의 헌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타락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난 불 신앙과 우상숭배와, 이기주의 적인 탐욕과 탐심 때문에 어두움이 저희들의 영혼을 지배했을 때에, 저들은 이 축복의 명령을 시행하지 않거나 행하여도 외식적이요, 위선적인 종교형식에 얽매였습니다.
그 때 선지자들의 그 따가운 책망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구약은 전체적으로 십일조를 거룩한 성물로 하나님께 바쳐야 된다고 물질적인 규례를 명하고 있습니다.
6) 예수님도 십일조를 하셨을까? 호기심 있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일조를 했다>고 보는 것은 합당한 해석입니다.
마태복음 5:17절에 우리 예수님은 <내가 선지자나 율법을 폐하러 온 자가 아니고 나는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 십일조 율법을 지켰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을 파괴하러 온 자가 아니고 구약의 예언을 그는 완성하러 오신 분입니다. 예언의 성취 자로 오신 분입니다.
①그래서 예수님 자기 자신이 율법 아래 오셨고, 예수님이 결례를 행했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그는 절기를 지켰습니다.
②예수님이 성전 세금을 친히 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내야 되지만은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내야 된다고> 하는 구약의 성물을 구별시켰습니다.
③예수님은 바리세인들의 위선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세인들은 십일조를 잘 시행했습니다.
그때 우리 예수님은 바리세인들이 시행하는 십일조를 하지 말라고 않고,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십일조)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세인들은 십일조를 시행해야 될 뿐 아니라 또 율법의 더 중한바 인과 신을 의를 버리지 말아야 된다고 함으로 우리 예수님은 십일조를 인정했고 권장했고 자신이 십일조를 시행했다고 우리는 봅니다.
7) 또 우리에게 호기심 있는 질문은 오순절이후 시대에 교회시대가 십일조를 했는가?
초대 오순절 이후에 탄생한 교회가 십일조를 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의 답은 간단합니다. 사도행전 2장과 4장과 도처에서 신약시대는 그만 십일조 선이 그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십일조 제도가 없어진 것이 아니고, 십일조에서 더 나아가고 십일조 보다 10의 10을 바치는 십일조 선을 넘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초대 신자들은 자기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서 나누어주고 조금도 자기의 재산을 자기의 것으로 인정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신약교회는 십일조 선을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신약교회는 풍성 속에서 열기 있는 복음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8) 2000년 기독 교회역사는 십일조 때문에 교회가 수행하는 십일조 선교운동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국법을 좇아서 어떤 국가적인 법적으로 세금징수를 하는 단체는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유구한 교회 역사 운동의 섭리가운데는 하나님이 십일조라고 하는 헌금제도를 법제화함으로 당신의 복음운동이 예수님 오실 동안까지 이 운동이 착실하게 진행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복음전파 운동의 그 방편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에 은혜에 감사해 드리는 십일조와 여러 가지 감사 연보를 가지고 복음운동이 전개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십일조와 감사연보는 2000년 기독교를 존속시킨 또 하나의 이유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주님의 교회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귀한 십일조 연보나 가타 감사에 연보를 가지고 오늘 세계적인 기독교를 만드는데 공헌을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Ⅲ. 셋째로, 왜 하나님이 십일조를 하라고 명령을 했습니까?
1)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의 물질이나 육체는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표현입니다.
십일조를 받치라고 하는 말은 명령은 <10의 10이 너희 것이 아니고 내것인줄로 알아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소유권을 인정하라고 하는 주장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만물의 창조주요, 통치주요, 소유주임을 알리는 행위이올시다.
왜 우리가 십일조를 뗄 때 그 십일조를 뗄 때 우리가 100원 가운데 10원을 떼고, 1000원 가운데 100원을 뗄 대에 다른 90원도 너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푸른 하늘이, 파도치는 대양이, 꽃피는 봄이, 성장의 여름이, 그 황금만야의 가을이, 이렇게 백설로 설화를 피우는 이 기막힌 설경의 겨울이 하나님의 소유주, 하나님이 주인이다 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권을 우리에게 잊지 않도록 하는, 하나님이 이 만물의 주인임을,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식시키는 그 작업가운데 하나가 십일조를 받치는 것입니다.
돈을 뗄 때마다, 내가 돈을 만질 때마다 하나님의 것을 구별시키는 작업은 물질의 소유주를 잊지 말라고 하는 그러한 영적인 진리를 그 속에 작고 있는 것입니다.
2) 왜 하나님이 십일조를 명령했습니까? 사람은 재물에 대한 청지기임을 깨닫게 하는 말입니다.
청지기라고 하는 자기 것이 없습니다. 주인의 것을 맡은 자요, 주인의 뜻대로 관리하고, 보관하는 사람입니다.
청지기는 반듯이 주인의 뜻대로 사용한 결과를 주인과 더불어 마지막에 계산을 해야 될 자입니다. 인간은 청지기라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서 십일조를 받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3) 셋째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방편으로 십일조를 명령한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전리품을 멜기세덱에게 드릴 때에, 그것은 참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나로 하여금 승리케 해서 잃어버린 조카와 가족과 재산과 소돔의 거민을 찾아오게 하셨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삶에 대한 감사의 한 표현인 십일조입니다.
4) 왜 하나님이 십일조를 명령했습니까? 선민의 표식을 삼기 위함입니다.
십일조 생활은! 하나님 섬기는 사람의 외적 신앙고백과 사랑 고백의 한 표현입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표시, 하나님 섬기는 외적인 한 표적입니다.
이 비기독교 신자와 기독교 신자가 갈라지는 외적인 표현가운데 하나가 하나님 앞에 물질을 구별되게 하여 받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는 불신자와 신자가 갈라지는 한 외적인 표식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선민의 표식을 삼기 위한 방편으로 십일조를 명령한 것입니다.
