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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 위에 세워진 집 (마16:13-20)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예수님께서 ‘교회’ 라는 말을 마태복음16장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아침 그 말씀에 근거해서 교회가 어떤 곳인가에 대해서 네 번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교회는 “복 있는 자들이 사는 집”이라고 말씀을 드렸고, “보석으로 만들어진 집”이라고 말씀을 드렸고, “만남의 장소”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반석 위에 세워진 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교회는 예수님께서 세우시는 집입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교회를 세우시는 분이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교회를 소유하시는 분도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이 말씀은 대단한 말씀이고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우리가 교회를 세운다고 생각하기가 쉽고 우리가 교회의 소유주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교회는 개척멤버들과 건축헌금을 많이 낸 사람들이 세운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교회는 개척멤버들과 목사와 장로들의 소유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생각을 완전히 부정하시고 완전히 거부하셨습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이 말씀은 교회의 건축주와 소유주가 예수님 자신이심을 분명하게 선언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아마 제가 강변교회당 건축헌금을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는 많이 했을 것입니다. 아마 제가 강변교회를 섬기는 일에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는 많은 시간과 정력을 투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제가 강변교회의 소유권과 운영권을 행사하며 제 주장을 내 세우려고 한다면 저는 주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반역하는 무서운 죄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건축주는 건축 헌금을 많이 한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의 소유주는 시간과 정력을 많이 투자한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는 성부 성자 성령께서 신적인 재료들을 가지시고 신적인 건축술을 동원해서 건축하신 신적인 창조물입니다. 말씀과 피와 생기라는 신적인 보석 재료들을 가지시고 신적인 능력을 발휘해서 건축하신 신적인 창조물입니다. 교회의 건축주와 소유주는 주님 자신이십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재료들로 사용하시기도 하셨고 사람들을 일꾼들로 사용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그것들의 소유주도 예수님 자신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요21:15,16,17). 디베랴 바다가에서 사도 베드로에게 세 번 반복해서 하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 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하셨습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신자 등 모든 양 무리의 소유주가 주님 자신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들은 모두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주님의 소유물들이기 때문이고, 저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움직이게 하신 주님의 소유물들이기 때문이고, 저들은 모두 성령의 생기로 살게 하신 주님의 소유물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건축주와 소유주는 주님 자신이십니다. 말씀과 피와 생기는 물론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신자 등 모든 양무리의 소유주도 주님 자신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들, 이 사실을 그대로 받아드리십니까? 그대로 받아드리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사실을 받아드리지 않으시면 여러분들은 주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반역하는 무서운 죄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시고 소유하시고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은 사람들이 아닌 주님 자신이십니다. 교회의 주인은 사람들이 아닌 주님 자신입니다. 이것이 개혁주의의 교회관이고 박윤선 목사님의 교회관입니다.
둘째, 교회는 반석 위에 세워진 집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예수님께서 신적인 재료들을 사용해서 교회를 세우시되, 반석 위에 세우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여기 반석은 믿음을 고백한 베드로를 가리켰습니다. “너는 베드로 즉 반석이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You are Peter the rock, and up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주님께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이 누구시냐고 묻는 기독론적인 질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칭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바 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교회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바로 믿고 바로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들 위에 세워지는 집입니다. 교회는 믿음의 반석들 위에 세워지는 집입니다. 베드로의 믿음의 반석 위에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수가성 여인의 믿음의 반석 위에 사마리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의 믿음의 반석 위에 에디오피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고넬료의 믿음의 반석 위에 가이사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루디아의 믿음의 반석 위에 빌립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교회의 기초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로 믿고 바로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자들의 믿음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나 지식이나 권력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믿음이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목사와 장로들에게도 권사와 집사와 신자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이 교회의 기초가 되고 재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목회자가 제일 좋아하는 것도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순수하게 새록새록 자라가는 신자들을 보는 것보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믿음은 교회의 기초요 씨앗이요 꽃입니다.
