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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도리 (마태복음 20:20~28)
한번은 세베대의 아내가 자기 아들인 요한과 야고보를 예수님의 좌, 우편에 앉게 하여 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언젠가는 예수님께서 세상의 권세를 잡으실 날이 있을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의 집권자들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권세를 부리는 것으로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예수님의 제자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고 스스로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어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섬기는 자의 도리는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그 대상이나 방법이나 목적이 완전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사람 곧 상전이나 권세자를 섬기지만 예수님께서는 낮은 사람, 또는 죄인을 섬김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 방법도 사람들은 법이나 형식에 의하여 섬기지만 예수님은 사랑과 희생으로 섬기십니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섬겨주므로 자기에게 돌아오는 유익을 목적으로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섬김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생명과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섬김의 도리를 실천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종으로 자처하여 섬기기를 잘하는 사람을 큰 자요 으뜸 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성도가 섬겨야 될 대상과 방법,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I.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경배의 대상임을 일러줍니다(출 20:3).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 때 이는 다른 어떤 대상과도 비교될 수 없는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경배하는 것을 뜻합니다. 신명기 10:12-13에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1) 유일하신 주권자입니다.
이사야 43:1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 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 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43:21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자기 소유로 삼았다는 것과 또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경배하게 하는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롬 11:36).
(2) 구원하신 분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을 회고 하면서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신 33:29).
하나님의 구원은 그의 본성인 사랑이 작용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 바로 왕의 속박을 끊고 구원하여 내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 20:1-2). 또 한 가지는 유대 왕국의 멸망과 함께 바벨론 포로생활을 할 때 하나님의 구원이 작동되었습니다. 시편 126:1에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고 하며 그 때의 감격을 노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구약시대의 구원 역사는 사실상 죄와 죽음에 얽매인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롬 8:1-2).
(3)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신명기 11:26에는 하나님께서 복과 저주를 그 백성에게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곧 하나님만이 모든 복의 근원자가 되심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에 따라 하나님을 잘 섬기게 되면 약속하신 모든 복을 자자손손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1:11에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28:1-2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Ⅱ.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12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였습니다.
(1) 부모는 공경의 대상입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시 34:11)과 구별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하는 말은 종교적인 용어로써 경배의 대상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전 12:13). 그러나 여기 부모를 공경(恭敬)한다고 할 때 이는 신적인 대상이 아니라 인간적인 요소에서 최상의 존경과 섬김을 뜻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공경이라는 말(카베드 : ך)은 “무겁다”는 뜻이 있습니다. 히브리말에 사람의 몸 안에 있는 간장(肝臟)을 카베드라고 하는데 이렇게 보면 인체의 기관 중 간장이 소중한 것처럼 사람에게 있어서 부모의 위치나 그 존재가 매우 귀하고 소중히 여김을 받아야 된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있어서 부모는 자기를 세상에 있게 해준 근본이기 때문에 소중합니다. 잠언 23:25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2)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에베소서 6:1-2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십계명 중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다섯 번째 계명입니다. 그 중에도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께 관계된 계명이고,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져야 될 대인윤리(對人倫理)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인간윤리 중 그 첫 번째 되는 비중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첫 계명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반포하신 계명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선택사양이 아닙니다. 반드시 지켜야 되고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명령이요 법칙입니다. 에베소서 6:1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하신 말씀도 따지고 보면 “주 안에서”라고 했으니 이는 하나님의 법도 안에서라는 의미이며 또 “이것이 옳으니라”고 하여 마땅한 도리임을 천명한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자기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하나님께 대한 신앙 행위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세의 현상 중 부모를 거역하는 행위를 지적하였고(딤후 3:2),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핑계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은 자를 준엄하게 책망하셨습니다(막 7:11-13).
(3) 효도 하는 자에게 축복이 있습니다.
모세가 준 율법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였습니다(출 20:12). 이 말씀을 근거하여 사도 바울은 효도를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 하고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엡 6:3).
전도서 12:13에는 “일의 결국은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그 명령을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며 또한 그것이 수 천대까지 이르도록 보장하였습니다(신 28:1-6).
사도 요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진리 안에 행하는 사람에게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하였습니다(요3서 1:2).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부모 공경을 잘 하는 사람에게 약속된 축복 중 잘 된다는 것은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모든 행사가 형통케 되는 것을 뜻합니다(시 1:1-3).