5) 다섯 번째 큰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대로 불신자보 다 더 잘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세상에 살 동안,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남 보기에 구김이 없이 살고, 남 보기에 돈이 없어 초라하게 보이지 않고, 남에게 끌려 다니고 발에 밟히지 않고, 가난하게 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십일조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멋있게, 빛나게, 본때 있게 살게 하기 위해서 십일조 하라는 명령입니다.
물질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남의 머리가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십일조를 하라고 명령을 한 것입니다.
불신자들보다도 신자들이 더 잘산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잣집의 아들이 가난한 집의 아들보다 보기 안 좋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불신자들보다도 세상에서 육신적인 물질적인 생활이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 불신자보다도 더 잘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복 주시려고, 축복의 방편으로 십일조를 받치라고 한 것이 오늘 읽은 내용입니다.
6) 여섯째 사실상 십일조를 바치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동안 모두가 물질문제가 해결됩니다.
젊었을 때나, 학생 때나, 청년 때나, 노년 때에! 한 평생토록 어떤 물질의 고통 때문에 구박을 당하거나, 물질의 인색 때문에 환난을 당하는 일이 없습니다. 적어도 적어도 한평생 물질문제 때문에 고통을 달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함입니다.
Ⅳ. 넷째 십일조 명령을 불복하는 자 이 명령을 불복하는 자 성경은 무섭게 때렸습니다.
1) 십일조 명령에 불순종하는 사람을 도적이라고 했습니다.
말라기 3:8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도적질이 무엇입니까? <몰래 남의 것을 훔쳐오는 어두움의 수단입니다>. 십일조 명령의 불순종은 사람의 것에 대한 도적이 아니고, 적어도 그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아주 도둑치고는 상당하게 랭킹이 높은 도적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기 때문입니다.
2) 다음 둘째로 위선자라고 했습니다.
십일조 명령을 이행하지 아니한 자를 8절에 <또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이것보세요 간 크지요, 간 큽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바르게 말로 했습니다. 바르게 말로 했는데 도전하고 달라 들기를 <무엇이 어째고 어째, 목사 네가 건망지게 내가 언제 도적질하는 것 봤나?>하고 옛날에 선지자에게 달라 들듯이 오늘 신약시대에도 목사에게 달라 듭니다.
십일조하지 않는 사람이 언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느냐고 하는 사람은 위선자라 그 말입니다.
자기 양심과 싸우는 자입니다. 하나님과 시비를 거는 자입니다. 저들은 하나님과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판단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공공연하게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칼빈은 말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몰염치한 자라고 칼빈은 주석을 했습니다.
3) 셋째로 십일조 명령을 불복종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말라기 3:9절에 <너희 은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음으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참 무서운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저주라고 했습니다.
①그 저주는 하늘이 놋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늘이 놋이 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늘이 놋이 된다는 말은 <하늘이 가물어서 비가 오지 아니한다> 그 말입니다.
②그 저주는 <폐병과 열병과 추움과 더움과 학질과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때려 치는 것이라>고 그랬습니다. 난대 없는 재앙이 막 쏟아집니다.
③그 저주는 여자와 약혼을 했으나 다른 사람이 그 여자와 잠을 자는 것이라고 자기가 장가 갈려고 약혼을 했는데 진짜 결혼은 다른 놈한테 자기 애인을 빼앗겨 버립니다. 그것이 저주라고 했습니다.
④그 저주는 자기가 살려고 집을 건축했으나 살기는 다른 사람이 사는 것이라. 물론 집장사말고 자기가 살려고 원래 계획을 하고 집을 지었는데, 그 집을 형편이 안되어 팔아버리고 자기는 다른 집에 셋방살이하고 좋은 집은 남에게 팔았어요, 물론 집장사말고 그것을 저주라고 했습니다.
⑤ 그 저주는 포도원을 재배해서 과실을 먹으려고 재배했는데, 따먹기는 다른 사람이 따먹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⑥ 그 저주는 자기가 여러 사람 앞에서 자기목전에서 소를 잡았어요. 자기가 먹으려고 소를 잡았는데 죽도록 잡아서 요리를 해 놓으니까 먹기는 다른 사람의 입에 들어갑니다. 그것이 저주라고 했습니다.
다 된 고기, 다 잡아 논 고기 입에 들어가는 것까지도 하나님이 축복 안 하면 내 입에 못 들어온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은 여러분 따갑게 들어야 됩니다.
⑦ 또 저주는 양떼와 가축 때를 백주에 빼앗겨도 도와줄 사람이 안 생겼다는 것입니다. 밤에 잠잘 때 살그머니 도적놈이 와서 양을 몰고 가고 소를 몰고 가고 집에 금괴를 훔쳐 가는 것은 또 덜 원통합니다.
대낮에 백주에 목장에 괴한이 들어와서 양떼 소 때를 끌고 가는데 아무도 그 사람을 도와주지를 못해요, 그 사람이 물질적으로 얼마나 인심이 안 좋았던지 그게 저주라.
백주에 많은 사람이 보는 데서 자기 재산이 돈이 슬슬 나가는 것 그게 저주입니다.
⑧자녀와 토지 소산을 알지 못하는 다른 민족에게 빼앗겨 버립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가운데 일제시대에 여러분 우리가 다 뺏겼습니다. 우리청년들 실감이 없어요. 옛날에 고려 백제 신라시대 유적 당나라, 송나라, 원나라가 다 안 가져갔습니까?
①금을 바치다 바치다 바칠 것이 없으니까 모든 부처나 이런 금 다 띠어 가지고 대국에 중국 다 안 바쳤습니까?
②그래도 안되니까 처녀 공출! 처녀공출 아십니까? 처녀들을 다 잡아다가 잡아 잡수십시요 하고 딸들 안 보냈습니까?
내 딸 잡아 가지고 곰탕해 잡수라고 불고기 해 잡수라고 당나라에 원나라에 다 안 보냈습니까? 그것이 저주라 그 말입니다...
이런 무서운 재앙이 하나님의 율법에서 불순종에서 나온다고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본문의 경우도 보니까 <황충의 재앙이 와 가지고 열매를 맺자 못하도록 버러지가 와서 다 따먹어버린다>.
