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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세금 (마태복음 17장 24~27절)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깥에서 베드로에게 일어난 일들을 벌써 다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가 세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예수님은 이미 베드로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야 너 갈릴리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라. 그리고 잡아 올려지는 고기의 입을 보면 한 세겔의 돈이 있을 것이다. 그 돈을 가지고 너와 나를 위해서 세금으로 바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길을 가다가 갈릴리 호수에다가 한 세겔 되는 동전을 빠뜨려야 합니다. 그리고 동전이 떨어져 진흙 속에 파뭍히기 전에 물고기가 동전을 집어 먹어야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물고기가 그 동전을 배 속에 삼키기 전에 베드로가 던진 낚시 바늘에 물고기가 걸려야 합니다.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하나님이 아니면 될 수가 없는 사건입니다. 모든 사건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바로 모든 만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하니까 많은 고기가 잡혔어요. 마가복음 11장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저 건너편 마을에 가서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가 있으니까 나귀를 데리고 와라.” 정말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가 있었습니다. 베드로에게 말씀하기를 “네가 오늘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말씀대로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 그날 새벽에 예수님은 모든 짐승을 잠잠케 한 뒤에 닭 한 마리를 통해서 울게 했습니다.
“베드로야, 갈릴리 호수에 가서 낚싯대를 던져라. 그러면 한 세겔을 물고 있는 고기가 잡힐 것이다.” 물속에 있는 고기들까지 다스리시는 예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잃어버린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다시금 만물을 다스리는 왕의 자리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가 왜 성전의 세금인 한 세겔을 못 냈을까? 돈이 없어서 못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만물의 주인이시고 부유하신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되심은 너희를 부요케 하시려고 가난하게 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왜 성전세를 낼만한 돈이 없을 만큼 가난해지셨느냐? 우리를 이같이 풍성하게 살게 하시려고 가난하게 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섬김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형성될 당시에는 헬라문화와 사상이 중동지방 전체를 다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헬라사상의 특징은 이분법입니다. 우리 몸도 영과 육으로 구분하고 영은 거룩하고 몸은 더러운 것으로 나눕니다. 모든 세상을 선과 악으로 이분법으로 나누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흑백논리가 만연했는데 나는 옳으면 너는 항상 틀린 것이 되고 네가 옳다면 내가 틀린 것이 됩니다. 그래서 희랍 사상에는 하나가 되는 것이 없고 다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상의 풍토 속에서 초대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하지만 초대교회는 헬라사상처럼 분열되지 않았는데 삼위일체 사상이 여러 가지로 갈라질 수 있는 교회를 하나로 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님 행하시는 일들은 다 다르지만 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다양성 속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일치성을 강조하지만 무조건적인 일치가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를 말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기는 방법이 다 다릅니다. 내 방법만 옳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고 있고 우리가 섬기는 방법은 다르지만 우리에게 하나의 일치성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방법은 다 다르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는 일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다 교회를 섬기는 하나의 마음으로 일할 때 섬기는 방법은 다르지만 우리는 교회의 일치성,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행할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섬기는 예수님이 만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만물을 다스리시는 왕이신 예수님이시고, 내가 믿는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 되게 하려고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종으로 오신 예수님이심을 베드로는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순종했더니 기적과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한신교회 성도님들도 우리 하나님을 만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물을 다스리시는 왕이신 예수님,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섬기러 오신 예수님, 이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말씀에 순종하셔서 베드로가 기적을 일으키듯이 여러분 삶 속에 기적과 표적이 나타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강용규 목사 설교 중에서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깥에서 베드로에게 일어난 일들을 벌써 다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가 세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예수님은 이미 베드로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야 너 갈릴리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라. 그리고 잡아 올려지는 고기의 입을 보면 한 세겔의 돈이 있을 것이다. 그 돈을 가지고 너와 나를 위해서 세금으로 바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길을 가다가 갈릴리 호수에다가 한 세겔 되는 동전을 빠뜨려야 합니다. 그리고 동전이 떨어져 진흙 속에 파뭍히기 전에 물고기가 동전을 집어 먹어야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물고기가 그 동전을 배 속에 삼키기 전에 베드로가 던진 낚시 바늘에 물고기가 걸려야 합니다.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하나님이 아니면 될 수가 없는 사건입니다. 모든 사건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바로 모든 만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하니까 많은 고기가 잡혔어요. 마가복음 11장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저 건너편 마을에 가서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가 있으니까 나귀를 데리고 와라.” 정말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가 있었습니다. 베드로에게 말씀하기를 “네가 오늘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말씀대로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 그날 새벽에 예수님은 모든 짐승을 잠잠케 한 뒤에 닭 한 마리를 통해서 울게 했습니다.
“베드로야, 갈릴리 호수에 가서 낚싯대를 던져라. 그러면 한 세겔을 물고 있는 고기가 잡힐 것이다.” 물속에 있는 고기들까지 다스리시는 예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잃어버린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다시금 만물을 다스리는 왕의 자리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가 왜 성전의 세금인 한 세겔을 못 냈을까? 돈이 없어서 못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만물의 주인이시고 부유하신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되심은 너희를 부요케 하시려고 가난하게 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왜 성전세를 낼만한 돈이 없을 만큼 가난해지셨느냐? 우리를 이같이 풍성하게 살게 하시려고 가난하게 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섬김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형성될 당시에는 헬라문화와 사상이 중동지방 전체를 다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헬라사상의 특징은 이분법입니다. 우리 몸도 영과 육으로 구분하고 영은 거룩하고 몸은 더러운 것으로 나눕니다. 모든 세상을 선과 악으로 이분법으로 나누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흑백논리가 만연했는데 나는 옳으면 너는 항상 틀린 것이 되고 네가 옳다면 내가 틀린 것이 됩니다. 그래서 희랍 사상에는 하나가 되는 것이 없고 다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상의 풍토 속에서 초대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하지만 초대교회는 헬라사상처럼 분열되지 않았는데 삼위일체 사상이 여러 가지로 갈라질 수 있는 교회를 하나로 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님 행하시는 일들은 다 다르지만 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다양성 속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일치성을 강조하지만 무조건적인 일치가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를 말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기는 방법이 다 다릅니다. 내 방법만 옳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고 있고 우리가 섬기는 방법은 다르지만 우리에게 하나의 일치성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방법은 다 다르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는 일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다 교회를 섬기는 하나의 마음으로 일할 때 섬기는 방법은 다르지만 우리는 교회의 일치성,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행할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섬기는 예수님이 만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만물을 다스리시는 왕이신 예수님이시고, 내가 믿는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 되게 하려고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종으로 오신 예수님이심을 베드로는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순종했더니 기적과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한신교회 성도님들도 우리 하나님을 만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물을 다스리시는 왕이신 예수님,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섬기러 오신 예수님, 이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말씀에 순종하셔서 베드로가 기적을 일으키듯이 여러분 삶 속에 기적과 표적이 나타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강용규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