그리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한 것은 나이 많도록 오래 산다는 것 도 되지만 그보다도 자자손손 대를 이어가며 하나님 앞에서 복된 삶을 산다는 뜻이 있는 말입니다(렘 35:19).
Ⅲ. 어른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공경하여야 될 대상은 부모님 외에도 스승이나 웃어른들이 포함됩니다. 옛날 사람들은 군사부(君師父)라고 하여 나라의 임금과 자기를 가르친 스승과 부모를 동열에 올려놓고 공경하게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에서 섬김의 본분을 다하여야 합니다.
어느 때나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그가 속한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기의 위치를 지켜야만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산상보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고 섬김을 통하여 나타내어야 할 사명을 강조하였습니다.
(1) 그리스도인의 소양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모나 가족에게 그리고 선배나 스승으로부터 도움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라도 자기가 존경하고 감사해야 될 대상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요즘처럼 각박한 시대를 살다보면 많은 사람이 자기의 기준에서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선배도 스승도 무시해 버리고 노인들을 홀대하는 잘못된 풍조가 만연해 진 것입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소양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6에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2:3에는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2) 어른을 공경할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의 부모나 친척이 아니라도 나이 많은 사람을 존경하며 섬겨야 됩니다. 레위기 19:32에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5:1에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하라”고 하였습니다. 5:2에는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을 섬기고 노인을 공경하는 것은 그들의 생애와 이루어 놓은 일들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비록 남겨 놓은 업적이 자랑스럽지 못하다 하더라도 그 시대와 그 환경에서 어렵사리 세상을 극복하며 자기소임을 다했다는 점에서 평가해 주어야만 합니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지난날의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라도 기반이 세워졌고 또 더 나은 내일을 희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만 됩니다. 과거를 부정하는 사람에게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것이며, 선배나 어른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누구도 존경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섬김의 도리를 실천할 때만이 사회적인 통합과 국가적인 발전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뛰어난 지도력을 행사하는 것 같아도 도덕과 윤리를 무너뜨리고는 건전한 사회를 이룰 수 없는 법입니다. 역사적으로 인류 공동체에 있어서 하나님이 정하신 순리와 질서가 지켜질 때 비로소 평화와 번영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처/손상률목사 설교 중에서
한번은 세베대의 아내가 자기 아들인 요한과 야고보를 예수님의 좌, 우편에 앉게 하여 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언젠가는 예수님께서 세상의 권세를 잡으실 날이 있을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의 집권자들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권세를 부리는 것으로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예수님의 제자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고 스스로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어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섬기는 자의 도리는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그 대상이나 방법이나 목적이 완전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사람 곧 상전이나 권세자를 섬기지만 예수님께서는 낮은 사람, 또는 죄인을 섬김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 방법도 사람들은 법이나 형식에 의하여 섬기지만 예수님은 사랑과 희생으로 섬기십니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섬겨주므로 자기에게 돌아오는 유익을 목적으로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섬김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생명과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섬김의 도리를 실천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종으로 자처하여 섬기기를 잘하는 사람을 큰 자요 으뜸 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성도가 섬겨야 될 대상과 방법,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I.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경배의 대상임을 일러줍니다(출 20:3).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 때 이는 다른 어떤 대상과도 비교될 수 없는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경배하는 것을 뜻합니다. 신명기 10:12-13에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1) 유일하신 주권자입니다.
이사야 43:1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 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 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43:21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자기 소유로 삼았다는 것과 또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경배하게 하는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롬 11:36).
(2) 구원하신 분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을 회고 하면서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신 33:29).
하나님의 구원은 그의 본성인 사랑이 작용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 바로 왕의 속박을 끊고 구원하여 내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 20:1-2). 또 한 가지는 유대 왕국의 멸망과 함께 바벨론 포로생활을 할 때 하나님의 구원이 작동되었습니다. 시편 126:1에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고 하며 그 때의 감격을 노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구약시대의 구원 역사는 사실상 죄와 죽음에 얽매인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롬 8:1-2).
(3)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신명기 11:26에는 하나님께서 복과 저주를 그 백성에게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곧 하나님만이 모든 복의 근원자가 되심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에 따라 하나님을 잘 섬기게 되면 약속하신 모든 복을 자자손손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1:11에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28:1-2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Ⅱ.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12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였습니다.