①곡식 밭에 와 가지고 열매를 다 종쳐 버리니 그러니 타작할 때 남는 게 없다 이 말입니다.
②죽도록 사업을 했는데 연말에 계산해 보면은 본전은 밑까 버리고 빚만 남고, 이자만 남고,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지요. 죽도록 땀을 흘렸는데 땀흘린 댓가가 없는 거예요. 이런 것은 우리가 따갑게 다 계산해 봐야 됩니다.
Ⅴ. 다섯째로 십일조 명령에 순종자입니다.
십일조 명령에 순종자에게 성경에 아주 따끔 따끔한 축복을 약속했습니다.
1) 첫째로 하늘의 문을 열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3:10절에 <너희가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그랬습니다.
여기 <하늘 문을 연다>함은 하나님이 대지 위에 때를 따라 비를 내려 주심을 뜻합니다. 늦은 비와, 이른 비와, 이슬비와, 소낙비와, 여러 가지 필요한 우로를 대지 위에 기온을 따라 적절하게 필요하게 보내주심을 가르칩니다. 이게 큰 축복입니다.
저주받은 하늘은 놋이 되고, 땅은 철이 된다고 했지만은, 축복을 받은 하늘은 열려지고 비가 내려 땅은 비를 맞아 기름지게 됩니다. 우로는 축복의 실재입니다. 또한 상징입니다.
하늘이 열려지지 아니하는 땅에는 한 송이의 꽃을 구경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열어주지 아니할 때 우리는 땅위에서 한 톨의 곡식을 만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하늘을 열어주지 아니할 때 우리는 땅위에서 한 포기의 풀을 구경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하늘의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주지 아니할 때 어찌 그 땅이 땅의 구실을 하겠습니까?
칼빈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열어주지 아니할 때 땅위의 창자들은 모두다- 말라 버릴 것이라>고 칼빈은 시적인 표현을 했습니다. 이 땅위에 나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든 초목을 사람 내장의 창자에 비유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비를 주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하늘에서 하늘의 문을 열어주지 아니하면! 이 땅의 모든 창자들이 말라죽을 거라고, 터져 죽을 거라고, 말라서 곪아서 죽을 것이라고 칼빈은 그렇게 주석을 하였습니다. 아주 멋있는 주석입니다.
그런데 십일조를 드리니까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 젖혀야 합니다. 오곡백과가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대기를 주장해야 됩니다.
2) 둘째로 십일조를 시행하는 자 두 번째 축복은 부어주는 축복입니다.
3:10절에 또 말하기를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너 <돈 한번 세바라- 돈 한번 세바라> 그것이 아니고, 아예 숫자적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부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쏟아 부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 <붓는다>말은! 옛날에 전쟁에 능통한 장군이 전통에 화살을 착 꽂았어요, 그런데 이 화살을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화살을 전통에서 뽑습니다. 장수가 전통에 꼬친 화살을 뽑는다. 왜 화살을 뽑아요? 원수를 겨누어서 쏠려고, 그때 화살은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그때 <뽑는다>고 하는 어원에서 나온 말이 붓는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장수가 화살을 뽑아서 적군을 격퇴시키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려고 축복의 화살을 뽑는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줄려고 축복의 열쇠를 뽑는다 그 말입니다. 이것이 부어주는 축복입니다.
3) 셋째로 쌓을 곳이 없도록 주는 축복입니다.
3:10절에 다시 말씀하기를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시험해봐라>.
여기 <쌓을 곳이 없다>는 말은 <요구함이 없을 때까지 준다, 끝없이 준다>는 말입니다. 만족, 충족, 충만의 계속적인 상태입니다. 무진장의 상태를 말합니다.
내 말이 아닙니다. 유흥준 이도 이 깊이의 말씀을 실지로 다 기억 못합니다. 아직도 인생을 덜 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일 마지막에 죽을 때 가서 계산해 보면 쌓을 곳이 없도록 계산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진리입니다. *쌓을 곳이 없도록 줍니다. 믿기를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아멘.
4) 넷째로 재앙에서 보호받는 축복입니다.
11절에서 또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며, 너희 토지의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안게 하리라>. 아주 기가 막힌, 아주 기가 막힌 피부적으로 와 닿는 표현입니다.
말하자면 한재 수재, 풍재, 충재, 천재에 여러 재앙에서 우리들의 농작물을 보호해 주시겠다 그 말입니다.
여기 <떨어지지 않게 한다든지, 멸하지 않게 한다>는 말은 침략자에게 약탈 탈취를 당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침략자가! ①자연적인 재앙일 수도 있고, ②그 침략자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① 우리 도시에서 공장하고 사업하는 사람들은 그 침략자가 내 사업에 내 돈을 부도내고 도망치는 그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내 돈 빌려 갔는데 안 갚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안아요. 내 공장의 물건을 다른데 팔아 도망치는 것, 예! 그래서 나를 헤치는 사람 이것이 다- 나를 해치는 황충 때들이지요
② 직장생활 같으면 내가 직장 생활해서 내가 직장 생활하는데 내 직장생활을 방해해 가지고 그 진급을 방해하고, 내 보수 규정에서 내가 손해를 보게 하고, 그런 뜻하지 아니한 인간 황충이 때가 날아와 가지고 나를 괴롭힙니다.
③또 아니면 *뜻하지 아니한 가정의 사고가 나가지고 돈을 쫄쫄 애통구멍으로 다 가져가 버리는 것.. 이런 것들에게서 보호해준다. 이런 침략자에게 침략을 당하지 안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5) 다섯째 축복이 무엇입니까? 자원의 축복입니다.
12절에 또 말하기를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땅이 아름다워진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땅이 아름다워진다는 말은 비옥한 땅, 기름진 땅, 생산력 소출력이 있는 땅이라는 말입니다.