그런데 저는 최근에 저와 한국 교회를 바라보면서 오늘의 한국교회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물려준 순수하고 겸손하고 진실한 믿음을 얼마나 지니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서글픈 마음에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탄식의 음성을 듣는 듯 합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 오늘의 한국교회는 순수하고 겸손하고 진실한 믿음을 많이 상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고 느끼고 손에 잡히지 않으면 좀처럼 믿지 않으려는 감성적인 믿음에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보고 느끼고 손에 잡힐 수 있는 감각적이고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사람들을 끌어 모읍니다. 소리 내어 웃게도 하고 소리 내어 울게도 하고 뒤로 너머지게도 하고 몸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게도 합니다. 음악으로 무용으로 사람들을 감동하게도 만듭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감각적인 방식을 통해서 교회에 몰려드는 사람들이 과연 순수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에 홀린 것 같은 믿음인지 모르겠습니다. 자기의 맨 정신으로는 자기의 맨 의지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순수하게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감정을 자극하고 흥분하게 만들어서 믿게 하는 것은 순수한 믿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듣지도 받지도 순종하지도 않는 믿음은 순수한 믿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말씀대로 살지도 행하지도 않는 형식적인 또는 감성적인 믿음은 순수한 믿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을 가리켜 주님께서는 반석이 아닌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7:24-27).
저와 여러분들이 두 주 전인 지난 8일 주일 저녁 동영상을 통해서 옥한흠 목사님의 진솔하고 처절한 고백과 호소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지금 한국교회의 믿음이 값싼 은혜만 전하는 행함이 없는 거짓 믿음이고 죽은 믿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 자신이 교인들이 듣기 좋아하는 설교를 하므로 복음을 변질시킨 죄인 놈이라고 처절하게 고백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이어서 “한국 교회 지도자 여러분, 복음을 변질시켰다는 주님의 질책에서 자유로운 이가 몇 사람이 되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결국 한국교회는 사데교회처럼 거의 죽은 교회요 회개할 능력조차 상실한 교회라고 지적했습니다. 지적하기 어려운 부끄러운 사실을 정직하게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밤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고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방명록에 올렸습니다. 그 글이 그 다음날 뉴스파워에 올려졌는데 지금도 그대로 올라와 있습니다. 그 글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의 ‘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옥한흠 목사님을 통해서 한국교회를 향하신 당신의 안타까워하시고 슬퍼하시는 사랑과 호소의 음성을 들려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동시에 주님의 안타까워하시고 슬퍼하시는 사랑과 호소의 음성을 전달해 주신 옥한흠 목사님에게 진심으로 존경과 사랑과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전하신 주님의 음성이 한국교회로 하여금 회개의 무릎을 꿇게 하는 그리고 한국교회를 살리는 생기의 역할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한국교회가 살기 위해서는 처절하고 진솔한 회개의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회개의 제사를 드릴 진솔하고 겸허한 영성을 상실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고백한대로 우리는 복음을 왜곡하고 회개와 삶이 따르지 않는 값싼 은혜만 전하며 인기에 영합했습니다. 회개에 대한 말과 의식과 행사는 많은데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처절하고 진솔한 회개의 제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회개의 제물이 될 자격이 없지만, 옥한흠 목사님과 몇몇 종들을 처절하고 진솔한 회개의 제물들로 받아주시고 그래서 한국교회를 살려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주여! 하늘을 가르시고 성령을 바람과 같이 보내주셔서 우리들로 하여금 모두 재 가운데 앉아서 통회 자복하며 회개하게 하시고 그래서 우리들을 살려주시옵소서! 기도할 자격이 없는 위선자가 하나님의 긍휼과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의지하고 호소하며 간구합니다. 주여!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들을 살려주시옵소서!’ 7월 8일 주일 늦은 밤에 김명혁 목사 드림”
제가 오늘 아침 왜 이렇게 길게 수다를 떱니까? 너무 부끄럽고 너무 속이 상해서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반석 위에 주님의 교회인 한국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들에게 반석과 같은 믿음이 많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교회인 한국교회를 떠 받들 만한 튼튼한 믿음의 반석이 많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지녔던 순수하고 겸손하고 진실한 믿음이 많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처럼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6:30,31).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마8:26).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심하느냐”(마14:31). 우리는 지금 주님의 제자들처럼 이렇게 호소하며 기도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하소서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하소서”(눅17:5). 우리는 지금 귀신 들린 한 아이의 아버지처럼 이렇게 부르짖으며 기도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9:24).
우리 강변교회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주님의 교회로 세워 가려면 우리들의 믿음이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겸손하고 진실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듣고 그대로 받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분명한 신앙 고백을 매일매일 반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시간 우리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우리들은 무릎을 꿇고 다음과 같이 분명한 신앙을 고백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한 번 따라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무릎을 꿇고 회개하면서 주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면 우리들의 믿음이 부족할 찌라도 우리들의 회개와 고백을 보시고 저와 여러분들을 강변교회와 한국교회를 세우시는 조그만 반석들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주여, 요한의 아들 시몬을 베드로 즉 반석으로 만들어주시고 그 반석 위에 예루살렘 교회를 세우신 주님께서 우리들을 오늘의 베드로 즉 오늘의 반석들로 만들어주시고 그 반석들 위에 강변교회를 세우시고 한국교회를 세워주시옵소서.” 교회는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집입니다.