(1) 부모는 공경의 대상입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시 34:11)과 구별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하는 말은 종교적인 용어로써 경배의 대상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전 12:13). 그러나 여기 부모를 공경(恭敬)한다고 할 때 이는 신적인 대상이 아니라 인간적인 요소에서 최상의 존경과 섬김을 뜻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공경이라는 말(카베드 : ך)은 “무겁다”는 뜻이 있습니다. 히브리말에 사람의 몸 안에 있는 간장(肝臟)을 카베드라고 하는데 이렇게 보면 인체의 기관 중 간장이 소중한 것처럼 사람에게 있어서 부모의 위치나 그 존재가 매우 귀하고 소중히 여김을 받아야 된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있어서 부모는 자기를 세상에 있게 해준 근본이기 때문에 소중합니다. 잠언 23:25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2)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에베소서 6:1-2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십계명 중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다섯 번째 계명입니다. 그 중에도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께 관계된 계명이고,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져야 될 대인윤리(對人倫理)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인간윤리 중 그 첫 번째 되는 비중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첫 계명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반포하신 계명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선택사양이 아닙니다. 반드시 지켜야 되고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명령이요 법칙입니다. 에베소서 6:1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하신 말씀도 따지고 보면 “주 안에서”라고 했으니 이는 하나님의 법도 안에서라는 의미이며 또 “이것이 옳으니라”고 하여 마땅한 도리임을 천명한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자기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하나님께 대한 신앙 행위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세의 현상 중 부모를 거역하는 행위를 지적하였고(딤후 3:2),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핑계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은 자를 준엄하게 책망하셨습니다(막 7:11-13).
(3) 효도 하는 자에게 축복이 있습니다.
모세가 준 율법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였습니다(출 20:12). 이 말씀을 근거하여 사도 바울은 효도를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 하고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엡 6:3).
전도서 12:13에는 “일의 결국은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그 명령을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며 또한 그것이 수 천대까지 이르도록 보장하였습니다(신 28:1-6).
사도 요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진리 안에 행하는 사람에게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하였습니다(요3서 1:2).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부모 공경을 잘 하는 사람에게 약속된 축복 중 잘 된다는 것은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모든 행사가 형통케 되는 것을 뜻합니다(시 1:1-3).
그리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한 것은 나이 많도록 오래 산다는 것 도 되지만 그보다도 자자손손 대를 이어가며 하나님 앞에서 복된 삶을 산다는 뜻이 있는 말입니다(렘 35:19).
Ⅲ. 어른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공경하여야 될 대상은 부모님 외에도 스승이나 웃어른들이 포함됩니다. 옛날 사람들은 군사부(君師父)라고 하여 나라의 임금과 자기를 가르친 스승과 부모를 동열에 올려놓고 공경하게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에서 섬김의 본분을 다하여야 합니다.
어느 때나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그가 속한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기의 위치를 지켜야만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산상보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고 섬김을 통하여 나타내어야 할 사명을 강조하였습니다.
(1) 그리스도인의 소양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모나 가족에게 그리고 선배나 스승으로부터 도움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라도 자기가 존경하고 감사해야 될 대상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요즘처럼 각박한 시대를 살다보면 많은 사람이 자기의 기준에서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선배도 스승도 무시해 버리고 노인들을 홀대하는 잘못된 풍조가 만연해 진 것입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소양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6에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2:3에는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2) 어른을 공경할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의 부모나 친척이 아니라도 나이 많은 사람을 존경하며 섬겨야 됩니다. 레위기 19:32에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5:1에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하라”고 하였습니다. 5:2에는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을 섬기고 노인을 공경하는 것은 그들의 생애와 이루어 놓은 일들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비록 남겨 놓은 업적이 자랑스럽지 못하다 하더라도 그 시대와 그 환경에서 어렵사리 세상을 극복하며 자기소임을 다했다는 점에서 평가해 주어야만 합니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지난날의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라도 기반이 세워졌고 또 더 나은 내일을 희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만 됩니다. 과거를 부정하는 사람에게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것이며, 선배나 어른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누구도 존경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섬김의 도리를 실천할 때만이 사회적인 통합과 국가적인 발전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뛰어난 지도력을 행사하는 것 같아도 도덕과 윤리를 무너뜨리고는 건전한 사회를 이룰 수 없는 법입니다. 역사적으로 인류 공동체에 있어서 하나님이 정하신 순리와 질서가 지켜질 때 비로소 평화와 번영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처/손상률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