땅이 자꾸 지어먹고, 또 농사짓고, 또 농사짓고 해도 땅이 계속해서 생산력이 있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원입니다. 자원의 축복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십일조의 약속을 지키면 우리 사업에, 자본이, 원금이 절대로 축이 안 난다 그 말입니다.
자꾸만 기본 금이, 자원이, 또 자본이 있어 가지고 회사가, 공장이, 여러분 직장이, 사업이 자꾸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저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자원의 축복입니다.
Ⅵ. 마지막으로 우리는 십일조를 어떻게 시행할 것인가?
1) 우리 성경은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라> 그랬습니다.
모든 유의 소득의 십일조, 고물이나, 짐승 등의 헌금의 십일조입니다.
<온전한 십일조>하면! 아이 목사님, 나는 월급을 80만원 받는데 그 80만원 가운데 내가 세금이 15만원 나갑니다. 우리 집에 떨어지는 것이 65만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65만원 아니고 우리 집에 떨어지는 것 중에 친구들 뭐 띠고, 뭐 띠고, 뭐 띠고 하면은 집에 실지로 58만원정도 도 안 떨어집니다.
그러면 목사님! 80만원 가운데 십일조를 내는 게 옳습니까? 집에 딱 도착한 59만원 가운데 십일조를 내는 게 좋습니까?
여러분! 무엇 하러 묻습니까? 그 묻는 게 적게 내려고 묻습니다. 심리적으로, 그렇지요?
아 80만원 가운데 십일조를 띠면 절대 안 물어요, 안 물어! 무엇인가 아깝고, 무엇인가 적게 내보려고, 무엇인가 좀 피해 보려고 하는 수단으로 그러지요 예,
80만원 받는데 세금 한 15만원 띠고, 제가 15만원 띠는가 모릅니다. 또 뭐띠고 뭐띠고 하고 집에 가지고 온 돈이 59만원 가지고 옵니다.
80만원 받아 가지고 59만원 가지고 오면 상당히 많이 가지고 오는 편이지요? 그러면 여러분! 59만원에서 십일조 냅니까? *80만원 중에 내세요. 80만원 중에,
많은 도수의 계산을 하라는 말입니다. 가능하면! 온전한 십일조!
2) 둘째로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바쳐야 됩니다.
성경은 본문에 계속해서 말하기를 <하나님의 것, 나의 것, 주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복을 합니다.
3:8절에, 십일조는 공금입니다. 하나님의 공금이요, 성물입니다. 사람자신에게 분활 권이 없습니다. 사용권이 없습니다. 공금은 공금으로 취급해야 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공금입니다.
이 돈 가지고, 주정헌금, 감사헌금, 선교헌금 건축헌금, 도 다른 교회도 보내주고 그러면 안됩니다. 분할권도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십일조가 하나님 것이면, 분활 권도 하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건망지게 하나님의 것을 띠어놓고 자기 맘대로 쓰는 것은 아주 나쁜 거예요. 그런 일은 손버릇이 안 좋다 그럽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내야지 뭐 이리 띠고 저리 띠고! 그 손버릇 안 좋은 십일조는 아주 안 좋은 것입니다.
3) 셋째로 자기 교회에 내야 됩니다.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는 말씀은 *반듯이 십일조는 자기가 설교를 먹는 자기 교회에 내야 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물질 축복을 누리는 축복의 수단으로 명한 것입니다.
십일조 하면 하늘이 열립니다. 땅이 열매를 맺습니다. 창고가 넘칩니다. 재앙이 물러갑니다. 자원이 풍부해 지는 약속의 명령입니다.
사람이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을 받습니다. 적어도 물질 축복은 받습니다. 구원과 관계없는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물질 축복을 받습니다. 믿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출처/유흥준 목사 설교 중에서
사람이 잘되며 행복 되게 사는 것은 우리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이 세상에 와서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하여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하는 이 확실한 약속은 확실히 지금 그 효력을 발생하는 중에 있습니다. 구원은 성도가 받는 가장 큰복입니다. 신자가 받은 구원의 축복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공로가 아니고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이올시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새 출발입니다. 그 새로운 삶의 행위이올시다. 그래서 신앙과 행위의 일치가 행복입니다.
신앙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은 그 행동으로 그 행위를 증명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가령 ①주일을 거룩히 지켜야 합니다. 주일은 축복이 쏟아지는 날입니다. ②전도하며 봉사해야 합니다.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복을 받게 하십니다. ③말씀을 배우며 가르쳐야 합니다. 성령충만 받고 능력 받습니다. ④성도간의 서로 교제하며 섬겨야 합니다.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행복을 받습니다. ⑤십일조와 헌금생활을 해야 합니다. 창고가 쌓을 곳이 없도록 물질의 복을 받습니다. ⑥믿음소망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⑦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감사 속에는 무수한 꽃이 만발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행복의 명령입니다.
오늘은 하늘 문을 열고 복을 부어주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그것은 물질 축복에 대한 약속입니다.
특별히 모든 축복가운에 저와 여러분이 세상에 살면서 먹는 것이나, 입는 것이나, 거하는 것이나, 자녀양육에나, 하고 싶은 어떤 모든 욕망의 필요 수단인 물질에 대해서, 특별히 잘 사는, 물질축복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은 그 물질축복에 대한 결정적인 하나님의 약속이 십일조라고 하는 표현으로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Ⅰ. 첫째로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축복의 명령은 역시 사람에게로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이 선하신 명령이 발동을 하고 있습니다.
1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라고 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라>고 거듭 연발함으로, 이 약속의 명령이 신실함을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명령이 신적인 산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명령은 책임 있는 명령임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성경이 이 사실을 거듭함으로 이 십일조 명령에 대한 축복의 확약이 하나님께서 보증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진실 무망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Ⅱ. 둘째로 십일조는 성경의 일관된 진리이올시다.
1) 모세 이전의 시대에도 십일조 진리는 살아 있었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성경의 최초 언급은 아브라함에게서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저 메소포타미아 왕국의 연합군에게 빼앗긴 조카 롯과 그의 가족과 재산과 소돔의 백성들과 재산을 도로 찾아 돌아 올 때, 개선장군 아브라함에게 두 임금님이 나와서 환영을 해 주었습니다.