셋째, 교회는 지옥의 문을 닫고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가 주어진 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the powers of death [hell] shall not prevail against it).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는 음부의 권세 즉 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의 권세, 사탄의 권세, 죽음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권세’ 라는 말을 ‘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즉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는 지옥의 문을 이기고 지옥의 문을 닫는다는 말씀입니다. 지옥은 항상 입을 벌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 있는데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는 이와 같은 지옥의 문을 이기고 지옥의 문을 닫는다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믿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서 있으면 지옥의 권세가 우리를 절대로 이기지 못합니다. 교회는 지옥의 세력을 이기고 지옥의 문을 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는 천국의 문을 여는 천국의 열쇠가 주어진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천국의 열쇠를 네게 주리니.” (I will give you the keys of the kingdom of heaven). 예수님께서 교회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열쇠는 문을 열고 닫는 일을 합니다. 천국의 문을 열고 닫는 열쇠를 교회에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열쇠는 예수님 자신이 가지고 계시는 특권의 열쇠입니다. 계1:18을 읽습니다. “볼 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계3:7을 읽겠습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천국의 문을 열고 닫는 열쇠는 주님께서 가지신 특권의 열쇠인데 이 열쇠를 교회에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너무나 엄청난 말씀입니다. 그래서 로마 캐톨릭 주석가들은 물론 많은 개신교 주석가들도 이 천국의 열쇠는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주신 것이고 일반 교회에게 주신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세 번째 말씀도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교회는 천국의 문을 열고 닫는 너무나 엄청난 특권과 사명을 부여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믿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서 있으면 우리들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천국 문을 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기도와 설교의 두 가지 열쇠로 천국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16:19을 읽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18:18). 교회가 이 세상 죄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리고 그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므로 천국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스데반이 사울을 위해서 기도했을 때 자신에게는 물론 사울에게도 천국의 문이 열렸습니다.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을 때 자신에게는 물론 에디오피아 내시에게도 천국의 문이 열렸습니다. 베드로가 10일 동안 기도한 후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했을 때 베드로 자신에게는 물론3 천명에게 천국 문이 열렸습니다. 반대로 베드로가 시몬을 향해서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라고 선언했을 때 시몬에게 천국 문이 닫혔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복음을 듣고 믿고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사죄의 은총을 선포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면, 믿고 회개하고 세례 받는 사람들에게 천국의 문이 열려서 천국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에게 주신 엄청난 보화인 천국의 열쇠를 귀중하게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복음을 최선을 다해서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죄의 은총을 선포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첫째, 교회는 주님께서 친히 세우시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둘째, 교회는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집입니다. 셋째, 교회는 지옥의 문을 닫고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가 주어진 하나님의 집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 음부의 권세가 저와 여러분들을 이기지 못합니다. 믿음은 사탄과 지옥의 세력을 무너트리는 힘을 발휘합니다. 음부의 세력이나 지옥의 세력이나 죽음의 세력이 절대로 교회와 성도들을 이기지 못합니다. 여러분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 사탄의 세력 앞에서 떨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사탄의 머리를 때려 부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에게 십자가의 피를 믿는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들에게 그리고 십자가의 피를 믿는 자들에게는 지옥의 문이 닫히고 천국의 문이 열립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그리고 십자가의 피를 믿으면 여러분들에게도 천국의 문이 열립니다. 여러분들이 모두 천국에 들어 가실 뿐 아니라 여러분들은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여러분들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 문을 열어 주는 천국 문 수위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족과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고 가족과 이웃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면 가족과 이웃이 하나씩, 하나씩 천국에 들어가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가성 여인이 그 역할을 했고, 고넬료가 그 역할을 했고, 루디아가 그 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강변교회 초기에 불교 신자였던 조춘국씨와 박달안씨에게 천국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후에도 저는 그 역할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너무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마지막 때를 사시는 여러분들에게 너무너무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을 지키고 지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십자가의 피만을 믿는 순수하고 겸손하고 진실한 믿음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듣고 믿고 순종하는 순수한 믿음을 지니시기 바랍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지니도록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반석 위에 집을 짓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지옥 갈 사람들을 하나씩, 하나씩 천국으로 인도하는 천국 안내자와 천국 문 수위의 역할을 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397)
출처/김명혁 목사 설교 중에서