한 임금님은 소돔의 왕이었던 사람입니다. 한 임금은 뜻밖에 처음 만나는 그 멜기세덱이라고 하는 살렘 왕의 환영이었습니다.
살렘 왕이 손을 들고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하면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너희를 축복하사 전쟁에서 승리케 하셨다>고 전승 원인을 알려줄 때에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가져온 전리품 가운데 십의 일조를 떼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에 이겼다고 하는 멜기세덱의 왕에게 들인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전쟁승리에 대한 아브라함의 감사 표현이었습니다.
2) 그 후에 야곱은 벧엘에서 십일조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야곱이 형을 피하여 밧담 아람으로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1800 여리가 넘는 외삼촌 집으로 도망하던 야곱이 사닥다리 계시를 통하여 자기에게 나타내신 하나님께 소원한 고백가운데 하나가 <내가 반듯이 부자가 되어서 돌아오면 그 얻은 소득의 십분지 일을 주님에게 받치겠다>고 한 사실은, 모세 이전세대에도 벌써 하나님께서 십일조 계시가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의 법치국가의 형성은 확실히 모세로부터 시작됩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 때에 일어날 생활 헌장들을 계시 받을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위하여 소득의 십일조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도록 법제화했습니다.
곡물과 포도주와 가축의 십일조를 받치고 징수하는 일은 그 다음 이스라엘 신전국가 시대에 왕들이 행할 중대한 정사중의 하나였습니다.
4) 신정국가 시대에 왕들은 이 십일조를 징수하여 왕국의 성소를 유지하고 관리하고 신령한 종교적인 행사를 집전하는데 아주 요긴한 재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히스기왕 같은 분은 십일조 징수를 훌륭하게 수행하여서 종교적인 목적을 잘 수행했습니다.
느헤미아 같은 지도다도 이 십일조 징수를 성실하게 수행해서 그 난국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인 제전을 아주 성실히 수행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왕들은 이러한 신성한 십일조를 악용하여 자기의 정치적인 목적이나 사리사욕에 오용함으로 하나님을 노엽게 한 일도 있습니다.
5) 십일조는 포로기와 포로기 후에도 행했습니다.
포로시기나 포로기 이후에 십일조 규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행할 거룩한 축복의 윤리요, 축복의 헌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타락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난 불 신앙과 우상숭배와, 이기주의 적인 탐욕과 탐심 때문에 어두움이 저희들의 영혼을 지배했을 때에, 저들은 이 축복의 명령을 시행하지 않거나 행하여도 외식적이요, 위선적인 종교형식에 얽매였습니다.
그 때 선지자들의 그 따가운 책망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구약은 전체적으로 십일조를 거룩한 성물로 하나님께 바쳐야 된다고 물질적인 규례를 명하고 있습니다.
6) 예수님도 십일조를 하셨을까? 호기심 있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일조를 했다>고 보는 것은 합당한 해석입니다.
마태복음 5:17절에 우리 예수님은 <내가 선지자나 율법을 폐하러 온 자가 아니고 나는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 십일조 율법을 지켰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을 파괴하러 온 자가 아니고 구약의 예언을 그는 완성하러 오신 분입니다. 예언의 성취 자로 오신 분입니다.
①그래서 예수님 자기 자신이 율법 아래 오셨고, 예수님이 결례를 행했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그는 절기를 지켰습니다.
②예수님이 성전 세금을 친히 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내야 되지만은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내야 된다고> 하는 구약의 성물을 구별시켰습니다.
③예수님은 바리세인들의 위선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세인들은 십일조를 잘 시행했습니다.
그때 우리 예수님은 바리세인들이 시행하는 십일조를 하지 말라고 않고,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십일조)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세인들은 십일조를 시행해야 될 뿐 아니라 또 율법의 더 중한바 인과 신을 의를 버리지 말아야 된다고 함으로 우리 예수님은 십일조를 인정했고 권장했고 자신이 십일조를 시행했다고 우리는 봅니다.
7) 또 우리에게 호기심 있는 질문은 오순절이후 시대에 교회시대가 십일조를 했는가?
초대 오순절 이후에 탄생한 교회가 십일조를 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의 답은 간단합니다. 사도행전 2장과 4장과 도처에서 신약시대는 그만 십일조 선이 그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십일조 제도가 없어진 것이 아니고, 십일조에서 더 나아가고 십일조 보다 10의 10을 바치는 십일조 선을 넘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초대 신자들은 자기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서 나누어주고 조금도 자기의 재산을 자기의 것으로 인정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신약교회는 십일조 선을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신약교회는 풍성 속에서 열기 있는 복음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8) 2000년 기독 교회역사는 십일조 때문에 교회가 수행하는 십일조 선교운동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국법을 좇아서 어떤 국가적인 법적으로 세금징수를 하는 단체는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유구한 교회 역사 운동의 섭리가운데는 하나님이 십일조라고 하는 헌금제도를 법제화함으로 당신의 복음운동이 예수님 오실 동안까지 이 운동이 착실하게 진행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복음전파 운동의 그 방편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에 은혜에 감사해 드리는 십일조와 여러 가지 감사 연보를 가지고 복음운동이 전개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십일조와 감사연보는 2000년 기독교를 존속시킨 또 하나의 이유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주님의 교회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귀한 십일조 연보나 가타 감사에 연보를 가지고 오늘 세계적인 기독교를 만드는데 공헌을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Ⅲ. 셋째로, 왜 하나님이 십일조를 하라고 명령을 했습니까?
1)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의 물질이나 육체는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표현입니다.
십일조를 받치라고 하는 말은 명령은 <10의 10이 너희 것이 아니고 내것인줄로 알아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소유권을 인정하라고 하는 주장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만물의 창조주요, 통치주요, 소유주임을 알리는 행위이올시다.
왜 우리가 십일조를 뗄 때 그 십일조를 뗄 때 우리가 100원 가운데 10원을 떼고, 1000원 가운데 100원을 뗄 대에 다른 90원도 너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푸른 하늘이, 파도치는 대양이, 꽃피는 봄이, 성장의 여름이, 그 황금만야의 가을이, 이렇게 백설로 설화를 피우는 이 기막힌 설경의 겨울이 하나님의 소유주, 하나님이 주인이다 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권을 우리에게 잊지 않도록 하는, 하나님이 이 만물의 주인임을,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식시키는 그 작업가운데 하나가 십일조를 받치는 것입니다.
돈을 뗄 때마다, 내가 돈을 만질 때마다 하나님의 것을 구별시키는 작업은 물질의 소유주를 잊지 말라고 하는 그러한 영적인 진리를 그 속에 작고 있는 것입니다.
2) 왜 하나님이 십일조를 명령했습니까? 사람은 재물에 대한 청지기임을 깨닫게 하는 말입니다.
청지기라고 하는 자기 것이 없습니다. 주인의 것을 맡은 자요, 주인의 뜻대로 관리하고, 보관하는 사람입니다.
청지기는 반듯이 주인의 뜻대로 사용한 결과를 주인과 더불어 마지막에 계산을 해야 될 자입니다. 인간은 청지기라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서 십일조를 받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3) 셋째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방편으로 십일조를 명령한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전리품을 멜기세덱에게 드릴 때에, 그것은 참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나로 하여금 승리케 해서 잃어버린 조카와 가족과 재산과 소돔의 거민을 찾아오게 하셨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삶에 대한 감사의 한 표현인 십일조입니다.
4) 왜 하나님이 십일조를 명령했습니까? 선민의 표식을 삼기 위함입니다.
십일조 생활은! 하나님 섬기는 사람의 외적 신앙고백과 사랑 고백의 한 표현입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표시, 하나님 섬기는 외적인 한 표적입니다.
이 비기독교 신자와 기독교 신자가 갈라지는 외적인 표현가운데 하나가 하나님 앞에 물질을 구별되게 하여 받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는 불신자와 신자가 갈라지는 한 외적인 표식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선민의 표식을 삼기 위한 방편으로 십일조를 명령한 것입니다.
5) 다섯 번째 큰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대로 불신자보 다 더 잘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세상에 살 동안,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남 보기에 구김이 없이 살고, 남 보기에 돈이 없어 초라하게 보이지 않고, 남에게 끌려 다니고 발에 밟히지 않고, 가난하게 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십일조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멋있게, 빛나게, 본때 있게 살게 하기 위해서 십일조 하라는 명령입니다.
물질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남의 머리가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십일조를 하라고 명령을 한 것입니다.
불신자들보다도 신자들이 더 잘산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잣집의 아들이 가난한 집의 아들보다 보기 안 좋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불신자들보다도 세상에서 육신적인 물질적인 생활이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 불신자보다도 더 잘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복 주시려고, 축복의 방편으로 십일조를 받치라고 한 것이 오늘 읽은 내용입니다.
6) 여섯째 사실상 십일조를 바치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동안 모두가 물질문제가 해결됩니다.
젊었을 때나, 학생 때나, 청년 때나, 노년 때에! 한 평생토록 어떤 물질의 고통 때문에 구박을 당하거나, 물질의 인색 때문에 환난을 당하는 일이 없습니다. 적어도 적어도 한평생 물질문제 때문에 고통을 달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함입니다.
Ⅳ. 넷째 십일조 명령을 불복하는 자 이 명령을 불복하는 자 성경은 무섭게 때렸습니다.
1) 십일조 명령에 불순종하는 사람을 도적이라고 했습니다.
말라기 3:8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도적질이 무엇입니까? <몰래 남의 것을 훔쳐오는 어두움의 수단입니다>. 십일조 명령의 불순종은 사람의 것에 대한 도적이 아니고, 적어도 그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아주 도둑치고는 상당하게 랭킹이 높은 도적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기 때문입니다.
2) 다음 둘째로 위선자라고 했습니다.
십일조 명령을 이행하지 아니한 자를 8절에 <또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이것보세요 간 크지요, 간 큽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바르게 말로 했습니다. 바르게 말로 했는데 도전하고 달라 들기를 <무엇이 어째고 어째, 목사 네가 건망지게 내가 언제 도적질하는 것 봤나?>하고 옛날에 선지자에게 달라 들듯이 오늘 신약시대에도 목사에게 달라 듭니다.
십일조하지 않는 사람이 언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느냐고 하는 사람은 위선자라 그 말입니다.
자기 양심과 싸우는 자입니다. 하나님과 시비를 거는 자입니다. 저들은 하나님과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판단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공공연하게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칼빈은 말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몰염치한 자라고 칼빈은 주석을 했습니다.
3) 셋째로 십일조 명령을 불복종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말라기 3:9절에 <너희 은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음으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참 무서운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저주라고 했습니다.
①그 저주는 하늘이 놋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늘이 놋이 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늘이 놋이 된다는 말은 <하늘이 가물어서 비가 오지 아니한다> 그 말입니다.
②그 저주는 <폐병과 열병과 추움과 더움과 학질과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때려 치는 것이라>고 그랬습니다. 난대 없는 재앙이 막 쏟아집니다.
③그 저주는 여자와 약혼을 했으나 다른 사람이 그 여자와 잠을 자는 것이라고 자기가 장가 갈려고 약혼을 했는데 진짜 결혼은 다른 놈한테 자기 애인을 빼앗겨 버립니다. 그것이 저주라고 했습니다.
④그 저주는 자기가 살려고 집을 건축했으나 살기는 다른 사람이 사는 것이라. 물론 집장사말고 자기가 살려고 원래 계획을 하고 집을 지었는데, 그 집을 형편이 안되어 팔아버리고 자기는 다른 집에 셋방살이하고 좋은 집은 남에게 팔았어요, 물론 집장사말고 그것을 저주라고 했습니다.
⑤ 그 저주는 포도원을 재배해서 과실을 먹으려고 재배했는데, 따먹기는 다른 사람이 따먹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⑥ 그 저주는 자기가 여러 사람 앞에서 자기목전에서 소를 잡았어요. 자기가 먹으려고 소를 잡았는데 죽도록 잡아서 요리를 해 놓으니까 먹기는 다른 사람의 입에 들어갑니다. 그것이 저주라고 했습니다.
다 된 고기, 다 잡아 논 고기 입에 들어가는 것까지도 하나님이 축복 안 하면 내 입에 못 들어온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은 여러분 따갑게 들어야 됩니다.
⑦ 또 저주는 양떼와 가축 때를 백주에 빼앗겨도 도와줄 사람이 안 생겼다는 것입니다. 밤에 잠잘 때 살그머니 도적놈이 와서 양을 몰고 가고 소를 몰고 가고 집에 금괴를 훔쳐 가는 것은 또 덜 원통합니다.
대낮에 백주에 목장에 괴한이 들어와서 양떼 소 때를 끌고 가는데 아무도 그 사람을 도와주지를 못해요, 그 사람이 물질적으로 얼마나 인심이 안 좋았던지 그게 저주라.
백주에 많은 사람이 보는 데서 자기 재산이 돈이 슬슬 나가는 것 그게 저주입니다.
⑧자녀와 토지 소산을 알지 못하는 다른 민족에게 빼앗겨 버립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가운데 일제시대에 여러분 우리가 다 뺏겼습니다. 우리청년들 실감이 없어요. 옛날에 고려 백제 신라시대 유적 당나라, 송나라, 원나라가 다 안 가져갔습니까?
①금을 바치다 바치다 바칠 것이 없으니까 모든 부처나 이런 금 다 띠어 가지고 대국에 중국 다 안 바쳤습니까?
②그래도 안되니까 처녀 공출! 처녀공출 아십니까? 처녀들을 다 잡아다가 잡아 잡수십시요 하고 딸들 안 보냈습니까?
내 딸 잡아 가지고 곰탕해 잡수라고 불고기 해 잡수라고 당나라에 원나라에 다 안 보냈습니까? 그것이 저주라 그 말입니다...
이런 무서운 재앙이 하나님의 율법에서 불순종에서 나온다고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본문의 경우도 보니까 <황충의 재앙이 와 가지고 열매를 맺자 못하도록 버러지가 와서 다 따먹어버린다>.
①곡식 밭에 와 가지고 열매를 다 종쳐 버리니 그러니 타작할 때 남는 게 없다 이 말입니다.
②죽도록 사업을 했는데 연말에 계산해 보면은 본전은 밑까 버리고 빚만 남고, 이자만 남고,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지요. 죽도록 땀을 흘렸는데 땀흘린 댓가가 없는 거예요. 이런 것은 우리가 따갑게 다 계산해 봐야 됩니다.
Ⅴ. 다섯째로 십일조 명령에 순종자입니다.
십일조 명령에 순종자에게 성경에 아주 따끔 따끔한 축복을 약속했습니다.
1) 첫째로 하늘의 문을 열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3:10절에 <너희가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그랬습니다.
여기 <하늘 문을 연다>함은 하나님이 대지 위에 때를 따라 비를 내려 주심을 뜻합니다. 늦은 비와, 이른 비와, 이슬비와, 소낙비와, 여러 가지 필요한 우로를 대지 위에 기온을 따라 적절하게 필요하게 보내주심을 가르칩니다. 이게 큰 축복입니다.
저주받은 하늘은 놋이 되고, 땅은 철이 된다고 했지만은, 축복을 받은 하늘은 열려지고 비가 내려 땅은 비를 맞아 기름지게 됩니다. 우로는 축복의 실재입니다. 또한 상징입니다.
하늘이 열려지지 아니하는 땅에는 한 송이의 꽃을 구경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열어주지 아니할 때 우리는 땅위에서 한 톨의 곡식을 만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하늘을 열어주지 아니할 때 우리는 땅위에서 한 포기의 풀을 구경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하늘의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주지 아니할 때 어찌 그 땅이 땅의 구실을 하겠습니까?
칼빈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열어주지 아니할 때 땅위의 창자들은 모두다- 말라 버릴 것이라>고 칼빈은 시적인 표현을 했습니다. 이 땅위에 나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든 초목을 사람 내장의 창자에 비유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비를 주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하늘에서 하늘의 문을 열어주지 아니하면! 이 땅의 모든 창자들이 말라죽을 거라고, 터져 죽을 거라고, 말라서 곪아서 죽을 것이라고 칼빈은 그렇게 주석을 하였습니다. 아주 멋있는 주석입니다.
그런데 십일조를 드리니까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 젖혀야 합니다. 오곡백과가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대기를 주장해야 됩니다.
2) 둘째로 십일조를 시행하는 자 두 번째 축복은 부어주는 축복입니다.
3:10절에 또 말하기를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너 <돈 한번 세바라- 돈 한번 세바라> 그것이 아니고, 아예 숫자적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부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쏟아 부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 <붓는다>말은! 옛날에 전쟁에 능통한 장군이 전통에 화살을 착 꽂았어요, 그런데 이 화살을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화살을 전통에서 뽑습니다. 장수가 전통에 꼬친 화살을 뽑는다. 왜 화살을 뽑아요? 원수를 겨누어서 쏠려고, 그때 화살은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그때 <뽑는다>고 하는 어원에서 나온 말이 붓는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장수가 화살을 뽑아서 적군을 격퇴시키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려고 축복의 화살을 뽑는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줄려고 축복의 열쇠를 뽑는다 그 말입니다. 이것이 부어주는 축복입니다.
3) 셋째로 쌓을 곳이 없도록 주는 축복입니다.
3:10절에 다시 말씀하기를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시험해봐라>.
여기 <쌓을 곳이 없다>는 말은 <요구함이 없을 때까지 준다, 끝없이 준다>는 말입니다. 만족, 충족, 충만의 계속적인 상태입니다. 무진장의 상태를 말합니다.
내 말이 아닙니다. 유흥준 이도 이 깊이의 말씀을 실지로 다 기억 못합니다. 아직도 인생을 덜 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일 마지막에 죽을 때 가서 계산해 보면 쌓을 곳이 없도록 계산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진리입니다. *쌓을 곳이 없도록 줍니다. 믿기를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아멘.
4) 넷째로 재앙에서 보호받는 축복입니다.
11절에서 또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며, 너희 토지의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안게 하리라>. 아주 기가 막힌, 아주 기가 막힌 피부적으로 와 닿는 표현입니다.
말하자면 한재 수재, 풍재, 충재, 천재에 여러 재앙에서 우리들의 농작물을 보호해 주시겠다 그 말입니다.
여기 <떨어지지 않게 한다든지, 멸하지 않게 한다>는 말은 침략자에게 약탈 탈취를 당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침략자가! ①자연적인 재앙일 수도 있고, ②그 침략자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① 우리 도시에서 공장하고 사업하는 사람들은 그 침략자가 내 사업에 내 돈을 부도내고 도망치는 그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내 돈 빌려 갔는데 안 갚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안아요. 내 공장의 물건을 다른데 팔아 도망치는 것, 예! 그래서 나를 헤치는 사람 이것이 다- 나를 해치는 황충 때들이지요
② 직장생활 같으면 내가 직장 생활해서 내가 직장 생활하는데 내 직장생활을 방해해 가지고 그 진급을 방해하고, 내 보수 규정에서 내가 손해를 보게 하고, 그런 뜻하지 아니한 인간 황충이 때가 날아와 가지고 나를 괴롭힙니다.
③또 아니면 *뜻하지 아니한 가정의 사고가 나가지고 돈을 쫄쫄 애통구멍으로 다 가져가 버리는 것.. 이런 것들에게서 보호해준다. 이런 침략자에게 침략을 당하지 안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5) 다섯째 축복이 무엇입니까? 자원의 축복입니다.
12절에 또 말하기를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땅이 아름다워진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땅이 아름다워진다는 말은 비옥한 땅, 기름진 땅, 생산력 소출력이 있는 땅이라는 말입니다.
땅이 자꾸 지어먹고, 또 농사짓고, 또 농사짓고 해도 땅이 계속해서 생산력이 있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원입니다. 자원의 축복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십일조의 약속을 지키면 우리 사업에, 자본이, 원금이 절대로 축이 안 난다 그 말입니다.
자꾸만 기본 금이, 자원이, 또 자본이 있어 가지고 회사가, 공장이, 여러분 직장이, 사업이 자꾸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저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자원의 축복입니다.
Ⅵ. 마지막으로 우리는 십일조를 어떻게 시행할 것인가?
1) 우리 성경은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라> 그랬습니다.
모든 유의 소득의 십일조, 고물이나, 짐승 등의 헌금의 십일조입니다.
<온전한 십일조>하면! 아이 목사님, 나는 월급을 80만원 받는데 그 80만원 가운데 내가 세금이 15만원 나갑니다. 우리 집에 떨어지는 것이 65만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65만원 아니고 우리 집에 떨어지는 것 중에 친구들 뭐 띠고, 뭐 띠고, 뭐 띠고 하면은 집에 실지로 58만원정도 도 안 떨어집니다.
그러면 목사님! 80만원 가운데 십일조를 내는 게 옳습니까? 집에 딱 도착한 59만원 가운데 십일조를 내는 게 좋습니까?
여러분! 무엇 하러 묻습니까? 그 묻는 게 적게 내려고 묻습니다. 심리적으로, 그렇지요?
아 80만원 가운데 십일조를 띠면 절대 안 물어요, 안 물어! 무엇인가 아깝고, 무엇인가 적게 내보려고, 무엇인가 좀 피해 보려고 하는 수단으로 그러지요 예,
80만원 받는데 세금 한 15만원 띠고, 제가 15만원 띠는가 모릅니다. 또 뭐띠고 뭐띠고 하고 집에 가지고 온 돈이 59만원 가지고 옵니다.
80만원 받아 가지고 59만원 가지고 오면 상당히 많이 가지고 오는 편이지요? 그러면 여러분! 59만원에서 십일조 냅니까? *80만원 중에 내세요. 80만원 중에,
많은 도수의 계산을 하라는 말입니다. 가능하면! 온전한 십일조!
2) 둘째로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바쳐야 됩니다.
성경은 본문에 계속해서 말하기를 <하나님의 것, 나의 것, 주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복을 합니다.
3:8절에, 십일조는 공금입니다. 하나님의 공금이요, 성물입니다. 사람자신에게 분활 권이 없습니다. 사용권이 없습니다. 공금은 공금으로 취급해야 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공금입니다.
이 돈 가지고, 주정헌금, 감사헌금, 선교헌금 건축헌금, 도 다른 교회도 보내주고 그러면 안됩니다. 분할권도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십일조가 하나님 것이면, 분활 권도 하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건망지게 하나님의 것을 띠어놓고 자기 맘대로 쓰는 것은 아주 나쁜 거예요. 그런 일은 손버릇이 안 좋다 그럽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내야지 뭐 이리 띠고 저리 띠고! 그 손버릇 안 좋은 십일조는 아주 안 좋은 것입니다.
3) 셋째로 자기 교회에 내야 됩니다.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는 말씀은 *반듯이 십일조는 자기가 설교를 먹는 자기 교회에 내야 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물질 축복을 누리는 축복의 수단으로 명한 것입니다.
십일조 하면 하늘이 열립니다. 땅이 열매를 맺습니다. 창고가 넘칩니다. 재앙이 물러갑니다. 자원이 풍부해 지는 약속의 명령입니다.
사람이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을 받습니다. 적어도 물질 축복은 받습니다. 구원과 관계없는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물질 축복을 받습니다. 믿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출처/유흥준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